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더 낮게
미국의 사무엘 브랭글이라는 청년은 하나님을 만난 뒤 세상의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열망을 거스를 수 없었던 사무엘은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영국으로 떠나 자신이 만난 하나님과 사명을 얘기하며 동역을 요청했습니다.
부스는 사무엘의 동기가 여전히 ‘사람들의 인정’임을 꿰뚫어 보고 연단을 시키려고 매일 사람들의 더러워진 구두를 닦게 했습니다.
자기 생각보다 너무 하찮은 일을 맡은 사무엘은 마지못해 구두를 닦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따위 흙투성이 구두나 닦으려고 대서양을 건넜단 말인가?’
사무엘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그 날 밤, 그의 꿈에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꿈에서 깬 사무엘은 교만을 회개했고 구두를 닦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겸손함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사무엘은 점차 중요한 일들을 맡게 됐고 몇 년 뒤 윌리엄 부스의 동역자로 함께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쓰임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진정한 겸손에서 나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헌신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아무리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아멘!
주님! 낮은 곳에 임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작은 일도 기뻐하게 하소서.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기쁨으로 섬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할 수 있다는 생각
프랑스 파리의 한 번화가에 몸이 불편한 척하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매일 거지에게 적선을 하던 한 신사가 우연히 다른 지역에서 멀쩡히 걸어 다니는 거지의 모습을 보고는 다음 날 크게 화를 냈습니다.
“당신은 지금 남을 속이고 있습니다.
사지가 멀쩡한데 왜 일할 생각을 안 합니까?
나도 파산해서 노숙자가 된 적이 있었지만 폐지라도 주워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일을 시작해 지금은 제지공장의 사장이 됐습니다.
당신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묵묵부답 듣기만 하던 거지는 다음날부터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신사가 일하는 공장에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아르노 씨? 10년 전 광장에서 구걸하던 거지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의 충고 덕분에 저는 50명의 직원이 일하는 서점의 주인이 됐습니다.
오늘의 저를 만들어주신 당신께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습니다.”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변화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나에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분은 다름 아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을 믿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쫓아버리고 용기있게 주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나의 생각과 능력이 아닌 주님의 말씀과 약속으로 힘입게 하소서.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예배의 본질
어떤 작은 마을에 교인들이 예배에 나오지 않아 고민인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의 설교가 별로라며 예배를 소홀히 여겼습니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교인들이 예배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펐던 목사님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번 주는 그 어떤 설교보다 훌륭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라며 교인들을 설득했습니다.
목사님의 간곡한 설득에 그 주에는 예배당이 가득 찼습니다.
설교시간이 되자 목사님은 촛불을 들고나와 강단에 설치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모형을 향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창으로 찔린 자국을 비추던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성도들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토록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이 예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가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설교가 이것입니다.”
목사님의 진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예배의 본질을 깨달은 성도들은 이후 다시는 같은 핑계를 대지 않았고 예배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리는 시간입니다. 평가하고 그저 바라보는 잘못된 예배가 아닌 함께 은혜의 파도 속에 들어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를 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가장 중요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소서.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를 주님이 허락하신 최고의 교회로 여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빛에 비추어보라
고대 유럽에서는 두께가 얇고 색을 입힌 도자기를 최상품으로 여겼습니다. 반죽을 두껍게 만들면 불에 구워도 금이 가지 않지만 최상품을 만들려고 반죽을 얇게 할수록 작은 실수에도 흉한 금이 생깁니다.
고대 유럽에는 좋은 기술을 가진 도공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최상품 도자기를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결국 비양심적인 몇몇 도공들이 살짝 금이 간 도자기에다 밀초와 유약을 덧발라 금을 감춘 채로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간단한 수법이었지만 훨씬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많은 도공들이 이런 방식을 썼기 때문에 나중에는 가짜 도자기들을 감별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감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 최고는 밝은 빛에 비추어보는 방식이었습니다. 햇볕에 비춰 금이 간 자국을 확인하고 어느 한 군데에도 금이 가지 않은 도자기에는 ‘sine cera’라는 글귀를 새겼는데 ‘태양에 비추어 확인해봤음’이라는 뜻입니다. ‘sine cera’는 훗날 라틴어로 ‘진실’이라는 단어가 됐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기에 구원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주님의 은혜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은 죄, 앞으로 지을 죄들까지 모두 용서하시는 유일한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붙잡으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을 구원주와 주되심을 고백하게 하소서.
날이 갈수록 더욱더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기도와 분필
미국의 한 명문대학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물리에 정통한 한 교수가 매번 수업 시작 전에 분필을 떨어뜨리며 말했습니다.
“세상은 정해진 원리를 따라 돌아갑니다. 이 높이에서 분필을 떨어뜨리면 반드시 깨집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이 현상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에 아직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제발 정신 차리기 바랍니다.”
이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한 학생이 그날부터 분필이 깨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며칠 뒤 교수가 또 같은 말을 하며 분필을 떨어뜨렸는데 분필이 이상한 각도로 튀며 멀쩡히 섰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학생이 손을 들고 자신이 기도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자 큰 충격을 받은 교수는 강의 시간에 다시는 분필을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달라스 신학대학의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가 이야기한,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모든 자연법칙과 세상의 원리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그 법칙을 주장하실 수 있습니다.
얕은 지식과 지혜로 하나님을 재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고 모든 것 위에 계신 주님을 인정하고 마음에 모시십시오. 아멘!
주님! 전능하신 주님께 불가능은 없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불가능한 일이라도 전능하신 주님께 기도로 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실천으로 만드는 습관
현명하기로 이름난 한 스승에게 어떤 제자가 물었습니다.
“착하다고 반드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악인이 항상 패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하루 착한 일을 한다고 바로 복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화는 조금씩 멀어진다.
하루 나쁜 일을 한다고 금방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은 조금씩 멀어진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에 피는 풀과 같아서 티가 나지 않아도 나날이 자라나며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숯 돌에 가는 칼과 같아서 그대로인 것 같지만 언젠가는 닳아 없어지느니라.”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반복의 원리도 이와 비슷합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할수록 뇌와 근육에 각인이 되는데 놀라운 것은 몸의 동작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품과 습관에도 똑같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하루에 한 가지 말씀이라도 실천해야 하며, 한 절의 말씀이라도 깨달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위해 하루에 한 가지라도 말씀을 따라 실천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을 따라 살아가며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게 하소서.
신앙이 성장하는 좋은 생각과 습관을 매일 갈고 닦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교제의 목마름
배우를 꿈꾸며 단역을 전전하다가 생계가 곤란해진 척 매카시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신문에서 아르바이트를 찾던 그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도그 워커’ 모집 글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걸어줄 동행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척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말동무가 없는 노년층에게 비슷한 서비스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피플 워커’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30분을 함께 걸어주며 대화를 나누고 2만 원 정도를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반응은 의외로 폭발적이었습니다.
30, 40대의 젊은 사람들도 피플 워커를 고용했고, 다른 도시와 해외에서도 요청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직원이 50명이 넘을 정도로 사업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피플 워커의 성공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동반자 산업’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겼다고 합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시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안에서 사랑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해주며 복음을 전하는 동행자가 되어 주십시오. 아멘!
주님! 함께 믿음을 나누고 붙들어 줄 수 있는 좋은 공동체를 허락하소서.
좋은 신앙을 위해 서로의 힘이 될 수 있는 모임에 참석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할 수 있다는 믿음
‘알코올홀릭 어나니머스’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을 재활시킨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 들어오려면 한 가지 자격이 필요한데 “나는 알코올 의존증을 고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심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도 술을 계속 먹고 싶은 마음과 술을 끊고 재활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공존합니다. 대부분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재활에 대한 의지’를 외면하고 술을 먹고 마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누구나 극복을 위한 습관을 하나씩 만들어 나갈 수 있고 결국에는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2011년에 열린 여자 축구 월드컵에서 일본대표팀은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힘든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그 결과 개최국이자 그동안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독일 대표팀을 꺾으며 승승장구해 우승을 이뤘습니다. 25번이나 맞붙었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독일의 벽을 ‘나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극복하며 첫 번째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변화와 성취를 이뤄냅니다.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한 번 더 도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말씀이 믿어짐으로, 말씀을 따라 행동하게 하소서.
주님이 명하신 것은 분명히 할 수 있음을 믿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가장 높으신 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이 노숙자들의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그룹에서 눈에 띄게 열심히 일하는 남자가 있어 유심히 살펴봤는데 다름 아닌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였습니다.
지미 카터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하며 사람들의 악수 요청이나 사진 요청도 받지 않았습니다.
식사 시간에도 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대통령을 알아본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려고 해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숙소며 화장실까지 따로 마련해주겠다고 했지만 지미 카터는 모든 특권을 거부하고 단체 생활을 했습니다.
고든 목사님은 재임 중에는 인기가 별로 없었던 카터 대통령이 은퇴 후 오히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 된 이유가 위의 예화처럼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국민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겸손한 마음, 사랑의 마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가장 큰 사랑과 겸손을 가지신 왕이었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날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가장 높으신 왕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주님의 사랑을 찬미하게 하소서.
날 위해 모든 것을 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경배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두 가지 인생
미국의 베테랑 저널리스트 필립 얀시는 40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회고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던 필립은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자신을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딜 가나 슈퍼스타처럼 대우를 받고 싶어합니다. 조금의 틈만 보여도 자기 자랑을 하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최대한 부풀려서 이야기합니다.
●둘째, 하인이나 종처럼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설령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 큰 일을 위해 자신이 쓰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밖에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고귀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필립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사명자의 삶에는 “적게 받더라도, 오래 헌신하고, 낮은 곳에서 헌신하는 자세(Low Pay, Long Hours, Low Applause)”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사명자로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주님이 보내시는 곳을 향하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부름에 순종으로 화답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죽음의 힘
의사 김여환은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노년의 말기 암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결국 젊은 시절 이혼을 하고 세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와서 고통 속에서 홀로 딸들을 키웠습니다.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남편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제는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딸들도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엄마 품에 안겨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과거의 고통이 힘을 잃고 모든 상처는 잠시 사라졌습니다. 어제까지 따뜻한 사랑을 나누던 가족이 다시 모인 듯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의사는 혼자 말합니다. “죽음에는 힘이 있다.”
‘마지막’ 시간엔 힘이 있습니다. 마지막을 의식하는 자는 원수의 허물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산더미 같은 힘든 문제를 아주 작은 일로 여기기도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지막을 의식하고 마지막 시간의 관점으로 오늘을 살라고 말입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내 인생의 랜드마크
그리스·로마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던 장소는 신전과 시장이었습니다. 현재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그 아래의 시장을 연상하면 됩니다. 고대 문명을 살펴봐도 고대인들 역시 신전과 시장 중심으로 생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철저하게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어느 곳을 가장 많이 찾고 있을까요. 국가마다 랜드마크로 내세우는 곳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는 에펠탑입니다.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는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는 빅벤과 런던 아이입니다. 랜드마크에는 사람이 몰립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의 유명 랜드마크와 같이 떠오르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지역마다 있는 대형 쇼핑몰을 찾거나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곳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랜드마크는 어디가 돼야 할까요.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사랑을 가슴에 새길 때입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한 운동선수의 인터뷰
경기를 마친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어떤 계획을 갖고 경기에 임했습니까?” 선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주어진 기회에 하나씩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올해 계획이 뭔지 묻자 역시 대답은 같았습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계획대로 되는 게 별로 없어 다치지 않고 끝까지 경기에 나가는 겁니다. 한 경기 한 경기 빼놓지 않고 출전하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입니다.”
선수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었습니다. 실력은 단순함에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실력은 상황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혜를 짜내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커다란 변수가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고 또 하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압박감입니다. 두 가지 변수는 언제나 우리 계획을 흔들어 댑니다. 살아가면서 흐름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유유자적하는 마음이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섭리를 알기에 이런 삶이 더욱 가능하지 않을까요.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다비다 같은 교회
사도행전 9장에는 다비다라는 여인의 장례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어 이름이고, 헬라어 번역은 도르가입니다. 다비다와 도르가는 모두 사슴이라는 뜻입니다. 사람 이름이 사슴입니다.
가수 송창식의 노래 ‘꽃보다 귀한 여인’에서는 ‘사슴을 닮아서 눈이 아주 맑은 그 여인’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눈이 유난히 크고 맑았던 것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로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애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 모두 다비다가 그들에게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내보이는 행동을 했다는 성경의 기록입니다.
다비다가 주변인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줬다는 것입니다.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성령강림 사건 이후 초대교회는 은혜받은 성도들이 떡과 밥을 나누고, 심지어 자신의 집과 밭을 팔아서 교회 안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사랑의 공동체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부활절기가 끝나고 성령강림절기를 맞이합니다. 성령강림절기는 교회가 시작된 절기입니다. 2024년 성령강림절에는 성령 충만함으로 다비다 같은 교회가 많이 나타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제자가 무엇이 가장 값지냐고 묻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죽은 고양이지.” 세상에 죽은 고양이가 무슨 값이 있겠습니까. 이유를 묻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값이 없기 때문이지.” 생각해 보면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이아몬드 없이도 살 수 있지요. 하지만 맑은 공기 없이는 한순간도 못 삽니다. 5월의 따뜻한 볕과 촉촉한 봄비를 우리는 값없이 누립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행 3:6, 새번역) 베드로가 미문 곁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금이나 은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값진 것이지요. 더구나 구걸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얼마나 절실하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에게는 금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지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가장 값진 것을 그에게 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일까요.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내게 있는 것
케냐 마사이 부족을 섬기는 안찬호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을 추장이 사람들 앞에서 선교사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선교사님도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홧김에 같이 침을 뱉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이 낙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면서 기뻐하더랍니다. 물이 귀해 땀도 흘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사막 지역이라 침을 뱉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귀한 수분을 상대방에게 주는 환대의 표시라는 겁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 사람들은 밤중에 베를린 장벽 너머로 쓰레기 더미를 자주 버렸습니다. 서독 사람들은 이에 대해 회의를 한 후에 덤프트럭 한 대에 통조림과 식량을 싣고 장벽 너머에 잘 쌓아 놓은 후에 그 옆에 이런 표지판을 세워두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준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집니다. 사람들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하나님께 받은 사랑 평안 기쁨을 누리시고 복음의 능력을 나누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관계의 우선순위
우리는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회 생활 속에서 인사만 잘해도(=관계만 좋아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중요합니다.
직장, 학교, 동아리 등 일반적인 사회적 모임을 통해 형성된 관계입니다.
그런데, 모임을 있게한 목적을 인간적인 관계가 뛰어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직장 내에서 너무 인간적인 관계에 치중하게 되면 업무적으로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직장은 그 직장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어느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지만, 선을 지켜야 합니다. 그 선을 넘게되면 서로의 업무에 영향을 미칩니다.
업무로 맺어진 관계인데 인간적인 관계가 커질 때 문제가 생깁니다.
반대로 인간적인 관계인데 업무적인 관계가 될 때(동업 등...)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친구끼리는 동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먼저 인간적인 관계로 형성 되었기 때문에 후에 생긴 업무적인 관계가 그 인간적인 관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냉정한 말 같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신앙과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과 친하다고 해도 신앙생활의 목적보다 인간적인 관계가 앞서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아낌없는 사랑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 역시 신앙생활의 선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특히나, 신앙 안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나중에 탈이 없습니다. 탈이 나더라도 잘 치유가 됩니다.
공동체의 목적을 위해서는 좋은 관계 유지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항상, 어떤 관계가 우선인지 살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때로는 서운해도 나중에까지 오래 볼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6:33
(골목길묵상)
빙산의 일각
빙산의 일각이란 말은 대부분이 숨겨져 있고 외부로 나타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물은 응고되면서 수소 결합으로 인해 오히려 부피가 늘어나서 액체였을 때보다 밀도가 작아져서 얼음이 물 위에 떠있을 수 있게 됩니다.
물과 얼음의 밀도 차이는 10% 정도여서 전체 얼음덩어리의 10%만 물 위에 떠서 보이게 되고 나머지 90%는 물 안에 잠겨있다고 합니다. 위로 나와있는 부분이 높이 5m 정도의 빙산이라면 물속에는 깊이 30m~50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얼음덩어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죠.
우리의 신앙과 삶 속에서도 개인 안에 있는 여러 성향중에서 개인을 대표하는 10%의 성향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때로는 밖으로 보여지는 10%의 모습으로 인해 서로의 본모습을 잘 헤아리지 못하며, 진심이 오해받기도 합니다. 내면의 진심을 이해한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게 되지요.
왜냐면, 빙산이 안정적으로 바다위에 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다 속에 잠긴 90%가 저울추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바다속에 잠긴 부분이 없는 빙산은 곧바로 조각나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보여지는 모습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보여지는 모습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지키기 위해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수 도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보이는 부분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11:33
(골목길묵상)
엉덩방아&로렐라이 언덕
지난 겨울 어느밤 365 철야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 낮에 내린 비에 살짝 얼어 있었습니다.
멀리서는 블랙 아이스에 차가 미끄러져 사고가 났는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도 들려 왔습니다.
군데군데 미끄러운 부분이 있어서 조심히 걷다가 아파트 놀이터에 도착했을 즈음 놀이터 바닥 반짝이는 살얼음이 예쁘게 보였습니다.
다왔다고 안심하면서 예쁘게 보이는 살얼음에 눈이 팔린 순간,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져 버렸습니다. 늦은 밤이라 아무도 없었지만 아직까지는 아픈 것 보다는 창피한게 먼저라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직 까지는 젊은가 봅니다~^^;;;
집에와서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로렐라이 언덕’과 ‘세이렌’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로렐라이 언덕’은 독일 라인강 기슭에 있는 130미터의 커다란 절벽인데 폭이 좁고 굽이치는 물살이 거세서 뱃사공들에게 위험한 곳 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뱃사공들이 이곳을 지날 때 황금빛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 미모와 노래소리에 한눈을 파는사이 배가 뒤집혀 많은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이렌’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바다에 사는 여성의 머리와 물새의 몸을 가진 인어입니다. 세이렌은 바다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사공들을 유혹해서 사공들의 목숨을 빼앗가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럽의 뱃머리에 인어 모양의 세이렌 조각상을 달고 항해를 했다고 하며, ‘사이렌’의 유래가 바로 이 ‘세이렌’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두 가지 모두 아름다움에 취해 사고를 상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취해 엉덩방아 찧지 않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모습에 취해 연초 계획한 신앙의 목표가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니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시편118:13
(골목길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