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2층 전시실의
우리나라 수중고고학과 서해에 관한
설명문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2층 전시실의
우리나라 서해 해양 유물 발굴 장소
분포도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2층 전시실의
서해 중부 해역 수중 발굴 현황에 관한
설명문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2층 전시실의
태안 앞 바다에서의
수중 발굴에 관한 안내문
태안해저유물(泰安海底遺物)
요약 : 충청남도 태안반도 해역에서 발굴된 해저유물.
시대 : 고려/고려후기
성격 : 해저유물, 해저난파선
제작시기·일시 : 태안선(1131년), 마도1호선(1208년), 마도2호선(1200년 전후),
마도3호선(1264∼1268년)
수량 : 4척
재질 : 나무
크기(높이, 길이, 두께, 너비) : 태안선(길이 8.2m, 너비 1.5m),
마도1호선(길이 10.8m, 너비 3.8m),
마도2호선(길이12m, 너비 5m),
마도3호선(길이 12m, 너비 8m, 깊이 2.5m)
목차
개설
내용
의의와 평가
개설
태안해저유물은 1976년 신안해저유물 발굴로 촉발된 발견매장문화재의 신고로 1980년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수중탐사로 해저에 유물이 산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집중매장처는 찾지 못했다. 2007년대섬 앞바다에서 주꾸미잡이를 하던 중 청자대접 1점이 올라와 신고한 것을 계기로 긴급탐사를 통해 다량의 청자가 노출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어진 발굴조사로 2만 5천여 점의 고려 청자와 선체를 인양하였다. 청자는 품질이 좋은 강진산이며 화물표인 목간(木簡)이 다량으로 수습되었다.
청자운반선인 태안선의 발굴 중에 마도해역에서 발견신고가 잇따라 광역탐사를 실시하였다. 넓은 해역에 걸쳐 다수의 유물이 산재하고 있어서 연차 발굴계획을 세워 조사를 하고 있다. 2009년부터 매년 1척씩 3척을 발굴하고 마도1·2·3호선으로 명명하였다. 마도해역은 난파선의 공동묘지라 부를 만큼 유물이 넓게 산포되어 있고 종류도 고려 청자와 조선의 분청사기·백자뿐만 아니라 중국의 도자기들도 많으며 크고 작은 닻돌 80여 개도 인양하였다. 따라서 마도해역의 수중조사는 장기계획을 세워 탐사와 발굴조사를 진행중이며 조사와 유물의 보존처리를 위해 신진도에 사무소를 건립하였고 유물과 선체를 전시하는 해양유물전시관이 2019년 11월 18일 개관하였다.
그동안 수중발굴유물은 대부분 청자와 그 운반선이었고 난파시기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다. 2007년에 발굴한 청자운반선인 태안선에서 화물표인 목간이 처음 확인되었고 곡물운반선인 마도해역의 3척의 난파선에서도 목간과 죽찰이 다량으로 확인되어 화물의 내용과 성격은 물론 난파시기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강진에서 만든 양질의 청자를 실은 태안선은 1131년에 난파되었고, 마도1호선은 1208년, 마도2호선은 1200년 무렵, 마도3호선은 1264∼1268년 사이에 난파되었음을 목간을 통해 입증하게 되어 고려의 타임캡슐로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내용
1. 태안선의 발굴
태안선은 강진에서 만든 청자를 가득 싣고 개경으로 운반하다 태안반도의 신진도 남쪽 대섬 앞 해상에서 침몰하였다. 선체는 외판의 일부만 남아 있었으며 선원의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도 있었다. 수심 15m 정도에 조류가 약간 강한 해역이나 가시거리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발굴조건이 양호하였다. 청자의 종류는 대접과 주발·접시가 대부분이나 참외모양주전자·통모양잔·사자모양향로·두꺼비모양벼루·소형분합·유병·발우도 있다. 최대경(崔大卿)과 같은 고위관료에게 보내는 목간 옆에 선적된 청자들은 최상품이다. 발우는 매우 양질이며 음각문양이 새겨진 것도 있고 48세트나 되어 의례에 참여하는 승려의 공양에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기법으로 보면 내화토 빚음이 대부분이나 일부 규석받침이 있고 문양수법은 음·양각과 퇴화·철화 등이며 상감은 전혀 없다. 두꺼비모양벼루는 소형으로 휴대용이며 철화와 퇴화 기법으로 만든 희귀한 작품이다. 사자모양향로는 해학적 표현으로 익살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태안선 발굴에서 나온 목간은 수중에서 확인한 최초의 고려 목간이다. 이 목간을 통해 청자산지로 유명한 강진에서 만들어 개경의 관료와 개인에게 보낸 것을 알 수 있었다. 목간을 통해 청자의 정확한 제작시기는 물론 출항지, 화물의 내용과 수량, 수취인의 이름과 관직, 보낸 사람의 수결 등 청자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2. 마도 1·2·3호선의 발굴
2009년부터 발굴한 마도1·2·3호선은 지금까지의 청자운반선이었던 태안선과는 달리 곡물을 운반하던 배였다. 화물의 대부분은 벼와 쌀·콩·메밀·조·피·기장 등 곡물과 건어물·메주·젓갈류로 채워져 있었다. 세 난파선 모두 화물표인 목간과 죽찰(竹札)이 다량으로 수습되어 선적물의 내용과 침몰연대를 정확히 밝힐 수 있었다.
마도1호선에서는『고려사(高麗史)』에 등장하는 김순영(金純永)이라고 하는 대장군의 이름과 정묘(丁卯)·무진(戊辰)의 간지가 있어 1207∼1208년 사이에 난파되었음이 분명하다. 마도1호선에 실린 800여점의 도자기 가운데 주목할 유물로는 청자상감표형주자(靑磁象嵌瓢形注子)와 받침대가 있다. 수십 점의 도기는 도량형제도 연구에 학술적 의미가 크고 도기연구의 실증자료로서 중요하다. 더욱이 도기에 담겨진 것이 주로 젓갈류라는 사실을 통해 고려의 식생활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 50kg 정도의 석탄도 실려 있어서 석탄의 사용개시 연대를 고려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다. 침몰연대가 무신권력자 최충헌(崔忠獻)의 집권시기이므로 무신집권기 수취체제는 물론 출항지, 거래관계, 운송책임자, 적재단위 등을 알 수 있다. 마도1호선은 전라도의 장흥·해남·강진·나주 등지에서 화물을 싣고 항해하다 1208년 봄마도해역 즉 난행량에서 침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에 발굴한 마도2호선은 마도1호선과 성격이 비슷한 곡물운반선이다. 선체에 실린 청자는 양이 많지 않으나 2점의 최상급 매병이 주목을 끈다. 매병은 음각연화절지문(陰刻蓮花折枝文)과 상감능화형유죽로화훼문(象嵌菱花形柳竹蘆花卉文)인데 높이 39㎝로 크기가 같고 형태가 당당하고 유려하다. 이 매병의 주둥이 옆에서 죽찰이 인양되어 꿀과 참기름을 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이 “중방도장교오문부택상정밀성준봉(重房都將校吳文富宅上精蜜盛樽封)”으로 개경의 중방(重房) 소속 도장교(都將校)인 오문부(吳文富)에게 올려 보낸 꿀단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매병을 준(樽)으로 불렀다는 것과 매병의 용도가 술이나 물을 담거나 화병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론을 벗어나 꿀과 참기름 같은 고급 식재료의 보관과 운반에 쓰였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자료이다. 양질의 청자연판문통형잔(靑磁蓮瓣文筒形盞) 20점과 대접 25점 한 묶음도 인양되었다. 배에 실린 매병을 비롯한 청자들은 부안에서 생산된 것이다.
마도2호선에서도 쌀·콩·알젓 등 화물의 종류와 수량·수취인·발신자·발송지가 적힌 목간과 죽찰 30여점이 수습되었다. 마도2호선은 전라도 정읍·고창 등지에서 거둔 곡물을 싣고 가다 난행량에서 침몰하였다. 목간과 죽찰에 대경 벼슬의 유(庾)씨와 왕의 친위부대인 견룡(牽龍: 牽龍軍) 소속 기(奇)씨가 주목된다. 무송(茂松)을 본관으로 한 유씨는 고려 인종 무렵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문벌(門閥)의 하나이다. 이 시기에『고려사』에 등장하는 기씨 성의 무인으로는 기홍수(奇洪壽: 1148∼1209), 기윤위(奇允偉: 1211년 牽龍指諭), 기존정(奇存靖: 1216년 거란군에 승리) 등이 있다. 한편 대경을 역임한 무송 유씨로는 유자량(庾資諒: 1150∼1229)이 보이는데 그는 무신정변의 와중에서 무인 오광척(吳光陟), 이광정(李光挺), 문장필(文章弼) 등과 교유관계가 있어 살아남았고, 1213년에는 모든 관직을 내놓고 은퇴하였으므로 마도2호선의 난파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또한 김취려(金就礪) 장군과 함께 거란을 물리친 이극서(李克imagefont)라는 인물도 보인다. 따라서 목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활동으로 미루어 마도2호선은 1213년 이전에 난파된 것이 확실하다. 목간에 적힌 유씨 성을 가진 인물이 유자량이 맞다면 그의 관직 경로상 대경에 재임한 시기는 1200년 전후로 추정된다.
2011년에 발굴한 마도3호선은 지금까지 발굴한 고려선박 가운데 선체가 가장 잘 남아 있었다. 배의 이물과 고물 및 돛대를 고정시키는 구조 등이 거의 완형으로 남아 있어 고려시대 선박 구조에 대한 전모를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마도3호선의 남아 있는 규모는 길이 12m, 너비 8m, 깊이 2.5m로 그동안 발굴한 고려선 가운데 가장 크다. 마도3호선도 곡물과 먹을거리를 싣고 가던 배였고 다량의 목간이 수습되었다. 화물 수취인으로 신윤화(辛允和)와 유승제(兪承制)가 보이는데 시랑(侍郞) 신윤화는 1260년(원종 원년)에 장군으로 몽고에 다녀온 기사가 있다. 유승제란 유씨 성의 승선(承宣: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정3품 관직)을 말하는 것으로 원종 초엽 우부승선(右副承宣)이었던 유천우(兪千遇)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수취인으로 나오는 김영공(金令公)은 최씨무인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김준(金俊)이라는 인물이다. 김준은 1258년 11월에 정권을 잡았고, 1264년 해양후(海陽侯)에 책봉된 후부터 영공이라 불렸으며, 1268년원종과 임연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따라서 마도3호선은 1264∼1268년 무렵 난파된 것이 분명하다. 즉 임시 피난수도인 강도(江都)에서 개경으로 환도하기 직전 최고 집권층에게 보내는 곡물과 먹을거리들이 배안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목간 가운데 “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이라는 묵서가 있다. 그동안 삼별초의 지휘관은 7∼8품의 하급 무반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4품의 시랑(侍郞)이 도령(都領)을 맡았고 야별초의 좌별초(左別抄)·우별초(右別抄)가 각기 3번(番)으로 나뉘어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는 몽고침략에 끝까지 저항했던 삼별초의 실체를 연구하는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마도3호선의 화물로는 볍씨·보리·밤 등의 곡물과 대나무상자 속에 생선뼈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또 다량의 도기 안에는 젓갈류 등이 들어 있는데 목간에 표현된 내용을 보면 상어〔沙魚〕·말린 홍합〔乾淡〕·생전복〔生鮑〕·전복젓갈〔鮑醢〕·개고기포〔犭脯〕등이 있다. 이 외에 조약돌 앞뒤에 장군(將軍)·차(車)·포(包)·졸(卒) 등이 적힌 장기돌 47점도 수습되었다.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 고단한 항해생활을 달래기 위해 중국에서 들어온 장기를 오락삼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마도해역에서 발굴된 태안선은 청자운반선으로서, 마도1·2·3호선은 곡물운반선으로서 기능했으며, 배 안에 적재된 다양한 유물과 목간·죽찰 등을 통해서 당시 생활상과 문화상을 복원할 수 있는 고려의 타임캡슐로서 부각되고 있다. 태안선은 여러 종류의 청자가 다량 발굴됨으로써 고려 청자 제작기법 및 청자의 문양에 관한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마도1·2호선은 최충헌집권기에, 마도3호선은 김준집권기에 난파된 곡물운반선인데, 고려 무인집권기 중앙 지배층의 지방지배와 조세수취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로서 중요하다. 특히 마도3호선은 고려 선박의 구조뿐만 아니라 무신집권기 삼별초의 편제·운영 및 당시 강도 지배층의 식생활 문화를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
[네이버 지식백과] 태안해저유물 [泰安海底遺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2층 전시실의
태안 앞 바다에서 발굴된
태안선과 마도 1호선에서 나온
유물들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2층 전시실의
태안 앞 바다에서 발굴된
마도 3호선과 마도 4호선에서 나온
유물들
마도 4호선 수중발굴 조선시대 유물
목차
1. 개요
2. 내용
3. 유물 도굴
1. 개요 : 2015년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조운선에 실렸던 유물 일괄.
2. 내용
2015년 충청남도 태안군 수중조사 결과 발견된 조선시대의 조운선으로, 당시까지 마도 해역에서는 고려, 조선시대 선박이 12척, 신라 선박이 1척 발견되었다.
마도 4호선은 14번째로 발견된 선박으로, 조선백자, 분청사기, 목간 등이 엄청나게 출토되었다. 배가 가라앉은 시기는 확실치는 않지만 15세기 초중반, 조선 태종~세조조 사이로 추정한다. 특히 성종대 이후로 한국의 분청사기 제작이 몰락했기 때문에 다수의 분청사기가 발견된 마도 4호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음이 확실하다.
마도 해역은 2015년 기준으로 고대 선박 14척, 고전 유물 3만여 점이 발견되어 '바닷속 천년수도'라 불린다. 최소 수백여 년 전 유물들이 지금껏 수만점 이상 발견되었고 앞으로도 수십만 점이 더 있으리라 추정하기 때문에, 이런 곳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래가 없다고 본다. 이 외에도 신안 지역의 신안보물선에서 1200년대에 제작된 고대 중국 동전 28톤, 고려 도자기 2만 2천여 점이 발견되는 등 다른 나라에서 경악하는 문화재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3. 유물 도굴
동아일보 : 36년간 갇혀있던 ‘신안 해저보물’ 극적 구출, 日 밀반출 시도 도굴업자 검거… 도자기 등 유물 57점 국고 환수
2019년 6월 14일, 잠수부까지 동원하여 마도선들의 유물을 도굴해 일본으로 반출하던 도굴꾼이 잡혔다.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2층 전시실의
서해 수중 유물 발굴연도
안내도
왜 마도 해역에서 이렇게 수많은 유물이 나오고 있는 것일까.
마도 해역은 강한 물살과 암초, 짙은 안개로 인해 난파 사고가 빈번한 곳이다. 동력을 갖추지 못한 당시의 돛단배는 바람에 의지해 가다가 풍향이 바뀌거나 물살이 세면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난행량(難行梁·물길이 험해 다니기 힘든 바닷길)으로 불렸다.
게다가 이곳은 고려 시대 국제항인 벽란도(예성강 하구에 있었던 고려 시대 국제항구)와 조선 시대 한양으로 가기 위한 중착기착지였다. 배를 정박할 때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도구인 닻돌 15점이 발견된 것도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고려 시대에는 안흥정이라는 외국 사신들의 숙소가 이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기록돼 있다.
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바라본
안흥나래교
곡선미가 일품인
안흥나래교
안흥나래교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거아도, 울미도, 삼섬, 지치섬,
신시도의 부속 섬인 죽도
2022년 07월 03일(일요일)
태안군 가의도 여행기
산 : 태안군 가의도
[중국의 가의(賈誼)라는 사람이 이 섬에 피난을 왔었다고 해서 가의도라는 설과 신진도 가에 있어 가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의도는 신진항에서 5km 남짓 떨어진 섬이다. 49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한두 시간이면 다 돌아볼 만큼 작은 섬이지만 항구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어 트레킹 하러 온 관광객부터 낚시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이 섬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특산물은 뭐니뭐니해도 마늘이다. 가의도는 6쪽 마늘의 종구가 생산되는 섬으로 유명하다. 종구란 마늘의 씨앗에 해당하는 것으로 6쪽 마늘을 한 개씩 분리해 땅속에 심으면 이듬해에 구슬 같은 한쪽 마늘이 생기는데 이를 종구라고 한다. 종구를 다시 한번 심으면 비로소 3년이 되는 해에 6쪽 마늘로 자라 수확할 수 있게 된다.]
산행코스 : [ 가의도 북항-보호수 은행나무-전망대-가의도 최고봉인 통신탑봉-
가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봉우리-가의도 최고봉인 통신탑봉-전망대-
보호수 은행나무-가의도 북항 ] (8km)
일시 : 2022년 07월 03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시간 소요)
07:00~09:25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서초구청 앞에서 출발하여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흥1길 55-1 번지에 있는 안흥항으로 이동
(154km) [2시간20분 소요]
09:25~09:30 가의도로 가는 유람선 승선 대기 (신분증 준비)
09:30~10:13 유람선을 타고 안흥항을 출발하여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에 있는 가의도 북항으로 이동 (6km) [43분 소요]
10:13~10:23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에 있는 가의도 북항에서 탐방 출발하여
보호수 은행나무로 이동
10:23~10:25 사진촬영
10:25~10:40 전망대로 이동
10:40~10:45 사진촬영
10:45~10:50 가의도 최고봉인 통신탑봉(해발 172m)으로 이동
10:50~10:55 사진촬영
10:55~11:50 가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봉우리로 이동
11:50~12:35 준비해간 음식으로 점심식사 후 휴식
12:35~13:30 가의도 최고봉인 통신탑봉(해발 172m)으로 회귀
13:30~13:45 물을 마시면서 휴식
13:45~14:04 보호수 은행나무로 회귀
14:04~14:13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에 있는 가의도 북항으로 원점 회귀하여
가의도 탐방 완료
14:13~14:20 휴식 후 안흥항으로 가는 유람선 승선 대기
14:20~14:56 여객선을 타고 가의도 북항을 출발하여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흥1길 55-1 번지에 있는 안흥항으로 귀환
[36분 소요]
14:56~16:35 [안흥항~신흥마트~안흥성 수홍루~태국사~안흥성 수홍루~안흥항~
안흥나래교~국립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안흥나래교~안흥항]의 코스를
도보로 탐방 [1시간39분 소요]
[안흥항에서 북동쪽으로 700미터 떨어진 곳에 안흥성이 있고, 안흥항에서 남쪽으로 300미터 거리에 신진도와 태안반도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海上인도교 안흥나래교가 있다.]
[근흥면 신진도리와 정죽리를 잇는 안흥나래교는 총 연장 293m(시점부-종점부), 교량 보행거리 394m의 2경간 연속아치 인도교로, 총 사업비 174억 원을 들여 2015년 8월 착공해 2017년 10월 31일 최종 준공됐다.
태안군은 해상인도교 명칭 공모를 통해 지난 7월 안흥지역 갈매기의 날개를 뜻하는 `안흥나래교`의 교명을 확정지었다.
안흥나래교는 군조(郡鳥)인 갈매기의 비상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각각 45m와 38m 높이의 두 아치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내며, 다리에 오르면 탁 트인 서해바다와 신진도 및 안흥항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안흥나래교가 2018년 근흥면 신진도에서 개관된 `태안 해양유물 전시관`과 인접해 있어 태안군 해저유물의 관광자원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태안군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신진도 및 안흥항의 관광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6:35~17:03 휴식
17:03~19:36 “좋은사람들” 버스로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흥1길 55-1 번지에 있는 안흥항을 출발하여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으로 이동 (118km) [2시간33분 소요]
태안군 가의도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