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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이가 전날 선생님 도우미 할 때 기록한 내용:
1) 오늘 있었던 일: 수행(과학) 수행(체육) 수행(역사) 수행(국어)
2) 오늘 가장 재미있었던 일: 장우현이 역사 발표를 피하게 되어 하느님께 영어를 쓰며 감사를 표했다.
3) 오늘 가장 다행이었던 일: 건강했다.
p.s.
1) 고달픈 주간이구나... 수행 수행 수행 반복에서 느껴지는 고달픔.
2) 장우현이 쓴 영어가 뭔지 궁금해서 Thanks God 뭐 이런 건가 물어봤는데 할렐루야라고 한다.
3) 그렇지! (오늘은 아픈 아이들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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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수업 첫머리 5분 독서 시간에 지난 날들보다 빠르게 조용해졌다(= 빠르게 잘생겨졌다). 책 읽는 잘생긴 자들도 많아졌다.
- 명진이가 떠드는 (하)주원의 등짝에 강스매시를 날리는 것을 보았다. 주원이가 조용해졌다.
- '국어 쌤이 보면 안 되는 시'를 하원이가 발표했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시다. 졸린데 갑자기 시 쓰라고 해서 귀찮고 졸린 학생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말하니 지호가 정말 나의 속마음과 같은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소 내가 자주 속마음과 다르게 비꼬아 말하곤 했나 보다. 그래서 이번에는 순수하게 말했다고 알려주었다.
- 지수는 시계 바늘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을 따라 여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시로 표현했다. 이사를 가서 멀어진 바람에 아침에 정신 없이 출근했는데 지수의 시에 큰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쫓기는 마음은 정말 중요한 것, 예쁜 것 등을 잘 보지 못하게 만든다.
- 민준이는 '시'라는 제목의 시에서 변 보는 소리, 조용히 시키는 소리 등을 인상적으로 써주었다. 시에 피드백을 해보라고 했더니 민서가 "딱 민준이 같은 시가 아니었나, 추잡하고... 불쾌하고..."라고 했다. (+그가 피드백을 하고 있는데 은성이가 끼어들어서 내가 "못생겼다."고 말해주었다.)
-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하기 규칙이 잘 지켜졌는지 돌아보았으면 해서 수업 피드백을 해보라고 했다. 민서가 '떠든 못생긴 아이들이 많았다'고 해서 바로 큰 공감의 "어!"를 해주었다. 게다가 아기 준수는 마치 유치원생처럼 갑자기 거울을 가서 보지를 않나, 민서는 갑자기 빈 자리에 가서 앉지를 않나...
-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하기 규칙을 강조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민준이가 "선생님, 저 무릎에 모기 물렸어요."라고 했다. ㅋㅋ -.-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하자고...)
- 은성이와 민서가 오늘 네 번이나 발표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아서 두 번 아니냐고 들어가라고 했더니 억울하다고 눈 크게 뜨고 팔짝팔짝 뛴다. --;; 뭘 발표했는지 말해보라니까 두 번째 혹은 세 번째까지는 기억을 하는데 점차 기억이 안 나는지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안달이다(세상 소중한 본인들의 발표 횟수). 옆에서 하원이는 덩달아 아까 자기가 두 번이라고 했으나 실은 세 번이라며 헛소리를 하길래 들어가라고 했고 그는 잘 들어갔다.
2. 308
- 민지 발표 중, '목표적 인간 vs. 욕망적 인간'을 이야기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할지(목표적 인간),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태도로 살지(욕망적 인간). 민지는 목표적 인간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도 있을 것 같아 질문해 보았다. 나는 학생 때 철저히 목표적 인간으로 살았고 그래서인지(운이 좋아서였던 것이 사실 크겠지만) 원하는 것을 많이 얻기는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너무 괴로워하며 살았다. 요새는 그냥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 귀한 일이고 사는 과정 자체에 의미와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목표가 아예 없는 것도 행복하지는 않은 일이므로 목표를 세워 몰입하되 이루지 못할까봐 걱정하거나 이루지 못했다고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원(이루지 못해도 괜찮음) vs. 욕심(이루지 못하면 괴로움) 구분하기. 원하되 욕심은 내려 놓기.
- 도훈이 발표에 대해 교림이는 많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고 아무튼 많은 것이 문제라고 세상 꼼꼼하게 지적했다. 피드백을 빙자한 깎아내리기 시전하심. ㅋㅋ
- 오늘 세 명 발표에서 공통적으로 '시간 속에 변하는 나'가 언급되어 흥미로웠다. '나는 변함'을 인식하고 있구나.
3. 309
- 진희가 탈진하지 않고 발표를 마무리해서 아이들이 기특해 했다. 그는 경찰이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빵 터졌다. 그래 진희야, 체력이 중요하지.
- 윤우가 발표 준비를 해서 발표를 했다. 그는 늘 엎드려 있어서 발표하지 않을까봐 염려가 되었는데 발표를 해서 너무 기특하다.
- 은성이, 혜성이 등 인상적인 발표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작품을 가지고 분석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반영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가 꽤 들어가는 작업인데 수고가 많았다. 덕분에 풍성한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4. 쉬는 시간
- 우리 반 뒤에 있는 참관록을 교무실에 제출해야 해서 쉬는 시간에 교실에 가봤더니 잠겨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5반 김)민준이가 지나가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문이 잠겨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열어드릴까요?"한다. ㅎㅎ 스윗해.
- (5반 김)민준이 보고 괜찮다고 하고 기다리는데 (우리 반 최)민준이가 와서 창문을 열고 뒷문 고리를 풀어서 열었다. --;; 출석부로 앞문 잠그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
5. 303
- 교실 밖에서 뛰어놀다 늦게 들어오는 학생이 다수... 그렇게 뛰어놀다 보면 목도 마르니 물 마시러 간다는 학생도 다수... 애들은 뛰어 놀고 물도 마셔야지... 그럼 그럼... 밖에서 뛰어놀고 물도 마시고... 오지 마 그냥...
- 책 준비도가 확 좋아졌다! 우와. 갑자기 무슨 각성의 계기라도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오... 오늘 3반 멋지다. 발표자 수도 많이 늘었다.
- 수업 첫머리 5분 독서에 틀게 된 음악(랜덤 재생 또는 썸네일 보고 선택함)이 오늘 대부분 holy하다... 뭔가 경건해지는데?
- 한준이가 책 읽는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조용히 하라고 외쳤다. 오... 멋지다. 그가 교실에 떨어진 쓰레기를 그냥 자연스럽게 주워 버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 줍는 학생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감동 받았다.
- 수민이가 만든 모방시가 노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원희 씨가 그렇게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나랑 같이 느낀 학생이 나오면 어쩐지 반갑다.
- 수민이의 모방시에 나오는 '기분 좋은 차가운 공기 냄새'에 공감 된다. 곧 그런 공기를 만날 수 있겠지? 그의 시에서 따뜻함이 차가움과 상반되어 강조됨을 읽어낸 지민이의 피드백도 인상적이었다.
- 준성이가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모방하여 친구들을 소재로 재미있는 시를 만들었다. 민재, 우찬, 우현, 상원, 성천 등이 등장하는 시였는데 민재는 뒤로 걷다 공 밟고 넘어졌고 상원이는 숨만 쉬어도 돈이 쏟아지며 성천이는 깁스를 했으나 사실은 아픈 게 아닌가 보다. 이에 대한 피드백 발표할 때 원희 씨는 자기가 등장하지 않아 슬프다고 하여 빵 터졌다. ㅋㅋ
p.s.
태어나서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8반 수업 중에 민지 발표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는데 순간 좀 울컥했다.
사라져가는 존재로서의 귀함을 인식했으면.
이미 너무나 소중하다.
살아있는 중에 '살아있음'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힘들 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지 스스로 묻기. 대부분은 별것 아니다. '살아있음'이 별것이다.
내일도 건강하게 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