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차(연번 183회차) 산성 답사 결과: (진천) 만뢰산성
만뢰산성은 (충북 )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에 소재한 만뢰산(611.7m) 정상부를 테메듯 두른 산성이다.
남아있는 석벽은 잘 보이지 않고 다만 흔적만이 토성처럼 남아있다. 여름 풀숲을 다 헤쳐볼 수도 없는 탓에 미쳐 찾아내지 못한 탓이기도 하리라.
다만 성돌로 보이는 돌들만 성안 여기저기 발에 차이고. 장대지로 보이는 곳은 헬기장이 되어있었다. 의심스러운 저장고 시설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문가들의 발굴에 기대해볼 수 밖에. 정상부 바로 밑의 신선샘이 산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곁가지로 들른 연곡리 보탑사에서 현대적인 목탑 건축양식을 즐길 수 있었고, 고려시대초 양식의 백비와 절 앞의 400여년된 느티나무가 연꽃 형국의 주변 경관과 멋드러진 모습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유신 장군의 태생과 관련된 유적지와 더불어 만뢰산성으 보탑사 절을 품에 안고 서로 얽혀 있는 것은 아닌지. 정감록 신봉자들이 들어와 피난했던 곳이라고 한다면 산성의 가치는 더욱 의심할 나위가 없는 것이 아닌가. 산성 가기 전에 도중에 있는 정철을 기리는 송강사도 들렀다. 죽어서는 용인이라면 살아서는 진천이라는 생거진천(生居鎭川)에서 밥맛좋다는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고 위례산성의 부소령을 넘어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빗낱이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이 제법 뚝뚝 듣들이기 시작한다.
산성 가는 길에 들른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정송강의 신도비각
비각에서 더 올라가면 송강을 기리는 송강사가 있다.
<보탑사 연지에서 바라본 보탑사 3층 목탑과 주변 산세>
송강사를 지나자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듣드리기 시작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물음 끝에 도솔암 입구 대신에 보탑사에서 만뢰산 등산을 시작하기로 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주차장에서 2.5km의 산행을 시작한다. 왕복으로는 5km>
육산으로 된 산길은 참나무 종류와 이따금씩 있는 아름들이 노송들이 우리를 반긴다.
길은 넓고, 흙살 감촉은 부드럽기만 하다.
만뢰산 정상 60m 못미쳐서 만나는 신선샘 안내판을 따라 샘을 찾아간다.
바위아래 석간수 처럼 지금도 맑은 샘물이 솟아 흘러내리고 있다.
주변에 성벽이 있는지 둘러도 보고...
산성과 우물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도독하게 솟아오른 것이 산성의 남문지로 보이는 곳
남문지로 보이는 곳을 넘자 나타나는 헬기장과 만뢰산 성 안내판
예전에 장대지로 쓰였을 곳이 아닌가 의심해본다.
만뢰산 정상 표지석 앞에서 기념 촬영도 하고
정상에 설치한 만뢰산 안내도 속에서 산성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북쪽 끝 만뢰정 가는 길 서쪽 사면이 산성지 성벽으로 보이고, 성돌 같은 것이 여기저기 깔개돌로 흩어져 있다.
토성처럼 되어버린 성벽 부분의 굴곡선과 경사면이 산성터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급경사를 이루고 곳곳에 성돌로 보이는 돌들이 박혀있다.
정상부 산성터 안에 세워 놓은 만뢰정 - 대문지(大門址?)로 가는 길이 있다.
정자 밑에서 기와 조각 (옛 것인지 모를 일)
다시 남문지쪽 으로 오다가 만뢰산 안내판 아래에 있는 저장고 터로 짐작되는 곳을 찍어본다.
저장고 시설은 고대 산성 터에서 흔히 발견되는 곳
만뢰산 주변의 산세 보기 : 피어난 연꽃 모양으로 산 형국을 이루고 있다.
연꽃 속에 꽃심(화심) 처럼 솟아 있는 보탑사의 3층 목탑
보탑사 경내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백비(白碑) 비각
근래에 세운 보탑사 3층 목탑 앞에서
연보정 가기 전 연곡 저수지에서 바라본 만뢰산 동쪽 사면
(사진의 맨 뒷부분 오른쪽 앞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산이 만뢰산 정상부)
보련산 보탑사에서 연곡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연곡저수지가 있고 그 아래에 김유신 장군 태를 묻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태령산자락과 만난다. 국궁장 위에 있는 신라시대 우물인 연보정을 둘러본다.
이렇게 유서깊은 고대 우물이 지금껏 남아있다니.
고대 우물 돌벽 쌓기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