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한의원엔 소주 한 병이 늘 놓여있다.
물론 마시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니 소독약 대용으로 쓰고자 함이다.
비록 소독을 목적으로 몸에 바르는 것일지라도
먹을 수 있는 안전한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소주를 사용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소주로 피가 잘 닦인다는 사실.
침 치료를 하다보면 약간의 출혈이 동반되는 경우가 생기고
이에 환자들의 옷이나 침대 커버에 피가 묻곤 하는데
소주를 적신 탈지면으로 닦으면 아주 잘 지워지는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닦기에 힘들 정도로 많은 피가 묻은 것은 대야에 소주를 붓고,
거기에 옷이나 침대커버를 담가 두었다가 빨면 마술처럼 깨끗이 세탁되는 바,
피 묻은 가운 처리로 골치 아파하는 양방 의료인에게
소주 세탁을 조언할 정도로 효과적이다.
이처럼 피를 녹이는 작용이 탁월한 소주.
이것을 마신다면... 몸 안에서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
몸에 좋을 리 없음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피를 묽게 하는 소주는 몸을 녹인다.
더 재미난 이야길 덧붙이자면
소주에 인공조미료인 '미원'을 타서 세탁에 이용할 경우 더욱 효과적이다.
일명 소주 미원 세탁...
미원의 탁월한 표백 효과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선 모른다.
피를 녹이는 '소주'와 표백시키는 '미원' 이제 먹지 말고 세탁에 이용해 보자.
이처럼 소주를 소독용 세제로 전락시킨 것은 희석식 소주,
즉 화학소주이다.
맥주하면 생각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전세계 맥주 공장의 1/3이 자리잡고 있는 독일에선
4천여 종 이상의 맥주가 생산되기에 맥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데
요즘 독일에선 맥주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독일 젊은이들이 맥주를 멀리한다는 점.
외모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이 배가 나온다는 이유로 맥주 먹기를 꺼리니
맥주 종주국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호프집 벽에 걸린 사진,
독일 사람들의 맥주 마시는 풍경의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배불뚝이 모습들이다.
그런데 맥주가 배를 나오게 한다는 점에 대해선 서로 반대되는 의견들이 많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맥주의 높은 칼로리가 살찌게 한다는 의견과
맥주보다는 기름진 안주의 문제라는 의견 등이 엇갈리나
애주가들이 유독 맥주를 즐기지 않음은 배 나오게 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니
이러한 애주가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한의사인 필자의 시각에선
맥주 마시고 나온 배는 단지 미용상의 문제가 아니라 병리적인 내과 문제다.
즉 일반적인 비만과 달리 신(腎)과 장(腸) 기능 저하로 보는 것이다.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는 소화를 촉진시키고,
오랜 체기를 없애며 토사곽란을 멎게 하는 목적에서 쓰이는 한약재인데
신기(腎氣)를 소모시키기에
많이 먹거나 오랫동안 먹는 것을 경계해왔다.
또 기를 내리는 성질 때문에 임신부의 경우 유산할 우려가 있다고 했으니
맥주를 알코올이 아닌 간단한 음료로 여기는 현실에서
특히 임신부들은 맥아의 성질을 유념해야 한다.
한의학에선 남성의 정력을 신기(腎氣)에서 나온다고 보는 바
맥주를 물처럼 마시면서 비아그라나 정력제를 찾는 남성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맥아와 함께 맥주의 원료로 쓰이는 '홉' 역시
과거 서양에서 안정제, 최면제로 사용된 약이다.
맥주 특유의 쌉쌀한 맛과 향은 바로 홉 때문인데 맥주 거품을 좋게 만들고,
맥주를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키기에 맥주의 주원료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홉은 이뇨작용이 강하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맥주 마시면 소변이 자주 마려운 것은 홉의 강력한 이뇨작용이 원인인데
이러한 이뇨작용은 노폐물 배출이라는 긍정적인 기능보다는
장(腸)을 차게 하는 역기능이 더 크다.
뱃속 찬 사람이 맥주 마시고 설사하는 것을 가지고
혹자는 보리의 찬 성질을 원인으로 삼지만
싹튼 보리인 '맥아'는 보리와 달리 따듯한 성질을 가지기에
필자는 홉의 강한 이뇨작용으로 인한 장(腸) 기능 저하를 원인으로 삼는다.
따라서 맥주 마시고 나온 배는
'홉'의 이뇨(利尿)작용과 '맥아'의 하기(下氣)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다.
차가워진 장(腸)은 아래로 처져 배를 나오게 하니
맥주 배를 가지고 미용상의 문제로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장(腸) 기능이 떨어져 있음을,
그리고 신(腎) 기능 저하에 따른 정력감퇴를 염려해야 한다.
또 맥주를 즐기는 사람에게선 방광 기능도 함께 떨어짐이 나타난다.
맥주를 많이 마시고 난 후에 소변을 보면 색이 뿌옇고,
간혹 고환 부위가 묵직하게 당기면서 아픈 것은
쳐진 장(腸)이 방광을 압박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필자는 맥주를 '먹지마 건강법'의 대상으로 삼아 환자들에게 금지시킨다.
'맥아'와 '홉'의 특성을 볼 때 맥주는 소화제로서, 안정제로서,
수면제로서 잠시 마실 수 있는 약이지 늘 즐길 수 있는 음료가 아니다.
본래 약으로서 쓰이기 시작했다가 기호식품화한 것들 대부분은 중독성과 부작용을 나타낸다.
술, 담배, 커피, 콜라 등이 여기에 해당되니 맥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요즘 맥주는
커피나 콜라처럼 대량생산을 위해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지는 인스턴트 식품과 다를 바 없다.
독일에선 1516년 이후로
순수성 유지법(Purity law)이라는 맥주 양조방식이 법으로 정해져
방부제 같은 화학물질이 첨가되면 위법이기 때문에 장기보존을 위한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맥주에 비해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 말은 독일을 제외한 곳에선
맥주제조과정에서 방부제 등의 약품이 쓰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 맥주를 아는 사람들은 '병맥주'보다 '생맥주'를 마신다.
병맥주는 제조과정에서 열처리하여 효모를 죽임으로써 유통기간을 늘린 것이니
계속 발효중인 맥주의 효모 작용으로 신선하고 고유의 맛과 향을 지니는
생맥주에 비해 볼 때 인스턴트 음료이다.
순수한 맥주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마시면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은데
설상가상으로 인스턴트화되어 있으니
맥주에서 낭만을 찾기 전에 자신의 건강상태를 점검해 보아야겠다.
전통적인 소주는 곡주 발효 후 증류해 다시 발효시키는데 비해,
오늘날 우리가 주로 마시는 소주는 화학적 방법을 이용한 '희석식 소주'이다.
희석식 소주의 제조 방법의 핵심은 알콜 농도가 95%인 '주정'이다.
주정의 원료는 전통적 소주의 원료인 쌀이나 수수가 아니라 '당밀'이다.
당밀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사탕을 뽑고 남은 즙액으로
시럽 형상을 한 검은 빛을 띠는 것이다.
당밀은 비료/사료/연료로 사용될 뿐 아니라
고체는 구두약, 연탄 등의 연료로 사용된다.
고체 형태의 당밀을 발효시켜 에틸 알코올만 추출하는
연속식 증류기에서 뽑아낸 알콜이 희석식 소주의 원료인 주정이다.
한국에서도 고려시대 이후 증류식 소주가 전해지면서
식량과 술의 끊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지속되었다.
전통적 소주는 많은 양의 쌀을 써서 만들지만 생산량은 극히 적으므로
소주 제조는 곧 식량을 축내는 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흉년이 들면 금주령을 내렸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세금을 걷으려 술을 관리하였다.
1916년 총독부 당국에 의해 본격적 주세법이 발효되었다.
집 안에서 개인적으로 행하던 술 제조
(그때는 제사 때 쓰는 제주와, 농사철에 마시는 농주는 모두 집에서 담궜다)까지
제조 면허를 얻게 했다.
주세에 의한 착취는 점점 엄격해져서 1934년에는 면허 신청자가 없었다.
일제가 군홧발로 집집을 뒤져
제사에 올릴려고 담근 술을 마구 짓 밟았다는 이야기가 이때부터다.
국가적 차원의 주세법은 상업적 술의 생산과 판매를 활성화하여
총독부의 수입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술의 질은 떨어져
제조 원가가 많이 들고 판매가도 비싼 재래식 소주는 사라지고
재래식 소주에 에탄올을 섞은 개량식 소주가 등장했다.
주정 형태로 일본에서 수입한 알콜 소주를 섞어
소주 값은 내리고 더욱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현대의 희석식 소주는 1965년 박정희 정권부터이다.
보릿고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식 장려와 벼 품종 개량을 하면서,
모든 술을 쌀로 빚지 못하게 하는 '양곡관리법'이 시행되었다.
막걸리는 밀로, 소주는 고구마로 만들게 되었다.
사실,
일제 때인 1935년 제주도에서 알콜 원료용 고구마를 재배하는데 성공했으며,
에틸 알콜은 전시에 연료로 쓰일 수 있으므로 일제는 대량 생산화에 매진했다.
1938년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제주도에 고구마를 원료로 하는 무수 알콜 공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 무수 알콜을 주정으로 하는 희석식 소주는
1965년 양곡관리법이 발효되고 나서야 일반 소비자의 대대적 환영을 받아
이때부터 순곡주 발효 증류주인 재래식 소주는 일단 사라지고
희석식 소주가 소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구마나 감자에서 주정을 추출한다고 하여 희석식 소주가 '화학 소주'라 단언할 순 없다.
그러나 술은 대부분 발효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데
희석식 소주는 발효 과정이 빠진 채로 만들어진다.
주정은 식용 알콜이지만,
그것에 물을 섞고 각종 감미료를 첨가시켜 부드럽게 마시도록 한 희석식 소주는
마신 후 심한 두통을 일으킨다.
물론, 순수 발효 과정을 거친 밑술을 증류한 요즘의 전통 소주나
중국의 바이쥐우(백주), 브랜디, 위스키 모두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희석식 소주처럼 지독하진 않다.
주식으로 먹는 쌀을 원활히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인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금주령을 내리는게 아니라
술을 화학적 방법으로만 제조하도록 법으로 정했던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첫댓글 그렇군요, 맥주를 많이 마시면 이모저모로 좋지 못하군요. 음주일수 91일을 꼭 지켜야겠군요. 오늘부터...ㅎㅎㅎㅎ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