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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어머니께 생애 첫 명품백 선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5월. 결혼식장을 잡아야 했다.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의 평을 종합해 서너 군데 돌아다니다 한 곳을 택했다. 계약금은 반반 부담했다. 양가 어머니도 결혼식장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만끽하며 흐르는 시간을 즐겼다.
간간이 사람들이 “결혼 준비는 잘 되니?”라고 물을 땐 피식 웃었다. 그때만 해도 결혼 준비가 쉬운 줄 알았다. 결혼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한 선배 덕분이었다. 선배는 내 결혼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는 예단은 안 하더라도 시어머니 선물은 꼭 해드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핸드백을 사드리면 무척 좋아하신다고 하니 안 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님은 내 ‘제안’에 흔쾌히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평소 내가 아는 시어머님이라면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살짝 당황스러웠다. 기왕 선물하는 것, 시어머님께만 사드릴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우리엄마 아닌가.
그리고 기왕 선물을 드리는 거라면 ‘노 세일’ 브랜드를 택해야 했다. 웬만한 브랜드 제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세일 시즌 매장이나 아웃렛 매장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니, 언제 사도 손해 보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고르고 싶었다.
그 유명한 C사 매장에서 생애 첫 명품 백을 고르는 양가 어머니는 놀이공원에 간 아이처럼 행복한 모습이었다. 핸드백을 든 채 요리조리 자태를 비춰보는 양가 어머니의 모습에 괜스레 눈가가 뜨거워졌다. 잊고 살았지만 엄마도 여자였다. 문제는 착한 딸, 착한 며느리 놀이하는 건 무척 즐거웠으나 석 달치 월급이 몽땅 사라졌다는 것. ‘푸우’ 역시 나 따라서 양가 어머니의 선물을 사느라 몇 달간 빈털터리 신세였다.
“결혼, 다시 생각하자”
미국의 유명한 아웃렛 타운 ‘우드베리’에 들러 결혼에 필요한 각종 혼수를 구입하기로 했다. 알뜰한 시어머님은 지난해 쓴 영수증 뒷면에 사야 할 제품들을 또박또박 적어놓으셨다. 리스트에는 시계, 코트, 정장, 반지, 속옷 3벌, 화장품이 적혀 있었다.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함께 온 친정식구들은 우드베리 앞 모텔에 머물면서 1박2일 쇼핑이란 걸 해봤다.
시댁 식구들의 선물도 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을 위해 뭔가를 고른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렇게 예물로 주고받을 물건까지 이틀간의 쇼핑으로 웬만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러곤 한동안 잠잠하게 보냈다. 그런데 결혼을 위해 구입한 물건들을 집 안에 들여놓는 바로 그 시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얼른 시집가! 이렇게 어지르지 말고 시집가서 사!” 아빠도 섭섭하신지 괜히 “가져갈 짐은 미리 싸놓아라”며 냉랭하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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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딸 둘을 시집보내느라 힘드신가 보다’ 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급격히 변하는 감정을 추스르던 때, 결국 일이 터졌다. 집 문제 때문이었다. 감정 관리가 잘 안 되는 내가 그만, 남자친구가 보여준 집을 보고 인상을 쓴 것. 남자친구가 구해놓은 낡은 집을 보니 포커페이스를 연출하기 힘들었다. 아이들 대여섯이 어질러놓은 듯한 집 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열흘 뒤 “전셋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니 당장 계약해야 한다”는 시부모님과 “오늘은 (기사) 마감이라 갈 수 없고, 사는 사람이 보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할 수 없다”는 나의 의견충돌이 있자 순진한 ‘푸우’가 폭군으로 변신했다.
“내가 이렇게 마련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넌 더치페이 한다면서 작은 것만 하지, 집 문제에선 그렇지도 않잖아! 아픈 우리 엄마가 나가서 계약하시겠다는데 왜 못하게 해? 그럼 네가 와서 하든가. 넌 하지도 못하면서 왜 요구만 하는 거야!(엉엉)”
남자친구는 내가 자기 부모님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해서 화가 난 상태였다. 사실 신뢰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닌데…. 어찌됐든 ‘푸우’가 지난 9년간 이만큼 화낸 적이 없던 터라 겁이 나긴 났다. 홧김에 나도 오밤중에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으니…. 다음 날 평화롭게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 상처가 아물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입 무거운 남자친구는 5년쯤 흐른 뒤 소주를 한두 병 마셔야 그때 왜 글렇게 화가 났는지 구구절절 말할 것 같다.
물론 50년이 지나야 화가 풀릴 수도 있다. 어찌됐든 내가 본 다른 집을 고르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됐다. 다음은 신혼여행지를 고를 차례였다. 배낭여행 중에 만난 사이라 그런지 여행에 대한 느낌이 각별해 여행만큼은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푸우는 지구본을 돌리다 찾았다는 크로아티아에 가고 싶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이 많이 가는 휴양지라면서 짠돌이인 내게 “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비용은 여느 신혼여행객들이 쓰는 것보다 20%쯤 적게 든다”며 꼬드겼다.
출장 갈 기회가 적기 때문인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릴 적부터 신혼여행지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무대를 생각하던 나는 비싼 비행기표 탓에 그 꿈을 고이 접고 남자친구의 의견을 존중했다. 늘 어깃장만 놓던 내가 오랜만에 고개를 쉽게 끄덕여서인지 푸우는 어리둥절해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며, 펜션을 고르며 한동안 즐거워하는 그를 보자 여행의 참맛은 뭐니 뭐니 해도 준비하는 맛이다 싶었다. 다시 찾아온 평화.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터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청첩장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현대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클래식하고 전통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내가 하나의 청첩장을 선택한다는 게 무리였다. 남자친구는 내가 고른 청첩장을 보고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오빠의 말을 반영해주겠다”는 내 꾐에 넘어가 “솔직히 말해 촌스럽다”고 털어놨다.
난 또 어김없이 화를 냈고 “그렇게 촌스러우면 각자 골라! 오빠는 고르지도 않으면서 왜 평가만 해!”라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청첩장 마감일이 다가오자 이번에도 ‘푸우’가 양보했다.청첩장 문구를 쓰는 데도 두 달은 족히 걸렸다. 마침내 마감일. 글이 오죽 안 써졌으면 라디오에 사연을 다 보냈을까.
평소 즐겨 듣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청첩장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연과 함께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를 신청했다. 내 사연은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됐다. 문구와의 사투는 결국 5시간 만에 끝났다. 마침표를 찍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이제는 청첩장을 받으면 그 문구부터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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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나른한 주말은 다시 올까?
일본에 사는 이모가 알려준 한복집에서 한복을 맞추는데, 이번에는 엄마의 취향 문제가 불거졌다. 양가 어머니가 세트로 입고 싶어하셨지만 취향이 다르니 한복을 고를 수 없었다. 이번에도 너그러운 시어머님이 양보하셨다. 딸 시집보내는 친정엄마 마음을 잘 안다고 하시면서….
그 뒤로는 틈만 나면 가구단지에 들렀다. 물건 잘 못 고르는 내가 선뜻 나서진 못했다. 냄비도 보러 가고, 가전도 보러 다녔지만 값이 비싸 미뤘다.
그런데 이렇게 이것저것 보러 다니면서도 정작 결혼식의 꽃인 웨딩드레스 고르는 일은 뒷전으로 미뤘다. 평소 허리라인이 ‘완만’해 고민이던 나는 웨딩드레스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체념하고 있었다.
드레스 안에 달린 복대로 배를 가까스로 눌렀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 무슨 드레스가 그렇게나 작은지…. 게으른 탓에 결국 예식장에서 드레스를 맞추고, 급기야 2개의 속옷과 한복 속바지를 입고서 억지스러운 S라인을 만들고 나니 조금은 흡족했다.
다행이었다. 까칠한 나를 이해하느라 9년간 서서히 20kg이나 불어난 남자친구에게 어느 날 심각하게 말했다. “우리 인생 최고의 날을 위해 몸 한번 만들어보자.” 그러나 외침은 선언으로 끝났다.
도리어 강박관념 탓에 폭식하는 습관만 생겼다. 동생이 살 빼는 크림과 롤러를 사다 날랐지만 바르는 것이 겁나 여태껏 사용 한번 해보지 못했다. 9월21일 웨딩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 받던 날.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예식 전까지 피부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일러준 방법은 간단했다.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을 얼굴에 대고 있다 때가 나오도록 살살 문지를 것. 그 후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을 얼굴에 댔다가 뗀 뒤 수분크림을 평소의 2배로 바를 것. 하루 실천해봤는데 주변 여자 선배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자 빨랫줄에 걸린 낡은 속옷처럼 사는 게 고단하다. 대단한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고르는 일 자체가 힘들다. 웨딩 촬영을 하면서 다른 커플과 똑같은 포즈로 웃음 짓자니 그 피곤함이 더해진다.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홍삼액을 마셔도 고3 이후 처음으로 생긴 구강 내 염증은 커져만 간다. 당장 이번 주 토요일에는 미국에서 산 이불을 들고 분당으로, 일죽으로 배달을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애석해하실 것 같다. 손녀사위에게 이불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이 마음을 헤아리셨는지 시어머님은 엄마에게 이불 한 채를 더 해주셨다. 고마운 분이다. 웨딩 촬영을 마쳤다고 하니 먼저 결혼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어제 힘들었지? 결혼식은 더 힘들어. 사는 건 그보다 더 힘들고.” 꼭 한 달 남은 결혼식, 얼른 치르고 싶다. 그래야 그전처럼 평화롭고 나른한 주말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설마 그 주말이 다시 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