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안내 산악회의 산행 계획에 따라 '의평 2교 → 비녀바위 → 남원양씨 묘 → 창암산 → 윗장구목 → 두지터 → 칠선계곡(비선담) → 용소 → 추성주차장'의 12km, 6시간 코스의 계곡 산행을 줄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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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七仙溪谷]
수많은 소와 담 그리고 폭포가 엮어내는 지리산 최고 걸작품
우리나라 3대 계곡이라면 보통 설악산 천불동 계곡, 한라산 탐라계곡, 그리고 지리산 칠선계곡을 꼽는다. 이에 걸맞게 칠선계곡은 7개의 폭포와 수많은 소가 모여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한다. 특히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 지대로 부르는 마폭포와 천왕봉 간의 울창한 수림은 가히 독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 칠선계곡 코스는 지리산 계곡 등반로 중에서 가장 길고 험한 곳으로 유명한데 세심한 주의와 충분한 사전 준비가 요구된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찾아 길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지만 종종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고생하는 때도 있다. 각 산악회에서 설치한 리본을 확인해가며 등반한다면 무난하다. 비 오는 날에는 미끄러운 바위 비탈길과 계곡 건너는 데 특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특히 여름 장마철에는 계곡 내에 인공시설물이 전혀 없으므로 계곡을 건너는 데 극히 위험함은 물론 겨울철에도 북향의 깊은 골짜기라서 적설량이 많고 기온이 급강하하여 등반의 최악조건을 형성한다. 충분한 장비 없이 섣불리 도전하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여름철 계곡에서 물놀이하다 심장마비로 익사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하므로 주의를 필요로 한다. - 함양군
불볕더위의 여름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일요산행으로 등산방 구성원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계곡 산행지가 없을까 6월 말 안내 산악회 게시판을 뒤적이다가, 8월 첫 주 일요일인 7일 지리산 줄기의 창암산과 칠선계곡을 연계하는 산행을 발견했다. 지리산이라면 능선, 계곡 대부분에 발을 디뎠다고 자부하는 내가 처음 듣는 산이다. 해서 산악회 게시판의 산행 계획에 있는 지도를 보니, 위치는 익숙하다. 다만, 이름을 모르고 있었을 뿐. 초등학교가 아닌 마천국민학교 시절 벽송사로 소풍을 가기 위해 임천강을 따라가며 창암산 아래를 지나기도 했고. 당시 중학교는 면소재지인 가흥리 우체국 옆에 있었다!
창암산행을 본 후 구글링으로 산행기를 찾아 검토해 보니, 등산방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코스와 시간이었다.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을 위해 칠선계곡을 따라 비선담까지 왕복하는 'B 코스'도 있고, 산행에 주어진 시간 또한 7시간으로 차고 넘쳤다. 해서 바로 등산방에 한국 3대 계곡 중 하나인 칠선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길 친구가 있는지 물었는데, 예상보다 적은 기영과 주행 둘만 손을 들었다. 고로 나를 포함 셋이라, 늦어지면 빈자리가 없을 거 같아 7월 1일 산악회 게시판에 들어가 신청했다. 그런데, 의외로 전체 신청자가 적어 성원 미달로 취소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추이를 주시했는데, 7월 말 간신히 성원을 넘어 약간 불안했으나, 취소되는 일은 없겠다고 안심했다.
그러나, 회비 전액 환급 마지노선이 다가오자 갑자기 3명이 취소해, 성원에서 2명이 모자랐다. 치솟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Plan B를 찾아보니, 같이 하기로 한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산은 보이지 않고, 지금 한참 진행 중인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덕산재부터 삼마골재까지 잇는 산행이 눈에 띄었다. 그 산행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성원 미달로 취소될 염려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자리가 꽉 찬 것도 아니라, 창암산행이 취소되면 그 산행에 따라가기로 했다. 물론 두 친구에게 동행할 건지 물어보고. 그런데, 갑자기 이틀 사이에 6명이 신청해 결과적으로 성원에 4명이 초과해 정상적으로 산행이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토요일 07시까지 결과를 봐야 하지만. 바뀐 인솔 대장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목요일 다른 대장이 올린, 산행 계획도 수정할 건 수정해 다시 올렸다. 와중에 산행에 주어진 시간이 7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어든 걸 확인하고 놀랐으나, 귀가를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라 이해했다.
귀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건 알겠지만, 산행 후 계곡에서 백숙을 뜯으며 물놀이를 즐기려던 계획은 망가졌다. 해서 갈아입을 옷에 더해, 애초 계획에 없었던 점심도 준비하라고 했다. 물론 나중에 합류한 친구에게도. 다만, 우리가 조금 빨리 달린다면 한 시간 정도의 막걸리 타임은 확보할 수 있을 거 같다. 상황에 따라서는 창암산에서 내려와 비선담까지 올라가지 않고,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선택은 함께하는 친구들의 몫이다! 각 친구의 상황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괜찮고! 그런데, 일요일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12시부터 15시까지 소나기가 내리는 걸로 나온다. 강수량은 3mm~5mm 정도로 계곡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보다 더 걱정은 취소자가 속출해 산행이 무산되지 않을까 하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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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5시 45분에 집을 나서 6시 37분경 양재역에 도착했다. 따로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 지하의 청과물 가게로 가 1,700원짜리 김밥을 샀다. 3,000원 이상할 거로 생각했는데 너무 싸다. 그래서 그런지 김밥 사는 등산객이 많아 줄을 서야 했다. 그렇게 김밥 한 줄 사서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고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으로 향했다.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해 늘 그랬듯이 서초구청 주차장 석축에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김밥을 꺼내 음식 전용 디랙에 넣은 후 외교원 앞으로 끊임없이 내려오는 등산객을 구경하고 있는데, 버스 앞창 LED에 "외나로도 봉래산"이라고 쓴 버스를 선두로 다른 지역보다 10분 이른 6시 50분에 출발하는 남도행 버스가 속속 도착했다.
남도행 버스가 출발하자 외교원 앞 7시 출발 버스가 이어서 왔다. 그리고 6시 56분에 우리가 타야 할 창암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평소에 비하면 꽤 이른 도착이다. 문제는 나중에 합류한 우리 일행이 제시간에 지하철을 타지 못해 7시 5분경 도착 예정이라는 거. 이런 것도 법칙이 있는 거 같은데, 머피의 법칙인가? 버스가 평소보다 일찍 도착하자, 정작 타야 할 사람은 평소보다 늦는 거. 어쨌든 그 친구를 위해 인솔 대장이 재량을 발휘해 5분가량 기다려준 덕분에 7시 5분에 일행 모두가 도착해 다 같이 지리산 자락의 창암산에 갈 수 있었다.
비록 예정보다 5분 늦게 출발했으나, 비 소식 때문에 행락객이 집을 나서지 않아서인지, 고속도로가 뻥 뚫려 아무런 방해 없이 달려 8시 56분에 휴게소로 들어갔다. 남도 산행 때는 늘 가는 금산휴게소다. 볼일이 있는 건 아니나, 마스크가 답답해 버스에서 내려 휴게소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 바로 버스로 돌아갔다. 휴식이 끝난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는데, 산행 중 갈림길에서 백무동 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과 산행 마감 한 시간 전 즈음 시간당 22mm에 이르는 폭우 예보(새벽에 확인)가 있으니, 그 폭우를 피하는 방법으로 조기 복귀를 추천했다. 조기 복귀란 둘 중 하나다, 처음부터 창암산을 버리고 칠선계곡 비선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거(산악회 B 코스). 창암산에서 두지동으로 하산해 비선담까지 왕복하지 않고, 바로 하산하는 거.
사실 산악회에서 산행 소요에 7시간을 6시간으로 1시간 줄인 걸 확인했을 때 이번 산행의 목적이 창암산이지, 칠선계곡의 비선담이 아니라는 걸 거듭 확인했다. 정확히 이번 산행의 목적은 창암산에 오른 후 칠선계곡으로 하산해 수영할 만한 소가 있으면 들어가 땀을 씻는 거지, 비선담 관광이 아니라는 거다. 물론, 땀을 씻은 후 백숙은 필수! 애초 1시간이 줄어 산행의 후반부가 지장을 받는다면, 코스를 조정할 생각도 있었다. 비선담 관광은 창암산 정상에 도착하는 시각을 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뭐 그렇게 정리하고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위치가 궁금해 패드의 지도 앱으로 확인해보니 함양이다. 함양임을 확인하는 순간 궁금한 건 버스가 지리산제일문(智異山第一門)을 통과해 마천으로 바로 갈지, 인월을 거쳐 돌아갈지 궁금했다. 전자는 거리는 짧지만, 오도재까지 올라가는 게 쉽지 않고, 후자는 돌아가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함양 도심을 벗어난 버스가 인월 방향으로 달리다, 오도재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순간 통로쪽 자리로 바꿔 앉고 풀어두었던 좌석벨트를 다시 맸다. 그리고 정좌하고 앉아, 가끔 앞창으로 급경사라 지그재그로 만든 도로를 구경했다. 우리 앞에 빨간 관광버스가 있고, 그 버스와의 사이에 승용차 두 대가 있는 걸 발견했다. 역시 예상대로 앞의 버스가 제대로 올라가지 못해 두 대의 승용차와 우리 버스 또한 뒤로 미끄러질 듯한 분위기다. 갈짓자의 급경사 고개를 간신히 올라간 후 버벅대는 앞 버스를 추월해 오도재까지 올라간 버스는 지리산제일문을 통과해 마천으로 내려갔다.
임천강을 건너 산행 들머리인 추성리 주차장으로 가야 하는데, 문제는 임천강을 건너는 다리가 100여 미터를 사이에 두 개라는 거. 대형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건 상류에 있는 거고, 하류에 있는 건 소형 차량용인데, 버스가 하류의 소형차량용 다리로 들어서자, 깜짝 놀라 창밖으로 다리가 무사한지 살폈다. 다행히 무사히 다리를 건넜으나, 주차해 있는 차량 때문에 더 갈 수가 없어, 창암산이 목표인 A 코스 등산객은 버스에서 내려 당산나무를 지나 창암산 들머리로 향했다. 그 시각이 10시 48분으로 산행 시작 시각이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인솔 대장이 서울로 출발하는 시간을 17시 즉 오후 5시라 공지했으니, 1분 1초가 아쉬운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6시간 12분으로 12분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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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창암산이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있다고 해도, 국립공원으로 개발된 산이 아니어서, 국립공원이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을 못 받고 있었다. 그러니, 창암이라는 산을 처음 들었지. 무슨 말이냐 하면, 당산이 있는 의탄 마을 회관을 지나, 의평 2교를 건너기는 했는데,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다. 내리쬐는 햇살은 외부에 노출된 피부를 말 그대로 화살로 찌르는 듯한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에 서서 핸드폰의 등산 앱 지도를 확인해서 간신히 길을 찾아 들어갔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면 된다. 거기서 주의해야 할 건 그대로 직진하면 안 되고, 갈림길에서 우회전해야 한다는 거. 갈림길에 있는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를 보자, 우회전해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으나, 긴가민가 망설이고 있는데, 이미 직진했던 등산객이 잘못 갔음을 깨닫고 되돌아는 오는 걸 보고 확신했다. 선배의 수많은 오류 덕에 후배가 편할 길을 갈 수 있다는 건 산행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진리다!
우회전하자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과거 임도로 쓰인 거 같은데, 현재는 관리하지 않아, 좌우에 풀이 우거져 있다. 내리쬐는 햇살도 견디기 힘든데,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도로다. 산행 초반부터 비명이 절로 났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어 땀을 삐질거리며 10여 분을 올라가자, 태양이 쏘는 불화살을 막아주는, 한국이 자랑하는 우거진 숲이 나타났다. 숲에 들어서자, 햇살은 막아주는데, 그렇다고 산세가 달라진 건 아니라, 급경사를 올라가기는 마찬가지라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오랜만에 산행에 참여한 친구가 뒤로 처져, 낙오하지 않도록 주행과 내가 번갈아 보조를 맞추며 올라갔다. 그런데, 산세 자체가 딱히 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정상에 오를 수 있어, 위로 갈수록 등산로가 혼란스러웠다. 와중에 길잡이가 되어 주는 건 산행 계획을 세울 때 많은 도움을 받는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의 리본이다. 물론 국립공원 이정표 따위는 없다.
갈림길이 아니라, 좌 또는 우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곳에서 오지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등산객이 직진하는 건 비일비재다. 몇 사람만 직진했다가 길이 아닌 걸 깨닫고 되돌아오면 두 배의 사람이 다닌 것과 다름이 없어 당연히 길처럼 보이고, 그 장소는 졸지에 갈림길이 된다. 그럼 후발 주자는 의심 없이 직진해, 소위 얘기하는 알바라는 걸 한다. 그런데, 그런 장소에서 의외의 표지를 발견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많이 이용했으나, 현재는 잘 이용하지 않는 산악회의 찢어진 지도다! 하루 전인 토요일 같은 코스로 산행하며, 버스에서 나눠준 지도를 대장이 찢어서 등산로에 놓고 나무로 고정해 혼란스러운 등산로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4월 30일 남도의 제암산, 일림산 연계 산행 때도 일림산 정상에서 이 산악회의 도움을 받아 바로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내가 같이하는 산악회가 아닌 다른 산악회의 도움을 받으며 산행 중이다. 산에선 모두가 한 가족이지만!
10시 48분에 산행을 시작해 1시간가량 올라오는 동안 이미 속옷까지 땀에 젖어, 걷기가 불편한 상태라, 왜 내린다는 소나기 소식이 없는지 하늘을 쳐다봤으나, 어디에도 비를 품은 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내리지 않는 소나기에 불평하며 정상을 향해 가다 보니, 너덜지대에 빨치산이 사용했을 거 같은 지역이 나타나, 잠깐 서서 휴식하며 빨치산 얘기를 나누고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배낭에 들어있는 게 막걸리, 맥주, 얼린 물 등 주로 액체 종류라, 배낭의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다 녹기 전에 얼린 막걸리를 마시고 가자고 징징대는 친구의 의견을 받아들여 너덜 지역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밥 한 줄을 안주로 빨갱이 탄 막걸리를 마셨다. 사실 12시 5분 전이라 점심때다!
10여 분 휴식 후 다시 길을 재촉해 거의 기다시피 급경사를 올라 12시 9분에 산행 코스의 주요 거점인 '남원양씨 묘'에 도착했다. 묘비에는 '學生興城張公珍錫之配 孺人南原梁氏之墓'라 음각되어 있다. 굳이 해석하자면 벼슬을 하지 못한 장진석 공의 부인 남원 양씨 묘라는 거다. 그런데, 묘비에서 유인(孺人)이라는 글을 처음 봤고, 배움이 부족해 무슨 뜻인지 몰라 구글링 해봤다. 학생(學生)의 여성 버전이다. 남편이 학생이라, 부인이 유인(孺人)이다! 와중에 왜 길 가운데 묘가 있냐는 친구의 말에 묘 때문에 만들어진 길을 등산로로 사용하는 거라고 묘와 길 중 어느 게 먼저인지 토론하며 급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곳이 나타났다.
정상 또한 멀지 않았다. 오면서 계속 남은 거리와 우리의 목적을 고려해 정상 도착 목표 시각을 13시 즉 오후 1시로 잡았는데, 이 페이스라면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물론 평지와 가까운 지형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경사에 높은 습도와 기온은 하늘에서 소나기가 아니라 머리와 이마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어쨌든 얼마 전의 급경사에 고생해 마치 평지처럼 보이는 지역을 가는데, 갑자기 등산 앱이 음성으로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그 시각이 12시 46분으로 정상 반경 50m 내에 도착했다는 얘기라, 기분 좋게 정상을 향해 갔다. 그런데 그때 너덜 지대에서 막걸리 마시는 동안 우리를 추월했던, 인솔 대장이 정상 바로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가, 나를 보고 같이 먹자고 부른다. 정상이 넘어지면 코 닿을 곳이고, 1시 도착이 목표였는데, 14분 전에 도착했고, 점심도 먹어야 해서 사양하지 않고, 합석했다.
인솔 대장이 펼쳐 놓은 밥상 주위에 우리 넷도 같이 빙 둘러앉아, 가져온 모든 먹거리를 꺼냈다. 그래봐야, 맥주와 김밥, 오이 등이 다지만. 어쨌든 대장이 가져온 견과류와 과일 등을 합해 다섯 명이 배부르게 먹은 후 대장은 바로 하산하고 우리는 정상으로 갔다. 정상은 과거에는 헬기장으로 쓰인 곳으로 꽤 넓은 평지였으나, 관리를 하지 않아, 무성한 풀숲을 이루고 있었다. 해서 '정상석이 어디 있느냐?"고, 점심 먹고 있는 인솔 대장에게 정상에서 큰 소리로 물어보는 등산객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정상석을 못 찾냐?'고 속으로 뭐라고 했지만. 도착한 정상석 부근에는 한 등산객이 인증 등 사진을 다 찍은 후 하산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가려는 순간이었다. 해서 그를 불러,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알려주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 그의 도움으로 단체 인증을 남겼다.
정확히는 모르나, 창암산이 많은 봉우리를 가진 산이 아니어서, 비록 기복이 있기는 했으나, 여느 다른 산과는 달리 계속되는 내리막이라 비교적 쉽게 갈 수 있었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울창한 숲에서 갑자기 능선이 꺾이는 지역에서는 등산로도 능선을 따라 꺾이고 있는데, 그걸 잘 모르는 등산객 덕에 직진으로 길처럼 보이는 게 만들어져 있어 알바하기 좋았다. 때문에 뒤에서 따라오던 친구가 직진하는 바람에 대형 알바를 할 뻔했으나, 그 친구 또한 산길에 익숙해, 이상을 눈치채고 바로 신호를 보내, 약간의 알바로 끝낼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해프닝을 겪으며, 유유자적 내려와 2시 1분에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백무동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백무동 갈림길에 도착했다.
문제는 구 갈림길로 가기 위해서는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금줄을 넘어야 한다는 거다. 고로 우리가 올라간 창암산은 국립공원 비탐지역이다. 그럼 모든 게 설명된다. 국립공원 지역임에도 등산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 이정표 하나 없는 이유! 고로 갈림길이라 불렀지만, 창암산으로는 정규 등산로가 없으니, 갈림길이 아니다. 어쨌든 두지동까지 남은 거리는 900m, 다 왔다. 현재 시각 2시 2분 비선담을 다녀와도 한 시간 이상의 하산주와 물놀이 시간 확보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 900m가 진정한 급경사다. 등산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나마 국립공원 내라고 느낄 수 있었으나, 워낙 통행량이 적어, 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해서 미끄러지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미끄러지고 하며 최악의 경사를 내려오자, 백무동 이정표 이후 두 번째 보는 국립공원공단에서 설치한 반달곰 주의 플래카드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말인즉 마을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그 지역을 지나 울창한 풀숲을 헤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두 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졌다. 앞선 팀 중 한 친구는 칠선계곡에는 와봤으나, 계곡을 따라 올랐던 거고, 다른 친구는 초행이다. 고로 둘 다 초행이나, 다름없다. 알아서 잘할 거로 생각하고, 다른 친구와 둘이 풀숲을 헤치고 나가는데 울창한 숲을 벗어나자마자, 내리꽂는 태양이 쏘는 불화살에 외부로 드러난 모든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지경이다. 뜨거운 햇살을 피할 방법이 없어 온몸으로 받으며, 길을 가, 2시 21분에 다리가 놓인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 다리 앞에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다리 쪽 방향은 언급 없이 탐방로는 직진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이정표의 지시대로 아무 생각 없이 직진해 20여 미터를 가다가, 우리가 비선담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서 바로 걸음을 돌려 다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그걸 건너 두지동으로 갔다.
사실 비선담으로 올라가도 되지만, 불볕더위 속에서 그늘 한 점 없는 등산로를 따라갔다간, 열사병에 걸릴 거 같아서, 좀 이르기는 하나, 하산하기로 한 거다. 물론 앞선 두 친구를 불러 내려야 하지만. 더위를 먹었는지 정신이 없어 두지동 가게 외부에 있는 수돗가에서 발을 씻은 후 나무 그늘 쉼터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아 두 친구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역시 똑똑한 친구들이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니, 물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는 걸 보고, 상류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전화했다고! 당연히 전화를 받자마자 돌아내려 오라고 한 후 쉼터에서 두 친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비선담 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의 얘기를 들으니, 비선담을 비롯한 상류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를 하고 올라갔는데 요소마다 지키고 있는 요원 때문에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불평이다. 그 얘기를 듣자, 또 하나의 신의 한수라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데 두 친구가 도착해, 다시 네 명이 뭉쳐 두지동을 떠나 추성리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벽한 국립공원 산책로를 따라 저 아래로 보이는 칠선계곡을 감상하며 내려가 2시 42분에 추성리 주차장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칠선계곡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행이 폭주해 먼저 가더니, 식당에서 전화했다. 백숙 주문하냐고. 백숙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물놀이할 계곡과의 거리가 중요해 식당의 주변 환경에 관해 이것저것 묻는 사이에 나도 식당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찾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식당이었다. 다만, 계곡에 바로 붙은 자리는 이미 차지하고 있어, 막 단체 손님이 떠나 아직 식탁도 치우지 않은 계곡이 아래로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식탁을 치우는 주인장에게 백숙을 주문했다. 그 시각이 2시 53분으로 함양 마천의 창암산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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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이번 산행의 후반부인 지리산 칠선계곡 물놀이 시간이다. 물론 백숙과 하산주를 곁들여! 배낭을 내려놓고 물로 뛰어들려고 보니, 기영을 제외한 셋의 갈아입을 옷이 버스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해서 미옥과 주행이, 대표로 버스로 가 옷을 가져오기로 하고, 기영과 나는 바로 계곡으로 내려가서 보니, 위에서는 다리 때문에 보이지 않던 최고의 천연 수영장을 거기 있었다. 수영장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계곡 가의 돌 위에 올려놓고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이후 옷을 가지러 간 두 친구도 합류해 원 없이 놀았다. 그동안의 폭염 때문인지, 물이 생각보다 차지 않아, 다른 때 같으면 30초도 못 견디고 튀어나왔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하류라 상류보다는 물이 차지 않은 것도 있지만.
30분가량 물속에 있다 보니, 친구들의 입술이 보라색이다. 그리고 배도 고프고. 해서 물 밖으로 나와 우리 식탁을 올려다보니, 백숙은 아직이나, 식탁 준비는 끝난 거 같아, 백숙 상태를 물어보기 위해 위로 올라가서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준비는 끝났는데, 손님이 자리에 없어서 내놓지 않았단다. 하긴 먹을 사람도 없는데 음식을 가져다 놓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손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부를 수도 없고. 그럼 바로 백숙과 소주, 맥주를 달라고 부탁하고 계곡으로 내려가 친구들을 불렀다. 물놀이를 끝내고 친구들이 둘러앉아, 백숙을 안주로 이슬이 4병, 맥주 2병을 마시며 등산방의 장래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보니, 4시 10분으로 마감할 시간 가깝다. 그런데, 기영이와 나는 물에 더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두 친구는 들어가겠다고 해서 우리는 샤워장으로 두 친구는 계곡으로 갔다.
식당 부설 샤워장에서 샤워 후 2017년 8월 19일 다섯 친구가 소백산에 올랐다가, 어의곡리 상류에서 폭우를 만나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서울까지 간 이후 배낭에 넣어 다니기는 하나, 한 번도 갈아입어 본 적 없는 속옷부터 반바지와 반소매로 갈아입었다. 그때의 개운함이란 말로 표현 불가다! 먼저 둘이 샤워 후 옷까지 갈아입고 나오자 두 친구가 계곡에서 1차로 씻고 샤워장으로 왔다. 해서 두 친구가 모든 걸 마칠 때까지 식탁으로 돌아가 이슬이를 홀짝이고 있는데, 예보의 폭우가 내린다. 소나기 예보 중 16시 이후만 맞았다. 시원하게 내리는 폭우를 감상하다가 비가 그치는 순간 식당을 나와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가, 산행 마감 10분 전인 4시 50분에 도착했다.
아침에 배낭에서 나는 냄새가 지독하니, 짐칸에 실어달라는 인솔 대장의 말에 따라 배낭을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라, 그나마 신고 있던 아쿠아슈즈도 벗어 던지고,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패드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천안삼거리 휴게소로, 그 시각이 7시 14분이다. 그럼 9시 30분까지는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리산행 후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휴식이 끝나고 다시 달린 버스는 8시 35분에 사당역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양재에서 내려 집으로 갔겠으나, 은평구민이 모여 택시를 타고 가자는 얘기에 사당으로 가, 주행이 먼저 집으로 들어간 후 은평구민 셋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거로 이번 창암산에 오르고, 칠선계곡에 물놀이를 한 야유회산행을 마감했다.
산악회 계획과는 달리 '의평2교 → 비녀바위 → 남원양씨 묘 → 창암산 → 윗장구목 → 두지터(두지동) → 칠선휴게소 → 칠선계곡'의 6.72km(트랭글), 4시간 7분의 산행이었다. 이동 3시간 42분, 휴식 25분, 칠선계곡 물놀이 2시간!
혹시 어렸을 때 올랐던 산이 아닌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칠선계곡으로 천왕봉으로 갈 때 오른쪽으로 보며 올랐던 봉우리다.
흐리고 소나기가 올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내리쬐는 햇살에 밖으로 드러나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의 불볕더위 속 산행이었다. 그나마 바로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열사병은 면할 수 있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칠선계곡이 워낙 깊고, 상류를 요원이 지키고 있어 하류임에도 상류와 다름없는 초 1급수의 수질을 보여줘, 물놀이에는 최고였다. 칠선계곡 선녀탕, 옥녀탕에서 알탕을 많이 했지만, 계속되는 폭염 때문인지, 물이 차지 않아, 추워서 물 밖으로 나온 게 아니라 지쳐서 물에서 나온 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