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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며 다니는 동네 한 바퀴
배낭 속의 길
이홍사
정말, 몸은 소리를 보듬고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그 소리는 귀를 열고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말은 사실인가?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어느 쪽으로 기우니 이제는 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가끔 몸의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몸의 소리를 주시한다.
착 가라지는 몸. 그 위로 지나가는 수런거림.
플라스틱 의자가 이렇게 안락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플라스틱 의자도 진화를 거듭하여 이렇게 비스듬히 누울 수 있는 제품까지 나왔는데 나중에는 엉덩이가 푹신한 플라스틱 의자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자가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앉아서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보니 유명 메이크의 가죽으로 된 소파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이따금 소리를 툭툭 뱉어낸다.
재질이 플라스틱인 의자가 내는 소리가 아니다. 분명히 내 몸에서 나는 무딘 탁음인데 그 진원지를 찾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운 채 촉수를 세운 더듬이로 몸을 더듬는다.
그래. 어제 길을 입에 물고 죽은 사내가 있었지.
또 사내를 떠올리며 불러낸다.
오전 내내 플라스틱 의자 옆에 세워두고 불러보던 사내.
그 사내가 마지막으로 가보고 꼭 싶은 도시가 있었지. 어쩌면 그 도시가 바로 이 도시인지도 모를 일. 자카르타.
결론을 그렇게 지어놓고 귀를 기울인다.
양철지붕 추녀가 유난히 긴 자카르타의 호텔, 그 옛날 도회 뒷골목의 여인숙처럼 여겨지는데, 아니다. 이름은 반듯하게 호텔이다. 아침나절부터 방문을 열어놓고 추녀 끝 그늘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기다린다. 소리를 기다린다. 추녀 끝을 휘돌아 뒤란의 대숲,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마저 깊은 내상을 입었는데, 어쩌나?
저 깊은 소리, 새소리 신음 끝에도 여자는 묻거나 매달려 오지 않았다.
이렇게 기다리는데. 또 게슴츠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핀다.
여자가 없다. 빈 마당이다.
꼭 가보고 싶었던 그 도시가 배낭에서 나와서 이런 모습으로 다가서는가? 플라스틱 의자 곁으로 성큼 다가선 도시 하나?
정말, 어제 죽은 그 사내가 들었으면 얼마나 반가운 소릴까? 배낭에 도시가 들어 있다는 말, 혹은 도시를 담은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말. 지금 따지니 두어 달이 넘어선 그날, 도시가 든 배낭이 맨 처음 등장한 곳은 스님의 입이었다.
정정하자.
스님의 입에서 배낭이 나온 게 아니라, 배낭 속에서 스님의 입이 나왔다는 표현이 적절할 성싶다. 그날 절에서 차를 마시면 나눈 담소를 총체적으로 주물러 분석하면 스님의 입에서 배낭이 나왔고 나는 그 배낭 안으로 들어가서 길을 잃었었다. 그리고는 여태 배낭 안을 헤매고 있다
배낭에서 나온 도시가 이 자카르타였을까?
스님과 마주 앉은 지방대학 교수님, 두 분의 말씀을 속에 등장한 배낭을 떠올리며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이 도시를 잠시 그리며 이 도시의 길 안에서 길을 잃고 방황했었다. 두 분이 나누는 담소를 들으며 선명하게 떠오른 한 구절이 바로, 자카르타를 쓴다는 글귀였다.
자카르타를 쓴다?
그날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생뚱맞은, 정말이지. 엉뚱한 글귀를 가슴 속 빈 원고지 위에 차분하게 썼다. 촘촘한 손글씨로 그렸다.
자카르타?
난데없이 왜 이 도시를 그날 떠올렸을까?
두어 달이 훌쩍 지나버린 그 날, 어쩌면 나는 벌써 이곳에 온 것이었을까?
이 자카르타에? 그런데 정작 와서는 바로 떠날 일을 염려하고, 그날, 오지도 않았던 자카르타를 떠올렸고 이곳에 닿자 바로 떠날 것을 염려하는 건 또 무어라 하지? 무슨 근거로 갈 적에는 혼자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정말 혼자 돌아간다면, 외로운 자국을 어떻게 거두어 갈까?
지금 그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날 정말 오지 않았다면 어째서 생각의 빈 원고지에 자카르타를 그렇게 촘촘하게 쓰고 있었을까? 그리고 이 허름한 호텔에 들어오던 날, 전혀 낯설지 않고 언젠가 와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은 대체 무엇으로 풀이할까?
아주 오래전에, 아니면 전생이라도 내가 이곳에 온 적이 있었을까?
의혹은 그 정도 선에서 그치지 않고, 호텔에 들어와서는 짐도 풀지 않고 분명히 어디엔가 있을 거라는 예감으로 그녀를 찾아 주위를 한참이나 두리번거린 건 무엇으로 설명하리? 혹시 자카르타와 무슨 연을 지닌 게 아닐까?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인도네시아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얼굴이 유난히 가무잡잡하다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야! 인도네시아, 한 개비 날래 가져오더라고!
측백나무 울타리 구멍으로 그렇게 소리치던, 싸가지 없는 녀석이 더러 있었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 끽연을 즐기던 녀석들 사이에 가무잡잡했던 내가 그렇게 불리던 때가 있었으나, 막상 인도네시아에 와보니 인종이 그렇게 가무잡잡하지도 않고 또 그 별명이 지금까지 유효할 리도 없고, 도시가 낯설지 않은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절에 갔던 그 날, 그날부터 내 노쇠한 사유는 그녀를 좇고 있었다. 까까머리의 뒤통수 목덜미가 왜소한 그 여선생. 그날, 병원 외과에서 간단하게 다시 수술 부위의 점검을 마치고 약을 타서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절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나절은 훌쩍 넘었겠다. 절에서 점심을 해결하겠다는 애초의 생각은 약간 수정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 날이었다.
사고 후, 휠체어를 거쳐 짚고 다니던 목발까지 두고 처음으로 등산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찾아간 절이었고 의사가 자신의 견해로는 절면서 살지는 않겠다는 말을 들은 날이었다.
목발을 버리고 지팡이를 짚고 절에 갔으니 아직은 내 걸음이 조금 부실했으며 지팡이에 길들이지 않은 보법이라 보행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도 목발을 버리고 등산용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만으로도 다소 위안이 되어 약간 설레기까지 했던 날이었다.
다치기 전까지는 몸이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정신이나 마음을 담는 자루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나였다. 그런데 몸이란 게 자루의 역할을 넘어서 몸을 다치면 정신이 피멍이 든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래서 내 몸이 약간이라도 호전을 보이면 기준이나 정신이 맑아진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던 중이었다.
어쨌거나 그날, 두 분이 나누는 대화에서 나온 배낭은 나달나달 낡아서 귀퉁이와 지퍼 연결부분이 찢어진 배낭이었다. 스님의 입에서 배낭이 나올 적에 다른 사람들은 차실 바닥에 방석을 놓고 다탁 앞에 둘러앉았지만 나는 따로 차실 귀퉁이의 의자에 앉아 차를 마셔야 했다. 다친 부위가 무릎이었기에 그렇게 방석에 둘러앉을 수가 없는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튼, 그 나달나달한 배낭을 서툰 솜씨에 흰 실로 듬성듬성 꿰매서 걸치고 다니는 여선생님이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 대화에 끼어들 여지도 없었는데 낡은 배낭을 메고 석양을 걷는 까까머리의 여교사, 그녀의 뒷모습을 선연히 떠올렸다. 그 석양의 길이 어디쯤인지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석양의 향해 걷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여선생을 떠올리자 따라오는 말.
삭발이거나 참교육.
그날 나는 느닷없이 떠오른 앞뒤가 맞지 않은 괴상한 용어, 자카르타를 쓴다는 말을 곰곰이 곱씹으며 나달나달한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는 삭발 머리의 여교사를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 여선생님은 오리할배가 근무했던 중등학교 기간제 교사인데 늘 까까머리, 삭발로 교단에 섰다.
까까머리에 가느다란 목덜미가 또 눈을 밟고 지나간다.
자카르타 뒷골목 싸구려 호텔, 양철지붕 추녀가 길게 드리워진 호텔 추녀 밑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묻고 누런 벽지의 꽃무늬처럼 얼룩진 그 날을 기억한다는 걸 그녀가 알기나 할까?
누가 그날을 기억하는데?
이게 뭐야? 후딱, 이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는 이는 누군가?
휙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돌아보니 문이 열린 빈방이고 마당 입구에 창고처럼 따로 지어진 작은 안내실은 조용했다.
혹시? 다시 둘러보아도 빈방이고 꽃무늬 벽지 너머는 대숲이다.
누가 그날을 기억하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답답하지만, 바로 나라고 답하며 그동안 부실한 몸으로 데리고 다니던 나의 품사를 마구 풀어놓고 싶은 마음에 애가 달고 또 애가 탄다.
살포시 잠이 들었었나? 아니면 혹시?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뒤란으로 눈길을 던졌다. 휑하니 비어있는 풍경이 눈을 파고든다.
아, 비어있는 이 풍경 속에 가두어 놓고 보고 있으면 좋을 여자!
잠시 혼란해진 나를 수습하여 재바르게 기억으로 속으로 파고든다. 몸을 다치고부터는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가 없다. 역시 정신도 몸의 지배를 전혀 받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그날 지팡이를 짚고 절에 도착했을 때 주지 스님께선 절 마당 귀퉁이에 지은 차실에서 차를 다리고 계셨다. 차는 왜 만든다고 하지 않고 다린다고 하는지. 순전히 차를 마시기 위해 통나무로 지은 공간이니 다실이거나 다방이라 해야 맞겠지만, 스님이 차실이라 이름을 붙였으니 그 고유명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차실이라 부르는 공간이다. 그 차실은 법당이 올라앉은 돌계단 바로 아래 있기에 법당에 들렀다가 나오는 신도들은 모두 차실을 기웃거리게 된다.
스님께서 차실에서 차를 다린다는 건 이미 점심 공양을 끝내고 후식으로 여유를 즐기기 위함이니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간 내 걸음은 좀 늦었다는 얘기. 그러나 절룩거리며 공양간에 가서 공양주에게 밥 한 그릇 달라고 해서 남은 반찬에 참기름 두어 방울 부어, 한 사발 비벼서 후딱 점심이란 이름으로 때우면 안 될 일도 없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차를 마시며 나오는 비스킷이나 과자 부스러기로 점심이라는 과정을 간단하게 때우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스님이 차를 준비하는데 다탇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은, 그 작은 공단 도시에 하나 있는 국립대, 그렇다. 지방의 국립대 교수였다. 그는 교수라는 말보다 박봉의 공무원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했는데, 그날은 천연염색으로 곱게 물들인 개량 한복을 입은 부인을 동반해서 절을 찾은 모양.
미간에 주름이 곱게 잡힌, 늙은 교수 부인도 나처럼 스님과 나누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다소곳이 듣는 태도였다. 그 사모님의 찻잔에 차가 왜 내 눈에는 유달리 정갈하게 보였을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는 스님이었고 늙은 교수는 중간에 추임새처럼 한마디씩 거들며 담소에 논리이거나 뼈대를 부여하고 있다는 표현이 그날을 회상하는 그림에는 적합할 거 같다.
그렇게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배낭이 거론되었다.
배낭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바로 자카르타를 떠올렸다. 자카르타는 그날 절을 찾아가기 전에 이미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던 도시다. 그러나 그때는 뜻하지 않게 작은 사고가 있어 그 여행의 출발이 순조로울지 어쩔지 미정인 상태였었다.
작은 사고? 돌아보면 작은 사고가 아니었다. 남들은 작은 사고라고 얘기하겠지만 거의 두 달 넘게 목발에 의지할 정도로 왼쪽 무르팍이 반쯤 날아가는 사고였다. 사고가 난 곳은 미얀마였다. 배낭 속에 미지의 길을 담아 메고 떠난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후송차 한국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절을 찾았고, 또 스님의 입에서 나온 배낭을 만났고.
어쩌면 절에 갔던 그 날이 다치지 않았다면 내 몸은 자카르타라는 도시의 어느 구석에 뒹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까, 지금 생각하니 분명히 그날이 아니었다. 자카르타 여행은, 그로부터 한 달을 더 기다려야만 있을 일인데, 몸이 부실해서 정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날짜 계산에 착오를 일으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몸이 아닌 마음이 자카르타를 그렇게 진하게 부르며 떠올렸던가? 자카르타!
그 계획이 무산될까, 끈을 놓지 않고 노심초사하고 있었기에 그런 착각을 한 것일까? 정신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맞는 걸까? 왜 그런 혼돈의 과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치기 전까지 내겐 계획은 큰돈 들이지 않고 두서너 나라를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항공권 예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여행의 세부 내용을 구체적으로 펼치면 미얀마에서 말레이시아까지는 비행시간이 두 시간 남짓인데 일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넘어가서 이틀 정도 숨을 고르고 나 홀로 여행으로 자카르타로 넘어가서 사나흘 쉬고 그다음은 브루나이로 넘어가겠다는 계획, 그 계획에 예상되는 여행 경비는 한국을 기점으로 출발하는 경비에 비교하면 절반에 못 미친다. 미얀마는 항공료도 여행에 있어서 그렇고 모든 경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그곳이 바로 미얀마나 태국쯤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 지도를 놓고 세계 여행을 구상하면 한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남아 어느 나라에 가서 지도를 펴놓고 살펴보면 한국은 동북아 한쪽에 치우친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다.
섬나라? 반도 국가에서 육로가 차단되었으니 당연히 섬나라.
섬나라도 삼면만 개방된 나라, 그런 지리적으로 불리한 한국에선 어디를 가더라도 여행 경비가 많이 드는 게 당연한 이치. 북한을 밟고 올라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지 않는 한 경비가 곱절로 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미얀마는 그렇지 않다. 국경이 접한 국가가 대여섯이고 조금만 움직이면 유럽도 가깝다.
지금은 일을 벌여놓은 미얀마에 머물고 있다. 미얀마를 거점으로 싸돌아다니며 역마살을 달래면 경비가 절반이 들지 않는다. 아내는 싸돌아다닌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견문을 넓힌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길에서 또 다른 길을 입에 물고, 길에서 흘린 나를 찾아서 반추하고 배운다는 아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하며 다음 여행을 구상하곤 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늘 얘기했다. 다리가 떨릴 때 가지 말고 마음이 떨릴 시점에 다니라고.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미얀마를 거점으로 할 적에 싸게 다닌다는 생각으로 이미 쿠알라룸푸르와 자카르타를 돈다는 계획으로 항공권을 준비하고 있다가 사고가 났고, 항공권을 변경하거나 손대지 않고 직항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해서 치료차 한국으로 날아가서 무르팍 수술을 받고 절을 찾았으니, 그 항공권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저가 항공으로 상당히 싸게 예약했는데 예정이 빗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취소를 미루고 있었던 이유는 취소와 더불어 그 티켓은 허공으로 날아간다. 이미 해외 승인으로 카드를 긁었던 그 금액은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
헝가리의 어느 가난한 청년이 만들었다는 그 저가 항공권 구매 사이트는 가격은 저렴한데 여행하려던 소비자가 변심이나 사정이 생겨 취소하려면 이미 빠져나간 금액을 돌려받기는 어렵다. 한 번도 환급 대상이 되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어 인터넷의 온 사이트에 도배가 되어 있다. 돌려받기도 어려울뿐더러 돌려받아봤자 유로화로 이십 유로가 고작이라 했다. 심하게 울분을 토한 한 작자는 그렇게 환급해줄 돈으로 그 사이트를 유지한다고 하기까지 하는 항공권 구미 사이트였으니 오죽했을까, 이미 예상에 차질은 생겼다 하더라도 비행기 타는 시간까지 지켜보자는 심산으로 그대로 두고 있었다. 그러니 절룩거리며 절에 갔던 그 날, 그 시간까지도 내 항공권은 유효했다. 살아서 숨을 쉬는 항공권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절에서 스님의 입에서 나온 배낭에 담겨 이미 자카르타에 왔는지도 모른다.
그날 절에서 스님과 교수의 대화를 들으며, 그 항공권을 죽이지 않겠다. 자카르타에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하며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누에처럼 실을 뿜어내는 스님의 입에서 나온 흰 실로 배낭을 듬성듬성 꿰매 메고 다닌다는 그 선생님!
그 까까머리의 여교사를 떠올리자 바로 떠오른 단어가 참, 참이었다.
참교육, 참사랑,
이런 말 앞에서 나는 왜 자유롭지 못하는지? 참이라는 글자에 혹시 위선은 묻어있지 않나?
언젠가 그 여선생을 본 적이 있다.
그 여선생을 직접 만난 게 아니라, 우연히 마주쳐서 차를 한 잔 얻어 마셨다. 물론 그 여선생은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 까까머리 여선생이 기억의 갈피에 깊게 박혀 있었다. 연약한 목덜미에 가느다란 뒤통수, 그녀가 여느 절의 비구니 스님이라면 금세 잊었겠지만, 중등학교 여교사와 까까머리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기억의 갈피에서 수시로 펄럭거리는지도 모르겠다.
그 여선생을 만난 건 벌써 오륙 년 전이다. 오리할배가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지가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아무튼, 오리할배가 그 학교 교장으로 있을 적에 무슨 일인가, 그 학교를 찾은 일이 있다. 공립의 남자 고등학교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학교 울타리에 붙은 야산 자락에 소공원을 만들어 산책로를 만들겠다는, 교장의 희망 사항에 따라 그렇게 조성하는데 소요되는 경비가 개략적으로 얼마나 들 것인가를 총체적으로 뽑아달라고 해서 그 학교에 갔다. 공립학교에서 그런 경비야 교육청에 신청하면 타당성 조사를 해서 나오는 것이고, 그 업적은 고스란히 퇴임을 앞둔 교장에게 돌아가는 것이니, 오리할배도 그 점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오리할배는 거의 사십 년 지기, 문우에 해당한다. 문우? 하고 보니 좀 어울리지 않는 점도 있다. 문우의 관계를 넘어서 사제 간이라 해도 크게 어긋나는 말은 아닐 터. 그것도 학창 시절의 수직으로 세워진 엄격한 사제가 아니라 서른이 넘어서 만나 같이 담배를 피워가며 문학을 논했던 사이라 격의가 없다. 남들이 보면 싸가지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말도 함부로 하는 사이, 그걸 우리는 친근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날 학교를 찾아가 열린 교장실에서 공사 개요를 듣고 현장을 둘러보고 오리할배의 머릿속에 그려진 도면을 수시로 기웃거려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다운 견적을 오리할배 머릿속에 찔러넣은 다음, 열린 교장실에서, 오리할배답게 열린 교장실이라 했는데, 커피도 한 잔 없느냐고 투정을 부리자 커피보다 훨씬 맛있는 차가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오리할배에 이끌려 긴 복도를 따라 올라간 곳이 이학년 교무실이었다.
그때까지 몰랐는데, 중등학교에도 여교사가 반이 훨씬 넘는다는 점, 초등학교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중등학교 교무실에도 남자 선생님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라는 점, 특히 공립학교는 정도가 심하다는 점. 오리할배와 그런 얘기를 하며 그 교무실에서 잠시 기다렸다. 차의 달인이라는 여선생님이 수업 중인데 마칠 시간이 되었다는 설명, 어느 정도이기에 차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를 거느리고 다닐까, 몹시 궁금했는데 다기를 꺼낸 사람은 방금 수업을 마치고 들어온 까까머리에 몸피가 왜소한 여교사였다. 손을 씻을 사이도 없이 분필 가루가 묻은 손가락으로 교장 선생님의 억척같은 하명이 고가점수와 연결되어 어쩔 수 없다는, 어찌 들으면 비아냥거리는 투의 말을 하고는 차를 다려주었는데, 차의 본래 맛이 이렇게 달았었나? 글쎄 그 맛이 처음으로 인스던트 커피보다 달콤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게 무슨 비결이죠?
그렇게 내가 물었든가, 까까머리의 여선생은 엷은 미소를 지었고, 표정이 굳은 오리할배가 세계 차 명소를 두루 다니며 배운 다도의 참맛이라고 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오리할배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배어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녹아든 차를 마시고 긴 복도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며 들은 이야기로는 참교육의 선두주자로 나섰던 여선생님인데, 짬이 있고 약간의 경비만 있으면 배낭을 메고 나선다고 했다. 전 세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선생님인데 정규직으로 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자신의 역마살을 위해서 지원하지 않고 기간제를 고집한다는 선생님, 오리할배는 분명 그 점을 두고 역마살이라 했었다. 역마살.
왜 까까머리죠? 수계를 받았나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 했다. 인도의 오지 어느 마을을 갔었는데 그 마을에는 물이 상당히 귀했단다. 오리할배 말로는 댕기 머리 샴푸라고 지칭했는데 그런 샴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물이 귀한 인도의 오지 마을에서 그 여선생은 치렁치렁한 머리를 감는데 물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그게 죄악으로 여겨져 샴푸가 묻은 머리를 감지 않고 다 쥐어뜯으며, 다음부터는 절대 머리를 감지 않겠다는 각오로 한국에 와서 바로 머리를 밀어버렸다는 거, 그 말을 학교의 긴 복도를 걸어 나오며 들려주었는데 그 여선생의 외모가 바로 눈을 파고들어 기억에 새겨졌다.
할배요! 저 선상님이 딱 내 스타일인데? 우째 좀 안되겄시유? 중신아비 서운하게 하지는 않을 팅께라,
거기까지 뱉고는 오리할배 발길에 한 대 차였고 궁금했던 다음 말을 이었다.
까까머리가 학생들에게는 부작용이 없나요?
학생들은 요즘 영악해서 그런 데는 관심이 없고 잘 가르치느냐, 못 가르치느냐에만 관심을 둔다고 했다. 그 여선생이 특별하게 잘 가르친다는 말을 그렇게 했는데 그 후 오리할배에게 전화할 일이 있으면 그 여선생의 안부부터 먼저 묻는 바람에 타박을 받으며 더러는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여선생은 그렇게 내 눈으로 들어왔는데 그날도 절에서 배낭이 나온 뒤로 줄곧 그 여선생의 이야기가 스님의 입에서 나왔다. 허연 무명실로 듬성듬성 꿰맨 배낭! 그걸 메고 시내버스에 오르면 저 여자가 꽃 꽂은 여자가 아닌가,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며 가까이 오비 않는다는 사실까지 얘기했는데, 정작 나는 꽃 꽂은 여자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차를 마시며 그걸 묻자 스님은 조금 모자라거나, 살짝 미친 여자를 두고 꽃 꽂은 여자라고 한다고 해서 궁금해하던 좌중이 한바탕 웃었고, 나는 그 여선생님이 혹시 그 학교에 재직하며 차를 잘 달이는 그 교사를 말하느냐고 물었다.
내 물음에 스님과 교수님이 놀랍다는 투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렇다는 의미로 풀이되며 이야기의 앞과 뒤를 슬쩍슬쩍 가늠해보니 그 여선생은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이 진해졌다.
그날 차를 마시면서, 그 여선생님의 이야기가 한동안 지속되었는데 떠나기 위해 머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깊게 받은 건 나뿐이 아닐 터. 결혼도 싫고 오로지 떠나기 위해 교단에 서고, 떠나기 위해 최소한의 생활비로 버티고,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라 했다. 오로지 여행을 위해 다른 틈에는 헛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선생님, 혼자서 익힌 외국어가 열도 넘는다는 그 선생님은 그날 또 그렇게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깊숙이 자리를 틀었다. 그날 절에서 내려올 즈음에는 머릿속에는 온통 그 까까머리의 여선생님뿐이었다.
왜소한 체격의 여선생 혼자서 세계를 그것도 오지를 골라서 누빈다?
오리할배에게서 다 듣지 못한 많은 이야기는 내게 상당한 호기로움과 용기를 부여했다. 절에서 절룩거리며 내려오는 길에, 오로지 여행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까짓 절룩거림이 예정된, 확고한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여러 번 되새김질하며 은근하게 다졌다. 그리고 내 안에 쑤셔 넣었다.
그 후, 한국에서 며칠 더 치료받고 지팡이의 부축으로 미얀마로 가서 다친 몸의 지배를 받던 정신을 방바닥에 풀어놓고 하나하나 날을 벼렸다. 지붕공사를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몸의 지배 공간으로 들어가 헐렁하게 뒹굴던 정신들은 하나같이 약간 녹이나 좀으로 부식되어 있었다. 전열을 가다듬는다는 말이 그럴 때 적합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정신의 모서리에 날을 벼렸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다치는 바람에 중단된 지붕공사, 열대지방의 우기에 지붕공사가 느닷없이 중단되었으니 중단된 현장의 몰골은 난리 끝의 폐허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날을 세운 정신에 다시 몸을 얹어서 절룩거리는 걸음을 메고 지붕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지붕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오로지 싸게 마련한 항공권을 무효화 시키지 않기 위해서. 목적어는 그것이었다. 목적어를 말뚝에 묶어놓고 지붕에서 살았던 보름 남짓.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일이 끌려왔고 완공을 마친 후에 정신이 몸을 이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추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론, 미얀마는 추석이 없다. 그냥 보름날일 뿐이다. 미얀마의 보름은 우리나라와 같은 날도 있고 하루가 늦은 날도 있는데 그건 두 시간 반이라는 시차 때문에 형성된 격차일 뿐 그날이 그 날이다. 계획은 아시아에서 치우친 섬나라를 거치면서 바로 한국으로 날아가 추석을 쇤다는 계획으로 추석이 임박해서야 남루한 삶과 구겨진 일상을 배낭에 담았다. 그날이 인터넷으로 끊은 저가 항공의 미얀마 출발일이었고 항공권은 유효했다.
가장 먼저 날아간 도시가 미얀마에서 가장 교통이 원활하다는 쿠알라룸푸르였는데 거기서는 나를 찾지 못했다. 서먹서먹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던 도시, 쿠알라룸푸르! 그 도시에 나의 상상력을 가두고 이틀을 담겨 있다가 다시 자카르타로 날아왔다. 아직은 지팡이에 의존해야만 하는 걸음걸이, 부실한 걸음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은 낯설었다.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진정한 내 뒷모습. 쿠알라룸푸르도 역시 처음 가는 도시였다. 한두 번 가본 적이 있는 나라에서는 나를 찾기 이전에 여행자로서 오르가슴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떠날 때는 꼭 가보지 못한 나라를 추가하는데 그렇게 낯선 길을 입에 물고 혼자 다닌 나라가 스무 곳도 넘는데 그러나 정작 나를 찾기는커녕, 전부가 구호 속에 맴돈 길이었다. 이번 계획에 넣은 세 나라도 아직은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나라다. 아내는 혼자서 이렇게 다니는 게 무척이나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런 후진 나라에 가면 치안이 좋지 않아요!
늘 하는 아내의 걱정 어린 말에 나는 반박한다. 치안이 괜찮은 나라는 반드시 물가가 비싸다는 말로. 그러면 아내는 혼자 다니는 걸 염두에 두고 영어가 유창하지 않음을 걱정한다.
여행을 영어로 하남? 영어가 유창하기보다는 눈치가 유창한 거지.
영어가 젬병인 게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만국 공통어라는 영어보다 더 유용하게 쓰이는 수단이 눈치다.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영어가 유창한 놈이 길을 물으면 손가락으로 저쪽이라고 성의도 없이 가르쳐주면 끝이다. 그러나 시원찮은 발음으로 더듬거리는 작자가 물으면 어딘가 어설프게 보이는지 꼭 따라와서 차를 잡아주는 게 현지인의 심리다. 어느 나라를 가서 누구를 잡고 길을 물어도 그건 철칙처럼 자명하다. 그래서 가끔은 못 알아듣는 척 더듬거릴 때도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나를 찾아 떠난다는 큼직한 구호를 핑계를 걸고 나서는 길은 언제나 혼자다.
홀로 그리고 초행!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그런데 꼭 누가 딴지를 건다.
나랑 같이 좀 다니시지.
흔히 듣는 말인데 다음에는 꼭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흘려버린다.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이다. 그리고 누구와 동행이라도 하려면 서로 시간을 쪼개서 같이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 둘이나 셋이 다녀서 아낄 건 호텔비 하나, 단 한 가지 항목에 불과하다. 다른 건 아낄 수가 없고 서로 배려하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기 십상, 그래서 선을 긋고 아내와도 다니지 않는다. 무슨 핑계라도 둘러대고 혼자 나서는, 아내의 말로는 고약하다는 그 버릇이 몸에 배었다.
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추녀 밑에 주저앉아 나는 또 하나의 섬으로 완성되고 있다.
섬
그래, 어쩌면 나는 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자카르타 저쪽에 있는 미니 인도네시아를 둘러보고 왔는데 자고 나니 걸을 수가 없었다. 무르팍 다친 부위가 욱신거리고 발등이 오지게 부었다. 그 넓은 오지 곳곳을 둘러보며 마음이 몸을 무리하게 이끌었던 모양이다. 육체적으로 견디고 버틸 나이가 있는데 그건 따지지 않고 모질게 채찍을 가했던가,
몸과 마음은 하나인가, 아니야, 섬과 바다가 하나라고 해야 맞겠지.
목요일의 동쪽이라 했다.
목요일의 동쪽?
언젠가 오리할배가 했던 말이다. 전화로 그런 소릴 들었든가? 어디서 들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선생을 수식하며 했던 말인 거 같다. 아니면 그 말을 들으면 얼른 그 여선생을 떠올린 것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라도 그 까까머리 여선생을 두고 목요일의 동쪽이라고 부르면 어감이 감미롭게 혀에 감길까?
그 목요일의 동쪽은 이 여인숙과 흡사한 호텔에 길고 넓은 양철지붕 추녀 밑이 아늑하다는 걸 알기나 할까? 정말 그녀도 남루한 삶을 배낭에 담아 메고 자신을 찾는다는 핑계로 이 도시의 어느 모퉁이를 떠돌고 있는 걸까?
자카르타.
아침부터 추녀 그늘 대나무 의자에 앉아 낮은 지붕을 휘감은 뒤란의 대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목요일의 동쪽을 향한 생각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나를 찾아 떠나온 길에 나는 왜 타인을 기리고 있을까?
그렇더라도, 이 도시 어디에선가 목요일의 동쪽이 있어 분명히 만날 것 같은 예감, 이 기시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며 뭐라고 명명할까? 그 여선생을 만나면 그대에게 병이 옮아 나도 나를 찾아서 떠나온 길이라고 하면 말이나 될는지.
또 몸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수런수런, 대숲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내부에서 이는 소리.
아직은 양수에 젖은, 미지를 향한 내 상상의 날개, 그 깃털을 말리는 소리.
오늘 자카르타 박물관을 거쳐 시립극장을 돌아보기로 했었는데 모든 일정을 취소하길 잘했다.
아, 그녀는 이 자카르타의 어느 모퉁이에서 날개를 말리고 있을까?
일단, 들어가 좀 자야 하겠다. 침대를 두고 배낭으로 들어가 웅크리면 편한 잠이 되려나? 자궁에서 길들인 그 자세, 웅크림은 분명 배낭 속에 있으리.
배낭 속의 길
저기
수척한 부처가 돌아앉아
제 귀를 뜯고 있네
참
먼 길을 돌아왔구나
침대 머리에 풀어놓은
오늘의 시계를 아직
차지 않았는데
헐거워지는
허물어지는
길이 추적거리는
자카르타의 새벽 모서리
늦게 오는 아침은
아직 헐거운데
창 너머 대숲 새소리마저
깊은 내상을 입었구나
울지마라
만두 속에 든 부처님 가피
기어이 꺼내서 담고
굵은 무명실 듬성듬성
봉인하는데
이미 늙어버린 배낭 속의 길
참
먼 길을 돌아서 데려왔구나
배낭 속에서 휘어진 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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