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우리나라 스윙댄스의 시작은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나라에는 스윙댄스가 언제 보급되었고
어떤 과정으로 활성화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상명dltnjd 답변
스윙음악에 체계적으로 춤을 춘 것은 화이티의 린디호퍼라는 흑인 댄스 팀이었고, 그때 댄서이며 안무가가 바로 프랭키 매닝이기 때문에, 린디홉을 만든 사람이 프랭키 매닝이고 결국 프랭키 매닝이 스윙댄스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 후 백인 스윙댄서들이 등장해서 글렌 밀러, 아티 쇼, 도르세이 형제들 등이 백인 풍 스윙 재즈를 만들었고, 이 스윙재즈는 베니 굿맨에 의해 정점에 달했다고 하더군요.
철저하게 흑인 춤이었던 린디 홉과 달리 백인들도 즐기는 훨씬 간단하고 쉬운 춤이 등장하는데 이게 지러벅(Jitterbug)이고, 가공할만큼 어려웠던 린디 홉과는 달리 지러벅은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영상 자료를 보여주는데 오리지널 린디호퍼들이 추는 린디 홉은 거의 상상을 초월하는 레벨이라서, 현재 미국 린디홉 챔피언도 그 스텝들을 완벽히 해낼 수가 없답니다.
초기 지러벅은 현재 지루박이나 지루바(일본 지러벅)과는 좀 다른데 이게 나중에 자이브로 변해가죠.
린디홉의 인기가 사라진 후 린디호퍼들은 거의 춤을 떠났고 프랭키 매닝도 거의 30년 이상을 춤을 추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80년대 미국서는 지러벅이 자이브, 린디홉, 찰스턴 등의 스텝을 포함시키면서 동해안스윙으로 발전했고요. 다른 지역에서는 서해안 스윙이 독립적으로 발전했는데 동해안 스윙처럼 인기는 끌지 못했죠. 찰스턴은 폭스트롯과 결합해서 퀵스텝 (원래이름은 찰스턴 리듬의 폭스트롯 퀵스텝이었다고 함) 이라는 춤을 낳았고 역시 거의 사라졌었죠.
20세기 말에 와서야, 린디 홉, 찰스턴이 다시 살아났죠. 어느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현재 린디 홈 챔피언 커플이 예전에 영화를 보다가 (Hellzapoppoin') 거기서 프랭키 매닝이 안무한 화이티의 린디호퍼들의 오리지널 린디홉을 봤답니다. 가공할 춤실력에 놀란 이들이 뉴욕 전화번호부를 뒤져보니 딱 한 명의 프랭키 매닝이 있었답니다.
전화를 걸어서 "혹시 춤추는 분이세요?" 하니까 80대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춤을 추기는 했었는데..." 이렇게 해서 프랭키 매닝이 다시 발견되었고. 이 커플의 요청으로 오리지널 린디 홉을 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스윙>
우리나라의 스윙은 1999년 12월 나혜석 선생님께서 보라매공원 체육관에서 스윙무료공개강습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댄스스포츠와 살사 등 댄스 동호인들의 인구는 어느정도 형성되어 있었던 시기였으나 스윙댄스의 인구는 극히 미미한 상태였습니다.
보라매 공원의 강습 이후 2000년 5월 보라매 공원에서 나혜석선생님의 강습을 듣던 몇몇을 주축으로 스윙키즈라는 첫 스윙동호회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스위티스윙 동호회가 생김으로서 더 많은 스윙동호인들이 생겨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1월 스윙키즈에서 개설한 스윙스쿨의 무료스윙 공개강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스윙에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스윙을 즐기는 인구는 대략 50,000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강남의 헬로우스윙, 신사동의 스윙바, 신림의 부기우기바, 홍대의 해리&피터바, 건대입구의 피에스타, 구의역앞의 라틴플러스원, 서울대앞의 올댓스윙 등 스윙을 출 수 있는 곳이 서울에만 7군데 생겼습니다.
스윙 동호회와 스윙 강습등 많은 스윙관련 모임/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각 대학교와 서울 이외 부산, 대구, 제주 지역에서도 많은 동호회가 생겨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