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부케
엔딩
上
김영훈
🌸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엄마 아빠한테 맨날 하는 말이었다.
"여보... 내가 말해?"
"그럼 내가 해?"
"...저 여주야."
갑자기 금요일 저녁에 본가 와서 저녁이나 먹자고 하는 아빠. 앞치마를 채 벗지 못한 아빠가 엄마 눈치를 설설 보고 있다. 2:1 맞짱. 필시 이 분위기는 엄마가 무언가 할 말이 있고, 그 할 말이라는 것은 삼 일 전 내가 목욕탕에서 자빠진 뇌진탕 사건과 연관 있는 게 분명했다. 아빠가 저렇게 뜸 들이는 이유는 뻔했다.
"여주야 알다시피. 네 엄마도 나도 외동이잖니. 그래서 너 친척도 없고... 너 할머니 할아버지도 몸이 편찮으시고. 우리도 건강검진 했는데 가족력 조심하라고 하기도 하고..."
"예. 그래서요."
버섯전을 우물거리며 대충 대답했다. 설마 헀는데 이 레퍼토리는 변하지가 않는다. 대놓고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맘 약한 아빠와 굳건한 엄마의 회유책.
"그니까 뭐 같이 살 사람 있으면 좋다는거지... 얼마 전에 너 뇌진탕도 기절했다가 혼자 깨어나서 응급실 갔다며. 네 엄마도 너 엄청 걱정하고... 우리 세상 떠나면 너랑 같이 있어줄 사람이..."
"아우 진짜! 그래서 결혼 하라고요?"
"아니 하면 좋고... 강요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지. 하나의 의견..."
아빠는 이 시대의 서정 문학 대표. 서정시를 쓰는 시인답게 여렸다. 엄마는 깻잎절임을 내 밥그릇 위로 얹어주며 한술 보탰다.
"우린 성별 저언혀 상관없다? 여자든 남자든. 그냥 너랑 같이 살 반려자만 있음 걱정이 없어."
"나 결혼에 관심 없는데."
"결혼 아니어도. 뭐 요즘 애들은 동거도 한대잖아."
"연애도 딱히... 그냥 일하기도 바빠."
맨날 이러는 건 아니었지만 30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요새 엄마 아빠의 걱정이 늘었다. 결혼엔 별로 관심 없고 커리어우먼 되고 싶어! 중학생 때부터 외쳐댔던 캐치프레이즈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엄마 아빠는 한순간의 구호인 줄로만 알았지, 스물아홉이 되도록 그게 이어질 줄은 예상 못했나 보다.
"요새 결혼 안 하고, 연애도 안 하고 잘 사는 사람 많어."
"그럼 뭐 친구라도 같이 살든지. 걱정돼서 그래."
핑퐁.
"밤에 타자를 그렇게 두들겨대는데 누가 같이 살고 싶어 해.":
"귀 어두운 사오정 친구랑 살든가."
팽퐁.
말 하나도 지지 않는 나와 끊임없이 권유하는 엄마의 탁구 대화가 이어졌다. 밥그릇이 비어질 때까지 아빠는 눈치를 보면서 반찬들을 더 꺼내왔다. 사실 한 그릇 더 먹고 싶었지만 어제 새벽 내내 자막을 치기도 했고 피곤해서 빨리 자취집에 가고 싶었다. 하루 자고 가라는 아빠의 말을 한사코 거절했다.
"나 프리뷰 자막칠 거 많아서 안돼요. 반찬 싸준 건 잘 먹을게 아빠!"
"네 엄마 걱정도 이해해줘... 너 응급실 갔다고 했을 때 나랑 같이 울었어."
아빠는 눈물이 많았지만, 엄마는 외할머니 돌아가실 때도 눈물 한 방울 안보였다. 그런 엄마가 울었다니 마음이 흔들리긴 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엄마의 안타까움과 내 삶은 별개였다. 냉정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빠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몰라 몰라. 나 일해야 돼. 날 아직 차요. 아빠 들어가!"
"그래. 정팔이 사료 잘 챙겨주고!"
자취집으로 운전하고 오는 내내 생각했다. 어떤 날에는 엄마 얘기를 들어줘야 하나. 좀 좋게 헤어진 구 애인들 목록을 떠올리다가 접었다. 낮에는 학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방송국 작가 역할 프리랜서로 일하기 바빴다. 목표는 내 집 마련이었다. 집 장만이라는 큰 목표 하에 차 할부 값, 생활비, 저축, 뭐 각종 경조사 내다보면 투잡을 해야 조금 여유롭게 살 수 있다. 가뜩이나 출생인구수도 줄고 있고, 특히 사교육 국어강사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고 있다. 학원도 전보다 애들이 없었고 원장 선생님이 국어부를 철수하라고 하면 언제든 정리할 준비를 해야 했다.
엄마 아빠를 어떻게 포기시키지. 핸들을 주차장 방면으로 꺾으면서 생각했다. 팝송 멜로디에 맞춰 고개를 까딱였다. 남자 친구 대행. 미신. 미신?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조수석에 놨던 하얀 청첩장을 들었다. 당장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여주야.
"언니. 언니 진짜 결혼식 쫌 남기고... 진짜 죄송한데. 혹시 부케 받을 사람 정해졌죠?"
- 응 그치. 요새 다들 결혼 안 하려고 해서... 부케 받는 애 겨우 구했다.
"진짜 언니. 저 너무 너무 너무 급해서 그런데. 혹시 저 받을 수 있어요? 제가 원하는거다해드릴게요진짜네?네?"
매달렸다. 미신이라면 철석같이 믿는 엄마 아빠에게는 제격이었다. 부케를 받고 6개월 내에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못한다. 나는 그 저주 같은 미신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 ...그럼 축가 해줄래?
"언니. 저 학부생 때 뮤지컬 동아리였잖아요. 진짜 기깔나게 해 드릴게요. 네? 그 부케 받는 분한테 사람 하나 살린다 치고..."
- 또 어머니가 결혼하라고 하셔?
"네... 진짜 오늘도 잔소리 열 바가지는 듣다 왔어요."
일단 알겠어. 부케 받기로 한 친구한테 연락해보고 내일 점심까지 연락 줄게.
언니의 허락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변 친구들은 나처럼 일에 단단히 돌아버린 애들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결혼 안 하거나 별로 관심 없다고 해서, 축의금을 내러 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제발. 제발. 연주 언니! 전화를 끊고 집으로 올라가면서도 장문의 문자를 남겼다.
작전명! 부케 받고 6개월 내에 결혼 못하는(안 할 거지만) 저주에 걸리게 해 주세요! 엄마 아빠가 단념하게 해주세요!
🌸
이런 정장 차림은 오랜만이었다. 학원 출근할 때도 그냥 편한 면바지에 맨투맨. 아니면 부드러운 재질의 셔츠에 컨버스만 신고 다녔다. 뭐 막내작가 외주 일은 재택으로 하는 거여서 수면잠옷만 입고 타자를 쳐댔으니 이런 깔끔한 옷은 몇 달만에 입는지 모르겠다. 연주 언니는 식장 홀 입구에서 하객들을 받고 있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다. 예전에는 움직이기도 불편한 드레스 입고 신부가 신부대기실에 있었는데, 지금은 신랑과 함께 하객들을 받고 있었다.
"언니!"
"여주야!"
연주언니는 귀인이었다. 대학교 때 같은 동아리였단 이유로 둘도 없는 동생처럼 아껴줬다. 첫 번째 직장에서 같은 국어강사로 일했고, 따지자면 언니가 내 사수였다. 언니가 라디오 작가로 전향한 후 작가 외주 일을 소개해줬다. 월급만큼의 부수입은 다 언니 덕택에 올릴 수 있었다.
"언니 진짜 오늘 멋져. 완전 완전. 축가 끝내주게 준비했으니까 걱정 마."
"안 그래도 리허설 영상 보내준 거 봤어. 식장 직원분들이 조명 풀로 쏴주시겠대."
"오케오케. 아 근데 언니 식순 보니까 축가 한 팀 더 있던데?"
나름 긴장됐다. 학부생 때 뮤지컬 동아리 회장도 했었고 노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공연 올리기의 달인. 일명 공달 김여주였다. 축가가 우리 팀 하나인 줄 알았는데 다른 팀도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신랑 측 친구들이었는데, 연주 언니의 남편은 방송사 피디였다. 작가와 피디의 만남이라 온갖 방송사 사람들이 왔는데 특히 신랑측 축가팀은 피디 모임이라고 했다. 질 수 없었다. 프리랜서지만 (명예) 방송작가로서 남자 피디팀한테 질 순 없지. 경쟁심이 불탔다.
"응. 노래 부르고 춤춘다는데? 저쪽팀이셔."
"어디?"
"저기."
검은 정장 차림의 무리. 신랑 쪽에 우르르 서있는 남자 4명이 보였다. 키도 훤칠하고 슬쩍슬쩍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이는 얼굴이 괜찮았다. 그중 가장 키가 큰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쪽도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 나는 눈을 더 땡그랗게 뜨고 "뭘 보세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쪽은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뭐지? 저 여유. 인중이 갑자기 간지러워지면서, 위기감이 느껴졌다. 퍼포먼스 하면 김여주. 김여주 하면 퍼포먼스다. 질 수 없다.
- 여주야 우리 옷 다 갈아입었다! 축가팀 대기실로 와 ㄱㄱ
오늘을 위해 예전 동아리원들도 모였다. 다들 직장인이라 평일엔 연습하고, 주말도 반납하고 축가 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나를 시집 종용해서 구해주라며 1차 매달렸고, 연습과 식비는 전부 내가 대겠다며 2차로 매달렸고, 마지막으로 공연비 10만 원씩 따로 챙겨주겠다고 했다. 자본이 낳은 괴물들은 모두 오케이 싸인을 때렸다. 인맥왕 연주 언니답게 결혼식장은 붐볐다. 인산인해 속에서 비 사이로 막가 대신 사람 사이로 막가 권법을 썼다. 차마 결혼식장에 뛸 순 없어서 경보로 와다다 걸어갔다.
"얘들아. 신랑 측도 노래하고 춤춘단다."
"...씨발. 이겨야지."
친구끼리는 닮는다고 했다. 자낳괴인 친구들은 눈에 불을 켰다. 이제 공연비는 차치하고, 그들보다 더 멋진 공연 더 웃기고 보람찬 축가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승부욕이 불탔다. 식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로비의 웅성거림은 잦아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거북목과 터널 증후군에 시달리다가 오랜만에 공연을 올린다고 하니 떨려했다.
"... 개 떨려."
"나도..."
"이거 잘해라. 부케도 이따 놓치지 말고 받아라."
눈물 나오는 우정이었다. 끝나고 밥이라도 정말 사야지. 예식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대기실에는 사회자의 장내 정리 멘트가 들려왔다. 점차 조용해지고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만 들렸다. 신랑 신부 동시 입장과 편지 읽기, 그리고 첫 번째 신랑 측 축가팀이 올라왔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갖춰입은 정장과 발랄한 노래를 부르며 랩까지 했다. 오 마이 갓.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까 눈이 마주친 키 큰 총각도 방방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식장 분위기는 훈훈하고 좋았다. 쫌 하는데...? 그들의 노래가 끝나갈 때쯤 예식장 직원분이 우리에게 고갯짓을 했다. 사회자의 멘트가 들렸다.
"네 신랑측 친구분들이 준비한 축가! 잘 봤습니다. 마치 답가처럼 신부 측 친구들이 축가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무려 대학생 시절 뮤지컬 동아리를 함께했던 친구들이라고 합니다! 박수 주세요."
식장 직원분께 부탁한 대로 조명이 꺼졌다.
선곡은 싸이의 연예인이었다. 프로 야근러들이 일은 안 하고 일주일 동안 머리 맞대고 고민한 선곡이었다. 그중 질투의 화신 10번 돌려본 친구가 낸 제안이었다. 너무 쳐지는 건 재미없고, 또 너무 최신 댄스곡이면 어른들이 어려워해. 저게 딱이야. 모두 동의했다.
나 포함 5명이 준비한 무대다. 두 명은 미리 객석에 앉혀놨다. 친구1, 2가 반주에 맞춰 걸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마이크를 한 번 돌리고 랩 파트 때 내가 출격했다. 웨딩 로드를 누비며 맞춘 안무를 선보였다. 점점 연주 언니와 신랑분 쪽으로 가까워졌다. 즐겁다는듯 허리를 꺾어대며 웃고 있었다. 곡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아까 신랑측 축가팀 쪽을 보니 일어나서 환호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가 식장을 압도할 줄 알았다. 학원에 출퇴근하며 억눌렀던 무대체질을 터뜨렸다. 연주언니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연주언니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췄다. 닭날개 춤을 추며 언니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언니네 어머님의 입을 가리셨다. 뿔뿔이 흩어져있던 애들이 모였다. 셋. 둘. 하나.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줄게요! 연습하면서 수백 번도 들었는데 오늘따라 더 울컥했다. 우리는 연주 언니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안무를 췄다. 신랑분 몰래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신랑이 눈물이 고이건 말건 연주언니는 열창했다. 역시 언니도 무대체질이 맞네, 생각하면서 마지막 안무로 무릎 꿇는 걸로 끝냈다. 박수갈채와 함께 우리는 퇴장했다. 양가 어르신 인사를 끝내고 식의 끝을 알렸다. 축가 이후로 벅찬 마음과 언니가 웨딩로드를 나가는 모습 때문에 괜히 울컥했다. 나뿐만 아니라 애들도 연주언니 감정에 동화됐는지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다음은 사진 촬영 시간입니다! 가족분들 먼저 찍을게요."
나는 구겨진 슬랙스 바지자락을 쫙쫙 폈다. 오랜만에 옷장에서 꺼냈더니 나프탈렌 냄새가 좀 나는 것 같긴 하다. 연주 언니는 안 우는데 신랑분이 울고 계셨다.
"어우 자기 그만 울어!"
타박하는 연주 언니부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신랑분까지 재밌는 풍경이었다. 가족과 친척부터 찍고 그다음 친구, 그다음은 전체였다.
"씁. 신부 측 하객 다섯 분만 신랑분쪽으로 와주실래요?"
"..."
"그 제일 끝에 계신 축가 하신 다섯 분! 옆으로 옮겨주세요!"
이럴 수가. 사진 기사분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신랑 쪽 친구들이 서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껴있으려니 어색했다. 사진 기사님은 카메라로 이리저리 보더니 대형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셨다.
"자자 이 여성분이 키가 크시네. 그럼 제일 뒤에 이 남자분이랑 서주시고, 그 앞줄은..."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기사님이 어깨를 잡고 아예 뒷줄로 옮겼다. 하필 그 축가팀 남자였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입구에서 눈싸움, 기싸움 했던 사람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몰라도) 어쨌든 축가는 누가 봐도 우리가 더 잘했으니 이제 상관없지만 괜히 혼자 견제한 게 티 났을까 봐 머쓱했다.
"자 스읍. 한 번 볼게요 잠깐만요! 다들 자세 얼음. 해주시고!"
"...아까 축가 잘 봤어요."
"아? 네네. 감사합니다... 그쪽팀도 잘하시더라고요."
"저는... 김영훈이에요."
아 네. 갑자기 자기 감상과 이름을 말하는 남자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다. 일단 첫째로 얼굴이 예쁜 총각이었고, 둘째로 눈이 맑았다. 뭐 방송국 쪽 피디랬나. 알아두면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 나도 인사를 보탰다.
"아 저는 김여주예요."
"여주. 여주요. 넵..."
내 이름을 두 번 되뇌더니 김영훈은 앞을 봤다. 사진 기사님이 자리로 돌아가고 셔터를 몇 번 눌렀다. 김치. 치즈. 그리고 다들 핸드폰으로 후레쉬 켜주세요! 그래야 더 예쁘게 나옵니다! 몇 번의 셔터음이 더 터지고 사진 촬영은 끝났다. 아까는 긴장해서 몰랐는데 허기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아직 진짜가 안 나왔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 최종 순서.
"다음 부케 받으실 분 나와주세요!"
"저요!!!! 저요 접니다!"
"아이고. 목청 크시네... 신부 뒤쪽으로 서주세요."
"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이미 친구 네 명은 동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밤쯤 엄마와 아빠가 있는 가족 단톡에 전송할 거다. 육 개월 동안 노력할게(구라). 근데도 못하면 그냥 결혼 못하는 거야(진심).
"하나, 둘, 셋! 던지세요!"
연주 언니가 등지고 뒤로 살포시 부케를 던졌다. 나는 야구장에서 홈런볼 잡으려고 방방 뛰는 사람처럼 낚아챘다. 꽃은 버리기 아까우니까 집 가서 드라이플라워로 해야지.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사진 촬영 끝났습니다! 이제 식당 가서 드시면 돼요!"
꽃은 메고 있는 크로스백에 욱여넣고 식당으로 달렸다. 애들도 긴장해서 어제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 원래 결혼식 식당 술이 제일 잘 넘어가는 법이었다. 한 세 접시 정도 퍼먹고 맥주까지 마시니 좀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여주야."
"왜."
"세상에 꽃미남 총각들 어디 갔나 했더니. 방송국에 다 몰려있는갑네."
"왜?"
"저기 봐봐라."
아까 남자 축가팀 살짝 봤을 때도 꽤 준수한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들끼리 모여있으니까 꽃다발 효과인지 더 잘생겨 보이긴 했다. 친구 하나의 말을 기점으로 애들이 다 저쪽을 쳐다봤다. 시선에는 무게가 있다. 우리가 다 그쪽을 보자 그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 한 명이 이쪽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연주 누나 친구분들이시죠? 아까 축가 하신!"
"네네."
꽤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아까 눈싸움했던 김영훈 씨와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기억을 되짚어보니 아까 랩을 했던 사람이었던 거 같기도 했다.
"식사 다 끝나고 하객 친구들 몇 명이랑 뒤풀이 갈 건데 오실래요? 신랑 신부도 신행 가기 전에 비행기 시간 남는다고 잠깐 들린대요!"
"...어..."
남자가 내쪽 앞에 서서 물어봤기 때문에 내가 대답해야 했다. 사실 애들한테 십만 원씩 빨리 쏴주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신발 앞코로 내 종아리를 툭툭 쳤다. 이건 명백한 승낙의 의사였다. 그래 뭐 나 잠깐 갔다가 빠지면 되니까.
"네 갈게요."
"넵 그럼 이따 봬요!"
자고로 결혼식이란 주인공들을 축하해주러 온 자리기도 하지만, 주인공 친구들에게는 짝 탐색전을 벌이거나 인맥을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써도 이용된다. 이 상황은 대부분 전자에 해당했다. 애들은 이따 뒤풀이 간다며 밥을 먹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지만, 난 어차피 앉아만 있다가 바로 올 거였다. 세접시를 더 먹고 바지 지퍼를 살짝 내리고 나서야 식사를 끝냈다.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뒷풀이 장소로 향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연주 언니가 로비에 서있었다.
"언니!"
"여주야! 오늘 진짜 잘했어. 넘 고마워. 신랑도 재밌고 즐거웠대."
"됐어. 축가 하기 전에 먼저 선물부터 주는 사람이 어딨어."
연주 언니가 사적인 자리든 공적인 자리든 인기 많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축가 하는 친구들이 평소 갖고 싶다고 한 선물을 미리 다 보냈다. 결혼 준비로 정신없었을 텐데 축가 답례라며 챙겨줘서 더 눈물샘을 자극했다. 시도 때도 없이 벅차오르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학원 애들이 국어 13점 받아와도 이렇게 울컥하진 않았는데. 혼자 입술을 씹으며 울음을 삼켜냈다.
🌸
뒤풀이는 시끄럽다.
"예!"
"짠!"
그리고 복잡하다.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하려고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대기 타고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연주 언니와 신랑분이 재밌게 노세요! 하고 1차를 결제하고 갈 때 슬쩍 자리를 뜨려다 걸렸다. 김여주 어디가. 나? 화장실이지. 또 집 도망갈라 하지. 안돼. 그러다가 애들한테 딱 걸렸다. 그래서 소맥 몇 잔 마시니 이미 분위기에 전염됐다. 수십 명의 사람이 테이블을 섞어 앉고 혀가 꼬부라진 말로 대화했다. 나는 술을 빠르게 마시고, 확 취했다가 또 빨리 깨는 편이었다. 잠깐 구석진 곳에서 기둥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 어."
"... 아. 깨셨어요?"
김영훈 씨가 눈앞에 있었다. 가장 구석진 테이블이어서, 너무 취한 사람은 자리를 떠서 나갔고 아직 주량을 덜 채운 사람은 중앙 테이블로 모였다. 고로 이 구석진 자리엔 나와 김영훈뿐이었다.
"좀 취하셨나 봐요."
"아... 네. 좀 쉬었다가 마시려고요."
김영훈도 적게 마신 건 아닌 듯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나도 대충 핸드폰 액정에 비춰보니 양 볼이 빨갰다. 괜히 어색해서 앞에 있는 맥주를 땄다.
"맥주는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따라드릴게요!"
관계를 정리해보자면 연주 언니 신랑분의 직장동료이자 친구. 그니까 친구의 친구의 친구다. 세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방송쪽 사람이니까 방송 얘기로 시작했다.
"형부랑 같이 일하신다고요?"
"네. 피디...로 입사했어요."
"아하. 저는 학원에서 국어 가르쳐요. 연주언니 도와서 작가 외주 일도 하고요."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이야기를 하나씩 더하고 무르익은 술자리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며 할 얘긴 많았다.
"아 진짜요? 저 그거 건당 프리뷰 외주 했었는데!"
"진짜요? 저 그거 막 입사하자마자 맡았던 거였어요..."
김영훈은 낯을 가리는 거 같긴 하지만 대화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이상하게 빻은 말을 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런 말 할 거 같이 안 생겼음) 웃음 코드도 어느 정도 맞았다.
"강아지랑 같이 사세요?"
"네. 보리라고... 귀엽죠."
"완전 하얗고 귀여워요! 저도 길냥이 챙겨주는데."
맥주로 시작한 수다는 소맥으로 점차 퍼져갔다. 어느 정도 취기도 가셨고 맥주만 먹기에는 배불렀다. 내일 어차피 출근도 안하는데 꽁짜술은 끝까지 달려야했다. 쇠숟가락 새거를 꺼냈다. 황금비율로 소맥을 말아서 잔에 팍팍 꽂았다. 김영훈도 어느정도 취기가 내려앉았는지 잔을 부딪히는 속도가 빨라졌다. 슬쩍 중앙 테이블 쪽을 보니 이미 친구들은 맘에 드는 사람 옆자리를 꿰찬 듯싶었다. 역시 어디든 뒤풀이가 진짜 구만.
"근데에... 있잖아요. 저어... 뭐 하나 물어, 봐두 돼요?"
"뭐요? 안아프게 살살 무셈요."
김영훈의 발음이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그럴 법도 한 게 둘이서 소주와 맥주를 오질라게 작살냈다. 두 시간 내내 둘이서 수다 떠니 편했다. 국적, 성별, 나이를 떠나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요즘 같이 각박한 시대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었다. 김영훈은 내 개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살풋 웃다가 입을 열었다.
"그... 부케 받으셨, 잖. 아요오."
"예예. 글쵸,"
"...그니까아."
이거 약간 아빠 말투인데. 어디선가 익숙하다 했더니 살짝 뜸을 들이고 말꼬리를 늘이는 게 딱 아빠 어조였다.
"...그러니까요오."
"어우! 왤케 뜸 들여요!"
김영훈은 소맥만 연거푸 들이키고 말기를 반복하기만 하고, 정작 중요한 본론은 말 안 했다. 그러다가 젓가락으로 자기 앞접시에 있는 마카로니를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물었다. 시선은 아래로 내리깐 상태여서 길쭉한 속눈썹이 돋보였다.
"...결혼 하시려는 거겠죠?"
"예?"
"...부케도 받으셨으니까... 아무래도 그러시겠죠."
뭐야 혼잣말이야 묻는 거야. 헷갈릴 정도로 아주 작게 말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결혼하실 분이 있으니까... 받으신 거겠..죠오. 그렇죠...?"
아이들을 가르치면 발달되는 여러 감각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 표현법이 미숙해서 원하는 답이 있는데 빙빙 돌려서 말을 한다거나, 뜸을 심각하게 들이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문제집을 다 풀어올 때까지 원하는 답을 부러 주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성인 남성이었고 김영훈이었다. 다시 한껏 달아오른 양 볼과 청순한 얼굴까지 겸비한 건장한 남성이 묻는다. 저 질문의 저의는 정확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맥락을 읽어야 해요 그래야 문제를 빨리 풀어요!"를 실감했다.
"영훈 씨."
"...네에."
나는 엉덩이를 떼고 자리를 옮겼다. 마주 앉았던 자리에서 바로 옆자리로 옮겼다. 앞접시 쪽으로 깔렸던 눈이 옆으로 돌아갔고 이내 내쪽을 바라봤다. 나는 올라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물었다.
"저한테 반했어요?"
글의 초장에 설의법이 등장하면 관심을 끈다. 관계의 초입에는 파격적인 질문이 때론 필요했다.
김영훈은 안 그래도 큰 두 눈을 더 크게 떴다. 눈을 꿈뻑꿈뻑. 점점 눈이 떠지는 속도가 더뎌지더니 테이블에 박을 듯 말듯한 몸이 완벽하게 내쪽으로 기울어졌다. 웅얼거리는 입술과 꼭 감긴 두 눈. 발그레한 볼과 하얀 손끝에 붉게 물든 것. 직접적인 대답은 없었지만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애들이 내 테이블 쪽으로 왔다. 이만 가자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입술에 검지를 대고 반대쪽 손으로 내 어깨에 기댄 김영훈의 얼굴을 가리켰다. 애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엄마 아빠를 꺾으려고 시작한 부케 미신이, 어쩌면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 축가 장면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 결혼식 축가씬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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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헐 ㅆ..ㅂ.... 그래서 나랑 결혼 할거라고????????!!!?!!!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꺄아아 ♡
작가님 방에 가둬두고 치킨시켜주고 글만쓰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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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친 영훈아 진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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