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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昌寧成氏)
1. 本文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시조(始祖)는 고려조(高麗朝) 중엽에 중윤호장(中允戶長)을 지낸 휘(諱) 인보(仁輔)이다.
창녕성씨는 시조로부터 6世에서 13派(判書公派, 獨谷公派, 檜谷公派, 桑谷公派, 郎將公派, 判事公派, 侍郞公派, 貞節公派, 舍人公派, 佐郞公派, 評理公派, 檢校公派, 知事公派,)로 분류되어 조선조(朝鮮朝)에서 상당한 세력을 떨친 명벌(名閥)의 하나이다.
창녕성씨는 인구는 적어도 문묘배향(文廟配享) 1명(成渾), 묘정배향(廟庭配享) 1명(成希顔), 상신(相臣) 5명(成石璘, 成奉祖, 成 俊, 成希顔, 成世昌), 문형(文衡) 2명(成俔 成世昌), 대제학(大提學) 10명, 청백리(淸白吏) 5명(成 俔, 成世章, 成泳, 成夏宗, 成以性), 호당(湖堂) 5명(成三問, 成 侃, 成 俔, 成重俺, 成世昌), 문과급제자(文科及第者) 138명을 배출하였으며 무과급제자(武科及第者)는 정확한 통계를 알 수없으나 족보나 문헌지를 보면 상당수에 이른다. 또한 수많은 석학(碩學), 절신(節臣), 고관(高官)을 배출하였다. 특히 사육신(死六臣) 성삼문(成三問) 과 생육신(生六臣) 성담수(成聃壽)를 배출함으로서 절개(節槪)로 유명한 문중(門中)이 되었다.
2세(二世) 휘(諱) 송국(松國)은 고려 문하시중(高麗 門下侍中)이시다. 公이 지극한 효성(孝)誠으로 어버이를 섬겼었는데 시조(始祖) 중윤공(中允公)이 타향(他鄕)인 송도(松都)에서 별세(別世)하시자 직접 시신(屍身)을 지고 천리(千里)나 되는 고향(故鄕)으로 돌아가다가 청산원(靑山院)에 이르니 해가 저물고 눈이 많이 내려 한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원(院)의 사랑에서 가숙(假宿)하게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범이 시체 곁을 여러 번 맴돈 흔적(痕迹)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여겨 발자국을 따라 맥산(麥山)에 이르니 발자국도 멈추고 눈이 녹았는데 넓이가 산소(山所) 한자리쯤 되었다. 그 곳을 표시(表示)해 놓았다가 이곳에 안장(安葬)하니 사람들은 지극한 효성(孝誠)의 감응(感應)이다 하였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주향(主享)되셨다. 3세(三世) 휘(諱) 공필(公弼)은 전객부령(典客副令)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증직(贈職)되었고, 휘(諱) 한필(漢弼)은 도첨의 문하찬성사(都僉議 門下贊成事)였다. 4세(四世) 혜암(惠巖)은 대선사(大禪師)였고, 군미(君美)는 판도총랑(版圖摠郞)이며, 군부(君阜)는 중낭장(中郎將)이었다. 군백(君百)은 광정대부 문하평리(匡靖大夫 門下評理)였고, 군보(君補)는 문하평리(門下評理)였다. 5세(五世) 한충(漢忠)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이었으며, 여완(汝完)은 정당문학상의(政堂文學商議)였고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諡號)는 문정(文靖)이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준득(準得)은 총부상서(摠部尙書)였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유득(有得)은 정승(政丞)이었으며, 윤득(允得)은 지신사(知申事)였다. 이(履)는 문하시랑(門下侍郞)이었으며, 저(貯)는 선부전서(選部典書)였다. 6세(六世) 기(紀)는 판서(判書)였고, 석린(石璘)은 영의정(領議政)으로 시호(諡號)는 문경(文景)이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석용(石瑢)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으로 시호(諡號)는 문숙(文肅)이며, 석연(石珚)은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좌찬성(左贊成)에 증직(贈職)되었고 시호(諡號)는 정평(靖平)이며, 석번(石璠)은 낭장(郎將)이었다. 연(連)은 판서(判事)였고, 준(遵)은 중서시랑(中書侍郞)이었다. 사제(思齊)는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으로 시호(諡號)는 정절(貞節)이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태준(台俊)은 사인(舍人)이었고, 사준(士俊)은 좌랑(佐郞)이었다. 갑신(甲臣)은 평리(評理)였고, 을신(乙臣)은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이었으며, 언신(彦臣)은 지림주사(知林州事)였다
7세(七世) 달생(達生)은 벼슬이 숭록대부 판중추원사(崇祿大夫 判中樞院事)이고 시호(諡號)는 양혜(襄惠)이다. 개(槪)는 호(號)가 수헌(睡軒)이고 벼슬이병조참판(兵曹參判)이었다. 허(栩)는 예조참의(禮曹參議)였다. 사달(士達)은 호(號)가 이암(易庵)이며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참여되었고 벼슬은 대제학(大提學)이며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8세(八世) 승(勝)은 벼슬이 도총관(都摠管)이었는데 병자화(丙子禍)에 아들과 함께 죽었다 이름이 육신전(六臣傳)에 실려 있으며 좌찬성(左贊成)에 증직(贈職)되고 시호(諡號)는 충숙(忠肅)이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희(熺)는 호(號)가 인재(仁齋)인데 병자화(丙子禍)에 여러 번 엄한 국문을 받았으며 유배되었다가 돌아왔으나 충분(忠憤)을 못이겨 세상을 떠났다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봉조(奉祖)는 벼슬이 우의정(右議政)이었고 좌리공신(佐理功臣)이며 시호(諡號)는 양정(襄靖)이다. 9세(九世) 삼문(三問)은 호(號)가 매죽당(梅竹堂)이며 벼슬은 승지(承旨)였는데 세조(世祖)가 선위(禪位)를 받자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화(禍)를 당했다. 사실(事實)이 육신전(六臣傳)에 나타나 있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고 시호(諡號)는 충문(忠文)이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담수(聃壽)는 호(號)가 문두(文斗)이며 진사였다 침낭(寢郞)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취임(就任)하지 않았고 병자화(丙子禍)에 김시습(金時習) 등 5명(五名)과 함께 충절(忠節)을 지켜 행동은 달라도 마음이 같으니 세상에서 생육신(生六臣)이라 칭한다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으며 시호(諡號)는 정숙(靖肅)이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임(任)은 호(號)가 안재(安齋)이고 벼슬은 이조판서(吏曹判書)이며 시호(諡號)는 문안(文安)이다. 간(侃)은 호(號)가 진일재(眞逸齋)이고 집현전 박사였고 호당(湖堂)에 올랐다. 현(俔)은 호(號)가 허백당(虛白堂)이며 벼슬은 예조판서(禮曹判書)였고 문형(文衡)을 받았다 시호(諡號)는 문대(文戴)이다. 준(俊)은 벼슬이 영의정(領議政)이고 시호(諡號)는 명숙(明肅)이다. 건(健)은 벼슬이 좌참찬(左參贊)이며 시호(諡號)는 문헤(文惠)이다. 중엄(重淹)는 호(號)가 청호(晴湖)이고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였으며 호당(湖堂)에 올랐다. 10세(十世) 세창(世昌)은 호(號)가 둔재(遯齋)인데 문형(文衡)을 받았고 벼슬은 좌의정(左議政)이었으며 시호(諡號)는 문장(文莊)이다. 몽정(夢井)은 이조참판(吏曹參判)인데 하산군(夏山君)에 봉(封)해졌다. 11세(十一世) 제원(悌元)은 호(號)가 동주(東洲)인데 벼슬은 현감(縣監)이었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운(運)은 호(號)가 대곡(大谷)인데 성리학(性理學)에 조예(造詣)가 깊었으며 벼슬은 사재감정(司宰監正)이었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수침(守琛)은 호(號)가 청송(聽松)이고 벼슬은 현감(縣監)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취임(就任)하지 않았다 우의정(右議政)에 증직(贈職)되었으며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수종(守琮)은 시호(諡號)가 절효(節孝)이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희안(希顔)은 연산군(燕山君)의 난정(亂政)을 바로잡아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벼슬은 영의정(領議政)이었고 시호(諡號)는 충정(忠定)이며 묘정배향(廟庭配享)되었다, 12세(十二世) 윤해(允諧)는 호(號)가 판곡(板谷)인데 현감(縣監)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취임(就任)하지 않았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혼(渾)은 호(號)가 우계(牛溪)인데 벼슬은 좌참찬(左參贊)이며 좌의정(左議政)에 증직(贈職)되었고 시호(諡號)는 문간(文簡)이다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었으며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수경(守慶)은 벼슬이 판관(判官)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진양성(晋陽城)이 함락되자 김시민(金時敏)등과 함께 순절(殉節)하였고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으며 물게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세장(世章)은 호(號)가 사암(思菴)이고 벼슬이 호조판서(戶曹判書)였는데 좌찬성(左贊成)에 증직(贈職)되었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13세(十三世) 문준(文濬)은 호(號)가 창랑(滄浪)인데 벼슬은 현감(縣監)이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남(灠)은 호(號)가 청죽(聽竹)이고 벼슬이 현감(縣監)이었는데 별세할 때에는 유훈(遺訓)을 남겼으며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언충(彦忠)은 호(號)가 가정(稼亭)이고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않았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영(泳)은 벼슬이 이조판서(吏曹判書)였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14세(十四世) 하종(夏宗)은 벼슬이 관찰사(觀察使)였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15세(十五世) 여신(汝信)은 호(號)가 부사(浮査)인데 진사(進士)에 합격하였고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안의(安義)는 호(號)가 부용당(芙蓉堂)인데 벼슬은 승지(承旨)였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으며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16세(十六世) 이성(以性)은 호(號)가 계서(溪西)이고 벼슬이 부사(府使)였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환(瑍)은 호(號)가 유촌(柳村)이고 벼슬이 공조참의(工曹參議)였는데 창녕성씨기축대보(昌寧成氏己丑大譜) 편찬(編纂) 물계서원(勿溪書院) 창건(創建) 성시중효행록(成侍中孝行錄) 편찬(編纂)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22세(二十二世) 기운(岐運)은 자(字)가 봉서(鳳瑞)이고 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을 지냈다.
註 : 原文에는 始祖公이 中尹戶長인데 中允戶長으로 수정하였다.
2. 昌寧成氏의 연원
시조(始祖)는 고려조(高麗朝)에서 중윤호장(中允戶長:태봉의 관제를 모방하여 정한 문무의 관호)을 지낸 인보(仁輔)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신라 대관 저(新羅 大官 貯)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씨약사(姓氏略史)”에는 시조 인보(始祖 仁輔)가 고려 고종(高麗 高宗)때 성씨(成氏)의 성(姓)을 창성(創姓)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족보 기타 문헌사료(族譜 其他 文獻史料)도 시조(始祖)는 인보(仁輔)로서 상계(上系)는 밝혀지지 않고 전해져오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 성씨(成氏)의 유래(由來)이다.
창녕성씨 족보 계축보(昌寧成氏 族譜 癸丑譜)는 성종(成宗) 24년 계축(서기 1493년)에 처음 편찬되어 성씨족보(成氏族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계축보(癸丑譜)라 부른다.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에 시조(始祖)의 유래(由來)와 성씨(成氏)의 세계(世系)를 소상히 적어서 전하여 오고 있으니 이것이 정설(定說)이다.
계축보(癸丑譜)의 서문(序文)
종족에 족보가 있는 것은 예전부터였다. 족보로서 이름을 기록하니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또 그 멀고 가깝고 친함과 성김의 차별과 근본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지를 알 수 없다. 나무에 비유하면 맨 처음에는 한 뿌리일 뿐이다. 뿌리가 세워진 다음에 능히 자랄 수 있어서 수많은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그늘을 이루고 없어지지 않으니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맨 처음에는 한 사람의 몸에서 나누어진 것이다. 아버지가 같은 자가 형제가 되고 할아버지가 같은 자가 당종이 되고 증조가 같은 자가 재종이 되고 고조가 같은 자는 다만 친족이라고 일컬을 뿐이며 여기에서 차츰 멀어지면 복이 없어 노인(일반사람)을 보듯 한다. 그러나 맨 처음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에서 나왔으니 이는 마치 나무가 지엽은 만 가지지만 근본은 하나인 것과 같다.
우리 성씨는 본래 대족이다. 총랑공 이후로부터 고관대작이 연달아 일어난 것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당숙 자정(계축보를 만든 重性의 字)씨는 군자인 분이다. 종족에 족보가 없는 것을 걱정하여 구한지 이십여년 만에 시조인 중윤공(中允公) 이하를 찾아내어 총랑공(摠郞公)에 연결하여 정종(正宗)을 삼은다음 그 지손 서손 외손 등 모든 종족(宗族)들이 이들로써 아버지를 계승하고 할아버지를 계승하였으며 미약한 방친에 이르기까지 빼놓지 않고 자세히 기록하시기를 극진히 한 다음에 그만 두었으니 선조를 잊지 않은 효심이 애연히 지극한 정성에서 나왔다. 만일 지극한 마음을 쓰고 부지런히 일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되겠는가. 우리 종족들로서 이 족보를 보는 자마다 모두 자기 몸을 올바르게 수행하고 가정을 보전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어린이를 사랑하여 아름다운 풍습을 이루게 된다면 도움 됨이 어찌 적겠는가. 나는 본원을 찾은 것을 기뻐하고 또 당숙의 뜻을 가상히 여겨 나 역시 전해들은 것으로서 한 두 가지를 정리하여 들려주는 바이다.
癸丑(1493年 成宗 24年) 新正 二日에 嘉善大夫 行僉知中樞府使 兼 同知春秋館事 成俔 磐叔(成俔의 字)은 삼가 序하다
註 成俔(九世) : 桑谷公의 長孫인 念祖의 三子, 1439(世宗 21)年生, 1504(燕山 10)年卒, 享年 66, 號는 慵齋 虛白堂 官至漢城府判尹 工曹判書 兼 大提學, 文衡에 오르고 淸白吏에도 錄選 되었다. 諡號는 文戴
계축보발문(癸丑譜 跋文:책의 끝에 적는 글)
내가 일찍이 당형인 정승 봉조에게 가서 우리 족파의 근본을 물었더니 정승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휘 송국과 휘 공필 두 선조만은 전해서 들었을 뿐이고 그 이상은 알 수가 없다. 나의 동생 참판 순조는 나보다 조금 자세히 알고 있으니 가서 물어 보아라 하였다. 나는 즉시 가서 정승의 말씀을 여쭈었더니 참판은 대답하시기를 두 선조 이상은 나 역시 알지 못하니 이는 족보가 없기 때문이다 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 두 분은 우리 가문의 존장이신데도 오히려 시조의 근본을 모르고 계시니 다시 어느 곳에 보고 들어서 아는 자가 있겠는가. 하고는 이때부터 마음을 크게 먹고 있을만한 곳을 찾은지 이십여 년이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판서 성기의 서손인 사직 성원을 만나 물어서 시조인 중윤공이 실려 있는 족보를 찾아내었다. 그러나 그름에 끄슬리고 좀이 먹어서 글자가 반절은 없어졌는데 이것을 족보의 맨 앞에 기록하였으며 또 후손들을 찾아 위와 같이 기록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가문의 본손 지손이 이처럼 번성한 것을 알게 하였다.
後孫 通訓大夫 行昌平縣令 成重性 子正은 恭敬히 跋文을 쓴다
註 成重性(八世) : 三谷公의 三子인 僉樞公의 二子, 號 翠筠軒 官至昌平縣令 時 1493年 成宗 24年 癸丑에 昌寧成氏 族譜를 처음 編纂함, 至 判官
※ 선세고적(先世古蹟)으로 국조문헌비고(國祖文獻備考)와 승인무학전(僧人無學傳)의 문헌자료(文獻資料)를 보면
성씨(成氏)는 주문왕(周文王)의 일곱째 아들인 성(郕)나라 숙무(叔武)의 후손이다. 자손(子孫)들로 인하여 나라를 씨(氏)로 삼았는데 뒤에 초(楚)나라에게 멸망되자 읍(邑)을 떼고 성씨(成氏)가 되었다. 시조 인보(始祖 仁輔)의 아버지는 숙정(叔正)으로 신라(新羅) 때 대관(大官)을 지낸 성저(成貯)의 후손이다(국조문헌비고에서발췌:國祖文獻備考 拔取)
당나라 때에 학사 성경(學事 成鏡)이 있었는데 상곡(上谷)사람으로서 동쪽 조선(朝鮮)으로 건너왔다.
그 후 백제(百濟) 때에는 성충(成忠)이 있었고 신라(新羅) 때에는 성저(成貯)가 있었는데 모두 절의(節義) 와 관벌(官閥)로 한 시대에 들어났다. 고려(高麗) 때에는 숙창(淑昌)이란 분이 계셨는데 벼슬은 호장부정(戶長副正)이었다. 호장부정(戶長副正)이란 바로 옛날의 원외랑(員外郞)인데 이분이 휘 인보(諱 仁輔)를 낳으시니 벼슬은 중윤호장(中允戶長)이었다. (승인무학전에서 발취:僧人無學傳 拔取).
위와 같은 기록들이 있으나 우리 창녕성씨(昌寧成氏)는 동방(東方)의 대족(大族)이며 고려중엽(高麗中葉) 이후에 일어났는데 중윤공 휘 인보(中允公 諱 仁輔)가 시조(始祖)로 상계(上系)는 상고(詳考)할 길이 없고 고증(考證)할 사료(史料)가 없어 계축보 창제(癸丑譜 創制)할 때 중윤공 휘 인보(中允公 諱 仁輔)를 시조(始祖)로 하였다
3. 창녕성씨 인구(昌寧成氏 人口)
1985년 인구조사 때에는 38,872 가구, 인구 158,335명이었고
2000년 인구조사에서는 57,248 가구, 인구 184,555명으로
통계가 나와 있다.
창녕성씨 시도별 인구 통계(2015년)
출처 :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갱신일 : 2017-01-26 / 수록기간 : 년 2015 ~ 2015
자료문의처 : 042-481-3756(전수), 042-481-3735(표본)
성(成) | 전국 | 199,124 |
서울특별시 | 37,674 | |
부산광역시 | 17,887 | |
대구광역시 | 12,733 | |
인천광역시 | 10,026 | |
광주광역시 | 3,232 | |
대전광역시 | 8,102 | |
울산광역시 | 4,471 | |
세종특별자치시 | 1,426 | |
경기도 | 44,826 | |
강원도 | 3,790 | |
충청북도 | 6,097 | |
충청남도 | 8,721 | |
전라북도 | 6,025 | |
전라남도 | 4,166 | |
경상북도 | 10,642 | |
경상남도 | 17,941 | |
제주특별자치도 | 1,365 |
창녕 182,377
창영 7,500
창령 5,433
기타 3,814
합계 199,124
※ 기타 성씨
宬 9, 盛 13, 星 8, 城 6, 합계 36 명
4. 昌寧成氏十三派世系圖
5. 昌寧成氏 行列表
大同行列(33世 以後는 同一)
세(世)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항렬자 行列字 | 문.무 文.武 | 균.배 均.培 | 선.은 善.銀 | 강.우 康.雨 | 원.춘 元.春 | 하.연 夏.然 | 신.교 信.敎 | 구.의 九.義 | 승.만 承.滿 | 동.채 東.彩 | 용.지 容.志 |
세(世)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
항렬자 行列字 | 중.재 中.在 | 상.금 商.錦 | 준.홍 準.洪 | 화수 和.秀 | 남.칠 南.七 | 효.치 孝.致 | 백.록 百.錄 | 운.호 雲.浩 | 래.상 來.相 |
判書公, 獨谷公, 桑谷公, 郎將公, 判事公, 侍郞公, 貞節公, 舍人公, 佐郞公派는 同一
세(世)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항렬자 行列字 | 호.진 鎬.鎭 | 영 永 | 락 樂 | 경 慶 | 기.기 耆.基 | 용.현 鏞.鉉 | 연수치 演洙治 | 식 植 | 필 必 | 규 圭 | 진 鎭 |
檜谷公派
세(世)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항렬자 行列字 | 하운환 夏運煥 | 기.주 耆.周 | 석.용 錫.鏞 | 하.낙 河.洛 | 식해모 植偕模 | 노기열 魯箕烈 | 중.규 重.圭 | 종.호 鍾.鎬 | 순.한 淳.漢 | 동.래 東.來 | 섭.희 燮.熙 |
評理公派
세(世)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항렬자 行列字 | 정 鼎 | 운 運 | 재 在 | 진 鎭 | 낙.석 洛.錫 | 표 杓 | 환.효 煥.孝 | 기 基 | | | |
檢校公派
세(世)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항렬자 行列字 | 노 魯 | 교 敎 | 종 鍾 | 대.한 大.漢 | 주.근 柱.根 | 병.환 炳.煥 | 재.기 在.基 | 종현탁 鍾鉉鐸 | | | |
知事公派
세(世)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항렬자 行列字 | 석.영 錫.永 | 원.수 源.修 | 하.식 夏.植 | 환.기 煥.基 | 백.중 百.重 | 제 濟 | 시 始 | 창 昌 |
6. 大宗會 歷代會長
昌寧成氏 大宗會는 1950年에 發足한 昌寧成氏 花樹會 首都總本部(會長 成樂緖)를 母胎로 1972年 8月 서울 國一館에서 成昌鎬 成尙永 成基永 成震煥 成泰慶 成樂天氏外 12人을 準備委員으로 大宗會 發起準備會를 發足하고 1972年 9月17日 서울 國一館에서 昌寧成氏 大宗會 創立總會를 開催하여 宗規(定款)를 採擇하고 初代會長에 成宗鎬(雲崗), 幹事長에 成昌鎬, 總務理事 成基永, 財務理事 成尙永, 事務長 成基燮氏를 選任하였다.
歷代 大宗會長은 다음과 같다.
代 | 年 度 | 姓 名 | 備 考 |
初代 | 1972 | 成宗鎬 | 雲崗(成尙永 父親) |
2代 | 1974 | 成宗鎬 | 〃 |
3代 | 1976 | 成宗鎬 | 〃 |
4代 | 1978 | 成澔永 | 10月 大宗會報 創刊 |
5代 | 1980 | 成尙永 | 1981. 10. 成尙永 會長辭任. |
6代 | 1981 | 成萬鏞 | 1983. 02. 別世. 1983. 02. 成益慶 職務代行 |
7代 | 1983 | 成昌鎬 | 1984. 09. 成昌鎬 會長辭任. 1984. 09. 成樂連 會長權限代行 |
8代 | 1985 | 成泰慶 | 大宗中 成炳薰 |
9代 | 1987 | 成泰慶 | 大宗中 成耆祿 |
10代 | 1990 | 成宗鎬 | 大田和合總會 |
11代 | 1992 | 成樂三 | |
12代 | 1993 | 成樂三 | |
13代 | 1995 | 成尙永 | 1996.01. 成尙永 病患으로 會長辭任 |
14代 | 1996 | 成道鎔 | |
15代 | 1998 | 成錫永 | |
16代 | 2000 | 成東春 | |
17代 | 2002 | 成弼煥 | |
18代 | 2004 | 成樂友 | |
19代 | 2006 | 成河珠 | 輪番制(摠郞公派,侍郞公派,贊成公派順 |
20代 | 2008 | 成漆冠 | (성칠관) 侍郞公派 |
21代 | 2010 | 成榮泰 | 贊成公派 |
22代 | 2012 | 成俊鏞 | 摠郞公派 |
23代 | 2014 | 成樂曦 | 侍郞公派 |
24代 | 2016 | 成漢基 | 贊成公派 |
25代 | 2018 | 成樂欣 | 摠郞公派 |
7. 인명록(人名錄)
시조는 성인보(成仁輔). 고려조에 중윤(中允) 호장(戶長)을 지냈다.
‘계축보(癸丑譜)’ 세록(世祿)편에 보면, 그는 정조사(正朝使)로 송경(松京)(개성(開城))에 갔다가 병을 얻어 아들이 시신을 업고 창녕(昌寧)으로 돌아오다 지금의 대지면(大池面) 맥산(麥山)에 안장했다고 하였다.
또 그에 대한 이름과 관직(官職)은 ‘성원고보(成原高譜)’에 밝혀져 있다고 하였다.
호장(戶長)은 고려시대의 지방민(地方民)을 다스리는 호족장(豪族長)이다. 따라서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가계(家系)도 창녕(昌寧)의 호족(豪族)으로, 여러 대에 걸쳐 번거(繁居)해 왔음을 말해준다.
창녕(昌寧)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데 ‘창원성씨문헌지(昌原成氏文獻誌)’, 선세고적(先世故蹟)편에는 본래 성씨(成氏)는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숙무(叔武)의 후예라고 한다.
그리고 성인보(成仁輔)의 아버지는 숙정(叔正)으로 신라 때 대관(大官)을 지낸 성저(成貯)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당(唐)나라 학사(學士) 성경(成鏡)이 우리나라에 와, 그 후손이 번창했는데, 고려 때 성숙창(成淑昌)이 호장부정(戶長副正)이 되었고 그의 아들이 성인보(成仁輔)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기록들이 있으나 우리 창녕성씨(昌寧成氏)는 동방(東方)의 대족(大族)이며 고려중엽(高麗中葉) 이후에 일어났는데 중윤공 휘 인보(中允公 諱 仁輔)가 시조(始祖)로 상계(上系)는 상고(詳考)할 길이 없고 고증(考證)할 사료(史料)가 없어 계축보 창제(癸丑譜 創制)할 때 중윤공 휘 인보(中允公 諱 仁輔)를 시조(始祖)로 하였다
성씨(成氏)가 중앙조정에 관직에 진출, 명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성인보(成仁輔)의 아들 성송국(成松國)대부터이다. 그는 문하시중(門下侍中), 혹은 군기감(軍器監)을 역임했다 한다.
창녕성씨(昌寧成氏)의 계보는 성송국(成松國)의 아들 성공필(成公弼)(판도판서(版圖判書) 추증)ㆍ한필(漢弼)(찬성사(贊成事)) 등 형제대에서 <노상파(路上派)>와 <노하파(路下派)>의 2개파로 갈리었다. 길을 가운데 두고 아래 윗 마을에 갈라 살았던 데서 계파의 명칭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의 분파(分派)는 6세에서 13개파로 나누어진다.
성기(成紀)의 후손이 판서공파(判書公派),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이 독곡공파(獨谷公派)(문경공파(文景公派)), 성석용(成石瑢)의 후손이 회곡공파(檜谷公派)(문숙공파(文肅公派)), 성석연(成石珚)의 후손이 상곡공파(桑谷公派)(정평공파(靖平公派), 성석번(成石璠)의 후손이 낭장공파(郎將公派)이다.
성연(成連)의 후손은 판사공파(判事公派), 성준(成遵)의 후손은 시랑공파(侍郞公派), 성사제(成思齊)의 후손은 정절공파(貞節公派), 성태준(成台俊)의 후손은 사인공파(舍人公派), 성사준(成士俊)의 후손은 좌랑공파(佐郞公派), 성갑신(成甲臣)의 후손은 평리공파(評理公派), 성을신(成乙臣)의 후손은 검교공파(檢校公派), 성언신(成彦臣)의 후손은 지사공파(知事公派)로 나누어진다.
성씨(成氏)는 조선개국기에 성석린(成石璘), 성석용(成石瑢), 성석연(成石珚) 3형제가 개국에 참여, 고관에 오름으로써 가문의 번성을 가져왔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성(成)씨는 조선조에 1백 38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다. 이중 상신(相臣)(영(領)ㆍ좌(左)ㆍ우의정(右議政)) 5명, 대제학 10명, 청백리 5명 등 숱한 석학ㆍ절신을 배출, 명문의 이름을 떨쳤다.
창녕성씨(昌寧成氏)가 고관대작을 많이 낸 벌열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과 생육신 성담수를 배출하여 절개로 이름난 문중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 무렵 성(成)씨 문중은 절신(節臣) 성여완(成汝完)(정당문학(政堂文學)ㆍ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과 성부(成溥)(형부총랑(刑部摠郞))ㆍ성사재(成思齋)(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를 배출했다.
성여완(成汝完)은 공양왕 4년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되자 국운이 기울었음을 통탄하고 경기도 포천(抱川) 주왕산(周王山)에 은거,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성부(成溥)는 조견(趙狷)ㆍ남을진(南乙珍)과 더불어 <유양삼은(維楊三隱)>이라 불렀던 절신(節臣)이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李成桂)가 대사간(大司諫)에 임명했으나 거절하고 양주(楊州)에 은거했으며, 뒤에 두문동(杜門洞)에 입산했다.
성사재(成思齋)는 고려 멸망 후 ‘영위왕씨귀(寧爲王氏鬼) 부작이가신(不作李家臣)’이란 시를 지어 절의를 나타낸 뒤 부인과 아들은 선산을 지키도록 귀향시키고 자신은 만수산(萬壽山)에 들어가 일생을 마친 두문동(杜門洞) 명현(名賢) 중의 한 사람이다.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태종조ㆍ영의정(領議政))과 회곡(檜谷) 성석용(成石瑢)(태조조ㆍ보문관(寶文閣) 대제학(大提學)), 상곡(桑谷) 성석연(成石珚)(태종조ㆍ예(禮)ㆍ호조판서(戶曹判書)ㆍ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등 3형제는 조선초에 성(成)씨 가문의 번성을 가져온 중추적 인물들이다. ‘삼곡(三谷)’으로 불린 이들 3형제는 고려말의 절신 성여완(成汝完)의 아들들이다.
성석린(成石璘)은 공민왕조에 등과하고, 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공양왕을 세워 찬화공신(贊化功臣)에 창성군충의군(昌城郡忠義君)에 봉해졌다. 조선개국 후 정종 때 평양부윤(平壤府尹)을 지내고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으로 창녕백(昌寧伯)에 봉해졌으며 좌정승(左政丞)에 올랐다. 태종 1년 좌명공신(佐命功臣) 3명으로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진봉(進封)되고, 태종 15년 영의정(領議政)이 되었다. 당대 명필로 이름을 날렸으며, 조선 태조의 건원릉신도비(建元陵神道碑)를 써서 현재에 남아 전한다.
성석용(成石瑢)은 우왕 2년 등과했다. 공양왕 말에 형 성석린(成石璘)과 함께 이색(李穡) 등의 일파러 몰려 한때 귀양살이를 했다. 1392년 조선이 개국(開國)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책록되어 개성유후(開城留後),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고,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에 이르렀다.
성석연(成石珚)은 우왕 3년 과거에 오르고, 조선개국 후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태종 6년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우군총제(右軍摠制), 대사헌(大司憲), 예조(禮曹)ㆍ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했다.
이들 ‘삼곡(三谷)’ 집안 중 특히 회곡(檜谷)의 후손에서는 성삼문(成三問)ㆍ성담수(成聃壽) 등 절신이 나와 유명한가 하면 상곡(桑谷)의 후손에서는 성현(成俔)ㆍ성혼(成渾) 등 이름난 학자가 많이 나왔다.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은 도총제(都摠制) 성승(成勝)의 아들이며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자이다. 1456년(세조 1년)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탄로나자 유학자(儒學者)로서의 신념과 절의를 위해 목숨까지 버렸던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정권의 변동기에 고고하게 절의에 충실했던 그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정신적 지주로 일컬어져오고 있다.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세조는 “나의 녹을 먹는 자가 어찌 반역을 꾸몄느냐”고 물었다. 이때 매죽헌(梅竹軒)은 “나으리(매죽헌(梅竹軒)은 세조를 전하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 불렀다.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는 나라를 도둑질했거니와 삼문(三問)은 신하된 도리로서 임금이 쫓겨남을 차마 볼 수 없어 옛 임금을 다시 모시고자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사건으로 성삼문(成三問)의 일문은 멸족의 비운을 겪었다. 그의 아버지 성승(成勝)(도총제(都摠制))과 삼고(三顧)ㆍ삼빙(三聘)ㆍ삼성(三省) 등 세 아우, 그리고 원(元)ㆍ맹첨(孟瞻)ㆍ맹평(孟平)ㆍ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아들들까지 모두 죽음을 당했다.
“격고최인명(擊鼓催人命) 회두일욕사(回頭日欲斜) 황천무객점(黃泉無客店) 금야숙수가(今夜宿誰歌)(북소리가 이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지는 해는 서산을 넘어, 황천길엔 주막도 없을 것이니 오늘밤은 뉘집 찾아 쉬어갈거나)” 그가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었다는 이 시는 지금도 숱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다.
성삼문(成三問)은 1418년 태어나 1456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불과 38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역사상에 남긴 그의 행적은 참으로 큰 것이었다. 1447년 문과에 장원 급제, 집현전 학자로서 정음청에서 겨레의 자랑인 훈민정음 창제와 음운 연구에 종사했었다. 당시 세종은 성삼문(成三問)을 비롯하여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최항 등의 젊은 학자들을 매우 총애했다. 세종은 또한 그들에게 왕손(王孫)(단종)을 잘 보필하도록 부탁했다. 세종의 고명신인 이들이 그 왕손의 양위라는 정권변동기에 서로 다른 영욕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성삼문(成三問)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이 세종의 유명(遺命)을 상기시키면서 신숙주를 꾸짖었다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세조가 가산을 몰수해 보니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의 녹은 한 톨도 손대지 않은 채 쌓여 있었고, 그의 방에는 거적만이 깔려 있었다 한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성담수(成聃壽)는 성삼문(成三問)과 6촌간이다. 그는 아버지 성희(成熺)(교리(校理))가 단종복위사건에 관련되어 장배(杖配)되었다가 돌아와 죽자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 파주(坡州)에 은거했다. 그후 조카 성몽정(成夢井)이 경기도관찰사가 되면서 그의 집을 찾아가 보니 방안에 자리조차 없어 몽정(夢井)이 돌아와 자리를 보냈으나 끝내 거절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상곡(桑谷) 성석연(成石珚)의 후손은 연산조의 사화(士禍) 때 크게 다쳤다.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양정공(襄靖公) 성봉조(成奉祖)는 상곡(桑谷)의 손자로 세조와는 동서간이다. 연산조에 영의정을 지낸 성준(成俊)과 대제학 성현(成俔)은 성봉조(成奉祖)의 조카이다.
성준(成俊)은 세조조에 등과한 후 연산군 원년(元年) 병조판서를 거쳐 우찬성(右贊成)이 되었다. 연산군 9년 영의정에 올라 세자사(世子師)를 겸했으나, 다음해 갑자사화(甲子士禍)(1504년)가 일어나자 예전에 성종비(成宗妃)(연산군(燕山君)의 생모)의 폐위에 관련된 혐의로 중온(仲溫)ㆍ경온(景溫) 두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성현(成俔)은 서거정(徐居正) 이후 사가(四家)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한문학의 대가이다. 연산군 때 공조판서(工曹判書)로 대제학을 겸했다. 그의 저서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조선 초기의 정치ㆍ사회 제도 및 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 유자광(柳子光) 등과 함께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 음악을 집대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며칠 뒤에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부관참시되는 비운을 겪었다. 후에 신원되고 청백리에 올랐다.
성현(成俔)의 아들 성세창(成世昌)은 중종 때 5조의 판서(이(吏)ㆍ호(戶)ㆍ예(禮)ㆍ형(刑)ㆍ공조(工曹))를 두루 지내고 양관 대제학ㆍ좌의정까지 올랐던 당대의 석학이다. 부자가 모두 학문을 책임지는 대제학을 지내는 영예를 누렸다. 그는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능해 <삼절(三絶)>이라고도 불렀는데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돼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성임(成任)은 그의 형으로 성종 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경국대전(經國大典)’, ‘여지승람(輿地勝覽)’ 등의 편찬에도 참여했는가 하면 특히 붓글씨에 뛰어났다.
성희안(成希顔)(중종조ㆍ영의정)은 박원종(朴元宗)ㆍ유순정(柳順汀) 등과 함께 중종(中宗)반정을 일으킨 인물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이 되어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에 봉해지고, 중종조에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중종묘정(中宗廟廷)에 배향되었다.
우계(牛溪) 성혼(成渾)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함께 선조조 성리학의 쌍벽을 이룬 거유(巨儒)이다. 상곡(桑谷) 성석연(成石珚)의 6대손이다. 그는 일찍부터 이이(李珥)와 친분이 두터웠으나 학설에 있어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지지,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는 이이(李珥)와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쟁을 벌여 유학계의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혼(成渾)은 사후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는데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물 중에 조헌(趙憲)ㆍ이귀(李貴)ㆍ정엽(鄭曄)ㆍ안방준(安邦俊)ㆍ강항(姜沆) 등이 대표적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성천희(成天禧)는 성안의(成安義)ㆍ조열(曺悅) 등과 함께 민병 1천여 명을 일으켜 왜군을 무찔렀다. 창녕(昌寧) 화왕산성(火旺山城)이 전략상 요충지임을 비변사에 아뢰어, 수축토록 하는 등 그 공이 커 선무(宣武) 1등공신이 되었다.
진주판관(晉州判官) 성수경(成守慶), 경상좌도(慶尙左道) 병마절도사 성윤문(成允文), 문구현감(汶構縣監) 성원조(成元祚), 여양현감(與陽縣監) 성천지(成天址) 등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했다. 성안의(成安義)는 곽재우(郭再佑) 장군과 더불어 화왕산성(火旺山城) 전투에 공이 컸고 후에 창녕(昌寧)의병장이 되었다.
이밖에도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이름난 학자ㆍ문인을 많이 배출했다. 성현(成俔)의 작은 형 성간(成侃)(수찬(修撰))을 비롯, 생육신 성담수(成聃壽)의 아우인 정재(靜齋) 성담년(成聃年)(교리(校理)), 선조(宣祖) 때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문인 성로(成輅), 정조(正祖) 때의 대표적 실학자인 성해응(成海應)과 성운(成運)ㆍ성초(成樵), 서예가 성자제(成子濟) 등이다.
창녕성씨(昌寧成氏) 문중의 숙원 사업은 현조(顯祖) 19위를 모신 물계서원(勿溪書院)을 복원하는 것이었는데 1989년 11월에 기공하여 1995년 5월 복원 완공하였다. 조선조 숙종 37년에 창건된 물계서원(勿溪書院)은 춘추석전(春秋釋奠)과 강학(講學)의 도장으로 쓰였으나 고종 9년에 철폐되고 그 자리엔 유허비가 서 있다.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모셔졌던 19명헌은 고려(高麗) 문하시중(門下侍中) 성송국(成松國), 동고공(東皐公) 성준득(成準得), 이헌공(怡軒公) 성여완(成汝完), 정절공(貞節公) 성사제(成思齊),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문두공(文斗公) 성담수(成聃壽), 우계공(牛溪公) 성혼(成渾), 충숙공(忠肅公) 성승(成勝), 인재공(仁齋公) 성희(成熺), 청송공(聽松公) 성수침(成守琛), 절효공(節孝公) 성수종(成守琮), 대곡공(大谷公) 성운(成運), 동주공(東洲公) 성제원(成悌元), 판곡공(板谷公) 성윤해(成允諧), 판서공(判書公) 성수경(成守慶), 창랑공(滄浪公) 성문준(成文濬), 청죽공(聽竹公) 성람(成灠), 부사공(浮査公) 성여신(成汝信),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 등이다. 1997년에 독곡공(獨谷公) 성성린(成石璘), 가정공(稼亭公) 성언충(成彦忠)을 추향(追享)하여 21선생(先生)을 봉안(奉安)하였다.
주요 세거지
‘성인보행장(成仁輔行狀)’과 ‘성시중효행록(成侍中孝行錄)’에 의하면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아들 성송국(成松國)은 창녕인(昌寧人)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창녕(昌寧)에서 지냈다고 했으며, 창녕성씨(昌寧成氏)의 각 파보(派譜)에도 후손들이 대대로 창녕군(昌寧郡)에서 세거했음이 나타나 있다.
6세 판서공(判書公) 성기(成紀)의 후계(後系)는 영천군(永川郡)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신유보(辛酉譜)’를 보면 독곡공(獨谷公) 성석린(成石璘)은 아버지 성여완(成汝完)이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켜 포천(抱川)에 은거하자, 포천군(抱川郡)에서 세거하였다. 13세 성사동(成士仝)은 남원군(南原郡)으로 이거(移居)하였고, 성세경(成世卿)은 성주군(星州郡)에 터를 잡았다. 갑자사화(甲子士禍) 때에는 15세 성수재(成守載)가 영산군(靈山郡)으로, 성이명(成以命)은 칠곡(漆谷)으로 화(禍)를 피해 옮겨갔다.
성석린(成石璘)의 증손 성계조(成繼祖)는 사육신옥사(死六臣獄事) 때 평산군(平山郡)으로 퇴거해 후손이 금천군(金川郡) 일원으로 산거했으며, 성계종(成繼宗)은 금산군(錦山郡)에 터를 잡았다. 성계종(成繼宗)의 아들 성세필(成世弼)은 진안군(鎭安郡) 용담(龍潭)에 은거하였고, 손자 성응상(成應祥)은 완주군(完州郡)에 터를 잡고 살았다.
‘병인보(丙寅譜)’에 의하면 6세 회곡공(檜谷公) 성석용(成石瑢)의 후손은 파주군(坡州郡)에서 세거하였다. 9세 성삼석(成三錫)의 아들 성중손(成仲孫)의 대를 전후해서는 당진군(唐津郡)으로 移居하였고, 13세 성세중(成世中)은 임진왜란 때 거창(居昌)으로 피난하여 터를 잡았으며, 14세 이후로는 공주(公州)ㆍ예산(禮山)ㆍ금릉(金陵)ㆍ상주군(尙州郡) 등지에 산거하였다.
9세 성담년(成聃年)은 공주(公州)에 적거(謫居)하였으며, 후손들이 대덕(大德)ㆍ연기(燕岐)ㆍ개풍(開豊)ㆍ고양(高陽)에 산거하였다. 성담명(成聃命)은 고양군(高陽郡)에 터를 잡은 것으로 보이며, 후계가 시흥군(始興郡)ㆍ가평군(加平郡)ㆍ광주군(廣州郡)ㆍ음성군(陰城郡)ㆍ해남군(海南郡)으로 세거지를 확대하였다.
9세 성담령(成聃齡)은 이천(利川)에 은거, 터를 잡았고, 둘째아들 성수(成需)는 서천군(舒川郡)으로 옮겨갔다. 동생 성담중(成聃仲)의 아들 성몽기(成夢箕)는 부여군(夫餘郡) 임천면(林川面)에 은거하였고, 성담로(成聃老)의 손자 성수원(成守源)은 성주(星州)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9세 성습지(成習之)의 後系는 인천시(仁川市)에서 세거하였다.
한편 ‘을축보(乙丑譜)’에 의하면 6세 상곡공(桑谷公) 성석연(成石珚)은 과천(果川)에 터를 잡았고, 손자 성염조(成念祖)의 대 이후 파주군(坡州郡)에서 세거하였다. 성봉조(成奉祖)의 아들 성율(成慄)은 경상도관찰사(觀察使) 재직 중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의성군(義城郡)에 은거, 터를 잡고 안동(安東) 등지로 산거하였으며, 그의 아들 성옥정(成玉貞)은 여주군(驪州郡)에서 세거하였다. 참판공 성순조(成順祖)는 장단골안에서 세 아들 성숙, 성준, 성건을 데리고 산거터잡이하여 대대로 세거지화되 장남면 자작리 다 공의 14대손 성보호가 고양관산에 산거 집대성하고 철원에 산거했다. 성준의 아들 성계온이 갑자사화를 피하여 청원군에서 개,성,명해가며 은거해 터를 잡은 것 같다.
성석연(成石珚)의 둘째 아들 성억(成抑)의 후계(後系)는 서산(瑞山)ㆍ괴산(槐山)ㆍ아산(牙山)ㆍ부여(夫餘)ㆍ단양(丹陽)ㆍ청원(淸源)ㆍ옥천(沃川)ㆍ춘천(春川)ㆍ완주(完州)ㆍ남원(南原)ㆍ영일(迎日) 등지에 세거했으며, 셋째아들 성급(成扱)의 후계(後系)는 대덕(大德)ㆍ연기(燕岐)ㆍ청원(淸源)ㆍ옥천(沃川)ㆍ아산(牙山)ㆍ이천(利川) 등지에 터를 잡고 살았다.
6세 낭장공(郎將公) 성석번(成石璠)의 후손은 하동(河東)과 진양(晉陽)에서 대대로 살았고, 판사공(判事公) 성연(成連)의 아들 성효순(成孝淳)의 후계는 창녕(昌寧)ㆍ상주(尙州)에서, 성효수(成孝修)의 후계(後系)는 연기(燕岐)에서, 성효덕(成孝德)의 후계는 순천(順天)에서 세거하였다. 시랑공(侍郞公) 성준(成遵)의 후손(後孫)은 지금의 서울에서 터를 잡았다.
또한 6세 정절공(貞節公) 성사제(成思齊)의 후손(後孫)은 대대로 창녕(昌寧)에서 세거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이 ‘경신보(庚申譜)’에 기록되어 있다.
6세 사인공(舍人公) 성태준(成台俊)의 후계(後系)는 온양(溫陽)에서, 좌랑공(佐郞公) 성사준(成士俊)의 후계(後系)는 옥구(沃溝)에서, 평리공(評理公) 성갑신(成甲臣)의 후계(後系)는 월성(月城)ㆍ영천(永川)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검교공(檢校公) 성을신(成乙臣)의 손자 성만용(成萬庸)의 후손(後孫)은 창녕(昌寧)ㆍ거창(居昌)ㆍ진주(晉州)ㆍ청도(淸道)ㆍ김해(金海)에서 산거했고, 성대용(成大庸)의 후계(後系)는 함평(咸平)과 광주(光州)에서 세거하였다.
‘갑자보(甲子譜)’에 보면 6세 지사공(知事公) 성언신(成彦臣)의 후손(後孫)은 양주(楊州)에서 대대로 살았으며, 13세 이후로 부여(夫餘)ㆍ예산(禮山)ㆍ영동(永同)ㆍ광주(廣州)ㆍ여주(驪州)ㆍ이천(利川)ㆍ장성(長城)ㆍ고창(高敞)ㆍ통영(統營)ㆍ거창(居昌) 등지로 산거하였다.
1930년 당시 충북 음성군(陰城郡) 원남면(遠南面), 충남 대덕군(大德郡) 구칙면(九則面), 예산군(禮山郡) 신양면(新陽面), 전북 진안군(鎭安郡) 동향면(銅鄕面), 경북 영천군(永川郡) 북안면(北安面)ㆍ화북면(華北面), 상주군(尙州郡) 내서면(內西面)ㆍ모서면(牟西面), 봉화군(奉化郡) 물야면(物野面), 경남 의령군(宜寧郡) 궁류면(宮柳面), 창녕군(昌寧郡) 창녕읍(昌寧邑)ㆍ고암면(高岩面)ㆍ이방면(梨房面)ㆍ대지면(大池面), 거창군(居昌郡) 가북면(加北面), 황해도 금천군(金川郡) 좌면(左面), 평산군(平山郡) 고지면(高之面)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특히 오늘날의 대표적인 집성촌인 경남 창녕군(昌寧郡) 대지면(大池面) 모산리(牟山里)에는 70여 호의 성씨(成氏)문중이 살고 있다.
창녕(昌寧)지방의 중윤호장(中允戶長)이었던 성인보(成仁輔)가 왕(王)에게 신년하례를 드리기 위해 송경(松京)으로 갔다가 병사(病死)하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그의 아들 성송국(成松國)이 아버지의 시체를 지고 곡을 하며 천리(千里)길 고향인 창녕(昌寧)으로 내려와 맥산(麥山)에 묘자리를 썼다 한다.
고려말 두문동(杜門洞) 72현(賢)의 한 사람인 성사제(成思齊)도 이 고장 출신이다. 정승 성유득(成有得)의 아들인 그는 ‘영위왕가귀(寧爲王家鬼) 부작이가신(不作李家臣)(차라리 죽어 고려왕씨의 귀신이 될지언정 이가의 신하는 될 수 없다)’는 글을 남기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였다 한다.
역대 주요 인물
▲고려조
성인보(成仁輔)(중윤호장(中允戶長)ㆍ시조(始祖))
성송국(成松國)(문하시중(門下侍中))
성여완(成汝完)(호(號) : 이헌(怡軒)ㆍ상서(尙書))
성준득(成准得)(호(號) : 동고(東皐)ㆍ제주목사(濟州牧使))
성원규(成元揆)(시호(諡號) : 간헌(簡憲)ㆍ문하평리(門下評理))
성대용(成大庸)(밀직제학(密直提學))
성공필(成公弼)(판도판서(版圖判書))
성한필(成漢弼)(찬성사(贊成事))
성사달(成士達)(대제학(大提學))
성부(成溥)(형부총랑(刑部摠郞))
성사제(成思齊)(직제학(直提學))
▲조선조
성기(成紀)(자(字) : 자망(子網)ㆍ호(號):죽곡(竹谷)ㆍ판서(判書))
성석린(成石璘)(자(字) : 자수(自修)ㆍ호(號) : 독곡(獨谷)ㆍ창성군(昌城君)ㆍ영의정(領議政))
성석용(成石瑢)(자(字) : 자옥(自玉)ㆍ호(號) : 회곡(檜谷)ㆍ시호(諡號) : 문숙(文肅)ㆍ대제학(大提學))
성석연(成石珚)(자(字) : 자유(自由)ㆍ호(號) : 상곡(桑谷)ㆍ시호(諡號) : 정평(靖平)ㆍ대제학(大提學))
성사제(成思齊)(시호(諡號) : 정절(貞節)ㆍ직제학(直提學))
성달생(成達生)(시호(諡號) : 양혜(襄惠)ㆍ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성개(成槪)(자(字) : 평중(平仲)ㆍ호(號) : 수헌(睡軒)ㆍ참판(參判))
성엄(成揜)(시호(諡號) : 공도(恭度)ㆍ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성억(成抑)(시호(諡號) : 희정(僖靖)ㆍ좌찬성(左贊成))
성겁(成极)(첨중추(僉中樞))
성사달(成士達)(호(號) : 역암(易庵)ㆍ시호(諡號) : 문효(文孝)ㆍ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ㆍ대제학(大提學))
성귀수(成龜壽)(창산군(昌山君)ㆍ이조판서(吏曹判書))
성염조(成念祖)(자(字) : 자경(子敬)ㆍ시호(諡號) : 공혜(恭惠)ㆍ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성봉조(成奉祖)(자(字) : 효부(孝夫)ㆍ시호(諡號) : 양정(襄靖)ㆍ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ㆍ우의정(右議政))
성순조(成順祖)(자(字) : 자효(子孝)ㆍ호(號) : 도옹(陶翁)ㆍ영락(永樂)ㆍ형조참판(刑曹參判))
성승(成勝)(호(號) : 적곡(赤谷)ㆍ시호(諡號) : 충숙(忠肅)ㆍ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도총관(都摠管),
성증(成塍) :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성삼문(成三問)(자(字) : 근보(謹甫)ㆍ호(號) : 매죽헌(梅竹軒)ㆍ시호(諡號) : 충문(忠文)ㆍ좌부승지(左副承旨)ㆍ사육신(死六臣)중 하나)
성삼석(成三錫) : 한성판관(漢城判官)
성담수(成聃壽) : (생육신(生六臣)중 하나)
성담로(成聃老) : (한성판윤(漢城判尹))
성중손(成仲孫) : 증산현감(甑山縣監)
성 협(成 協) : 증 이조참판(贈 吏曹參判)
성준길(成俊吉) : 경기수사(京畿水使)
성진선(成晉善) : (도정(都正))
성임(成任)(자(字) : 중경(重卿)ㆍ호(號) : 일재(逸齋)ㆍ시호(諡號) : 문안(文安)ㆍ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간(成侃)(자(字) : 화중(和中)ㆍ호(號) : 진일재(眞逸齋)ㆍ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준(成俊)(자(字) : 시좌(時佐)ㆍ시호(諡號) : 명숙(明肅)ㆍ영의정(領議政)
성현(成俔)(자(字) : 경숙(磬叔)ㆍ호(號) : 용재(慵齋)ㆍ시호(諡號) : 문대(文戴)ㆍ판서(判書)
성건(成健)(자(字) : 자강(子强)ㆍ시호(諡號) : 문혜(文惠)ㆍ우참찬(右參贊)
성이건(成以乾)(자(字) : 건수(健叟)ㆍ호(號) : 백촌(栢村)ㆍ부사(府使)
성몽선(成夢宣)(자(字) : 사성(師聖)ㆍ호(號) : 강호산인(江湖散人)ㆍ한성좌윤(漢城左尹)
성몽정(成夢井)(자(字) : 응경(應卿)ㆍ호(號) : 장암(場巖)ㆍ시호(諡號) : 양경(襄景)ㆍ하산군(夏山君)ㆍ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성운(成雲)(자(字) : 치원(致遠)ㆍ시호(諡號) : 경숙(景肅)ㆍ대사헌(大司憲)
성세명(成世明)(자(字) : 여회(如晦)ㆍ호(號) : 일로당(佚老堂)ㆍ시호(諡號) : 평안(平安)ㆍ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성세정(成世貞)(자(字) : 간지(幹之)ㆍ대사헌(大司憲)
성세순(成世純)(자(字) : 태순(太純)ㆍ시호(諡號) : 사숙(思淑)ㆍ대사헌(大司憲)
성세창(成世昌)(자(字) : 번중(蕃仲)ㆍ호(號) : 돈재(遯齋)ㆍ시호(諡號) : 문장(文莊)ㆍ좌의정(左議政)
성응무(成應武)(자(字) : 계술(繼述)ㆍ호(號) : 사미당(四美堂)ㆍ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성의국(成義國)(자(字) : 충백(忠伯)ㆍ도승지(都承旨)
성윤(成倫)(자(字) : 서숙(序叔)ㆍ호(號) : 산옹(散翁)ㆍ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증(成希曾)(자(字) : 노옹(魯翁)ㆍ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성희안(成希顔)(자(字) : 우옹(遇翁)ㆍ호(號) : 인재(仁齋)ㆍ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ㆍ영의정(領議政)
성희옹(成希雍)(호(號) : 의재(義齋)ㆍ창성군(昌城君)ㆍ도총관(都摠管)
성수익(成壽益)(자(字) : 덕구(德久)ㆍ호(號) : 칠봉(七峰)ㆍ창산군(昌山君)ㆍ부총관(副摠管)
성대업(成大業)(자(字) : 형숙(亨叔)ㆍ관찰사(觀察使)
성식(成軾)(자(字) : 경보(敬甫)ㆍ부사(府使))
성혼(成渾)(자(字) : 호원(浩源)ㆍ호(號) : 우계(牛溪)ㆍ시호(諡號) : 문간(文簡)ㆍ좌참찬(左參贊)
성윤문(成允文) :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성천기(成天祺)(자(字) : 선길(善吉)ㆍ승지(承旨)
성윤문(成允文) :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성율(成慄) : (창산군(昌山君)ㆍ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세장(成世章)(자(字) : 중회(仲晦)ㆍ호(號) : 사암(思庵)ㆍ판서(判書)
성세평(成世平) :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성호선(成好善)(자(字) : 칙우(則優)ㆍ호(號) : 월사(月蓑)ㆍ충주목사(忠州牧使)
성진선(成晉善)(자(字) : 칙행(則行)ㆍ호(號) : 연강(烟江)ㆍ관찰사(觀察使)
성준(成準)(호(號) : 삼송당(三松堂)ㆍ부사(府使)
성문잠(成文潛)(자(字) : 자약(子躍)ㆍ호(號) : 신암(晨庵)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이문(成以文)(자(字) : 질부(質夫)ㆍ호(號) : 은궤옹(隱几雍)ㆍ대사간(大司諫)
성우길(成佑吉)(자(字) : 자수(自受)ㆍ호조판서(戶曹判書)
성준길(成俊吉) : 경기수사(京畿水使)
성준(成遵)(자(字) : 순경(順卿)ㆍ호(號) : 정산(定山)ㆍ사간(司諫)
성응사(成應社) : (의병장(義兵將)
성락(成洛)(자(字) : 사중(士中)ㆍ호(號) : 남애(南崖)ㆍ승정원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
성영(成泳)(자(字) : 사함(士涵)ㆍ호(號) : 우천(遇川)ㆍ판서(判書)
성윤조(成允祖) : (자(字) : 이술(而述)ㆍ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성담(成淡)(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하종(成夏宗)(자(字) : 이건(而建)ㆍ창흥군(昌興君)ㆍ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성태구(成台耈) : (집의(集義)
성대훈(成大勳)(자(字) : 중집(仲集)ㆍ시호(諡號) : 충장(忠莊)ㆍ창산군(昌山君)ㆍ평양별장(平壤別將)
성준구(成俊耈)(자(字) : 덕보(德甫)ㆍ호(號) : 장곡(藏谷)ㆍ관찰사(觀察使)
성직(成稷)(자(字) : 자교(子喬)ㆍ호(號) : 매변(梅邊)ㆍ시호(諡號) : 정혜(靖惠)ㆍ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성여후(成汝朽)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준설(成俊卨)(자(字) : 자허(子許)ㆍ의주부윤(義州府尹)
성안의(成安義)(자(字) : 정보(精甫)ㆍ호(號) : 부용당(芙蓉堂)ㆍ부사(府使)
성운한(成雲翰)(자(字) : 붕거(鵬擧)ㆍ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성진문(成震炆) : (부사(府使)
성진병(成震丙)(자(字) : 자소(子昭)ㆍ부장(副將)
성각(成殼)(자(字) : 휘온(輝薀)ㆍ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
규헌(揆憲)(자(字) : 중일(仲一)ㆍ호(號) : 명탄(明灘)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환(成瑍)(자(字) : 계휘(季輝)ㆍ호(號) : 유촌(柳村)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호(成虎)(자(字) : 병여(炳如)ㆍ좌승지(左承旨)
성석기(成碩夔)(자(字) : 중일(仲一)ㆍ호(號) : 만오당(晩悟堂)ㆍ이조참의(吏曹參議)
성진령(成震齡)(자(字) : 자장(子長)ㆍ호(號) : 나옹(懶翁)ㆍ동부승지(同副承旨)
성대경(成大經)(자(字) : 자상(子常)ㆍ장성부사(長城府使)
성대봉(成大鳳)(자(字) : 의서(儀瑞)ㆍ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성덕조(成德朝)(자(字) : 도백(道伯)ㆍ호(號) : 치재(癡齋)ㆍ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성후창(成後昌)(자(字) : 문창(文昌)ㆍ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성이연(成爾演)(자(字) : 중문(仲文)ㆍ호(號) : 지옹(芝翁)ㆍ도총관(都摠管)
성이집(成爾潗)(자(字) : 천여(泉汝)ㆍ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성대중(成大中)(자(字) : 사집(士執)ㆍ호(號) : 청성(靑城)ㆍ부사(府使)
성기인(成起寅)(자(字) : 천상(天祥)ㆍ호(號) : 낙애(洛厓)ㆍ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성윤혁(成胤爀)(자(字) : 회백(晦伯)ㆍ진관병마절도사(鎭管兵馬節度使)
성근묵(成近黙)(자(字) : 성사(聖思)ㆍ호(號) : 과재(果齋)ㆍ형조참의(刑曹參議)
성종인(成種仁)(자(字) : 직무(直武)ㆍ의주부윤(義州府尹)
성원묵(成原黙)(자(字) : 계연(季淵)ㆍ시호(諡號) : 효정(孝靖)ㆍ예조판서(禮曹判書)
성수묵(成遂黙)(자(字) : 성집(聖執)ㆍ시호(諡號) : 효헌(孝憲)ㆍ관찰사(觀察使)
성도묵(成道黙)(자(字) : 성급(聖及)ㆍ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성호겸(成好謙)(자(字) : 덕중(德仲)ㆍ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성형근(成亨根)(자(字) : 치회(致曾)ㆍ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성언림(成彦霖)(자(字) : 여열(汝說)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정진(成鼎鎭) : (부승지(副承旨)
성범진(成範鎭)(자(字) : 홍중(洪仲)ㆍ부사(府使)
성기운(成岐運)(자(字) : 봉서(鳳瑞)ㆍ호(號) : 건재(健齋)ㆍ관찰사(觀察使)
성욱호(成郁鎬)(자(字) : 주용(周用)ㆍ호(號) : 빙고(氷皐)ㆍ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성준안(成俊安)(호(號) : 원거(元巨)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석로(成錫魯)(자(字) : 치상(致相)ㆍ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성대영(成大永)(시호(諡號) : 정간(貞簡)ㆍ승지(承旨)
성필수(成弼修) :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성준(成浚) :(관찰사(觀察使)
성해응(成海應)(자(字) : 용여(龍汝)ㆍ호(號) : 연경재(硏經齋)ㆍ부사(府使)
성주덕(成周德)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과(登科)ㆍ음사인명(蔭仕人名)
▲고려조
문과(文科)
성여완(成汝完)(충숙왕조)
성석린(成石璘)(공민왕조)
성석용(成石瑢)(우왕조)
성석연(成石珚)(우왕조)
성수항(成守恒)(우왕조)
성부(成溥)(우왕조)
▲조선조
문과(文科)
성부석(成敷錫)(주서(注書)) 성개(成槪)(판서(判書)
성염조(成念祖)(지중(知中)) 성자성(成子誠)(정언(正言)
성삼문(成三問)(승지(承旨)) 성한(成漢)(참판(參判)
성임(成任)(판서(判書)) 성희(成熺)(옥당(玉堂)
성간(成侃)(교리(校理)) 성수■(성수■)(정언(正言)
성윤문(成允文)(병참(兵參)) 성준(成俊)(영상(領相)
성가의(成可義)(참판(參判)) 성예(成倪)(참찬형(參贊衡)
성진(成晉)(도사(都事)) 성숙(成俶) 성건(成健)(형판(刑判)
성담년(成聃年)(옥당(玉堂)) 성세명(成世明)(평백(平伯)
성희증(成希曾)(교리(校理)) 성희안(成希顔)(영상(領相)
성신의(成愼義)(예정(禮正)) 성세정(成世貞)(대헌(大憲)
성세순(成世純)(대헌(大憲)) 성안중(成安重)(승교(承校)
성윤조(成允祖)(우윤(右尹)) 성중엄(成重淹)(삼사(三司)
성중온(成仲溫)(지평(持平)) 성한(成翰)(감찰(監察)
성희철(成希哲)(참교(參校)) 성몽병(成夢幷)(이참(吏參)
성경온(成景溫)(병정(兵正)) 성운(成雲)(병판(兵判)
성세창(成世昌)(좌상(左相)) 성희주(成希周)
성세준(成世俊)(부정(副正)) 성희중(成希仲)(옥당(玉堂)
성희윤(成希尹)(병정(兵正)) 성수종(成守琮)
성윤(成倫)(이참(吏參)) 성준(成遵)(군수(郡守)
성순(成詢)(감사(監司)) 성몽열(成夢說)(군수(郡守)
성세장(成世章)(예판(禮判)) 성자택(成子澤)(좌랑(佐郞)
성의국(成義國)(지중(知中)) 성세녕(成世寧)(첨지(僉知)
성수익(成壽益)(참판(參判)) 성자항(成子沆)(사예(司藝)
성세평(成世平)(강백(江伯)) 성자제(成子濟)(사예(司藝)
성락(成洛)(승지(承旨)) 성돈(成惇)(헌납(獻納)
성영(成泳)(이판(吏判)) 성식(成軾)(장령(掌令))
성대업(成大業)(감사(監司)) 성호선(成好善)(장령(掌令)
성안의(成安義)(승지(承旨)) 성계선(成啓善)(부사(府使)
성진선(成晉善)(부학(副學)) 성이문(成以文)(이의(吏議)
성이민(成以敏)(경력(經歷)) 성몽길(成夢吉)(교리(校理)
성준구(成俊耈)(황백(黃伯)) 성시헌(成時憲)(형의(刑議)
성하연(成夏衍)(부정(府政)) 성여관(成汝寬)(응교(應敎)
성이성(成以性)(부사(府使)) 성태구(成台耈)(아장(亞將)
성초객(成楚客)(승지(承旨)) 성하명(成夏明)(승지(承旨)
성진한(成振翰)(첨정(僉正)) 성시량(成時亮)(정랑(正郞)
성진병(成震炳)(동지(同知)) 성후와(成後窩)(승지(承旨)
성진(成瑨)(장령(掌令)) 성호징(成虎徵)(승지(承旨)
성석신(成石藎)(장령(掌令)) 성진창(成震昌)(성권(成權)
성관(成瓘)(부사(府使)) 성호신(成虎臣)(장령(掌令)
성석기(成碩夔)(필선(弼善)) 성준(成儁)(사성(司成)
성임(成任)(문학(文學)) 성환(成瑍)(동지(同知)
성숙(成璹)(부사(府使)) 성기인(成起寅)(감찰(監察)
성윤광(成胤光)(병좌(兵佐)) 성진령(成震齡)(승지(承旨)
성도형(成道亨)(설서(說書)) 성세욱(成世頊)
성덕장(成德章)(승지(承旨)) 성대열(成大烈)(장령(掌令)
성덕윤(成德潤)(대간(大諫)) 성유열(成有烈)(장령(掌令)
성헌조(成憲祖) 성윤석(成胤錫) 성범석(成範錫)(대간(大諫)
성천주(成天柱)(참판(參判)) 성해룡(成海龍) 성기주(成箕柱)
성영(成穎) 성윤윤(成胤胤)(장령(掌令)) 성규(成珪)
성대중(成大中)(정언(正言)) 성언즙(成彦檝)(장령(掌令)
성진창(成震昌)성균관권지(成均館權知)
성덕조(成德祖) 성정진(成鼎鎭)(승지(承旨)
성종인(成種仁)(승지(承旨)) 성덕우(成德雨)(이의(吏議)
성재기(成在基) 성효진(成孝鎭) 성언극(成彦極)(정언(正言)
성호겸(成好謙)(참판(參判)) 성원묵(成原黙)(판서(判書)
성수묵(成遂黙)(판서(判書)) 성재구(成載球)(이참(吏參)
성재원(成載瑗)(이참(吏參)) 성이호(成彛鎬)(판서(判書)
성대영(成大永)(이참(吏參)) 성대련(成大璉)(승지(承旨)
성기운(成岐運)(판서(判書)) 성건호(成健鎬)(승지(承旨)
성하경(成夏慶)(장령(掌令))
무과(武科)
성달생(成達生)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성승(成勝)(도총관(都摠管), 성몽선(成夢宣)(부사(府使)
성준길(成俊吉) 경기수사(京畿水使), 성은석(成殷錫)(병사(兵使) 성지중(成至重)(목사(牧使)
음사인명(蔭仕人名)
성인보(成仁輔)(호장(戶長) 성송국(成松國)(시중(侍中)
성공필(成公弼)(시령(寺令) 성군미(成君美)(총랑(摠郞)
성여완(成汝完)(시중(侍中)ㆍ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
성석린(成石璘)(영상(領相) 성석용(成石瑢)(대제학(大提學)
성한필(成漢弼)(찬성(贊成) 성군백(成君百)(평리(評理)
성리(成履)(태학사(太學士) 성을신(成乙臣)(시중(侍中)
성사홍(成士弘)(찬성사(贊成事) 성대용(成大庸)(판서(判書)
성저(成翥)(참의(參議)) 성효상(成孝祥)(판윤(判尹)
성유수(成有守)(사복정(司僕正) 성관(成觀)(참의(參議)
성수재(成壽載)(참봉(參奉) 성조원(成調元)(참봉(參奉)
성달생(成達生)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시:양혜(讓惠)
성삼문(成三問)(사육신(死六臣)ㆍ시:문충(文忠)
성담수(成聃壽)(생육신(生六臣) 성제원(成悌元)(현감(縣監)
성담명(成聃明)(진사(進士) 성림(成霖)(진사(進士)
성질(成礩)(동추(同樞) 성굉렬(成宏烈)(현감(縣監)
성준익(成峻翼)(부호군(副護軍) 성은창(成殷昌)(동추(同樞)
성윤창(成允昌)(동중추(同中樞) 성용(成鏞)(증통정(贈通政)
성택원(成宅源)(증통정(贈通政)
성상영(成相榮)(증비승(贈秘丞)
성석연(成石珚)(시:정평(靖平) 성엄(成揜)(기백(畿伯)
성억(成抑)(찬성(贊成)ㆍ시(諡) : 희숙(僖肅)
성득식(成得識)(서윤(庶尹) 성충건(成忠建)(현감(縣監)
성근(成近)(경재(敬齋) 성운(成運)(처사(處士)
성수침(成守琛)(증영상(贈領相)
성혼(成渾)(찬성(贊成)ㆍ시(諡) : 문간(文簡)
성문준(成文濬)(현감(縣監) 성력(成櫟)(첨정(僉正)
성희주(成熙冑)(첨정(僉正) 성지행(成至行)(서윤(庶尹)
성의석(成義錫)(도정(都正) 성광묵(成光黙)(군수(郡守)
성재순(成載淳)(도사(都事) 성정호(成鼎鎬)(군수(郡守)
성효영(成孝永)(현감(縣監) 성지민(成至敏)(군수(郡守)
성덕영(成德永)(현감(縣監) 성정주(成鼎柱)(현감(縣監)
성근묵(成近黙)(참의(參議) 성재진(成載瑨)(현감(縣監)
성직(成稷)(시(諡) : 정혜(靖惠) 성희적(成熙績)(현감(縣監)
성지선(成至善)(일지평(逸持平) 성효석(成孝錫)(부정(副正)
성수종(成守琮) 성이(成耳)(감찰(監察)
성경정(成敬程)(증통훈(贈通訓)
성준수(成峻洙)(증자헌(贈資憲)
성종언(成宗彦)(증참판(贈參判) 성주묵(成周黙)(통정(通政)
성찬(成纘)(주부(主簿)) 성수석(成壽錫)(좌랑(佐郞)
성병화(成炳華)(통정(通政) 성준기(成浚琪)(도정(都正)
성준영(成浚榮)(증호참(贈戶參) 성평식(成平植)(도정(都正)
성태식(成泰植)(가선(嘉善) 성복재(成福載)(참봉(參奉)
성근(成謹)(통정(通政)) 성신구(成信耈)(현령(縣令)
성하창(成夏昌)(통덕(通德) 성대임(成大任)(정언(正言)
성우필(成宇弼)(주부(主簿) 성병길(成炳吉)(증복정(贈僕正)
성운기(成云琪)(증참의(贈參議)
성창호(成昌鎬)(증참판(贈參判) 성태성(成泰聖)(가선(嘉善)
성태종(成泰宗)(참봉(參奉) 성광우(成光禹)(호군(護軍)
성재욱(成載旭)(교관(敎官) 성빙채(成氷彩)(통정(通政)
조선조 급제자 정록
성부석(成敷錫)(태종 1년ㆍ증광시(增廣試)ㆍ진사(進士)
성개(成槪)(태종 16년ㆍ친시(親試)ㆍ을과삼(乙科三)
성염조(成念祖)(세종 1년ㆍ증광시(增廣試)ㆍ을과(乙科)
성자량(成自諒)(세종 1년ㆍ증광시(增廣試)ㆍ진사(進士)
성삼문(成三問)(세종 20년ㆍ식년시(式年試)ㆍ정과(丁科)
성삼문(成三問)(세종 29년ㆍ중시(重試)ㆍ을과일(乙科一)
성임(成任)(세종 29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희(成熺)(문종즉위(文宗卽位)ㆍ식년시(式年試)ㆍ정과(丁科)
성간(成侃)(단종 1년ㆍ증광시(增廣試)ㆍ을과(乙科)
성수인(成壽璘)(단종 2년ㆍ식년시(式年試)ㆍ정과(丁科)
성윤문(成允文)(세조 3년ㆍ친시(親試)ㆍ을과(乙科)
성임(成任)(세조 3년ㆍ중시(重試)ㆍ병과(丙科)
성준(成俊)(세조 5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가의(成可義)(세조 6년ㆍ평양별시(平壤別試)ㆍ을과이(乙科二)
성현(成俔)(세조 8년ㆍ식년시(式年試)ㆍ정과(丁科)
성진(成晉)(세조 11년ㆍ식년시ㆍ을과(乙科)
성숙(成俶)(세조 11년ㆍ춘시(春試)ㆍ정과(丁科)
성임(成任)(세조 12년ㆍ발영시(拔英試)ㆍ이등(二等)
성현(成俔)(세조 12년ㆍ발영시(拔英試)ㆍ삼등(三等)
성윤문(成允文)(세조 12년ㆍ발영시(拔英試)ㆍ삼등(三等)
성윤문(成允文)(세조 12년ㆍ등준시(登俊試)ㆍ삼등(三等)
성건(成健)(세조 14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담년(成聃年)(성종 1년ㆍ별시(別試)ㆍ갑과(甲科)
성세명(成世明)(성종 6년ㆍ친시(親試)ㆍ병과(丙科)
성현(成俔)(성종 7년ㆍ중시(重試)ㆍ삼등(三等)
성희증(成希曾)(성종 11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희안(成希顔)(성종 16년ㆍ별시(別試)ㆍ이등(二等)
성신의(成愼義)(성종 17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세정(成世貞)(성종 2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세순(成世純)(성종 23년ㆍ식년시(式年試)ㆍ갑과(甲科)
성안중(成安重)(성종 23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윤조(成允祖)(성종 23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중엄(成重淹)(성종 25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중온(成仲溫)(연산 2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한(成翰)(연산 2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희철(成希哲)(연산 2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몽정(成夢井)(연산 4년ㆍ식년시(式年試)ㆍ갑과(甲科)
성경온(成景溫)(연산 9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운(成雲)(연산 1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세창(成世昌)(중종 2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희주(成希周)(중종 2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세준(成世俊)(중종 2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희중(成希仲)(중종 4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희윤(成希尹)(중종 10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수종(成守琮)(중종 14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윤(成倫)(중종 17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순(成詢)(중종 33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준(成遵)(중종 33년ㆍ별시(別試)ㆍ을과(乙科)
성몽열(成夢說)(중종 34년ㆍ별시(別試)ㆍ갑과(甲科))
성세장(成世章)(중종 35년ㆍ식년시(式年試)ㆍ갑과(甲科)
성자택(成子澤)(중종 39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의국(成義國)(명종 3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세녕(成世寧)(명종 7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수익(成壽益)(명종 14년ㆍ정시(庭試)ㆍ을과(乙科)
성자항(成子沆)(명종 14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세평(成世平)(명종 16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자제(成子濟)(명종 18년ㆍ알성시(謁聖試)ㆍ병과(丙科)
성낙(成洛)(선조 1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돈(成惇)(선조 5년ㆍ친시(親試)ㆍ병과(丙科)
성영(成泳)(선조 6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식(成軾)(선조 10년ㆍ알성시(謁聖試)ㆍ을과(乙科)
성대업(成大業)(선조 15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호선(成好善)(선조 22년ㆍ증광시(增廣試)ㆍ을과(乙科)
성안의(成安義)(선조 24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계선(成啓善)(선조 27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진선(成晉善)(선조 27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이문(成以文)(선조 27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이민(成以敏)(선조 28년ㆍ별시(別試)ㆍ갑과(甲科)
성몽길(成夢吉)(선조 29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준구(成俊耈)(선조 32년ㆍ별시(別試)ㆍ을과(乙科)
성시헌(成時憲)(선조 36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하연(成夏衍)(광해 10년ㆍ증광시(增廣試)ㆍ별과(別科)
성람(成欖)(광해 13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여관(成汝寬)(인조 1년ㆍ알성시(謁聖試)ㆍ병과(丙科)
성이성(成以性)(인조 5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태구(成台耈)(인조 6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초용(成楚容)(인조 11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하명(成夏明)(인조 15년ㆍ정시(庭試)ㆍ을과(乙科)
성진한(成振翰)(인조 17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시량(成時亮)(인조 22년ㆍ별시(別試)ㆍ병과(丙科)
성진병(成震丙)(인조 24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후설(成後卨)(효종 2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진(成瑨)(현종 7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호징(成虎徵)(현종 7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석신(成碩藎)(숙종 1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진창(成震昌)(숙종 3년ㆍ알성시(謁聖試)ㆍ병과(丙科)
성관(成瓘)(숙종 8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호신(成虎臣)(숙종 1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석기(成碩夔)(숙종 1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준(成儁)(숙종 1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임(成任)(숙종 1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환(成瑍)(숙종 16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숙(成璹)(숙종 22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기인(成起寅)(숙종 31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윤광(成胤光)(숙종 34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진령(成震齡)(숙종 39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도형(成道亨)(숙종 39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세욱(成世頊)(숙종 41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덕장(成德章)(숙종 43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대열(成大烈)(경종 1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유열(成有烈)(영조 2년ㆍ별시(別試)ㆍ갑과(甲科)
성헌조(成憲祖)(영조 2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범석(成範錫)(영조 6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천주(成天柱)(영조 19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해룡(成海龍)(영조 2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기주(成箕柱)(영조 27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영(成穎)(영조 28년ㆍ정시(庭試)ㆍ을과(乙科)
성규탁(成珪擢)(영조 29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윤검(成胤儉)(영조 29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대중(成大中)(영조 32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언즙(成彦檝)(영조 38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덕조(成德朝)(영조 44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정진(成鼎鎭)(정진)(영조 50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종인(成種仁)(정조 6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임(成稔)(정조 7년ㆍ증광시(增廣試)ㆍ생원(生員)
성덕우(成德雨)(정조 7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종인(成種仁)(정조 10년ㆍ중시(重試)ㆍ을과(乙科)
성재기(成在基)(순조 1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노진(成老鎭)(순조 1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용갑(成龍甲)(순조 11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시광(成始光)(순조 11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대진(成大璡)(순조 14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호겸(成好謙)(순조 22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수묵(成遂黙)(순조 25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우규(成禹圭)(순조 27년ㆍ증광시(增廣試)ㆍ을과(乙科)
성원묵(成原黙)(순조 31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용묵(成容黙)(헌종 3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석로(成錫魯)(헌종 6년ㆍ식년시(式年試)ㆍ을과(乙科)
성재원(成載瑗)(헌종 14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재옥(成載玉)(철종 1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심호(成尋鎬)(철종 3년ㆍ식년시(式年試)ㆍ병과(丙科)
성하경(成夏慶)(철종 6년ㆍ정시(庭試)ㆍ병과(丙科)
성기운(成岐運)(고종 17년ㆍ증광시(增廣試)ㆍ병과(丙科)
성대영(成大永)(고종 22년ㆍ증광시(增廣試)ㆍ갑과(甲科)
성건호(成健鎬)(고종 24년ㆍ별시(別試)ㆍ을과(乙科)
벌열(閥閱)
상신(相臣) : 성석린(成石璘)(태종조ㆍ영의정(領議政)) 성봉조(成奉祖)(성종조ㆍ우의정(右議政)) 성준(成俊)(연산조ㆍ영의정(領議政)) 성희안(成希顔)(중종조ㆍ영의정(領議政)) 성세창(成世昌)(인종조ㆍ좌의정(左議政))
공신(功臣) : 성석린(成石璘)(태종조ㆍ이차왕자난3등공신(二次王子亂3等功臣)) 성삼문(成三問)(단종조ㆍ계유정난3등공신(癸酉靖難3等功臣), 세조조ㆍ세조즉위3등공신(世祖卽位3等功臣)) 성봉조(成奉祖)(성종조ㆍ성종즉위3등공신(成宗卽位3等功臣)) 성희안(成希顔)(중종조ㆍ중종반정1등공신(中宗反正1等功臣)) 성희옹(成希雍)(중종조ㆍ중종반정4등공신(中宗反正4等功臣)) 성율(成慄)(중종조ㆍ중종반정4등공신(中宗反正4等功臣)) 성몽정(成夢井)(중종조ㆍ중종반정4등공신(中宗反正4等功臣)) 성윤(成胤)(중종조ㆍ정난3등공신(靖難3等功臣)) 성대훈(成大勳)(인조조ㆍ이괄난토평2등공신(李适亂討平2等功臣))
문형(文衡) : 성삼문(成三問)(문종조) 성현(成俔)(연산조) 성세창(成世昌)(중종조) 성운(成運)(중종조) 성혼(成渾)(선조조) 성준득(成準得)(선조조) 성로(成輅)(인조조) 성■(成番永) 성안의(成安義)(효종조) 성후주(成後周)(현종조)
호당(湖堂) : 성삼문(成三問)(세종조) 성간(成侃)(성종조) 성현(成俔)(성종조) 성중엄(成重淹)(연산조) 성세창(成世昌)(중종조) 성석린(成石璘) 성석연(成石珚) 성임(成任) 성담년(成聃年) 성혼(成渾) 성준룡(성준룡) 성■(成番永) 성진(成晉) 성이문(成以文)
경연(經筵) : 성혼(成渾)(선조조ㆍ참찬(參贊)) 성근묵(成近黙)(철종조ㆍ찬성(贊成))
청백리(淸白吏) : 성석연(成石珚)(정종조) 성희(成熺)(세종조) 성임(成任)(세종조) 성사달(成士達)(세종조) 성삼문(成三問)(세종조) 성간(成侃)(세종조) 성현(成俔)(세종조) 성람(成灠)(예종조) 성문헌(成文憲)(예종조) 성호(成浩)(예종조) 성담년(成聃年)(성종조) 성문준(成文濬)(성종조) 성몽정(成夢井)(연산조) 성세창(成世昌)(중종조) 성운(成運)(중종조) 성수종(成守琮)(명종조) 성영(成泳)(선조조) 성준룡(成俊龍)(선조조) 성효원(成孝元)(선조조) 성혼(成渾)(선조조) 성준득(成準得)(선조조) 성제원(成悌元)(선조조) 성하종(成夏宗)(인조조) 성호인(成好仁)(인조조) 성세장(成世章)(인조조) 성로(成輅)(인조조) 성하정(成夏挺)(인조조) 성번영(成番永)(효종조) 성여중(成汝重)(효종조) 성안의(成安義)(효종조) 성후주(成後周)(현종조) 성진(成晉)(현종조) 성이문(成以文)(현종조) 성이매(成以梅)(현종조) 성이성(成以性)(숙종조)
절의(節義) : 성부(成溥)(고려말(末)ㆍ두문제현(杜門諸賢)) 성문덕(成聞德)(임진왜란(壬辰倭亂)ㆍ순의제인(殉義諸人))
장신(將臣) : 성윤문(成允文)(광해조ㆍ훈련대장(訓鍊大將)
명륜(明倫) : (효행(孝行)) 성수침(成守琛)(증좌의정(贈左議政)) 성춘묵(成春黙)(고종신묘(辛卯)에 증동몽교관(贈童蒙敎官), 정려(旌閭)) 성씨(成氏)(우재선(禹在善) 배위(配位)ㆍ제호역(除戶役)ㆍ명정(命旌)) (열녀(烈女)) 성씨(成氏)(증가선양지인(贈嘉善楊志人) 배위(配位)ㆍ봉정부인(封貞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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