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原梁氏(남원양씨) 兵部郎中派(병부낭중파) ![](http://i1.daumcdn.net/deco/contents/emoticon/things_21.gif?rv=1.0.1)
大司諫公世譜(대사간공세보)
西紀(서기) 1984년 甲子刊(갑자간)![](http://i1.daumcdn.net/deco/contents/emoticon/things_21.gif?rv=1.0.1)
宗憲(종헌)
崇先(숭선) 愛族(애족) 裕後(유후)
梁 俊模(양 준모) ![](http://i1.daumcdn.net/deco/contents/emoticon/per_23.gif?rv=1.0.1)
변호사, 대한 변협회장, 한국법학회장, 라이온스 클럽 총재,
헌법심의위원, 양씨 중앙 종친회 회장.
서(序)
![](https://t1.daumcdn.net/cfile/blog/166F7B514DC82DDD14)
이하위지보야(以何謂之譜也)오. 보자(譜字)는 보(普)와 통(通)한다. 宗門(종문) 族譜(족보)를 두루 거두어 一根(일근) 一源(일원)임을 알리우고 世系(세계)와 昭穆(소목)을 밝혀서 祖先(조선)의 世德(세덕)과 家風(가풍)을 宣揚(선양)함으로서 雍雍(옹옹)한 和睦(화목)의 기틀을 세워 주는 것이 族譜(족보)이다.
始祖(시조) 以前(이전)에는 文獻(문헌)이 없어서 알수 없으나 族譜(족보)가 있은 後(후)부터 始祖(시조)를 알수있게 되었으니 族譜(족보)가 그 얼마나 重(중)한가 ?
子孫(자손)은 千萬個(천만개)의 柯枝(가지)이며, 잎이다. 萬(만)갈래의 柯枝(가지)를 하나의 根源(근원)으로 統合(통합)시키는 媒體(매체)가 族譜(족보)라 하겠으니 그 뜻과 힘은 참으로 크다.
더구나 오늘의 社會構造(사회구조)를 보면 온 누리가 하나의 生活圈(생활권)으로 黃(황), 紅(홍), 白(백), 黑(흑), 種族(종족)이 한 마당위에 어울리어서 함께하게 되었으니 族譜(족보)의 重要性(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東西(동서)를 莫論(막론)하고 뿌리 찾기 運動(운동)이 일고있는 所以然(소이연)이 여기에 있으며, 나 라고 하는 사람이 된 所自出(소자출)의 뿌리가 이 族譜(족보)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 姓門(성문)은 成化(성화) 壬寅(임인:서기1482년)에 訥齊先祖(눌제선조)께서 手筆譜(수필보)를 남기신 後(후)로 여러차례 姓譜(성보)를 編修(편수)하였으나 濟州(제주), 南原兩房(남원양방)의 合編譜(합편보)가 修纂(수찬)된 것은 肅宗(숙종) 丙寅(병인:서기1686년) 英祖(영조) 丙寅(병인:서기 1746년) 두 大譜(대보)와 戊辰(무진) 大譜(대보:서기 1648년)등이 있을뿐이며, 그 후 2,3백년동안 各祖其祖(각조기조)로 各派(각파) 派譜(파보)만을 編修(편수)하여 오다가 지난 1973年 癸丑年(계축년) 봄에 梁氏(양씨) 中央宗親會(중앙종친회)에서 濟州(제주), 南原(남원), 忠州(충주)등 諸貫諸宗(제관제종)의 合譜(합보)가 論議(논의)되어 오랜 刻苦(각고)끝에 完刊(완간), 頒帙(반질)한것이 겨우 5년밖에 안되는데, 이렇게 大司諫公派(대사간공파) 世譜(세보)를 또 다시 編修(편수)하게된 것은 그럴만한 原因(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帶方君派(대방군파) 宗會長(종회장) 在灝(재호) 宗親(종친)집에서 1799년에 編刊(편간)한 崇禎己未譜(숭정기미보)가 발견되었다. 이 185년전의 古譜(고보)를 여러 文獻(문헌)에 비추어 考察(고찰)하여 보니, 이제까지 帶方君波譜(대방군파보)의 系世(계세)가 誤傳(오전)되어 온것임을 確認(확인)하게 되었다.
이 譜牒(보첩)은 文襄公(문양공)의 後孫(후손)인 學臣(학신), 鍾禧(종희) 두 先祖(선조)와 大司諫(대사간) 後孫(후손)인 寶龜(보구) 先祖(선조)께서 主幹(주간), 編纂(편찬)하시었고, 그 序文(서문)과 跋文(발문)이 실려있다. 兵部公(병부공)을 1世(세) 中始祖(중시조)로 昭穆(소목)이 繼繩(계승)되어 있으며, 己未譜(기미보) 以前(이전)의 帶方君波譜(대방군파보) 系世(계세)의 誤謬(오류)을 明晳(명석)하게 披瀝(피력)한 [世系辨證(세계변증)]의 글도 곁들어 놓았고, 그 僞誣(위무)의 緣由(연유)와 釐整(리정)의 當然性(당연성)을 條目條目(조목조목)으로 밝혀 놓았다.
뿐만 아니라, 兵部郎公(병부낭공) 孫錄(손록)과 帶方君(대방군) 孫錄(손록)을 比較(비교 對照(대조)하여 보니, 帶方君派(대방군파)의 1世(세) 中始祖(중시조)가 된 兵部公(병부공) 10世孫(세손) 黙齊公(묵제공)을 비롯하여, 2세 3世祖(세조)인, 友龍(우룡), 思貴(사귀) 先祖(선조) 以下(이하) 19世孫(세손) 景煥(경환)에 이르기 까지 無慮(무려) 16代(대)에 걸친 孫錄(손록)이 모두 한 글자 한획도 틀림이 없는 兵部公(병부공) 後孫(후손)들임을 判明(판명)하게 되었다.
帶方君(대방군)이 兵部公(병부공)의 後孫(후손)이 아닌 이상 兵部公(병부공) 後孫(후손)을 中始祖(중시조)로 삼는 帶方君波譜(대방군파보)는 따로 分立(분립)할수없는 일이며, 또 이와 같은 誤謬(오류)를 發見(발견)하고서 바로잡지 않을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스러웁게도 帶方君派(대방군파) 在灝(재호) 宗親(종친)이 宗中(종중)의 總意(총의)를 모아 가지고, 兵部公派(병부공파)와의 合派(합파)를 提請(제청)하여 왔기에, 우리는 深思熟考(심사숙고)한 끝에 지난 1982년 8월에 兵部公(병부공) 各派(각파) 全國代議員(전국대의원) 總會(총회)의 議決(의결)을 거친 後(후), 考證(고증)에 數三年(수삼년) 동안 爛謀熟議(란모숙의)를 거쳐 이제 大司諫公派(대사간공파) 世譜(세보)를 刊行(간행)함으로서 誤診(오진)된 系世(계세)를 바로 잡게 된 것은 吾門(오문)의 盛事(성사)가 아닐수 없다.
우리 兵部公(병부공) 裔孫(예손)들은 이번 修譜(수보)를 契機(계기)로 하여 한층 더 和睦(화목)하고, 團合(단합)하여서, 三姓祠(삼성사)에 對(대)하여 不合理(불합리)한 一部(일부) 主張(주장)을 바로잡고, 始祖(시조) 良乙那王(량을나왕)의 榮譽(영예)를 지키는 일에 渾身(혼신)의 努力(노력)과 精誠(정성)과 投資(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기어코 貫徹(관철)하여 東邦華閥(동방화벌)의 矜持(긍지)를 지킵시다. 1984년 갑자년 6월 일,
兵部公(병부공) 32世後孫(세후손) (大宗會長(대종회장)
俊模(준모), 再拜(재배) 伏撰(복찬)
거제문중 병부공파 30세손 양 방수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