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루니통신 17/190606]쌍륙절 괴산 산막이옛길 소풍
고등학교 동창 40여쌍이 떼로 몰려 소풍을 갑니다. 신록이 짙어가는 유월, 하고도 육일, 이른바 쌍륙절입니다. 해마다 60줄 初老의 부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잠실운동장역 1번출구 언저리에 아침부터 모여들었습니다. 어느새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한 해도 거른 적이 없습니다. 대형 관광버스 2대가 꽉꽉 찼습니다. 한때는 3대가 기본인 적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참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일이기도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의 追憶의 금자탑에 커다란 돌 하나를 얹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민국에 어느 고등학교 동기동창모임이 이러겠습니까? 이는 전라고 6회의 전통이자 자랑이지만, 나아가 50년 역사 전라고의 레전드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서로서로에게 고맙다며 치하를 할 일이라 하겠습니다.
올해는 괴산 산막이옛길 트레킹입니다. 얼마쯤 괴산호를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호수바람을 맞으며 유람선도 탈 것입니다. 괴산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정보를 먼저 알고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말은 언제나 眞理입니다. 먼저 괴산의 괴자는 ‘느티나무 괴(槐)’자입니다. 地名의 유래를 찾아보니, 멀리 신라의 진평왕때 화랑 출신의 찬덕이라는 장수가 가잠성에서 백제의 공격에 100일 동안 버티다 결국 힘에 부쳐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자결을 했다는군요. 이에 김춘추 장군인 무열왕이 그 충성을 갸륵히 여겨 가잠성을 ‘괴양성’으로 불렀다는군요. 훗날 괴양이 괴산이 된 것이지요.
아무튼, 오늘 점심은 괴산의 맛집 ‘다래정’ 으로 모십니다. 점심은 4인 한 상에 8만원이나 그렇게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밥상이 없을 것입니다. 회장단의 선택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점심이 끝난 후 천변 맞은편에 홍범식 선생의 고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을 들러보면 좋을텐데 시간이 없어 유감입니다. 금산과 태인군수를 지낸 홍범식 선생이 누구인 줄 아시는 분이 있겠지요?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목을 매 자결한 순국열사입니다. 가족들에게 남긴 “조선 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유서 내용을 보면 숙연해집니다. 바로 그분의 손자가 대하소설 ‘임꺽정’을 지은 벽초 홍명희 선생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에 의적 임꺽정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을 연재한 의도가 무엇일까요? 우리말의 보물창고로 지금은 사라지기도 한 아름다운 우리 토속어가 가득하기에 '임꺽정 사전'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때 월북했다는 명목으로 禁書가 되었고, 바로 할아버지의 고택이자 벽초의 생가인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가 되었답니다. 80년대 사계절출판사에서 펴낸 대하소설 임꺽정 9권을 밤을 지새 읽으며 너무 좋아 가슴이 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벽초 선생은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냈습니다. 그분 아들이 홍기문인데, 유명한 국어학자로서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의 고전을 국역하는데 앞장섰다는군요. 그 다음 홍기문의 아들, 그러니까 벽초의 손자인 홍석중이 소설 ‘황진이’를 쓴 소설가입니다. 읽어보셨나요? 홍석중은 이 소설로 남한에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북한작가가 됩니다. 방북한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과 친구가 되었지요. ‘황진이’는 남한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아무튼, 괴산하면 홍범식-홍명희-홍기문-홍석중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고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임꺽정이 활약한 곳이 황해도이고, 무술을 배운 곳은 안성의 칠장사인데, 이곳에 도로명이 ‘임꺽정로’인 것은 바로 소설 ‘임꺽정’을 지은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괴산하면 곧바로 연풍면이 떠오릅니다. 무명 수필가인 목성균의 ‘누비처네’라는 수필집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수필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피천득 선생의 작품보다, 저는 목성균의 작품을 더 웃길로 칠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목성균은 50대 후반에 등단해 10년도 채 되지 않은 세월에 101편의 주옥같은 수필을 남기고 아깝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죽은 후에야 조금씩 그분 작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경향신문에 ‘내 인생의 책’으로 ‘누비처네’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참관하게 될 중원대학교 박물관에 대해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중원대학교를 들어 보신 분이 계시나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기야, 전국에 4년제 종합대학이 200개, 3년제 전문대학이 200여개가 있으니, 우리가 여지껏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학이름이 수두룩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중원대학교는 구한말 종교지도자 강증산 선생의 교리를 만드는 증산도의 가장 세력이 큰 대순진리회에서 2009년에 세운 사립대학입니다. 학생은 3600여명으로 항공분야 등 특화된 대학으로, 가보시면 알겠지만, 비행기와 교육공항도 갖춰저 있습니다. 대순진리회도 처음 들어보시나요? 포천의 대진대학교도, 서울의 대진고와 대진여고, 분당-일산-대전의 대진고도 모두 재단이 대순진리회입니다. 이 종교의 모토가 교육사업과 사회복지 및 구호자선활동입니다. 상해에도 대진대학교 캠퍼스가 있지요. 분당재생병원도 운영한다는군요.
증산도는 강증산(본명 강일순) 선생이 득도하여 후천개벽과 보은, 상생, 해원, 원시반본 등의 교리를 중심으로 한 신흥 토종종교이나, 상제로 떠받들던 강증산이 죽은 후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가장 유명하고 폐해를 끼친 분파가 차천자로 유명한 차경석의 보천교입니다. 증산도는 크게 증산교와 대순진리회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학박물관은 대부분 무료인데, 중원대학이 최초로 받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성신여대가 받는다는군요. 재단에서 수집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일정한 컨셉이 없이 만물상처럼 어수선하게 모여 있긴 하지만, 관람료 5000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자료들이 많더군요.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어떻게 수집하여 한국까지 가져왔을까, 의문이 듭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산호초나 압염, 공룡 화석, 나무화석 등 각종 유물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지금은 모두 환경보호로 수집할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터이니 1시간 동안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하이라이트 산막이옛길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이제 젊은 날의 불같은 열정으로 사랑 어쩌고 운운하기도 넘사스럽지만, 미움 또한 情이라고 그냥 같이 늙어가는 옆지기와 호수변 오솔길을 손잡고 걷기만 해도 보람찬 하루가 될 것이 틀림없는 이 옛길은 호수를 조성하면서 山을 막았고, 그래서 생긴 길이라는군요. 이 길을 따라 펼쳐지는 산과 물, 숲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은 단연 괴산의 백미라 하겠습니다. 1957년 순수 우리 기술로 최초 준공한 괴산댐 주변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생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더욱 값진 곳입니다. 또한 10km쯤 되는 이 길은 이 호수와 어우러져 다양한 코스와 함께 한국의 자연미를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괴산의 트레이드 마크라 하는군요. 시간이 좀 허락되면 산을 오르면 좋을 듯한데, 오늘 걸어보신 후 반하실 터이니, 개인적으로 찾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애인하고 오는 분들도 많을까요? 수풀냄새 싱그러운 산바람과 산들거리며 불어오는 강바람을 얼굴에 맞이하며 이런 트레킹의 명소를 걸어보면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제법 이 길이 알려져 한국의 100대 관광명소에도 들고, 주말에는 하루 1만여명이 찾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이 길을 소개해준 6회 동창회 회장단에 고맙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괴산에 대한 해설을 가름합니다. 저녁은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곤지암의 '배연정 소머리국밥'으로 모신다 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온갖 마음앓이 떨쳐버리시곤 마음껏 힐링하소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