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8
1990년대 농구계의 슈퍼스타였던 서장훈. 은퇴 이후 우연히 출연하게 된 예능 프로그램이 인생을 새롭게 바꿔놓은 그는 어느덧 예능 늦둥이에서 대세로 떠올랐다. 현역 시절 상대 선수와 자주 부딪치며 ‘코트의 반항아’로 불리던 그가 외모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깔끔을 떨며 투덜거리는 모습은 즐거운 반전이다. 농구계의 전설에서 예능 대세로 자리 잡은 서장훈을 만났다.
의사나 변호사가 방송가를 장악하다시피 하더니 이제는 요리사들이 상종가다. 그런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읽고 새로운 인물의 스타성을 발굴해내는 이가 바로 김구라다. 김구라는 ‘썰전’을 통해 나를 띄워놓더니 ‘사남일녀’를 통해 서장훈을 방송에 데뷔시켰다. 요즘은 백종원을 최고의 스타로 만드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서장훈과 나는 김구라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한 셈이다. 실제로도 서장훈과 나는 김구라와 함께 술 한잔하며 알게 됐다. 그 후로 서장훈과 나는 여러 차례 자리를 함께했고, 요즘은 둘째 아들 인준이를 서장훈이 진행하는 ‘고교10대천왕’이라는 프로에 의탁하고 있다.
Q : 인준이는 방송 잘하고 있어
인준이는 ‘유자식 상팔자’를 2년간 해서인지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감각이 있어요. 고1이라 나이도 가장 어린데 전혀 기죽지 않고 핵심적인 얘기를 잘하더라고요. 키가 갑자기 커서 그런지 바지 길이가 제대로 맞는 게 없다고 해서 저는 작아서 못 입는 청바지를 하나 줬어요. 인준이도 저처럼 허벅지가 굵은 편이라 우리나라에선 맞는 옷 찾기가 힘들겠더라고요.
Q : 요즘 프로그램 몇 개 해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MBC ‘세바퀴: 친구 찾기’, JTBC ‘썰전’, tvN ‘고교10대천왕’, Mnet ‘야만TV’까지 5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어요. 근데 ‘야만TV’는 마지막 녹화를 찍었으니까 곧 끝나요.
Q : 은퇴 이후 처음 나온 방송이 ‘사남일녀’지
네, 게스트로 처음 나간 건 ‘런닝맨’이에요.
Q : 솔직히 ‘사남일녀’ 출연은 의외였던 것 같아
예전에 ‘무릎팍도사’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작가랑 PD가 저를 좋게 봤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중에 꼭 새 프로그램 같이 하자고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몇 달 뒤 그 작가랑 PD가 ‘사남일녀’를 새로 하더라고요. 맥주 한잔하면서 출연하겠느냐고 묻길래 처음엔 거절했죠. 그런데 그 뒤로 석 달간 집에까지 찾아와서 조르더라고요.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집에까지 와서 부탁을 하나 싶어 들어보니까 방송 취지가 좋더라고요. 시골에 사시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서 자식이 되어주는 이야기인데, 무엇보다 제작진의 노력과 성의를 봐서 출연하기로 했어요.
Q : 취지가 안 좋은 방송은 없어. 일단 취지는 다 좋아(웃음)
가장 좋았던 점은 한 달 치를 한 번에 5일 동안 찍었다는 거예요. 당시 은퇴하고 술 엄청 마실 때였는데, 촬영하는 동안은 술을 안 마시게 되더라고요. 근데 ‘정글의 법칙’ ‘꽃보다 할배’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바람에 반응이 미미했어요. 시청률이 평균 6%, 잘 나올 땐 8% 정도였죠. 그나마 선전했는데, 20회로 끝나서 아쉬워요. ‘사남일녀’ 하는 동안 홍보를 위해 ‘라디오스타’랑 ‘무한도전-유혹의 거인 편’에 나가게 됐는데, 그 두 편이 빵 터진 거예요. 그때부터 섭외가 밀려들기 시작했죠.
Q : 지상파, 종편, 케이블까지 고루 하는데, 몸을 쓰는 예능은 안 하는 것 같아
제 신체적인 특이 사항이나 사이즈 자체로 웃음을 주는 방송은 싫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절대 안 했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다 토크쇼예요. 제일 편안하게 잘할 수 있는 게 얘기하고 공감하는 거거든요. 예전에 ‘진짜 사나이’ ‘나 혼자 산다’ ‘정글의 법칙’ 등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그런 이유로 거절했어요. ‘진짜 사나이’는 하고 싶어도 훈련을 받을 수 없어서 할 수가 없어요. 무릎 연골이 닳아서 없거든요. 뼈와 뼈가 맞닿아요. ‘나 혼자 산다’는 결벽증 때문에 못 해요. 집 안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하루 종일 머물면 공황 장애 생길 것 같아서 못한다고 했어요. ‘정글의 법칙’은 더운 걸 죽어도 못 참아서 못해요. 운동하면서 더운 거랑은 또 달라요. 그런 데서 버텨낼 자신도 없고 해서 거절했어요.
Q : 출연하는 프로그램 중엔 뭐가 제일 재밌어
다 비슷비슷한데, 하나만 고르라면 ‘야만TV’요. 아직까지 뜨지 않은 신인, 끼와 재능이 있는 연습생, 일반인 등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인데 TV에서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저랑 같이 MC 보는 하하와 미노랑도 친해서 편안해요.
Q : ‘주간 아이돌’과 비슷한 포맷이던데
‘주간 아이돌’에는 이미 유명한 애들이 나오고, ‘야만TV’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애들이 나와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밀도 있게 촬영해서 녹화 끝나고 나면 PD랑 작가랑 MC랑 게스트가 다 친해져 있어요. 실제로 PD랑 작가들이 어리기도 하고요.
Q : 이젠 방송인이 다 된 것 같아.
예전에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방송인이라는 호칭을 부담스러워했는데 요즘은 어때 당시에 방송인이라는 호칭을 부담스러워한 건, 제가 이렇게 방송을 계속하게 될 줄 몰라서였어요. 은퇴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게스트로 출연한 거라 ‘방송에 잠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거죠. 지금 방송에 좀 나온다고 해서 방송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방송인으로 불리든 유명인으로 불리든 화제인으로 불리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방송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 큰 의미가 없죠.
Q : 방송을 참 잘하는 것 같아.
대본에 없는 내용도 잘 받아치는 것 같던데 대본에 충실한 편인데, 주로 토크니까 대본대로만 하지 않아요. 저랑 가까운 사람들은 방송에 나오는 모습이 사석에서랑 너무 똑같아서 날로 먹는다고 해요. 평소 대화할 때는 조금 업되거나 다운되거나 비속어가 섞이거나 하죠. 방송할 때 특별하게 이 타이밍에서 웃겨야겠다, 지금 치고 들어가야겠다 하는 건 없어요. 얘기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물어보는 식이죠.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찾아보고 검색해보고 알아 내야 직성이 풀려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대학 농구 장면이 등장했던 것처럼, 20여 년 전 대한민국에서 대학 농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 EXO나 빅뱅의 인기가 다분히 10대 팬 위주라면 당시 연세대 농구팀의 인기는 전 국민적인 것이었다. ‘응답하라 1994’에서도 연대 농구팀과 서태지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지 않던가. 그리고 연대 농구팀의 중심에는 압도적 경기력으로 팀을 이끄는 서장훈이 있었다.
Q : 일반 운동선수들과는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
출발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운동하는 사람들은 자나 깨나 운동만 생각하고 거기에 몰입해 있거든요. 저는 운동만 하지 않았어요.
Q : 출발이 어떻게 달랐어
어릴 땐 야구를 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프로 야구가 생겼는데, 박철순 선수 광팬이어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구부에 들어갔죠. 포지션은 마무리 투수였어요. 이후 선린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갔는데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선배들한테 엄청 맞았거든요. 그래서 휘문중학교로 전학 갔어요. 휘문중학교에서도 야구부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자리 없다고 안 받아줘서 농구부에 들어갔어요. 마침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고요.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아서 농구부에 들어가긴 했는데 엄청 못했어요. 존재감이 없는 데다가 찌질이에 아웃사이더였죠. 키도 야구 선수로서는 컸는데 농구 선수로는 애매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180cm 좀 넘었으니까. 그래서 혹시나 관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공부를 놓지 않았죠. 집에서도 공부 안 하고 운동만 하게 두지 않았고요. 대학 못 갈까 봐 고민하던 차에 다리를 다쳤는데 고관절이 빠져서 석 달 동안 쉬었어요. 수영장 다니며 치료받고. 그러면서 석 달 만에 15cm 정도 커서 197cm이 된 거예요. 갑자기 전국에서 가장 큰 선수가 돼버렸죠. 심지어 신발 신으면 2m가 넘는다고, 선수 팸플릿에는 2m2cm라고 소개됐어요. 당시 중학교 농구 선수 중 최장신이 우리 학교에 있다고 난리가 나고 신문에도 도배됐죠.
Q : 키 하나로 아웃사이더가 최고 유망주가 된 셈이네
그 정도로 농구 선수에겐 키가 중요해요. 또 하나는 농구를 못했으니까 남들이 연습할 때 체육관 옆에 붙어 있는 연습 골대에서 슛 연습만 했어요. 다른 애들은 전술 훈련하고 공격 훈련하고 수비 훈련할 때 저는 옆에서 슛만 해서 할 줄 아는 게 슛밖에 없었어요.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릴 때 야구를 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야구가 농구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농구 할 때 공을 던지는 손목 ‘스냅’이 중요하거든요. 그걸 타고난 것 같아요. 야구 할 때 그 훈련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슛 하는 재주가 생긴 거죠. 보통 저처럼 키가 큰 선수들은 슛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장신에 득점력까지 갖춘 선수가 나타나니 농구계가 흥분한 거죠. 중3 때 나간 첫 대회에서 우승한 뒤부터는 대학교 감독들이 찾아오고 그랬어요.
Q : 유명세가 어느 정도였어
휘문중,고가 워낙 농구 명문이라 연습 게임 할 때 항상 대학 감독들이 와서 봐요. 그전까지는 존재감이 워낙 없었으니 제가 인사를 하든 안 하든 알지도 못했는데, 유망주로 떠오른 뒤부터는 그들이 먼저 와서 아는 척하고 용돈까지 챙겨 줬어요. 당시 현주엽이랑 휘문고 선후배 사이였는데, 한 번 빼고 우리가 나간 전국 대회에서 다 우승을 했어요. 대학 팀은 물론이고 실업 팀하고도 연습 경기를 할 수 있을 정도였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저랑 주엽이가 국가 대표가 됐으니까 둘 다 보통 고등학생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렇게 고등학생 때 탄탄대로를 걷다가 연대에 들어갔어요.
Q : ‘고교10대천왕’ 보니까 본인 나올 때 ‘마지막 승부’ 음악 좀 틀지 말라고 하던데(웃음)
제가 연대 입학하던 때 마침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슬램덩크’ 붐이 일면서 그야말로 농구 전성기였죠. ‘마지막 승부’에는 연대 선배들(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등)이 다 출연했는데 저는 안 나갔어요. 카메오라고 해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그땐 그냥 싫었어요. 지금이랑 성격도 굉장히 달랐어요. 방어적이고 예민하고. 특히 농구장 밖에서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그 후로 20년 동안 저만 나오면 ‘마지막 승부’ 음악을 트는 거예요. 프로 생활 15년 내내 듣고 아직도 제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그 음악을 트는데, 안 지겹겠어요
Q : 당시 성격이 방어적이었던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지금 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키예요. 농구계에서는 유망주고 유명한 선수지만 대중은 절 잘 모르잖아요. 고등학생 농구 선수를 누가 알아봐주셌어요. 농구장 안에서는 내 모든 걸 발휘할 수 있으니 키 큰 게 자랑스럽고 당당했지만 밖에 나가면 창피하고 부담스러웠어요.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 자체가 싫었죠. 그래서 쉽게 보지 못하도록 더 거친 행동을 취했어요. 방어적이고 까칠하게. 그러다 보니 점점 집에만 있게 되고, 사람들이랑 얘기도 안 하고, 외골수가 되어가더라고요. 스스로 사회적 소수자라고 생각하면서 세상과 벽을 쳤던 것 같아요. 키 큰 사람이 사실 단어 자체 의미로 소수잖아요. 2m 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Q : 그런 성격이 언제부터 바뀐 거야
대학 들어가서 천지가 개벽한 듯 갑자기 너무 유명해지다 보니 성격이 조금씩 열렸어요. 나 혼자 까칠할 수 없으니까 바뀔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땐 쓸데없는 ‘똥폼’을 잡았어요. 열아홉, 스물일 때 어디를 가도 우리를 알아보고, 제 얼굴이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고, TV 프라임 시간에 우리 경기를 중계하고, 여중생·여고생들이 숙소 앞에서 환호하고, 팬레터가 하루에 1000통 넘게 오고, 팬클럽 가입자 수가 80만 명쯤 되고 나니까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거죠.
Q : 아이돌 인기 저리 가라였네
근데 인기도 잠깐이더라고요. 미국 대학에 가서 농구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교 2학년 마치고 미국 산호세 대학에 농구 유학을 갔거든요. 원래 농구를 더 잘하는 학교를 가야 하는데, 영어가 달려서 일단 받아주는 데로 들어갔어요. 근데 전학생은 1년간 뛰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는 거예요. 연습만 하면서 학교 다니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또 그 학교 농구팀의 전력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달랐고요. 당시 산호세 대학은 미국 300여 개 대학 중 80~90위권 수준이었으니까. 요즘 세상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었겠지만 그땐 사정이 그렇지 않아 벽에 막혔어요. 여러 상황 때문에 1년 더 버텨서 뛰어봐야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해서 돌아왔죠.
Q : 미국에서 농구 대회에 한 번도 안 나가고
못 나갔죠. 다만 제 인생에서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된 것만은 분명해요. 아쉬움이 있다면, 제가 어렸을 때 지금 같은 분위기였다면 ‘다른 방향으로 도전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Q : NBA로 바로 갔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요즘은 앞날을 개척하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그때는 그런 길이 없었어요. 냉정하게 제가 NBA에 갈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고, 요즘 같은 시대였으면 도전은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미국 가기 전엔 똥폼 잡고 건방지게 굴었는데, 돌아와서는 그런 겉멋이 싹 사라졌어요. 이른바 인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온 셈이죠.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는 곳에 1년 동안 혼자 외롭게 있으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팬들의 환호와 인기가 다 부질없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고요. 다행히 한국에 돌아와서도 저의 가치가 높았어요. 대학 농구의 열기를 이어서 프로 팀을 만들던 시기라 저를 데려가려는 곳이 많았거든요. 그 덕택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어요. 도전 대신 안정을 찾은 셈이죠.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단 하나였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농구를 잘하는 사람. 그래서 지금은 꿈이 없어요. 꿈을 이뤘든 못 이뤘든 더 이상은 농구를 할 수 없으니까요. 은퇴 이후의 삶은 덤이라고 생각해요. 예능도 그렇고 어떤 일을 해도 그건 제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훌륭한 감독이 되더라도 덤이에요
박찬호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이후, 박세리가 LPGA에서 우승한 이후 대한민국 운동선수의 목표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것, 그러니까 단순히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축구라면 영국 프리미어 리그, 야구라면 미국 MLB에서 뛰는 선수가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서장훈은 박찬호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기 바로 전 세계 최고 농구 선수들이 모이는 미국 NBA에 진출하려다 뜻을 접었다. 그보다는 국내 프로 구단 가운데 ‘최고의 센터’로 자리 잡았다.
Q : 프로 선수는 몇 년 했어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5년 했어요. 열다섯 시즌 뛰고 그만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허재 형이랑 저랑 제일 오래 했죠. 은퇴할 때 마흔 살이었어요. 사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서장훈’이라는 이름값이었어요. 보통 선수들은 서른대여섯 되면 팀에서 은퇴해서 지도자를 하라고 하는데 허재 형과 저한테는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기량도 물론 있어야 하지만, 그 덕택에 마흔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 농구 지도자를 할 생각은 없어
기회가 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주변에서는 농구 선수를 했으면 당연히 코치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저는 그런 욕심이 없어요. 제 인생에서 농구 지도자가 꿈은 아니었거든요. 제 꿈은 우리나라에서 정말 압도적인 최고의 선수가 되는 거였어요. 그건 평가하기 나름이니까 ‘됐다’ ‘안 됐다’는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고, 그래도 지금 제가 한 것보다는 훨씬 잘하고 싶었어요. 서글픔도 드는 게,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돈 많은 재벌,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박찬호, 박지성이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적인 스타잖아요. 세계 최고 무대에서 도전했고, 그들을 통해 온 국민이 위로받고 희망을 얻고 자부심을 느꼈으니까요. 농구라는 종목이 한계가 있고 제가 그 정도 수준이 안 됐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세계 무대가 힘들다면 국내 무대에서라도 압도적인 선수가 되고 싶었고요. 안티 세력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잠재우고 싶었어요. 어쨌든 그런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끝나서 더 이상 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꿈이 없어요.
Q : 강호동처럼 유명한 MC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남들보다 뛰어난 게 있다면 현실 직시와 주제 파악을 잘한다는 거예요. 방송에서 제가 하는 말도 다 그게 기반인 거고. 저는 호동이 형만 한 능력이 없어요. 호동이 형 같은 사람, 개인적으로 천재라고 생각해요. 쉽게 나오지 않죠. 어떤 나라에서도 어떤 종목에서 톱이 된 사람이 방송가에서도 톱이 된 사람은 없어요.
Q : 방송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야
저는 20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농구 선수였어요. 특이한 건 국가 대표 선수인데 농구 팬들에게 그다지 사랑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선수 시절 내내 저를 따라다닌 이미지는 심판에 대한 항의, 상대 선수와의 트러블, 개인적인 골 욕심, 잦은 이적으로 인한 팀과의 불융화였어요. 심지어 ‘서장훈이 소속된 팀이 이긴다’는 공식을 깨기 위해 상대 팀을 응원했어요. 저를 자극하는 게 안티 팬들의 행복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 농구 인생엔 고독한 외로움이 있어요. 나 혼자 바운더리 안에 갇힌 느낌이랄까. 동물원 사자가 우리 안에 갇혀 있는데 사람들이 직접 만지진 못하지만 나뭇가지로 쑤셔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고, 성질난 사자가 막 덤비면 좋아하고. 제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더 잘하려고 했죠. 그따위 말을 못하게 해주겠다, 내가 이기적이든 어떻든 너네(안티)가 그런 이야기를 못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잘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예민해지고, 강박이 생기고, 깨끗한 것에 집착하게 된 것 같아요. 정말 미친 듯이 잘하고 싶었으니까…. 근데 방송하면서 느낀 건, 프로 농구를 해온 15년보다 방송 몇 번의 반응이 더 크다는 거예요. 선수 시절에 그렇게 노력하고 난리를 치고 발악을 해도 대중이 알아주지 않았는데, 방송에 몇 번 나왔다고 바로 반응이 오는 걸 보고 한편으론 허무하더라고요. 방송에 출연해보니 대중이 기억하는 저의 모습은 여드름 난 대학교 1학년 때 모습이었어요. 선수 시절엔 거칠고 덩치도 커서 까칠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은근 허당에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지 않구나 하고 많은 사람이 알아주니 솔직히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마땅히 계획한 일도 없고, 당장 지도자가 될 것도 아니고, 저에 대한 이미지도 좋은데 굳이 안 하는 것도 웃긴 거 같아서, 그래서 방송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서장훈은 롱런하고 싶은 생각도, 강호동 같은 유명 MC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땡’이라는 것이다. 결혼 또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헤어진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지만, 그는 그런 행복이 영 불편하다. 아직은 혼자가 편하다
김구라는 늘 서장훈을 빌딩 주인이라 부른다. 이미 공개된 것처럼 서장훈은 서울 양재동에 150억원에 이르는 빌딩과 흑석동에 70억원가량의 빌딩을 소유한 건물주다. 한 달 월세로만 6000만~7000만원을 받는 그에게 직업은 단순히 자아실현과 취미 활동에 다름 아니다. 이런 그의 재산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프로 선수 시절 받은 막대한 연봉을 그의 아버지가 적절히 투자해서 이룬 결과라고 한다.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가족을 부양하느라 힘들어하는 것에 비하면 그는 행운아라고 할까.
Q : 재산 관리는 언제 그렇게 했어
제가 어릴 때 저희 아버지가 ‘논노’ 월급쟁이 사장이었어요. 그러다 제가 대학 들어갈 즈음 부도가 났고, 그 이후 개인 사업을 하면서 제 돈을 관리해주신 거죠.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빌보드 사업을 하고 계시거든요. 아버지 사무실에서 제 돈을 관리 중이라 주인만 저일 뿐 그 돈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몰라요(웃음). 건물과 관련해 제게 연락을 해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한테 연락하라고 안내해요.
Q ; 보통 가족이 돈을 관리하면 까먹는 경우가 많은데
집안이 어려우면 모을 수가 없어요. 돈 모으기가 쉽지 않아요. 부모가 막 쓰니까. 사업한다고 쓰고 땅 산다고 쓰고. 다행히 저희는 엄청 부자는 아니었어도 나름 풍족하게 살았어요. 아버지는 월급쟁이 사장이고, 어머니는 식당(고깃집)을 크게 운영하셨거든요. 어머니도 지금은 힘들어서 그만두셨지만요. 그래서 돈 불리는 게 가능했어요.
Q : 돈은 많은데 쓸 줄 모를 것 같아.
운동한 사람들이 주로 그러더라고 쓸 줄 모르는 것보다 쓸 일이 없어요. 선수가 연예인보다 더 바쁘거든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습도 해야 하니까. 한 달에 술 한두 번 마시고, 시즌 때는 숙소 안에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돼요. 밖에 나가서 따로 돈 쓸 일도 없고, 딱히 물욕이 있거나 뭔가를 사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가끔 지인들 만나면 한턱 쏘는 것 말고는 돈 쓸 일이 없었어요. 게다가 어떤 선수들은 가족 생활비를 대야 하는데 저는 아버지가 덕분에 번 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 개인적으로 관리했으면 날렸을 수도 있을까
제가 100% 돈을 날리진 않았을 테지만 지금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사진 않았겠죠. 워낙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데 관심이 없어서. 아버지가 나름 고급 정보를 듣고 오셔서 사신 거예요(웃음).
서장훈이 KBS 전 아나운서 오정연과 결혼했다 이혼한 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썰전’에 나와서도 밝혔듯이 서장훈은 오정연과의 결혼 생활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린다. 이혼 후에도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꺼낸 적은 전혀 없다. 오정연 역시 ‘썰전’에 나와 얘기했지만 서장훈과 방송에 관해 가끔 통화하는 사이라고 한다. 서장훈이 결혼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지만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어렵사리 얘기를 꺼냈다.
Q : 결혼 생각은 안 해
잘 아시다시피 아직은 혼자가 편해요. 부모님한테 죄송한 마음이에요. 저도 애들 좋아하고,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손주 안겨드리고 싶은데, 애 때문에 결혼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Q : 소개팅은 많이 들어오지
소개해준다는 사람은 많은데 다시 누군가를 만나기가 좀 그래요. 상대방에게 미안해서.
Q : 어차피 안 사귈 거니까
그런 마음도 있고, 제가 이혼한 건 다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헤어진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요. 이혼은 나 혼자 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보통 남자보다 여자가 피해를 많이 입잖아요. 그 친구는 앞으로도 미래가 창창한 나이인데, 나이도 훨씬 많은 제가 이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새로운 사람 만나서 사귀고 재혼한다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제 행복이 우선이라고 하는데, 저는 제 행복만 생각하는 게 불편해요.
Q : 결국 애가 문제네
아이를 좋아하지만 욕심은 없어요. 나중에 애를 낳아서 키우면 좋겠지만 그 아이가 꼭 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제 삶이 하도 다사다난해서 내 한 몸 편히 있기도 벅차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편해지고, 실제로 혼자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요. 애가 없으면 외롭고 적적하겠지만, 그럼에도 저 혼자가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직까지는 그래요.
Q : 둘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구나
네, 의지하거나 기대는 성격이 아니어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배우자가 필요할 때가 있긴 한데, 없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죠. 혼자 있는 걸 잘 견디고 좋아해요. 게다가 바쁘기까지 하니, 누가 좋아하겠어요.
Q : 혼자 사는 남자의 하루는 어때
책 보고 영화 봐요. 극장엔 안 가고. 사람 많은 데 잘 안 가고, 싫어해요. 술자리엔 부르면 나가요. 선수 시절엔 핑계가 있었는데, 요즘은 방송 외에 다른 스케줄이 없으니까 핑계 댈 게 없어요. 어디에 살고 뭐하는지 다 아니까. 제가 이 동네에서 세 살 때부터 살았거든요.
Q : 책은 주로 어떤 분야를 봐
다 봐요. 역사책부터 인문학, 철학, 소설까지. 영화를 보든 신문을 보든 책을 보든, 뭔가를 보고 읽는 걸 좋아해요. 어릴 때 아버지가 신문을 1면부터 끝까지 다 읽게 하셨는데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생각의 폭이 자연스럽게 넓어진 것 같아요.
Q : 주관이 뚜렷하고 생각이 남다른 이유가 있네
제가 다른 운동선수들보다 잘났거나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운동에만 올인하는 선수들을 보면 아쉬운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에만 모든 포커스를 맞추면 그 인생은 나이 들수록 황폐해져요. 소위 스포츠계 스타라 불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면 깜짝 놀랄 만큼 어휘력이나 사고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인생의 폭이 너무 좁아져서 힘들죠. 게다가 운동에만 전력투구하다 보면 창의력도 떨어지고요. 플레이도 창의력이 있어야 잘할 수 있어요. 하루 종일 슛 연습만 하는 선수가 농구를 잘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농구만 보는데 창의적인 생각이 어디서 나오겠어요. 창의적인 생각은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데, 맨날 똑같은 것만 보니 그게 가능하겠어요. 우리나라 스포츠가 발전하려면 선수를 열심히 훈련시키는 것도 좋지만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더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줘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Q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몰빵’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다른 걸 어떻게 하겠어
어느 정도 동의해요. 근데 문제는 아이와 학부모의 태도예요. 의지가 있다면 컴퓨터 게임만 할 게 아니고 그 시간에 책을 보고 하다못해 도움이 될 만한 짓을 해야 하는데, 애는 게임 아니면 인터넷만 하고 부모는 그걸 방치하니까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죠. 의지만 있다면 운동하는 와중에 뭐든 할 수 있어요. 농구 선수라고 해서 24시간 농구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솔직히 프로 선수는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숙소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은 거지 내내 바쁜 건 아니에요. 뛰는 운동은 하루에 2시간 이상 못하거든요. 저는 운동선수가 운동만 할 줄 알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인생도 의미 없어질 수 있어요. 지식을 쌓아서 손해 볼 건 없잖아요.
나도 뒤늦게 방송계에 들어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서장훈도 농구계에서 은퇴하고 방송계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 있다. 그래서 통한달까.
Q :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네.
비전문 방송인이 판치는 방송계에서 우리도 언젠가는 밀려나겠지 그건 누구도 예외가 아닐 거예요. 처음에는 우르르 나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 다 걸러지니까. 형님을 섭외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저한테 기대하는 것들이 있을 텐데, 재미없으면 누가 쓰겠어요. 말 못하고 재미없고 콘텐트 없으면바로 도태되는 거죠, 뭐.
Q : 방송을 하면서 롱런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방송을 계속하고 싶어 뭔가 무리를 하는 순간 ‘땡이다’라는 생각이에요.
Q : 농구, 방송 말고 다른 취미는
운동을 하고는 싶은데 무릎이 아프고 디스크도 있고 해서 힘들어요. 여행은 별로 안 맞는 것 같고. 외국 나가면 시차 적응 못하고 하루 종일 자요. 멀리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아는 식당, 아는 술집만 가요. 담배를 피우든 말든 네 맘대로 해라, 하는 곳만 가요(웃음).
Q : 방송하면서 더 유연해진 것 같아.
사람과의 관계나 성격이나 늙어서 말랑말랑해진 거죠(웃음). 사실 농구에 관련해서는 여전히 프라이드가 있어요. 하지만 방송에 대해서는 프라이드가 있을 이유도 없고, 내가 할 얘기가 없는 거예요. 전문가가 아니니 못하는 게 당연한 거고, 자부심이나 자존심 같은 거 없어요. 이 일은 어떻게 돼도 괜찮아요. 그냥 현실을 직시하고 주제 파악하면서 살려고 해요.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면 중간은 가요. 망하진 않죠.
Q : 주제 파악은 언제부터 그렇게 잘 한거야
농구 할 때는 어느 정도 똥폼을 잡았어요. 물론 그것도 어렸을 때 얘기지만. 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아예 내려놓은 것 같아요. 인생의 막을 내린 것 같았으니까. 사실 이혼하면서 프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몸이 안 좋은 데다가 소속 팀과도 문제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은퇴하면 인생 자체가 이혼으로 끝날 것 같아서 억지로 1년 더 뛰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가벼운 운동도 못 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네요. 일상생활 하는 데 큰 지장 없으면 됐죠, 뭐.
Q : 욕심이 없어 보이는데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가장 큰 사치는 뭐야
글쎄요.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다만 포기할 수 없는 건 일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서 책이나 영화 보면서 하겐다즈 파인트 마카다미아 맛 한 통을 먹을 때! 그때 최고로 행복해요. 제가 부리는 최고의 호사죠(웃음).
Q : 하하하, 서장훈 매력 터진다! 앞으로 계획은
아까도 말했지만, 어릴 적부터 제 꿈은 단 하나였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농구를 잘하는 사람. 그래서 사실 지금은 꿈이 없어요. 그 꿈을 이뤘는지 못 이뤘는지는 제가 평가할 문제가 아닌 것 같고, 또 꿈을 이뤘든 못 이뤘든 더 이상은 농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꿈은 없어요. 지금의 삶은 덤이에요. 그냥 오늘을 충실하게 살고, 물 흐르듯이 살다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오겠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 해요.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고,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나름 텃세가 센 방송계에서 이미 생존술을 터득한 듯한 서장훈. 예능 늦둥이에서 예능 대세로 자리 잡은 그가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기를 바란다.
* 기획 정은혜 기자
* 글 강용석
* 사진 이광재(BAM studio)
* 출처 여성중앙 2015년 7월호
http://mnbmagazine.joins.com/magazine/Narticle.asp?magazine=204&articleId=OBDSMU96NGGKPQ
첫댓글 애초에 취지가 안좋은 프로는 없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현실감각 자기객관화 와우긔
삭제된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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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4 물어보살 보면서 촌철살인에 드물게 가치관이 바른 점이 참 궁금했는데 부모님이 영향이 컸네요. 공부 놓지 않게하고 신문 읽히고 지금도 독서하고. 예능하는 사람들 중에 젤 멀쩡해 보이는 이유를 알겠긔.
매력있긔ㅋㅋ 아는형 해주라...
인터뷰어가 강용석이어서 놀랐는데ㅋㅋ 인터뷰 참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진짜 죽도록 최선을 다해서 산 사람 특유의 도가 튼 느낌이 있긔
한결같네긔 ㅋㅋ
자기 객관성 최고긔;;
서장훈이랑 만나보고 싶냄 ...
허세없고 현실적인 사람 b
인터뷰 괜찮네요 말잘하는거 같긔~
인터뷰 진짜 담백하긔 성공한(?) 스포츠 스타들 특유의 무덤덤함과 자신감 진짜 멋있고 존경스럽긔 연아도 그렇고 세리언니도 찬호박도 결이 비슷한 느낌... 진있다 멋짜bbbbb
중학교때 운동선수로 애매해질지 몰라서 공부를 안 놓았다는 거 어린 나인데 그때부터 굉장히 현실적인 성격이었나보긔
좋은사람 ㅜㅜ
아버지가 빌보드 사업? 을 한다니 뭔지 그냥 궁금하긔ㅋㅋㅋㅋ
광고사업이긩 ㅋ 서장훈 건물에 있는 광고판 사업을 아마 아버지가
하는게 아닐까싶긩
@모두 다 이루어졌다 아ㅋㅋㅋㅋㅋ저는 그 미국 빌보드차트 뭐 그건줄 알았긔...ㅋㅋㅋㅋ따흑 부끄럽넴^_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인중에 제일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같긔 단 음주운전 빼고...
강용석......
오 인터뷰 내용 좋긔 자기 객관화 쩔고요ㅋㅋㅋ
논노 가 그 일본잡지 논노겠긔? ㅋㅋ 암튼 서장훈 공감능력 현실감각 저런 환경에서 만들어졌나보긔 이해가 좀 되긔 운동만 한 줄 알았는데 공부도 놓지 않았었고 키도 첨엔 안컸어서 그 때 느꼈던거나 유학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이 저런 사고를 갖게했나보긔 ㅋㅋ 돈도 안 부럽고 박지성 박세리 부럽다하는게 진짜 운동선수 같네욤..
의류브랜드 아니긔?
8,90년 초까지 저희 엄마가 엄청 사입으셨던 브랜드긔 ㅋㅋㅋ논노 진짜 오랜만에 듣냄
부잣집 아들인 줄은 알았는데 논노 사장이었군여
서장훈 공감 능력이나 세상보는 시각에 놀랐었는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보네긔..가족 분위기 자체도 그런것 같구요
오정연도 서장훈도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느껴지는데... 아쉽긔. 관계란 참 어려운거 같긔
222정말 공감하긔 둘다 좋은사람들같은데 ㅠㅠ
333 둘다 장점 많고 매력 많은 사람인데 모르는 남남 사이 보며 아쉽다 싶은건 첨이긔ㅜㅜ
극현실주의자같긔 솔직하고요
와 되게좋긔
한남 아니라서 조킈 배려심이 몸에 뵌사람
와 오년전 인터뷰네요.. 근데 요즘이랑 인터뷰내용이랑 보면 한결같은데 저 공감능력이나 배려심, 현실감각 진짜 대박이긔..
굉장히 매력있는 사람이긔
친한 오빠였음 너무 좋겠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