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호수마을의 주민이 되다
“아빠, 지렁이 좀 끼워 주세요.”
“이리 가져 와봐.”
아빠가 좋아하는 달빛 호수마을인 원천리로 낚시를 왔다. 아빠는 늘 바쁜 회사생활로 산더미 같은 업무에 힘들어하시더니 우울증까지 걸렸다고 한다.
“아빠 이렇게 야외로 나와 낚시하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아빠는?”
“응, 나도 좋지. 복잡했던 머리도 시원해지고 힐링이 되는 것 같아.”
아빠가 끼워준 미끼를 강물로 던진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퍼지는 잔물결이 음표가 되어 퍼진다.
“와~히트다! 히트.”
아빠가 들뜬 목소리로 소리친다.
“뭐가 걸렸어요?”
“응, 큰 게 걸린 것 같아. 세차게 흔드는 것 보니까.”
아빠의 얼굴은 언제 우울했던가 싶게 활짝 웃는 스마일이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아빠 곁으로 달려가 낚싯대를 본다.
“와~크다.”
“아빠, 무슨 고기예요?”
“응~이건 맑은 1급수 물에만 사는 ‘눈치’라고 하는 고기야. 제법 큰 걸.”
아빠는 잡은 고기를 어망에 넣고 담배를 피우려고 하신다.
“아빠, 스톱~엄마가 담배는 안된다고 했잖아요.”
“하하하~기분 좋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알았어, 알았어.”
서서히 노을이 물드는 강물 위로 아빠의 멋적은 웃음소리가 동동동 걸음으로 달려 나간다.
“이제 짐 챙기자. 저녁 먹고 서울로 가야지?”
나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낚싯대를 거둔다. 아빠가 몇 마리 잡아서 기분이 좋아지셨으니 다행이다.
“무얼 먹을까? 윤선이 먹고 싶은 거 시켜.”
아빠와 나는 주문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빠가 자꾸만 식당 밖을 내다 보신다.
“저 마트는 왜 문을 닫았대요?”
“아, 사장님이 병에 걸려 입원 중이라 문을 닫았지요.”
“그래요? 동네가 아담하고 예뻐서 이곳에 낚시를 자주 옵니다.”
“그렇죠? 이 마을이 호수를 끼고 있고 마을이 예뻐서 소문이 났나봐요. 사장님 같은 분들을 자주 뵙게 되네요.”
아빠와 사장님은 친한 사이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와 아빠는 마트로 달려가더니 주변을 자꾸만 맴돌며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아빠, 남의 집을 왜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래요?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피곤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무슨 소릴하고 있는 거야 당신 미쳤어? 사표라니? 직장 생활 힘들지 않은 가장이 어디 있어? 당신은 우리 집 가장이라구. 가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책임 할 수 있는 거야?”
자려고 누웠던 몸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분명 엄마 목소리다.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보니 거실에 아빠와 엄마가 앉아 계시다.
“응? 우리 딸 깼어? 미안, 어서 들어가 자.”
“아빠, 엄마 싸우는 거야?”
“아니야, 엄마와 얘기 나누다가 엄마가 흥분해서 그래. 빨리 들어가서 자”
“아빠, 엄마 싸우는 거 싫어. 그리고 나도 이사 가는 거 싫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어서 들어가 자. 내일 날 밝으면 다시 얘기하자.”
얼마 후, 아침 일찍부터 이삿짐 차가 오고 낯선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들락거리고 소란스럽다. 드디어 오늘 우리 집이 이사 가는 날이다. 며칠을 아빠, 엄마가 옥신각신하더니 이미 엄마 모르게 제출한 지 오래된 사표는 취소되지 않았다. 나도 시골로 이사가는 게 싫다고 했지만, 아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라는 엄마 말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엄마도 일찌감치 포기한 모양이다. 이곳의 정든 친구들과 선생님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섭섭했지만, 아빠를 위해 참기로 했다.
이삿짐을 실은 차와 우리 가족이 탄 차가 나란히 원천마을에 도착하고 짐이 부려지기 시작했다.
“가게가 깨끗하고 예쁘네.”
“응, 인테리어 팀이 공사하느라 며칠간 고생했어.”
“아빠, 여기가 이제 우리가 살 집이에요?”
“그래, 우리가 드디어 이사를 왔다. 1층이 가게고 2층은 살림집이야.”
아빠는 회사가 꼭 감옥 같다고 했다. 그곳에서 해방된 지금 아빠는 너무 자유롭고 신나 보인다.
“짐 다 내렸는데 우리 마을 구경 갈까?”
“그래, 잠시 가게 문 닫아놓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옵시다.”
아빠는 그렇게나 자주 오던 마을인데도 자세히 보고 싶으신가 보다. 아빠,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마트 앞은 큰 도로여서 차가 자주 지나다닌다. 도로 옆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인지 맑은 개울이 있고, 그 개울 건너에는 파스텔톤의 여러 가지 색깔로 칠하여진 작고 아담한 초등학교가 있다. 그네에 앉아 둘러보니 운동장이 서울 학교에비해 꽤 넓다. 한쪽에는 골프를 칠 수 있는 골프장도 보인다. 아마 골프 운동반이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내가 다니게 될 학교다. 학교를 둘러보고 작고 아담한 흰 건물의 보건소를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아빠와 낚시오던 강가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랑 이곳에 앉아서 낚시를 했어.”
“그래? 고기가 많아?”
“그런 편이지. 물론 실력도 한몫해야 하지만.”
아빠는 어깨가 으쓱해서 강물 위로 낚싯대를 던지는 폼을 멋지게 잡는다. 세 식구의 웃음소리가 푸른 날개를 달고 강 건너까지 멀리 퍼진다.
“사장님, 달거리 가는 버스표 한 장 주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사장님, 부탄가스 1묶음 주세요.”
“예~잠깐만요,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 마을 마트의 주인이 된 아빠는 또다시 바빠졌다. 하지만 아빠도 엄마도 서울에서 살 때보다 더 많이 편안해 보인다.
“사모님~이거 맛 좀 보세요. 오늘 한 마리 잡아 백숙했더니 먹을만하네요.”
“아유~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요, 주임님.”
보건소 주임님은 엄마보다 두 살 아래인데 엄마에게 친자매처럼 살갑게 대한다.
“주인장~이거 어제 사 간 건데 바꿔주면 안될까?”
“아주머니~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 어디 보자, 예쁜데 왜요?”
“응, 사이즈가 작아서, 미안.”
우리 마트에는 없는 게 없다. 아빠는 이 마을에 무엇이 필요할 것인지를 조사해서 물건을 비치해 놓는다. 마을 사람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많다며 만물상이라며 좋아들 한다. 손님이 와서 찾는 것이 없으면 아빠는 당장 춘천에 나가서 물건을 떼어 오신다. 그러다 보니 만물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녀올게. 윤선이 엄마 좀 도와드려.”
“네, 아빠, 조심히 다녀오세요.”
서울서 귀촌하신 조각가 아저씨가 운영하는 목공 체험방에 점심 식사재료를 배달 가시는 중이라고 한다.
“아빠가 왜 안 오시지? 올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엄마가 조바심을 내고 있을 때 싸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급히 구급차가 마트앞을 지나 공방쪽으로 달려간다. 엄마가 자꾸 시계를 보면서 아빠를 기다린다. 또 다른 곳에 배달을 가셔야하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 엄마의 핸드폰이 울린다. 아빠의 목소리다.
“왜 여태 안 오는 거야?”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알았어. 빨리 와!”
엄마가 한풀 꺾인 채 전화를 끊는다. 한참만에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돌아오셨나보다.
“아이고, 큰일 날뻔했네.”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인데?”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 아빠를 다그친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글쎄 소방서 뒤쪽 밭에 노인 한 분이 쓰러져있는 거야.
아빠가 급히 오토바이를 세우고 달려가 보니 의식이 없어 119에 전화를 한 후 인공호흡을 했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애쓰고 있는데 구급차가 와서 응급조치를 한 후 읍내병원으로 모셔 갔어.”
“박 사장~김 영감을 살렸다며?”
“어구, 대단한 일을 했네그려. 고마우이.”
한참 아빠 얘기에 빠져있는데 동네 할아버지들이 몰려와 아빠를 칭찬하느라 바쁘시다.
“아닙니다. 누구라도 봤으면 했을 거예요. 다행히 제가 발견해서요. 병원에 가셨는데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요.”
파란 대문집 할아버지는 밭일을 하다가 쓰러지신 거라고 한다. 날이 무척 더운 한낮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깜빡 잊으신 모양이다. 그때 가게 문을 열고 어떤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사장님 계신가요? 저희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요?”
쓰러지신 할아버지의 아들인가보다.
“네, 의식이 없어 119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한 뒤 읍내 병원으로 가셨어요. 지금 상태가 어떤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할아버지 아들은 아빠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니 서둘러 할아버지가 실려 간 병원으로 쫓아갔고 가게에 남은 어른들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며칠 후, 가게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사장님, 계신가요?”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여기 사장님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귀한 분이 우리 마을에 이사 오셨네요.”
“아닙니다. 어르신, 다른 사람이 봤더라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며칠 전 병원에 실려갔던 할아버지가 퇴원하신 것 같다. 할아버지는 계속 고개를 숙이면서 아빠께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신다.
“김 영감~퇴원했다며?”
동네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모여든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들어와 퇴원한 할아버지를 반긴다.
“퇴원 축하드려요.”
“김 영감 퇴원 축하혀.”
“어르신~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사장님 감사드립니다.”
“맞아, 맞아, 여기 사장님~감사드립니다.”
“박 사장, 김 영감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수.”
가게 안이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떤 이는 선 채로 어떤 이는 자리에 앉아 할아버지 퇴원을 축하드리고 우리 아빠께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박사장님! 맞아요! 맞아요. 사장님 생각이 맞았어요. 그 사람 보이스 피싱범이 맞대요.”
길 건너 지구대의 김순경 아저씨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일제히 김순경 아저씨를 쳐다본다.
“보이스 피싱범이 맞아요? 설마 했더니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어이~ 김순경! 무슨 말이야?”
“어제 박사장님이 농협 현금자동지급기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신고를 해 데려다 조사해 봤는데 보이스 피싱범이었어요.”
가게 안의 어르신들이 빨리 자세한 얘기를 해 보라며 아빠를 재촉하신다.
“어제 송금할 일이 있어 농협엘 갔었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현금을 뭉텅이로 들고 송금하고 있는 거예요. 통장도 여러 개 갖고서요. 자동이체를 하면서 슬금슬금 보니 계속 송금을 하고 있더라구요. 아무래도 수상해 보여 나오면서 지구대에 들러 신고를 하고 왔어요. 그랬더니 보이스 피싱 범인이 맞네요.”
듣고 있던 동네 어르신들이 아빠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와~~!” 환호를 하면서 아빠옆으로 몰려든다.
“아따, 박사장! 사람이 눈썰미가 뛰어나구만.”
“박사장님이 우리 마을 보배로구만.”
“박사장~내 술 한 잔 받구랴. 장해서 내 한 잔 주는 거야.”
다들 아빠를 영웅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박사장님, 지구대장님이 다녀가시래요. ‘용감한 시민상’이나 ‘감사패’ 수상자로 추천하실 모양이예요. 수상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신고를 하셨다고요. 시간 내서 들르세요.”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아빠는 하하하 웃으며 괜찮다고 하면서도 엄청 좋으신가 보다. 아빠의 얼굴이 요즘처럼 밝고 늘 웃는 얼굴인 걸 처음 보는 것 같다.
“아이구~박사장님을 우리 원천마을의 정식 주민으로 인정하는 바요.”
옆집 수정이네 할아버지가 아빠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신다.
“맞아, 맞아 이제 박사장은 우리 마을 주민이요.”
가게에 모인 마을분들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며 마을 주민으로 받아주신 것이다. 이제야 우리 가족은 달빛 호수마을의 정식 주민이 된 것 같다.
도시에 살면서 아빠가 힘들어할 때마다 아빠를 따라나서 이 마을로 낚시를 따라오곤 했지만, 이사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정든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을 떠나기가 정말 싫었다. 하지만 아빠의 증상이 심각하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따르기로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아빠를 따라 이사오기를 정말 잘 한 것 같다. 아빠가 행복해야 엄마와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도 빨리 이 마을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이곳에도 친구들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말이다.
“오늘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어르신들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십시오.”
“야호!”
아빠 말에 가게 안의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기뻐한다. 아빠의 얼굴이 하회탈 모습이다. 길 건너 산등성이로 넘어가고 있는 해도 활짝 미소지으며 축하해주고 있다.
첫댓글 아유 몸이 그렇게 아픈중에도 좋은글을 쓰셨어요. 많이 반성이 됩니다.ㅠㅠ
그래도 몸좀 아끼시고요~^^
ㅎㅎ네~~몸이 아픈 바람에 완성이 늦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