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경주남산 답사길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 대한항공 기내지인 moning calm 에 연재했던 내용입니다.
경주 남산
그림을 그리다보니 시각적형태의 이미지로 대상을 파악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지도를 보는 방법도 형태의 이미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우리나라의 지형을 보면 대륙으로부터 바다와 맞닿아있는 반도 형태를 이루고 있다 .
뾰족한 부분으로 전극이 모이는 피뢰침의 속성처럼 문화도 이런 극지로 모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대륙의 문화가 우리한반도로 응집하며 우리의 미의식으로 재생산해내어 뚜렷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어 정점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가 더 우수하고 아닌가를 가려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문화유적들을 답사하다 보면 뛰어난 조형성과 비례미 정교한 세련미와 더불어 인간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는 완벽함을 보고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신라의 불교 유적들을 살펴보다보면 불교미술의 가장 정점에 우리의 미술품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특히 남산에 구현해놓은 불국토의 이상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경주 남산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에 유적과 전설이 산재해 있으니 그 자체를 하나의 박물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자연경관도 변화무쌍한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어 신라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 승화된 곳이다.
경주 서남산 ; 삼능골로 부터 금오산에 이르는 남산의 서쪽능선 목판, 119x30.5cm
배리삼존불상 목판, 16.7x29cm
선각 육존불상 목판, 16.7x29cm
약수골 마애여래입상 목판, 16.7x29cm
골
골
바위마다
신이 내리고
육신과 의식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혼의소리를 듣는다.
보이는 것 보다 더 많이 보며
듣는 것 보다 더 많이 귀 기울여 듣는다.
청산에 넋이 있어
남산의 자태는 기운을 더하고
선인들의 종교적 정렬이
이처럼 성스러울까?
전에 남산을 오르며 감상을 적은 글로 그때의 감동을 상기해 본다. 그리고 이번에 남산을 찾는 것은 6-7년 만의 일이다.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여 기차를 타고 경주역에 내리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경주에 오면 자주 찾는 곳이 삼릉 앞의 우리밀 칼국수집이 있다. 이 식당은 남산에 올 때는 꼭 찾는 집으로 그 맛이 일품이다. 지금은 그 주위로 많은 식당들이 생겨나 한가로운 옛 분위기는 없지만 칼국수 맛에서는 변화가 없는 듯하다. 시장이 반찬인지 맛있게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우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리 삼존 석불로 향한다.
몇 번을 올라도 남산에 있는 모든 유적들을 모두 보지는 못한다. 워낙 많은 유적들이 골짜기마다 산재해 있다 보니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배리 삼존석불은 풍만하고 단아하며 입가의 미소가 빼어나 의식의 구차스러운 속기를 깨끗이 정화시켜주는 듯 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를 드리게 된다.
지금은 풍화를 방지하기위해 보호각을 지어 자연광선에서 보여지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은 볼 수가 없지만 그래도 항상 자리를 지키고 나를 맞아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남산 초입의 삼릉에 접어들면 소나무 숲의 범상치 않는 풍경에 혼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이 소나무 숲은 천년고도의 역사를 말해주듯 그 자태가 정말 아름답다. 각자의 빼어난 모습으로 빽빽히 들어선 소나무들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어서 우리나라 소나무 숲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번 봄에 찾았을 때는 소나무 숲 사이의 진달래와 더불어 그 경관을 자랑하더니 오늘은 소한을 앞둔 겨울의 한복판에 소나무의 푸르름만이 기상을 뽐내고 있다.
여기서부터 오르는 길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는지 반질반질하게 길이 나있다.
오르내리며 만나는 참배객과 등산객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새해 인사를 한다. 자연에 나오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풍요로워 지나보다.
이 삼릉 계곡은 냉골이라고도 불리어 사시사철 계곡물이 끊이지를 않는다.
삼릉계곡으로 부터 금오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의연한 자태와 옷 주름의 여민 매듭들이 정교하게 표현된 결가부좌한 목 없는 석불좌상, 높이 솟아있는 돌기둥위에 입술 가에 붉은 기운이 있어 엷은 미소가 더욱 신비로운 관음 보살상, 넓적한 바위 암벽에 선각으로 처리한 육존불상, 그리고 조금은 어설픈 듯 바위면에 새긴 선각 여래좌상과 얼굴에 시멘트로 보수해서 본얼굴을 잊어버린 석불좌상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 가파른 길을 더 오르다 보면 남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상선암이 있어 이곳에서 지친다리를 쉰다. 보통 때는 여기서 물을 받아 갈증을 해소하고 가나 오늘은 물이 얼어 마실 수가 없다 한다. 아래에서 물을 받아왔어야 하는데 상선암을 믿고 그냥 올라왔으니 이런 낭패가 없다. 이를 안타갑게 지켜보던 등산객이 다가와 자기 물병을 건넨다. 여간 고맙지가 않아 인사를 하고 새해인사도 함께 건넨다.
상선암 바로왼쪽으로 가파른 벼랑위에 얼굴은 환조에 가까운 돋을새김으로 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선각에 가깝게 처리한 석가여래 대불좌상이 있다. 이 석가모니불앞으로는 널찍한 공간이 있어 참배객들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이곳에 오르니 그동안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배리 들판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길을 조금만 더 오르면 옛부터 상사병을 낫게하고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신령스런 상사암이 있다. 지금도 소원을 비는 사람이 많은지 네모진 감실 속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평탄한 길을 오르면 금오산 정상에 다다른다. 사방을 둘러보기에는 안성맞춤인 듯 보이나 잡풀들로 인해 시야가 가려 시원스런 조망은 어렵다.
금오산 정상에서 약수골로 내려서면 남산의 마애불중 규모가 가장 큰 마애불이 자리한다.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하여 따로 붙여 만든 불상인데 지금은 불두는 없어지고 몸체만 웅장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금오산 정상 아래에 남산횡단도로를 따라가다 용장사지 안내판이 나온다. 이 이정표를 따라 바위길을 조금 내려가면 용장골 정상의 넓적한 바위를 기단으로 한 삼층석탑과 탑의 절벽아래에는 둥근 탑 모양의 3륜 대좌위에 목이 잘려나가고 몸체만 남아있는 석불좌상과 그 우측 옆으로 마애불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지척인 곳에 남산에서는 제일 규모가 컷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장사 절터가 있다. 이 사지는 잡풀이 무성하여 쉽게 알아 볼 수는 없으나 돌로 축대를 쌓은 모습에서 옛 절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칩거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라 전해지는 금오신화를 저술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용장사지에서 시누대숲을 따라 한참을 내려 오다보면 고위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 길을 따라 지루하다 싶게 오른다. 동지를 갓 지난 한겨울이라 해는 짧아 벌써 어두워 지려 한다. 한참을 인적 없는 길을 오르다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나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날이 어둡기 전에 빨리 내려가야 한다며 걱정을 해준다. 조바심을 내며 종종걸음으로 급히 산을 오른다. 길을 따라 얼마 오르지 않으니 갑자기 시야가 확트이며 경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봉화골 정상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신선암 마애불은 벼랑위 작은 길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들면 험한 벼랑위에 얕은 감실처럼 돌을 파내어 광배를 만들고 환조에 가까운 돋을새김으로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이 보살상 앞은 겨우 2-3명이 앉을 만큼 좁은 공간이지만 여기에 않으니 바로 발아래는 낭떠러지 밑에 칠불암이 보이고 멀리 토함산과 낭산을 비롯한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얼마나 장엄한지 한참을 넋을 잃고 앉아 있게 된다. 이 보살상이 구름위에 떠있는 듯 이곳이 바로 선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장소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불상을 조성한 선인들의 지혜로움이 한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어찌 이리 장엄한 부처의 용화세계를 유감없이 표현했을까 감격에 겨워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날이 어두워짐을 탓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여기서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조심스럽게 내려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험하다.
칠불암은 신선암 바로 밑의 커다란 바위에 삼존불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앞에 네면에 불상이 조각된 돌기둥이 솟아 있다. 본존좌상은 위엄과 자비가 넘치는 힘찬 모습으로 남산 불상조각의 으뜸이다. 이 불상 앞에 서니 옷깃이 여며지고 경건한 마음이 들어 예불하는 사람들의 옆에서 예배를 드린다.
봉화골을 따라 내려와 마을이 가까워지니 날이 제법 어둑어둑해진다. 마을 한가운데 상피사지 삼층석탑 두기가 있다 이탑들의 자태는 매우 안정되고 장중하며 비례나 균형이 뛰어나신라 최성기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듯하다.
이제 날은 완전히 어두워 서출지는 보지 못하겠구나 생각하고 내려오다 보니 서출지에 야간 조명시설을 새로 하여서 또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연못과 어울어진 이요당(二樂堂) 이라는 정자가 연못에 떠있는 듯 아름답다.
경주 동남산 : 신선암 마애불로부터 보리사,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에 이르는 남산의 동쪽 능선
목판, 194x60.7cm
첫댓글 판화 맞나요? 감탄.
이런것으로 보니 또한 새로웁네요....
와~!! 멋지십니다.
경주 남산의 불상을 판화로 보기에는 첨입니다. 고맙습니다... 판화 자료 있으면 좀 더 올려 주시지요?
어찌 사진보다 더 자세하게 표현을 하시었는지......
정말 판화란 말인가요?? ^ ^넘 멋져요~
우와..... 굉장해요.... 진짜 멋지네요~~~ ^^
새로운 시각의 남산... 너무 멋집니다. 멋지게 그려내시는 김억님도 멋지세용(^^)
남산을 이렇게도 만날 수 있구나~! 감사합니다.
귀한 작품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