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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탄생화] 미나리아재비(Butter Cup)
꽃말 : 천진난만
미나리아재비과
원산지: 유럽
학명은 '라넌큐러스(Ranunculus)', 어원은 라나(Rana,개구리)입니다. 개구리가 많이 서식하는 곳에 흔히 자란다는 것에서 유래했답니다.
영어명 'Butter Cup'은 이꽃의 색과 형태에서 연상된 말입니다. '왕의 잔' '황금의 잔' '황금의 손잡이' '뻐꾸기 새끼' 등 듣기 좋은(?) 이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잎새가 말 발자국과 비슷하여 '말의 발자국'이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유머러스 하군요. 미나리아재비과는 종류가 다양해서 학문상의 분류가 꽤 많습니다. 식물학자가 주목하는 꽃입니다.
꽃점: 부귀에 대한 욕심이 남들보다 월등히 강한 당신.
자존심이 강하여 다른 사람에게 오망하게 보이는 것이 흠입니다. 당신 본래의 '천진난만함'을 발휘하는 것이 '승리'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미나리아재비 Butter Cup [Ranunculus japonicus]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
산과 들의 볕이 잘 들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여러 개 갈라지며 높이가 50cm이고 흰색 털이 빽빽이 있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잎자루가 길고 깊게 3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다시 2∼3개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줄기에서 나온 잎은 잎자루가 없고 3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줄 모양이다. 꽃은 6월에 짙은 노란 색으로 피고 취산상(聚 狀)으로 갈라진 작은꽃자루에 1개씩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타원 모양이며 겉에 털이 있고 수평으로 퍼진다. 꽃잎은 5개이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원형이며 꽃받침조각보다 2∼2.5배 길다. 수술과 암술은 많은 수가 있다. 열매는 수과이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원형이며 약간 편평하고 구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모여 달린다. 식물체에 독성이 있으나 생약으로 사용하고, 연한 순은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부를 모랑(毛 )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간염으로 인한 황달를 치료하고 눈에 낀 백태를 제거한다.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한다. (출처:두산백과)
[꽃 말] : 천진난만天眞爛漫
[탄생화] : 귀하께서는 부귀富貴에 대한 욕망慾望이 남들보다 월등越等히 강强하신 편이며 자존심自尊心 또한 지나치게 강强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만傲慢하게 보이는 것이 흠임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997 - 신창원 부산교도소 탈옥
[어제의 오늘]1997년 신창원 부산교도소 탈옥
ㆍ소외계층의 연대의식
탈옥(脫獄)에 대한 대중의 환상은 대략 두 가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 국가형벌권이라는 강력한 권력에 묶인 채 일거수일투족을 제약받던 일개 수인(囚人)이 강대하고 촘촘한 감시망을 뚫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주는 야릇한 쾌감이다.
또다른 하나는 범죄자를 가둔 국가체제가 상대적으로 정의롭지 못하거나 대중들의 지지를 얻지 못할 때 탈옥수는 설령 파렴치범이라 할지라도 의적(義賊) 등으로 미화·과장되는 경우이다. ‘민주정의’를 내세웠지만 정작 가장 반민주적이고 정의롭지 못했던 전두환 정권의 치세(治世) 아래서 그렇고 그런 강도·절도범 출신 탈옥수 조세형이 졸지에 ‘대도(大盜)’로 떠올랐던 일이 그것에 해당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신창원만큼이나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탈옥수도 없겠다. 그는 지난 1997년 1월20일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에 성공했다. 그는 전남 순천의 어느 아파트에 은거하고 있던 99년 7월16일 가스레인지 수리공의 신고로 검거될 때까지 2년6개월 동안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전국 각지에 출몰하며 숱한 화제를 뿌렸다. 67년 전북 김제에서 빈농의 막내로 태어난 신창원은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뒤 절도 등으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했다. 89년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신창원은 서울구치소와 청송교도소 등을 거쳐 94년 11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돼 복역 중이었다.
경찰조사 결과 신창원은 도피생활 중에도 무려 108건의 강·절도를 저질러 9억800여만원을 강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돈으로 다방 여종업원 등 유흥업소 여성들과 동거하면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신창원이 오랫동안 붙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동거여성들의 ‘연대의식’ 때문이었다. 이들은 신창원이 중대범죄자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다같은 소외계층’이라는 생각에서 신고하지 않았고, 은신과 도주를 도왔다. 그의 도피기간 경찰은 공조수사 부재, 주민신고 무시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많은 경찰관이 옷을 벗어야 했다. 현재 청송교도소에 복역 중인 신창원은 종교에 귀의해 독실한 신앙인이 됐으며, 암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와의 서신교환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손동우 사회에디터 /경향신문 2009-01-19 17:47:40
신창원이 도주했다.
신창원(申昌元, 1967년 5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범죄자로, 1997년 탈옥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에서 범죄자의 예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체포 당시 입었던 화려한 빛깔의 쫄티가 유행하기도 했다.
출생 이후
1967년 5월 28일, 전북 김제군(현:김제시) 금구면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8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와 함께 살아왔다. 사슴 문신을 했다. 초등학교는 졸업하였으나, 진학하지 못하였고 교도소에서 중학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범죄 행각
학교를 그만두고 1982년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신창원의 친아버지인 신흥선씨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는 아들 신창원이 소년원에 가서 새 사람이 되길 갈망하였기 때문이었으나, 신창원은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본격적인 범죄인생을 살게 된다. 신창원은 출소 뒤에 서울로 올라갔다. 음식점 배달부 등을 하다 1983년 절도죄로 또 다시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1989년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돈암동 정모 씨 집에서 강도행위를 하다 공범 중 하나가 정씨를 죽여 강도치사죄로 수배를 받았고 그 해 9월 검거되었다. 검거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후 1994년 부산교도소에 이감되었다.
탈옥과 검거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의 화장실 쇠창살을 쇠톱날로 절단하고 탈출하였다. 이후 약 2년 동안, 전국을 오가며 약 9억 8000여만원을 훔쳤고, 훔친 돈으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유혹해 동거하며 아지트로 삼았다. 그러나, 동거할 곳이 없을 때는 토굴 등에서 생활하며 쥐고기로 연명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의 추격에 쫓기는 중 신창원의 담당형사인 원종열 경장이 쏜 총에 이가 맞아 부상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추격을 끝내 따돌려 신창원은 자신의 초인적인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신창원의 검거를 위해 헬리콥터를 띄우고 전경을 동원했으나 번번이 속수무책이었으며 열세 번을 눈앞에서 놓쳐 많은 경찰관들이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999년 7월 16일, 그가 숨어있던 전남 순천의 아파트에서 가스관 수리를 의뢰받은 수리공의 제보를 받은 경찰에게 검거되었다. 이후 당시 수사과장 김진희는 제63대 광주동부경찰서장으로 부임, 신고한 수리공 김영군은 경찰 특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