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4(화)
제물포 인문 로드
유하님과 함께
제물포구락부에서 시행한
개항 이후, 우리나라 근대사의 인천이 담고 있는
개항기 인물, 사건, 건축물, 등 역사를 깊히 들여다보며,
중구청(송학동)에서 부터 신흥동 긴담모퉁이길을 따라
긴담모퉁이집까지, 약 4km 인문로드 도보 투어에 참여했던
스토리텔링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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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있어
최초인 것들이 꽤 많은 매력적인 도시임을 아시나요?...
근대사란...
강화도조약(운요호사건)으로 개항하게 된 이후부터
광복 이전까지를 말합니다.
인천 중구청...
지금 이 자리는 바로 제물포항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답니다.
인천 중구청 앞,
제물포인문로드 도보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
인문로드의 역사 이야기를 해 주시는 해설사, 전미경(?)선생님...
1883년, 인천항(제물포항) 개항 이야기
1876년(고종13년), 조선은 일본의 무력 위협 개항 요구에...
강화도조약(불평등조약)을 체결하며...
(이 때 3개의 항을 개항하기로 합의)
젤 먼저 남쪽에 부산항을 개항한다.
(나머지 2개항은 30개월 안에 개항하기로...)
1880년에 동쪽의 원산(元山)을 개항했지만
서쪽 인천항 개항은 서울과 가까워 위험하기에
계속 반대를 해오다, 30개월이 훨씬 지난 7년만인
1883년에 인천항을 스스로 개항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의 희생이 되고...
정치적.경제적 침략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을 뿐,
개항이라는 근대사적 의의는 무산되었다.
한국 최초 철도의 시작, 인천...
철도 기공식(1897.3.22) 우각현에서 ...
1899년 9월18일 개통식(33.2km)을 인천과 노량진역에서 하고
하인천역~ 동인천(축현)~우각현(도원)~부평~소사~오류~노량진역
7개의 역으로 (1시간30분 소요)....
일본인들이 역을 제 맘대로 편한 곳에 정했다는...
인천의 주요 근대사를 들은 후,
15명이 참여한 인문로드,
우린 첫번째 길로 이동한다.
젤 먼저 들린 곳은 '인천시민애집'
옛 송학동 시장관사였던 인천시민애집(무료개방)...
"여러분의 집처럼 편하게 들어오십시오. "
야외정원은 개항기 때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인천시민愛집 연혁은,
ㅇ개항기(일제강점기): 각국조계지, 독일인 거류지, 일본인사업가 저택터
ㅇ1967년~2001년 : 인천시장 관사로
ㅇ14대 김해두시장부터 최기선(2001)시장까지 17명의 시장관사였다가
ㅇ2001년~20년9월 :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운영(2018.10 시민대개방 발표)
ㅇ2021.07 : 인천시민愛집 개방..
" 안에 들어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나오셔요~"
사랑채 쉼터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 예술 관련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랜디스다원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었던 엘리 랜디스의 숭고한 뜻을 기려 이름지었으며
향긋한 차를 마시며 차담을 즐길 수 있는 멤버쉽 운영제 다원이다.
1883모던하우스, 시민애집 스탬프 미션 투어..
모두 4개의 공간
사랑채 쉼터, 대청마루쉼터, 디지털갤러리, 랜디스 다원
으로 구성된 1883모던하우스(본채)를 둘러보며
스탬프를 찍는다.
우린 다 찍어 선물(볼펜,메모지)을 받았다. ㅎㅎ
대청마루쉼터는
각종 공연과 소모임도 가능한 다용도 공간이고,
역사회랑은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굵직한 인천 역사의 타임라인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인천시민애집은
각국 조계지였었던 송학동1가의 스토리가
응봉산 산세와 함께 고스란히 보존된 역사적인 곳이다.
개항기 독일 영사관 부지로 공개 경매를 통해 불하,
오랜기간 세창양행 등 독일계 소유의 부지로 활용되었다가
해방 후 인천 예악인들의 문화 아지트로...
1966년 부터는 인천시장 관사로 쓰다
2001년 부터 역사자료관으로 활용...
2021년7월1일 인천독립 40주년을 맞아 오롯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완전 개방하였다.
인천시민애집을 나와 바로 옆, 제물포구락부로 이동~
제물포구락부
외국인의 사교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1901년 6월 당시 제물포에 거주하던
미국·영국·독일·러시아 등의 외국인이 사교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1993년 7월 6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1913년 조계가 철폐되자 여러 차례 용도가 바뀌었다.
(租界:외국인이 자유로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구역)
제물포구락부는
2020년1월 인천시의 문화재 활용정책 제1호 사업으로
재개관했으며 자주적 개항의 꿈을 품은 서사적 공간으로써의 의미를 넘어
인천의 미래와 희망이 싹트는 특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약 중이다
제물포구락부 아래,
옛 인천시립박물관이었던 이 곳을 우선 둘러본다.
1953년 4월에 제물포구락부에
인천시립박물관이 들어서
1990년 5월까지 시립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이경성극장은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
이경성선생의 뜻을 기려 이름 지은 곳으로
해설이 있는 재즈가 정기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인천시 문화재활용정책 제1호 사업이
2020년 제물포구락부에서 시작되어
막힌 공간이 열렸으며 곰팡이 피었던 창고는
갤러리와 유튜브 라이트 스튜디오와 강연장으로 변신했다.
미래를 위한 가치 재생...
All ways Incheon~
둘러본 후,
제물포구락부 안으로 들어간다.
1901년 6월 응봉산 자락에 제물포구락부가 서다.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도시였다.
다른 개항장과 달리 서양 각국의 외교력과 경제활동이
청. 일을 압도적으로 견제하면서 자주적 개항장으로써의 가능성과
희망을 품게 해준 도시였으며...
1901년 6월 응봉산 자락에 건축된
제물포구락부는 그 구심점 역할을 담당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등
근현대사를 시민과 함께 해왔으며,
건축 당시의 외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근대문화유산이다.
1. 세창양행(최초 외국인 무역회사)
독일의 칼 볼터가 1884년, 제물포에 설립
2. 인천 개항장의 랜드마크 존스턴의 별장
3. 존스턴과 볼터의 사랑과 결혼
고종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세창양행의 공동창업주,
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귀국 선물로 준 10폭 병풍의 해상군선도
4. 고종황제의 선물
세창양행 공동창업자 독일인 칼 볼터가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아쉬워 한 고종은 볼터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해상군선도 10폭 병풍을 선물한다.
독일로 돌아간 볼터는 고종으로부터 선물 받은 병풍을 그의 딸 마리온 볼터에게 물려주었고,
마리온 볼터는 다시 그의 딸, 미셸 예거후버에게 이 병풍을 전해 주었다.
이 병풍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던 마리온 볼터의 유언에 따라
2013년 예거후버 여사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1년 6개월 동안의 긴 수리 복원을 통해 제작 당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는 것...
우린 구락부 안에서 제공된
핸드드립커피를 한잔씩 받아 마시고...
구락부의 관련된 전시물의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나온다.
자유공원으로~
자유공원 오르는 길에...
바로 앞 건물이 이음1977 건축물이란다.
아름다운 저택...
숨겨진 인천의 명소라는데...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를 기초로
1977년에 준공된 근대 건축자산으로 개인의 단독주택으로 이용되던 공간을
인천도시공사가 매입,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통해 공간조성을 완료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고 적혀 있다.
무료개방(월요일 휴관)
(10:00~12:00/13:00~17:00)
관람신청/ ieum1977.ih.co.kr (인터넷으로 신청)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앞에 서면
우린 인천상륙작전을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50년 9월 15일
오직 단 하루만 가능했던 위대한 작전...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오늘을 있게 한 맥아더장군...
조수간만의 차가 격심했던 인천 바다 상륙작전을 펼치기 위해
최악의 조건 속에서 맥아더와 켈로 부대는 담대한 첩보작전을 펼쳐
상륙작전 하루 전날, 대원들이 팔미도등대를 점령하고,
연합군이 월미도로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밝혀
그 빛을 따라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회 내동교회를 잠깐 들린 후,
백범 김구의 역사의 길로 내려갔다.
김구와 어머니
옥바라지를 하셨던 곽낙원 어머니...
(백범일지를 따라 걷는 길은 나중에 다시 가고 싶다.)
청년 김창수...
민족지도자 김구(1876~1949)로..
명성황후 시해에 따른 원수를 갚고자
1896년 황해도 안악 해안 지역인 치하포에 있는 주막에서
당시 20세 청년이었던 김창수가 일본인 스치다조스케를 처단했다.
청년 김창수는 두 차례에 걸쳐 인천에서 겪은 수감생활로 인해
민중과 고통을 함께 하는 불굴의 민족 지도자로 단련되었고
역사적인 사건의 순간에 함께했던 민중들이 있었다
1898년 3월, 김창수가 인천감옥을 탈옥한 이후,
대신 감옥에 투옥된 아버지(김순영)는
석방된 후,1901년1월에 사망하였다.
인천감리서 터(현재 한진아파트 일대)
인천개항장의 통상 사무를 취급하기 위해
인천감리서를 설치하였던 곳
다음 신포국제시장으로 내려갔다.
신포시장은
인천의 개항 이후 형성된 전통시장이다.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이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시장으로 형성되었고,
당시 중국인과 일본인을 비롯해 여러 외국인들이 찾는 시장으로 말 그대로 국제시장이었다.
개항기 때 외국인이 살았던 조계지 인근에 위치해서
외국 문물이 수입되는 창구 역할을 했고
오늘날에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생활에 필요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신포시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 답동 성당으로 들어간다.
답동성당은 인천 지역 최초의 본당으로
1889년7월1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빌렘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설립되었다.
답동성당은 1897년, 우리나라에서는 2번째,
인천에서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1937년에 증축, 한국전쟁 때 일부 훼손되었다가 복원했다.
120여 년간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박문학교를 설립하고 해성보육원을 운영,
1970~80년대엔 5.3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 항쟁등
민주화운동 집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천시는 대성당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꾸몄다.
지하 4층은 신포시장상가와도 연결된다.
인천항과 개항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답동 성당(사적 287호)
1970년대 박문초 어린이들의 운동장이었던 성당 앞마당...
로제타홀기념관(인천기독병원 설립)앞
긴담모퉁이길로 내려갔다.
일본인들이 축현역(동인천)과 배다리쪽을
편하게 오가기 위해 낸 우리나라 최초의 신작로란다.
일제강점기에 기세등등했던 인천시장의 관사가 있었고,
광복 후엔 지역 유지들이 터를 잡아 1990년대 부촌으로 꼽힌 동네다.
100년의 돌담, 긴담모퉁이길...
세월이 깃든 돌담길...
신흥동 옛 시장관사, 긴담모퉁이집 오르는 골목길
1938년 신축한 옛 인천시장관사...
1954년~1966년까지 인천시장 관사로 사용했다.
이후, 이 주택을 매입해 주거 공간으로 사용한 사람이
'형제사' 라는 귀금속 전문점을 운영한
이경부(1924~2019)씨 가족이다.
2020년 인천시가 이곳을 매입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단장한 것이다.
1층은 건축 당시 원형을 대부분 보존해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과 서재로 꾸몄다.
우리 해설사 전미경 쌤은 긴담모퉁이집 정원을 꾸미는
정원사로도 봉사하고 계시다고 한다.
"여기도 내집처럼 편안히 들어오셔요~"
신흥동 해안가의 우리말 지명은 모랫말이다.
바다와 가까워 금빛 모래 해변이 듬성듬성 드러나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다.
탁 트인 포구라는 뜻의 탁포(신포동, 답동)가 사람소리 왁자지껄한 장터의 느낌이라면
모랫말은 바람과 파도와 갈매기 소리로만 채워졌을 법한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1900년1월 각사등록에 이 마을은 더 이상 모랫말이 아닌 신흥동으로 기록되기 시작...
이후, 1903년부터 자행된 일본인 거류지 무단확장으로 화개동, 화정동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다시 새롭게 부흥하자' 라는 의미의 신흥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긴담모퉁이집 정원
2층 일본식 다다미방
2층에서 내려 와...
정원이 보이는 1층 갤러리 서재
이렇게 방안에서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며
차 한잔을 마시고, 독서나 음악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순간 평온이 찾아왔다.
긴담모퉁이집을 끝으로...
유하님과 함께 한 제물포인문로드 투어를 마친다.
3시간20분에 걸친 역사도보 투어~
무언가 뿌듯한 여행을 한 기분으로...
우린 신포시장에서 밥을 먹고.
신포 닭강정을 사갖고 돌아왔다는 것...
- 스토리텔링 끝 -
첫댓글 재밌고 뜻 깊은 시간였어요.
또 제가 좋아 하는 스타일의 걷기였고.,
특히 지기님이랑 둘이서 도란도란 더 좋았습니다.ㅎ
고종이 그시절 신선 그림의 최고봉였던 김홍도 스타일의 화풍으로
도화서에 부탁해 선물 했다는 해상군선도에 푹 빠져서
실물 보고 싶은 감정에 귀 쫑긋 들었답니다.ㅋ
돌고 돌아서 경매에 붙여 66억에 아모레퍼시픽 박물관에 소장 되었다는데.,
기회 되면 실물을 영접 하고 싶네요.
10폭짜리 병풍이 10리가 넘고 건강과 행운을 비는 마음으로 감사함을 전했다니요...ㅎ
무튼 또 가요~~
& 궁중 해설사 전미경쌤 팬 됐어요.^^
우리 지기님 덕분에 길따라 탄탄한 스토리 텔링을 더하고,
복기까지 또 한번 해 봅니다.
만세~~~~
기분 째지면 부르는 만세~~ ㅋ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하
ㅎㅎ 나도 봤어요
해설사님이 해상군선도 설명할 때
유하님이 유난히 귀를 쫑끗, 관심을 보이며
아모레퍼시픽 박물관
가서 직접 보고 싶다고
유심히 병풍그림을 들여다보는 모습~ ㅎ
난 그냥 그렇구나 지, 혹하진 않았는데...ㅋ
정말 해설사님,
볼 수록 매력적이었어요.
나도 팬~~~ ㅋ
@유하 나도. 유하님과 같이 해서 무지 좋았고 감사했다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