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못잊어 漢陽城東枉尋里-한양성 동쪽 왕심리에는 家家門前種水芹-집집마다 문 앞에 미나리를 심는다. 靑靑如茨復如蒲-푸릇푸릇 납가세도 같고 부들도 같은데 獨耐寒天白雪雰-흰 눈 흩날리는 추운 겨울 홀로 견뎌내네. 城裡朱門二月葅-서울의 대갓집들 이월에 겉절이 만드나니 軟芹如絲兼蘖葷-가늘고 연한 미나리를 고춧가루로 버무려 分院砂鐘鴨卵白-분원 사기종지와 오리 알처럼 하얀 그릇에 盛來先令口流芬-담아내 오면 입에 침이 먼저 돌 정도. 饌固爲美肴尤嘉-반찬으로도 좋고 술안주론 더욱 훌륭해서 絶勝雉臡與羊醺-꿩젓.양고기보다 훨씬 낫고 말고. 又有別味號剛回-또 별미로 미나리강회가 있으니 熟芹生蔥各等分-데친 미나리와 생파를 적당히 나누어, 回回束得拇指大-엄지손가락 크기로 둘둘 묶어선 啑來魚臡椒醬熅-저민 생선이나 고기 넣어 초장에 찍어 먹네. 寸切油炒殘支茗-남은 줄기는 잘게 잘라 기름에 볶아 且合春晝汨董饙-봄날 점심 비빔밥에 넣어 먹기 좋구나. 梨峴朝市百種菜-배오개 시장에 채소 장사 다 있지만 獨有芹商錢滿桾-오로지 미나리 장사만 치마에 돈이 가득하다. 千古豪興李白沙-천고의 호방한 백사 이항복은 謫去高歌鐵嶺雲-귀양 가면서 철령 높은 구름을 노래했던 분. 此翁豈是飮食人-이분이 어찌 식도락가랴만 尙億京芹北海濆-북해 가에서 서울 미나리를 그리워했다네. 심노숭(沈魯崇)
돌미나리와 꼬막무침은 환상의 조화다 !!
어릴 때 고향 기억이다 부잣집이 있었는데 봄만 되면 사람들을 시켜 들에 있는 “들미나리”캐는 것이 일이었다
이 부자는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미나리”가 특히 “돌미나리(들미나리)”가 혈압을 낮추는데 좋은 약이라 하여 “즙을 내어 먹고 나물로 먹고”하던 기억이 있다.
미나리는 보통사람이 나물로 먹어도 좋은 야채다 식성(食性)이 다르지만 1월~5월까지 돌미나리 나물과 꼬막무침은 좋은 궁합이다.
아래는 미나리 내용들이다.
▶"미나리는 아무 데나 심어도 잘 자란단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어."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한 대사다.
▶미나리는 하천이나 계곡 변두리, 논과 같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여러 해 동안 줄기와 잎을 피운다.
▶한국인의 미나리 사랑은 꽤 오래됐다.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은 “조선부(朝鮮賦)”라는 글에서 “개성 사람들은 모두 집근처의 작은 논에 미나리를 심는다”고 했다.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은 근전(芹田미나리밭)을 운영했다. 조선 인조 때의 이민구(李敏求)의 글에는 “진흙 속 미나리와 들의 쑥에도 다 생기 돌고” “미나리논 진흙을 봄 제비가 물어 간다”고 노래했다.
▶조선 세종때의 학자인 서거정(徐居正)은 “주방의 여덟 가지 야채를 노래함(廚蔬八詠)”이라는 글에서 “미나리는 예로부터 좋은 나물이라(芹子由來美) 아침 밥상에 국거리도 좋다(晨盤亦可羹)“라고 찬미했다.
▶미나리는 차가운 물에서도 얼음 밑에서도 자란다. “어름이 꽝꽝 언 논 속에서도 새파랗게 새싹이 난다. 미나리는 가난한 시절 우리를 살찌운 눈물의 식재료였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미나리는 옛날부터 봄을 상징하는 채소로 즐겼다 고려 때는 “근저(芹菹)”라하여 미나리 김치를 종묘(宗廟)제상에도 올린 역사가 오랜 식품이다. ※근저(芹菹)-미나리로 담근 김치.
▶3월이 제철인 미나리는 끓는 소금물에 데쳐서 먹으면 더 좋다. 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증가한다. (2024.03.14. 조선일보)
▶미나리는 고난을 겪어도 꺾이거나 잘려지지 않는 조선의 야채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는 채소다. 중금속을 흡수해 강물을 맑게 해주는 정화제 역할을 한다
▶미나리는 “물에서 자라는 나리”라는 뜻이 있는 풀이다. 1527년 국어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처음 “미나리”로 표기되어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미나리는 식물체 내에 중금속이나 영양염류를 흡수할 수 있는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있다. 흡수된 중금속 대부분 미나리 뿌리에 저장돼 미나리 주변 환경은 반대로 깨끗해진다. 그래서 미나리는 오염된 하천을 맑게 해주는 정화식물로 이용되고 있다.
미나리를 먹으면 사람 몸에서 쉽게 배출되지 않는 중금속도 미나리가 흡수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최새미 식물 칼럼니스트)
▶미나리꽝이라는 말이 뭘까? 미나리꽝 말고는 “꽝”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단어는 없다. 국어사전(辭典)에는 “미나리꽝”을 “미나리를 심는 논. 땅이 걸고 물이 많이 괴는 곳이 좋다.”라 고되어 있다
▶“미나리와 홍어를 같이 먹는다” 홍어 무침에 미나리를 같이 먹으면 금상처마다
▶조선 19대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는 장희빈으로 인해 폐서인(廢庶人)이된다. 그 후로 저작거리에는 “장다리는 한철이고 미나리는 사철일세”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여기서 미나리는 민씨였던 인현왕후를 가리킨다 장다리는 장희빈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노래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사철이라던 “미나리 인현왕후”는 왕후의 직책을 돼 찾았다. 한철이라던 “장다리 장희빈”은 사약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재배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냥 심어두면 알아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먹고 싶은 만큼 잘라다가 먹어도 금새 자라나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부터 미나리를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열전”에 “근저(芹菹)”라는 명칭의 음식이 종묘 제사상에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음식이 미나리로 만든 김치다.
▶미나리는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거나 연회에 차려진 고급음식이었다. 조선시대 연회에 사용된 미나리강회의 재료를 보면 미나리5단, 파, 돼지 다리, 잣 등이 쓰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하다.
예부터 미나리는 음식의 재료이면서 약으로도 사용됐다. 세종때 간행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한의학책에는 미나리는 성미(性味)가 달고(甘) 맵고(辛) 서늘하여(凉) 열(熱)을 내리고 부기를 가라앉히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열을 내리는 음식으로 민가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 주고 머리를 맑게 해 주며, 술독을 제거하고 대소장(大小腸)을 잘 통하게 하고, 황달, 부인병 효과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옛 문헌 가운데 미나리(芹) 기록이 처음 나오는 책은 시가(詩歌)를 모은 책 시경(詩經)이다. 고대 중국 노(魯)나라 시(詩)들을 모은 노송(魯頌)이라는 책에서
반수(泮水)라는 시가(詩歌)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근(芹)”은 미나리를 뜻한다. 思樂泮水-즐거워라, 반궁(泮宮)의 물가에서 薄采其芹-미나리를 캐노라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이아(爾雅)”에는 미나리를 초규(楚葵) 근채(芹菜)라고 적고 있다.
▶중국 최초의 약물학 책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미나리의 이름이 “수근(水斳)”과 “수영(水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송(宋)나라 때 한의학자인 손사막(孫思邈)이 펴낸 천금익방(千金翼方)에 미나리 이름이 “수근(水芹)”으로 되어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수근(水芹)을 표준 명으로 쓰고 있다.
▶중국 송(宋)나라 때 유명한 의사며 본초학자 당신미(唐愼微)가 펴낸 “증류본초(證類本草)와 한의학자인 한보승(韓保昇)의 “촉본초(蜀本草)”에 미나리의 특징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이 길어서 여기서는 생략한다)
▶현대 약리학적으로도 미나리는 비타민 A, B1, B2, C 가 다량으로 함유되어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단백질, 철분, 칼슘, 인 등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하여 혈액을 정화시키고 갈증을 없애고 열을 잘 내려준다.
▶미나리는 해독작용을 잘한다 복어탕에 미나리를 넣는 것도 복어의 독을 중화시키기 위한 우리 음식문화의 지혜다.
▶미나리는 고혈압에 효과다
▶서울 동대문 밖 특히 왕십리 주변은 조선시대 연암집(燕巖集)에도 기록이 여럿 남아 있을 정도로 미나리 밭으로 유명했다. “冬至(동지) 섣달 어름이 꽝꽝 어른 논 속에서도 새파랗게 새싹이 난 미나리를 캐내는 것은 서울이 안이고는 그 신선(生新)한 맛을 보지 못할 것이다“ (1929년 9월 27일 동아일보)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