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널린 이불 / 최정례 (1955~2021)
아파트 창에 널린
햇살에 적나라한 솜이불
애국도 매국도 아닌
태극기도 일장기도 성조기도 아닌
목화솜 이불인지 폴리에스터 요깔개인지
이념도 아니고 사상도 아닌
우리의 생활
이미 비난받은
우리의 내부인 것 같은
내장을 꺼내
뒤집어놓은 것처럼
입 꾹 다문 일 가구의
내면을 햇살에 내어 말리고 있는
작은 창 가난한 방의
두툼한 저 무념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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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속옷, 속살에 닿는 물건. 정면으로 바라보면
미안한 생각마저 들게 하는, 늘 부그러운 표정의 사물,
이불입니다. 좀처럼 노출이 불가한 물건인데 누군가
적나라하게도 이것을 '작은 창'에 내 널었습니다.
예리한 시선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국경일의 태극기나 걸려야 할 자리였으니 가히
'생활'의 국기라 불릴 만합니다.
늘 '애국'이니 '매국'이니 떠드는, 소위 직업적 애국자들,
도덕주의자들에게는 불경할 풍경이기에 "이미 비난
받은/우리의 내부인 것 같은" 풍경이고, 더 나아가
'내장' '뒤집어놓은 것' 같은 반항적 '繪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국적 이전이고, 이념 이전이고,
정치 이전입니다. '가난한 방' 앞의 '저 무념무상'이 실은
심대한 사상의 풍경임을 이 예민한 시인이 제시합니다.
가만히, 자세히, 가까이 좀 보라는 뜻이지요.
/ 장석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