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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 도리사
경북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냉산에 있는 도리사는 해평면 소재지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낙산방면으로 가면 송곡교 직전 쌍용송덕주유소에서 우회전하면, 절로 가는 입구 도로에 “해동최초가람태조산도리사”라는 현판의 도리사 산문(일주문)이 보인다. 여기에서 약 4.1km가면 제1주차장이 나오고, 산길로 1.2km 더가면 제2주차장이 있다. 대형버스도 이곳까지 갈 수 있으며 승용차는 도리사 안내도가 있는 곳까지 평일에는 가능하나 주말에는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절 아래까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찾아가기 쉽다.
구미역에서는 선산방향, 고아읍 현일고등학교 신호등 삼거리에서 우회전 해평ㆍ대구방향, 숭선대교 다리를 지나 2차선 도로를 계속가다 보면 상주방향과 대구방향 사거리 도로 표지판이 나오는데 좌회전 상주방향으로 진행, 해평면사무소를 지나 가다보면 도리사 입구 표지판이 나오는데 도로변에서 약 10분 거리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9.gif) → 도리사 전체 전경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0.gif) → 도리사 전경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1.gif) → 도리사
도리사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이다. 겨울 달밤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산허리에 만개한 것을 보고 눌지왕 2년(418)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사명을 붙였다고 한다. 즉 도리사는 신라불교 초전지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도 설화를 잘 나타내 주는 현장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2.gif) → 도리사 올라가는 길
현재 도리사 경내에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성각 등의 법당과 요사가 있다. 각 건물 내에는 관계 현판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불상ㆍ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석조물로는 화엄석탑과 세존사리탑, 아도화상사적비(조선인조 17년 건립) 및 자운비, 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 아도화상 신선대가 보존되어 있다. 특히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사리가 나와 한 때 크게 알려 졌으며 금동육각 사리함(국보 제208호)이 발견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8.gif) → 도리사 세존사리탑
또한 76년 4월에는 도리사 석축에서 석상 1구가 발견되었는데 그 형상이 발견 당시에는 아도화상의 얼굴과 같은 조각상이라 하여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으나 그 석상의 행방은 현재 알 수 없다. 조선시대 김종직은 선산의 열 가지 빼어난 것 가운데 하나로 도리사를 꼽았다고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4.gif) → 도리사 석탑 전경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5.gif) → 도리사 석탑
이제 도리사 경내의 유물들을 살펴보면 도리사 석탑(보물 제470호)은 극락전의 앞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3.3m이다. 이 탑은 일반 석탑과는 전혀 그 형태를 달리하는 특이한 모습이다.
지면 위에 10매의 길게 다듬은 돌을 놓고 그 위에 탑의 기단 부분을 세웠다. 기단은 사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의 각면에 직사각형의 판석 6~7매를 병풍처럼 둘러 세웠고, 남면 중앙부에는 문짝이 새겨져 있다. 일부 보수 과정에서 잘못 복원되었는지 일부 부재들이 맞는 않는 곳을 자세히 보면 확인 할 수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6.gif) → 도리사 석탑 상륜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7.gif) → 도리사 석탑 최상륜부
탑신 부분은 3중으로 각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하여 얽거나 짜서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벽돌탑을 모방한 계열에 가깝다. 조각 양식과 돌 다듬은 수법 등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고려시대 중엽으로 추정된다. 흔히 이 탑을 화엄석탑이라 부르는데 무엇을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gif) → 도리사 극락전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3.gif) → 도리사 극락전 공포
도리사 극락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8호)은 고종 13년(1876) 중건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목조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으며 도리사 우측 끝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화강암을 다듬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막돌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했다. 벽체를 모두 판벽으로 구성하고 바깥 벽면에는 벽화를 그렸다.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조선 후기의 건축 특징이 잘 드러난다. 지붕위에 양 옆으로 있는 치미는 너무 크게 만들어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부에 모셔진 아미타여래(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4호)는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에 육계를 갖추었다. 얼굴 표정은 위엄과 자비를 잃지 않은 조선시대의 원만한 불상양식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2.gif) → 극락전 내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손 모양은 양손을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바닥을 위로 보게 하여 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와 장지를 맞대었고, 오른손 역시 왼손과 같은 형태이나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이며 두 무릎까지 덮여 있는데 균형과 단정함을 지니고 있다. 불상의 모습과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17세기에서 18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개금되어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20.gif) → 아도화상 사적비 및 불량답시주질비
석탑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가면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가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21.gif) → 도리사 사적비
이 비석은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度)의 행적을 적은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도는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의 권유에 의해 5세 때 출가하였다. 그는 선산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노력하였다. 그후 경주로 가서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구하고 불법을 전하다 귀족들의 반발로 여의치 않아 다시 선산 모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ㆍ오얏꽃이 만발하였음을 보고 그곳에 도리사를 지었다고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22.gif) → 도리사 사적비 윗부분
비신의 높이는 197cm이고 폭은 83.5cm이다. 건립연대는 조선 효종 6년(1655)이다.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속해있는 토지[佛糧畓]를 희사한 시주의 이름과 논, 밭의 면적을 밝혀 놓은 것으로 높이 161cm이다. 숙종 38년(1712)에 능철(能哲)의 주관 아래 김성원(金成元)이 글자를 새겨 만들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9.gif) → 아도화상 신선대
그리고 아도화상 신선대가 있다. 넓은 암석을 4곳 배치하고 그 위에 소형의 지석으로 광대한 1석을 지탱하고 있으며 아도화상이 이 대석 위에서 좌선하였다고 하여 이른바 신선대 혹은 좌선대라 부른다.
이제 도리사를 나와 전 모례가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6호)으로 간다. 흔히 모례지가(毛禮之家; 毛禮井) 모례장자샘이라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4.gif) → 모례가정 전경
도개면 도개리 현 모례원 근처에 있는 이 우물은 도개리 마을 중앙에 위치하는데,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인 모례(毛禮)의 집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례는 고구려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신라에 불교 전파를 위해 왔으나 탄압이 심해지자 자기 집에 굴을 파고 숨겨 주었으며, 후에 아도가 왔을 때도 자기 집에 3년 동안 머슴살이하면서 머물게 했다고 전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5.gif) → 모례가정 우물 세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buddhapia.com%2Fcommunity%2Fleisure_2%2Ffiles%2Fkim_25_16.gif) → 모례가정 우물 세부 확대
우물은 직사각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큰 독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우물의 깊이는 3m이고 둘레는 단면이 원형이며 종단면은 가운데의 배가 부르고 상하가 좁은 형태이다. 밑바닥을 두꺼운 나무판자로 깔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나무판자는 아직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아도화상은 일곱 살 때 이 곳 모례장자의 집에 와 머슴을 살면서 양 천 마리와 소 천 마리를 길러 모례를 크게 놀라게 했다. 이렇게 5년간 일해주고 열두 살에 아도는 떠났는데, 모례가 아쉽고 섭섭하여 가는 곳을 물어보니, "얼마 뒤 당신 집으로 칡순이 뻗어올 테니 그 칡넝쿨을 따라 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오"하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과연 그 뒤 한겨울 어느 날 칡순이 모례의 집 문턱을 넘어오기에 그것를 따라 냉산 자락에 이르니, 아도가 두 말들이 자그만 망태기를 만들어 모례에게 내놓으며, "절을 지을 것이니 시주 좀 해주시오"하였다. 모례가 시주한 천 섬으로 아도는 복숭아꽃ㆍ오얏꽃이 만발한 냉산 기슭에 절을 이룩하니 이것이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라는 것이다. 이 우물과 도리사는 신라 불교의 전파를 알려주는 유적으로 신라 불교의 성지이다.
구미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신라 불교를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찰 도리사와 모례가정을 만나면서 삼국유사의 현장이라는 점만 아니라 고구려 접경의 신라 불교의 전래지가 이 곳에 남아 전한다는 것은 당시의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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