붉은빛을 띈 그 검강(劍鋼)들은 사향의 자그마한 몸뚱아리를 분명히 꿰뚫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꿰뚫지 않은 것 같은 듯 빠른 속도로 허공을 스쳐나갔다.
검강의 비가 가라앉은 후, 그 검강을 맞은 피투성이가 된 사향이 있어야 할 곳에는 텅 빈 허탈감 뿐,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할아범, 그렇게 살면 안됀다구!"
노인의 뒷쪽에서 희영이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하지만 노인은 못들은건지, 아니면 못들은 척을 하는 건지 노인의 눈은 사향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노인이 등 뒤로 무언가를 느낀듯 땅을 박차올라 한바퀴 공중제비를 돈 후에 반대방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노인은 그 기척이 '가짜' 라는것을 모르는 듯 했다.
"하앗!"
갑자기,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노인의 등뒤에서 서늘한 검(劒)의 기운이 느껴졌다.
"빙결심법(氷潔心法) 제 4장 3구, 혈영병절신멸멸(血影昞絶神蔑滅)!!"
사향의 흑혈검(黑血劍)이 얼음의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싸하게 퍼져나가 한줌의 가루가 되어 안개처럼 흩뿌려졌다.
"빙격(氷激)!"
낭랑한 사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안개처럼 흩뿌려진 가루가 한순간에 노인의 몸뚱아리로 직격했다.
노인은 몸을 날렸다. 노인은 그것으로 피한 줄만 알았다. 그것이 아니었다. 빙격은 노인의 몸을 따라 움직였다. 노인은 음속(音速)에 가까운 속도로 질주하며 그 이유가 무언지를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커어억!"
노인의 사지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빙격이 직격했다. 그랬다. 그 빙격의 속도는 음속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걸로, 끝인가요?"
사향이 사뿐한 몸짓으로 처참한 노인의 사지 앞으로 발을 디뎠다. 싸한 사향의 한기(寒氣)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노인은 깨달았다. 그 빙격은 자신의 온기(溫氣)를 읽고 자신을 추격했던 것이다.
"....훗, 그렇군. 결국, 이번에도 내가 진 것 같아."
"여기. 금창약입니다."
그녀가 금창약을 건네자, 노인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털며 일어서서 금창약을 받아내었다.그리고 곳곳에 난 상처에 바르며 맥없는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그럼. 이런 곳에 있을 필요가 없겠군요."
사향이 손을 쫘악 폈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헌 종이짝마냥 구겨지며 사향의 손 위에 모였다.
"너..너 무슨 일을 한건가?"
"월향빙결계(月香氷結界)입니다."
"......."
노인은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과 사향이 싸우는 장면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았으리라. 그것이 바로 결계였다. 노인은 또다시 김빠진 웃음을 지으며 사향에게 이제는 다 써서 쓸모없게된 금창약을 건넸다.
"미안하게 되었네. 모두 쓰고 말았어."
하지만 사향은 괜찮다는듯 손을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혼자남은 노인은 중얼거리며 교단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