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유다서 24-25절
제 목 영원한 축복을 받은 성도[8]
부모는 자신은 좋은 옷을 입지 못해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출을 했을 때 자녀들이 예쁘다는 칭찬을 듣게 하기 위해서 여러번 옷을 갈아입히며 신경도 씁니다.
그렇게 수고하는 것은 오직 자녀를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사랑을 받게 되면 아이가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좋은 것만 주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 정말 예쁘다, 정말 똑똑하다, 크게 성공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부모들은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마음으로 자녀를 키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도록 많은 수고와 희생과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믿음으로 반석위에 선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이며,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하늘의 놀라운 상급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앞에 흠 없이 서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은 자는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말씀대로 그의 삶을 살아내야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축복을 받은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놓은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았고 깨달았습니다.
자기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고난에 떨어질지라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순순히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요셉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번성하여 한 민족으로, 한 나라로 세움을 입을 때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부르시기 위한 준비는 아브람을 부르시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람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시며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셨고 저 별들을 셀 수 없는 것처럼 네 자손도 이처럼 많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으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그의 후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인지 미리 알려 주시는 자상함도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이 말씀중에 아브람의 자손들이 사백년동안 거할 장소를 마련하는 사명을 요셉이 맡은 것입니다.
이 민족이 사백년이 지나고 나면 많은 재물을 이끌고 출애굽하게 될 것이라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처럼 이스라엘백성은 많은 재물을 이끌고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뿐 아니라 지금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언제나 먼저 말씀해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지만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많은 시간을 두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후손에 대해 직접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영적인 자녀보다 앞서 자신의 집에 있던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셨다면 그것은 분명 선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약속을 받고도 인간의 방법으로 실행한다면 그 마음은 근심이고 욕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약속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아야만 그 뜻대로 순종할 수 있으며 순전한 마음으로 약속을 지켜 가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축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아브람은 팔십 육세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한 아브람을 향해 진노하셨던 하나님은 13년후 그가 구십구세때에 부르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시며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7장 4-5절에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않고 아브라함이라 부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온전히 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을 약속하셨고 열국의 아비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아내인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시고 열국의 어미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실 한 민족을 만드시는 것도, 또 열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을 반석위에 세우시는 것도, 사라를 축복하셔서 닫힌 태를 여신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에 인간의 공로는 필요 없습니다.
다만 영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인간의 순종이 필요할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꾸시고 한없는 축복을 허락하신 것처럼 죄인의 이름을 성도로 바꾸시고 영원한 생명의 축복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성도들이 할 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라는 명령처럼 말씀안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것뿐입니다.
인간의 소욕을 버리고 말씀대로 살다보면 사단의 공격도 받겠지만 그것마저도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확신 없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며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열국의 어미로 택함을 받은 사라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낳을 어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자 그는 아내를 세상의 왕에게 주어버린 것입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그 여인을 취하면 너는 죽게 될 것이라고 책망하셨기 때문에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죄를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쫓아다니며 수습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삶속에서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사단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보호하시기 때문에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지 못한 것처럼 사단이 공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이 어리석고 용기 없고, 믿음의 확신이 없는 자를 사랑해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게 되자 아브라함은 변했고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반석위에 서신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인간이 가장 순종하기 힘든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내어놓기 힘든 열매중의 하나가 자녀입니다.
백세에 얻은 아들을 그것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부모라면 순종하기 힘든 것입니다.
기껏 백세에 이삭을 주시고는 또 그 아들을 내어놓으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떨지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이삭을 내어놓으라고 하신다면 기쁘게 드리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하실 수 있느냐고 분을 내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은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며 나도 이삭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만나는 사건마다 하나님은 이삭을 달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아마도 절대로 줄 수 없다고 이삭은 내 자식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자녀를 온전히 마음에서 놓는 것이 얼마나 힘들면 바로가 장자가 죽어서야 욕심을 버렸고, 사무엘은 아들들을 온전히 바로 세우지 못했으며, 다윗은 아들들의 악행을 보면서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우상의 마음을 깨야 합니다.
그 마음을 깨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을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이삭을 기꺼이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제물로 드릴 수양을 준비하셨고 아브라함과 이삭을 축복하셨습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을 보여드릴 때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고 역사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성도들은 이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탕을 하나 달라고 하는 것은 그 사탕을 먹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 사탕을 통해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지 보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탕을 줄 때 아버지는 그 사탕을 도로 아이에게 줄 것입니다.
아니 한 개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풍성하게 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삭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있는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내세를 믿고 있는지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절대적인 순종이 하나님의 백성이 거할 땅을 준비한 요셉에게 믿음의 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 역시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손자인 요셉에게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할 것인지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가는 처지에 놓였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인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자를 부르실 때 먼저 고난부터 시작합니다.
병이 들고, 재산을 모두 잃는 그런 고난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욕심을 마음에서 버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그것이 바로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성도에게는 고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할 고센땅을 얻기 위해서 요셉은 세상의 왕을 만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형들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그를 노예로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요셉을 판 것은 육의 아버지의 사랑을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노예로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억울했지만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 요셉을 음란사단은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 성적인 유혹했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을 하였고 그 대가로 감옥에 가게 되어습니다.
보디발 아내를 받아들였다면 요셉은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혹을 거절하자 곧바로 요셉은 고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잘 산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요셉처럼 고난을 당하는 믿음의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허나 요셉이 총리가 되기 전에 겪어야 했던 이런 사건들은 요셉이 하나님앞에 흠없이 서기 위한 과정이었고 성도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속에서 믿음으로 이겨야만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해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단의 시간 다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요셉이 잠시동안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옥을 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 주셨습니다.
감옥에 갔을 때 관원장 둘이 바로에게 죄를 짓고 함께 있었는데 요셉은 그들이 꾼 꿈을 해몽해주었고 하나님은 해몽대로 역사하셨습니다.
목숨을 구해줘서 은혜를 갚겠다던 술관원장은 세상의 권세를 잡자 곧 감옥에 있는 요셉을 잊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세상의 왕을 만나 하나님의 백성이 거할 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왕이 난해한 꿈을 꾸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 꿈은 바로가 하숫가에 섰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소를 잡아먹은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 꿈은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 꿈을 연이어 꾼 것입니다.
바로는 꿈이 너무 이상해서 해몽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때 술관원장이 요셉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성도들이 요셉처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안에 있으면 절대로 감옥에서 나갈 수 없을 것 같아도 하나님은 술관원장이라는 한 사람의 권세를 사용하셔서 요셉을 구하십니다.
요셉이 왕의 꿈을 해몽해주자 왕은 곧 요셉을 총리로 삼았습니다.
여러분은 총리가 된 요셉의 출세만 보지 말고 성도가 어떤 길을 갔을 때 성공할 수 있는지 그것을 요셉을 통해서 배우셔야 합니다.
만약 요셉이 세상사람들이 하는대로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했다면 잠시 편안한 생활을 할 수는 있어도 결국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택했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감옥에 있던 노예가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처럼 7년후에 가뭄이 올 것을 믿었고, 풍년이 든 7년동안 최선을 다해서 창고에 곡식을 모아 보관했습니다.
정말 7년이 지나자 온 세상은 가뭄이 들기 시작했고 굶주리게 되자 곡식을 창고에 가득 보관하고 있는 애굽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 역시 가뭄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자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양식을 사오도록 했습니다.
`
가뭄이라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애굽으로 왔고 요셉은 그들을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만들고 아버지와 동생과 떨어져 살게 했으며, 감옥에서 죄인으로 살게 만들었던 형들이 눈앞에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시겠습니까?
요셉은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판 것에 대해 근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신 것이지 당신들이 아무리 시기했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애굽으로 팔려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위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는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아는 성도들은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47장 27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고센땅을 얻은 이스라엘백성은 가뭄으로 고통을 당하는 세상과 달리 세상의 왕의 보호속에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순종하는 자가 받는 축복입니다.
요셉은 살아가면서 고난도 있었고 축복도 있었는데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지 않았고 축복을 받을 때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리, 어떤 환경에 처할지라도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도구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요셉은 왜 나를 팔았느냐고 불평하지 않았고 총리의 힘으로 형제들을 벌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면서 억울한 마음을 참은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성품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성도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요셉과 같이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유다는 편지 마지막에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거짓교사들에게 속지 말라고 부탁했던 유다는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과정속에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이 흐르면 그리스도만이 내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것이 온전히 믿어질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의심없이 믿을 때 거짓교사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높여 드릴 수 있겠으며 찬양을 올려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가 없는 삶이 그려지십니까?
그 분이 없는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지 않았다면 어둠의 권세자는 벌써 우리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의 울타리가 있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희생의 보혈로 우리의 생명을 감싸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것이며,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험한 세상에 방패가 되어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유보하시고 오신 그리스도를 환영하지 못하고 온전히 믿어드리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가름이나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험과 세상의 능력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빛앞에서는 어둠일 뿐입니다.
유다서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해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히 그리스도의 은혜를 쓰레기처럼 밟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 유다도 저처럼 이런 부탁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볼 수만 있다면 지금 인간의 몸을 가진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죄인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셔야 합니다.
회개하셔야 합니다.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온 그 시간들을 사죄하시고 더 넓게 영혼들을 바라보며, 더 높게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충성하며, 더 깊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둠의 권세자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성도가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과 흠이 없는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앞에 흠없이 서기 위해서는 인생의 과정을 정결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이며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을 밝히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힘내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에서의 축복과 하늘의 영원한 축복을 모두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들이 누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다서를 마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높여드렸지만 이제 구원받은 여러분이 영원구원을 위해서 희생하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높여 드리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고 누리며,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조춘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