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시창작 아카데미 제 4기 졸업작품 3 / 신중숙

서해 시창작 아카데미 제 4기 졸업작품 3 / 신중숙 원삼 족두리 입고 신방에 앉아 있는 기분이라 할까요? 무척이나 설레고...... 부끄럽고...... 자랑스럽고...... 이렇게나 대단한 일을 제가 해 내다니 꿈만 같습니다. 이 열매가 오롯이 제 능력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열성으로 지도해 주신 선생님과 일 년 동안 저와 동행해 주신 여러 동기님들께 엎드려 절합니다. 앞으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지금 처럼이면 참 좋겠습니다. 하이얀 그녀의 미소 / 신중숙 별들이 쏟아질 듯 , 이슥하도록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어. 그녀가 이야기를 할 때엔 타닥탁 떨리던 문풍지도 숨을 죽였지 너 나없이 먹고 살 거 없이 가난하던 시절, 구두닦이 남동생 하나 데리고 미제 간스메 보따리 장사하던 처녀. 번쩍이는 견장을 달고 검문하던 헌병에게 잡혔는데. 눈이 맞아 동두천 개천가 쪽방을 얻어서 살림도 차리게 되었대. 가무잡잡한 곱슬머리 사내아이를 얻었고, 아이가 토실토실 살이 올라 "어부바'를 찾을 때 쯤 휴가 다녀온 사내는 장가를 들고 왔다 하네. 부모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며 그러다 어느날 새 색시가 찾아 왔드라지 서방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물어 물어 찾아온 새색시. 애를 들쳐업고 무작정 나왔다네. 새색시가 가여워서 그 남잘 잡고 있을 수가 없드래. 나오긴 나왔는데 갈데가 있어야지 살림차려 애까지 낳은 줄 꿈에도 모르는 친정에는 갈 수가 없었지. 결국 머리에 다라이 하나 이고 신작로로 나섰고 아비없는 후레자식이 되어버린 사내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대. 보따리 장사, 식모, 남의 집 빨래일에 바느질,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대. 사십중반에 병이 찾아 왔는데, 섣달에 애 낳고 사흘만에 냇가에 나가 피빨래를 한 때문이 아닌가 하드만. 봄가을 서른 세 번이나 지나도록 밥보다 약을 더 먹었지만 자식하나는 제대로 키웠다며 빙긋 웃곤 해. 그 남자가 원망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엔 어찌 자식을 얻을 수 있었겠냐며 고맙다 하대. 그 웃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동자 저편의 설움이 금방이라도 차 올라 넘칠 것 같어. 알겠어, 우리는 가진 게 너무 많아 슬픈게야. 고인돌 / 신중숙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구릉들 사이에선 어머니의 젖 내음새가 났다. 태초에 존재한 누구라도 젖내음새를 기억하며 무거운 어깨를 내려 놓았을 꺼다. 한 줌 흙으로 의무를 되돌린 영혼들이 수천 년을 넘어 내 작은 심장을 팔딱이게 한다. 그네들의 호령이, 한숨이, 영혼이 묻어 나는곳 여긴 고창땅 고인돌군이다. 아버지 기일 / 신중숙 가을 과일 나래비 선 젯상너머 네모난 사진틀 속에 푸석한 젊은 사내가 있다. 삘기꽃 하얗게 피던 날 졸업한 그는 하얀 소복의 여린 아내를 알아 볼까. 활짝 열린 대문으로 방울이만 꼬리 흔들며 바삐 드나든다. 오늘 지나면 어제같은 빈 방. 꽃 같은 아내 손에 넘겨진 올망졸망 어린 것들 반백이 되어 젊은 영정에 절을 한다. 온기 / 신중숙 빌딩 사이를 지나던 햇살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아 아침 내내 베란다를 비춰 주던 햇살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생기를 잃고 포실포실하게 마른 솜 이불을 걷어 들이며 난 기억을 풀어 온기를 지피지. 빨래줄 가득 까망 물들인 옥당목에 빨강 깃을 댄 홑이불과 하얗게 바랜 홑청들이 빳빳한 풀기와 함께 말라가는 날 이면 밤 늦도록 사립문 밖으로 다디미 소리가 이어졌지. 엄마의 그림자를 지키는 댓돌위의 검둥이가 하품 할 때 쯤 할아버진 흐--흠 하는 기침소리로 잠을 재촉하곤 하셨어 까치밥으로 남겨둔 붉은 홍시가 반짝이던 날을 그리워하며 나도 울 엄마처럼 겨울을 준비했어 빌딩을 가리운 창호지 너머로 번지는 온기. 방문객 / 신중숙 이맘때 쯤이었나봐, 중년의 낯선 방문객이 우리집 마당에 들어선게. 꽃그림이 그려진 길다란 유리컵에 누르스름한 미수가루를 타서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가며 마루에 들고 갔을때 김씨라는 그 사내는 울고 있었어, 우리 할아버진 먼 산을 보고 계셨고. 그렇게 울다 돌아 간 사내 어미가 돌아 가면서 김씨 집안 자손이 아니니 아비를 찾아보라 했다더군. 우리 집안으로 시집 온 그 어미란 여자 옛정을 잊지 못해 밤 봇짐을 쌌는데 같이 달아난 사내가 누구였냐하면 제 손으로 중신해서 시집 보낸 시누이 남편이었어 졸지에 홀아비 홀어미가 둘이나 생긴 집안에선 집안 망신이라며 쉬쉬 입을 다물었지만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여편네 건사하나 제대로 못한 그 할아버진 평생을 주색잡기로 떠돌았고 곱디 곱던 고모할머닌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갔대나봐 그 어미란 여자 " 참 몹쓸년"이다 싶어. 그냥 가슴에 묻지---- 김씨로 지낸 긴 세월을 어찌 반납하라구. 손바닥만한 밭뙈기가 욕심나서였는지 손 아랫동생이 떠나라 했다더구만. 지금쯤은 그 사내도 그 슬픈 삶을 마감했겠네. 길다란 유리컵에 미수가루는 제 맛이 안나. 대접에 타서 훌훌 마셔야 제 맛이지. 대청마루 시원한 그늘에 앉으면 더위 들어설 틈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