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5월21일
가수이자 화가, 정미조는 이달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특별전
‘이화, 1970, 정미조’를 연다. 전시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작업실에서 정미조를 만났다. 김경록 기자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개여울’ 첫 소절에 100명 넘는 관객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노래가 나온 지 50년이 넘었지만, 가수 정미조
(74)의 목소리는 여전히 깊고 짙었다. 지난 17일 오후 이화여대 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세대공감 콘서트’에서
정미조는 “‘개여울’은 내 분신 같은 곡”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아이유가 음반을 내면서 젊은이들도 많이 알
던데, 원곡과 달리 피아노와 함께 부르니 더 좋더라”라면서 ‘휘파람을 부세요’ ‘그리운 생각’ 등 또 다른 히트
곡도 선보였다. 170cm의 큰 키에 하얀 정장을 입은 그가 기타와 피아노 리듬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자
분위기는 고조됐다.
이날 콘서트는 가수이자 화가인 그의 특별전 ‘이화, 1970, 정미조’ 개막일에 맞춰 마련됐다. 이화여대는 그의
모교다. 프랑스 유학 시절 그린 ‘파리풍경’(1979~1981), ‘세느강가에서’(1981), 그리고 모나코 몬테카를로
국제그랑프리 현대예술전에서 수상한 ‘몽마르트르’(1981) 등의 작품이 전시됐다. 귀국 후 도시 야경에서
영감을 얻은 ‘질주’(2004), ‘서울 야경’(2012~2014) 시리즈도 나란히 나왔다.
정미조의 그림 '몽마르트르', 198x198cm, Oil on canvas, 1981. 사진 JNH뮤직
데뷔 이후 음반들의 초판 커버, 활동 당시 입었던 무대 의상 등 70년대 그의 가수 생활도 엿볼 수 있다. 특히
무대의상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젊은 시절 제작한 것들로 예술적·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전시를 앞둔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작업실에서 만난 정미조는 “미술이 ‘페인팅(그리는 것)’으로 표현한다면,
음악은 소리로서 나의 예술 세계를 표현한다. 방법만 다를 뿐 똑같다”고 말했다.
1970년대 젊은 앙드레김(오른쪽)과 함께 의상을 확인하는 정미조(가운데)의 모습. 사진 JNH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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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내 노래…희망 있어”
“무슨 이유로 칼로 무 베듯 음악을 그렇게 그만뒀나요?”
1979년 돌연 가수 은퇴를 선언했을 때도, 37년 뒤 가요계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는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직후 발표한 노래 ‘개여울’(1972)로 큰 인기를 누린 정미조는 데뷔 후 7년 동안
가수로서 승승장구했다.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등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했고, 신인가수상, 연말 10대
가수상, 동경국제가요제 최우수 가창상 등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20대의 그는 인기에 취하기보단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개여울’ ‘그리운 생각’ ‘사랑과 계절’ 이렇게
세 곡으로 늘 방송을 채웠다”면서 “앵무새처럼 똑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그만해야 할 때가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등 대표곡들이 영문도 모른 채 방송 금지당한 것도 아쉬움을 보탰다.
“남들은 갑작스럽다고 했지만, 가수 은퇴 2년 전부터 예술의 도시 파리로 가서 미술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은퇴 직후 파리 유학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그를 위로한 건 도시의 야경이었다. “몽마르트 언덕 8층
꼭대기 방 창문을 열면 센강이 흐르고 노트르담 성당과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이 한눈에 보였다”며 “야경
속에 내가 있다는 생각에 외롭고 힘든 감정들이 사라졌다”고 떠올렸다. 이번 전시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야경’ 시리즈가 탄생한 계기다. 13년 동안의 유학을 마친 그는 수원대 서양화과 교수로 임용됐다.
1972년 MBC10대 가수 가요제 출연 당시 모습. 사진 JNH뮤직
2015년 복귀 앨범 '37년' 녹음 당시 모습. 사진 JNH뮤직
2000년 초반, 아방가르드 예술가 백남준이 자신의 전시 오프닝 행사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손 놓고 있던 음악을 잠시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백남준 선생의 피아노 연주가 너무 인상 깊어서 ‘나는 왜
노래를 그만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우연히 전시장에서 마주친 가수 최백호가 ‘그 좋은
목소리로 왜 노래 안 하냐’며 현 소속사 대표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이렇게 은퇴 37년 만에 정미조의 제2의
음악 인생이 시작됐다. 2016년 앨범 ‘37년’으로 돌아온 정미조는 2017년, 2020년 꾸준히 앨범을 냈다.
“쉽게 얻었기 때문에 쉽게 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털어놓는 그에게 또다시 20대 때처럼 음악을
그만둘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복귀 후 홍대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젊은이들이
와서 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더라”며 “내 노래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곡도 좋고 가사도 좋고, 70년대보다 노래하기 좋은 환경인 데다 들어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만둘 이유가 없다”고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하진 않겠지만, 소리가 나오는 날까지는 노래를 부를 겁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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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아하는 노랜데...
정미조 가수 멋지네요
로따님 덕분에
잊고 있던 정미조도 소환하고
젊은 앙드레김도 보고
큰 감사드립니다
참 멋진 여성이라
부러워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