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한국이 수비수출신의 감독을 만나면 지역예선에서는 고전을
하지만 본선에선 오히려 예상외의 선전을 하고 공격수출신 감독을 만나
면 지역예선에선 화려한 전적으로 본선진출권을 따내지만 정작 본선에
가서는 참패를 당한다는 징크스 이다.
이러한, 징크스는 한국이 치룬 역대 몇차례의 월드컵전적에서 비롯됐다
한국이,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32년만에 다시
월드컵본선에 출전한 86년 멕시코월드컵.
과거 수비수출신의 김정남씨가 코치로 있던 당시 한국대표팀은 지역
예선 1차라운드의 말레이시아와 치룬 어웨이경기에서 기습적인 중거리
슛에 결승골을 허용하며 0:1의 패배를 당하고만다. 이렇게 한국이
첫걸음 부터 삐걱거리자 대한축구협회는 감독(미안하다. 본필자가 당시
감독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안는다.)을 해임하고 코치이던 김정남씨를
감독으로 승격시켜 월드컵본선을 향한 행보를 계속한다.
결국, 한국은 홈경기에서 말레이시아를 이기고 1차예선을 통과한다.
2차예선에서 인도네시아를 만나 홈에서 가진 첫번째 경기에서 2:0,
어웨이에서 가진 2차전에서 4:1로 승리한 한국팀은 최종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만난다.
당시, 최종예선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대결은 양팀감독의 자존심의 대결
로도 이름이 높았다. 김정남감독이 코치로 있던 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은 모리감독이 이끄는 일본팀에게 조별예선에서 패함으로
서 아시안게임 출전역사상 처음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고, 그 이후 일본팀과의 전적에서도 2무2패로 절대적 열세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리감독이 일본대표팀을 이끌고 이번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김정남감독과 다시 만난것이다.
일본은, 2차예선에서 북한을 1승1무의 전적으로 누르고 최종예선에
올라왔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한국은 일본을 홈/어웨이 두차례
경기에서 모두 이기고 32년만에 월드컵본선에 출전한다.
한국이 본선에서 만난팀들은 당시 우승국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비롯하여
동구유럽의 강호 불가리아 그리고 전대회우승국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강팀들 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주장 박창선이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월드컵본선 출전 역사상
최초의 골을 넣으며 선전했고 불가리아와는 무승부 그리고 이탈리아와
의 경기에서도 최순호와 허정무가 각각 한골씩을 넣으며 선전했다.
경기결과나 내용면에서 모두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선전을 한 것이
었다.
그다음,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은 한국이 이미 아시아축구 최강의
자리에 올랐음을 재확인시켜 주는 장이었을 뿐이었다.
지난, 86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과 만났던 일본은 2차예선에서
오히려 지난대회에선 이겼던 북한에게 져 최종예선진출이 좌절되었다.
공격수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이희택씨(당시 포항아톰스 프로축구팀
감독, 현재 전남드래곤즈 프로축구팀 감독)를 감독으로 영입한 한국팀
은 최종예선에서도 3승2무의 전적으로 월드컵지역예선 전경기를 무패
가도로 달리며 아시아지역 1위로 월드컵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그러나, 지역예선의 화려한 전적과는 달리 한국은 본선에서 다시한번
세계의 높은벽을 뼈저리게 실감해야만 했다.
당시, 한국팀의 골키퍼는 역대 한국대표팀 골키퍼중에서 최고의 골키퍼
로 꼽히는 최인영골키퍼(현재, 울산호랑이 프로축구팀 코치) 였다.
그러나, 한국은 6실점에 스페인전에서 황보관선수가 시속 144km의 대포
알 같은 슈팅으로 얻은 유일한 골을 위안거리로 삼으며 본선 3전전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귀국해야 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법. 당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에게 엄청난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다. 이희택씨는, 그때이후 '내 다시
는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안겠다.'고 치를떨며 물러났다고 회고한다.
다음 월드컵인 94년 미국월드컵 예선 이희택씨와 같은시대에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호감독을 영입한 한국팀은 3연속 월드컵본선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전에 92년 홍콩에서 있었던 다이너스티컵
결승에서 일본과 전후반 90분 2:2무승부로 승부차기 까지 간 끝에 일본
에 져 우승을 내줌으로서 한국은 이미 무섭게 성장한 일본의 상승세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고 벌써부터 대표팀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았다
1차예선은 에상대로 한국보다 한수아래의 팀들을 상대로 해서 무패가도
로 가볍게 통과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최종예선 이었다. 최종예선
에서 부터는 한국이 전통적으로 약한면을 보여온 중동의 강호들과 이미
무섭게 성장한 일본 그리고 또다른 동북아시아의 축구강국 북한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첫번째 경기에서 예상외로 중동의 강호 이란을 3:0으로 완파
하고 쾌속의 출발을 보이자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어렵지 안게 본선
진출권을 따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언론 특유의
대표팀 뛰우기와 한국축구팬들의 냄비근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번째경기인 이라크전에서 2:2, 세번째경기 사우디전에서
1:1로 비겨 본선진출권 획득여부가 불투명해지고 급기야 네번째경기
에서 여태 월드컵지역예선에서 한번도 져본적이 없었던 일본에게 0:1의
패배를 당함으로서 한국의 월드컵최종예선 쇼크는 극에 달했다.
그리고, 마지막경기에선 모두들 알다시피 소위 '도하의 기적'이라
부르는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결과로 한국은 골득실차로 간신히
일본을 밀어내고 월드컵본선에 진출한다.
모두들, 예선에서의 부진도 부진 이었지만 이번 월드컵대표팀이 역대
월드컵대표팀중 최약체 라며 본선에서의 전망을 그리 밝게 보지는 안았
다.
그후,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서 치룬 94년 월드컵본선...
한국팀은 비록 16강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1승 제물로 생각했던 볼리
비아를 상대로 해서 0:0 무승부로 마치는 아쉬움을 남겼고 마지막 독일
전에서 2:3으로 패하며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첫번째경기에서 지난
90년대회에서 한국에게 1:3의 쓰라린 패배를 안겨주었던 스페인을 상대
로한 극적인 2:2무승부, 그리고 비록 2:3으로 아깝게 분패했지만 우승
후보 독일을 상대로 한 예상외의 선전은 역대 최약체의 전력이라는
당초 우려들을 보기좋게 뒤엎고 역대 본선전적중 최고성적인 2무1패의
전적을 거두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에서의 예상외의 선전을
보고 다음대회에 대한 장미빛 희망을 품게 했듯이, 이번에도 다음 대회
때에는 한국이 좀더 당당한 모습으로 세계적인 강호들과 어깨를 겨룰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었다.
다음, 98년 프랑스월드컵...
한구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로 손꼽히는 차범근씨를
감독으로 영입한 한국대표팀은 대망의 5회연속 월드컵본선 진출에 도전
하고 있었다.
홍콩과 태국을 상대로 한 1차예선에서 많은 주전선수들의 부상으로
전력누수가 심해져 당초 예상보다 어렵사리 통과를 한 한국 이었지만
최종예선에선 달랐다.
껄끄러운 중동의 강호들을 피하는 대진운까지 따라주었던 한국대표팀
은 총 8전 6승1무1패의 애초 예상보다 훨씬 좋은 전적으로 월드컵본선
행을 확정지었다.
독수리 최용수와 황새 황선홍이 나서는 최전방공격수 투톱은 역대 한국
월드컵대표팀 공격진중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무서운 아이 고종수
와 팽이 이상윤, 날쌘돌이 서정원 그리고 김도근이 버티는 미드필더진
도 믿음직 했다. 수비는, 여전히 한국팀의 최대약점 이었지만 홍명보가
이끌고 이민성, 김태영 그리고 이상헌등이 가세한 수비진도 차츰 안정
을 찾아가는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한번 본선에서 거둔 기대이하의 초라한 성적...
첫번째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하석주는 그의 주무기인 왼발프리킥으로
한국에게 월드컵본선 역사상 최초의 선취골을 안겨 주었지만 겨우 2분
정도가 지난 이후 상대선수에 대한 무모한 백태클로 퇴장을 당함으로
서 한국팀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면서 순식간에 영웅에서 역적으로 몰리
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국팀도 1:3으로 역전패 했다.
그리고 두번째 네덜란드전에선 한국인이라면 그누구든지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과도 같은 대참패. 관중석에서 응원을 하던 붉은악마회원들이
끔찍한 참패의 행진이 계속되자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울먹이는 목소리
로 응원가 아리랑을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본필자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의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이며 감독인 차범근씨는 본선이
다 끝나지도 안은 상태에서 해임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지금, 차범근씨가 본선 조추첨자에 끼지안은 일에 대한 질타와 비난의
목소리들을 계기로 다시한번 당시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본 필자가 생각해 보기에도 아무리 그래도 본선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안은 상태에서 감독을 그렇게 해임해 버린것은 여러
가지로 잘못된 처사였지 안았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한국의 월드컵본선 역사상 가장 투지있게 싸운 경기로 평가된
벨기에전...
한국은, 이미 좌절된 16강 진출의 꿈은 접고서라도 주전 4명이 결장한
벨기에를 상대로 월드컵본선 최초의 1승 달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에서 차범근씨와 같이 선수로 뛰었던
김평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내세운 한국팀은 네덜란드전에서 보다 공격
적인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그리고, 월드컵본선에서 한국에게 네번째로 승점 1점을 안겨준 1:1
무승부 경기... 한국은 비록 최초의 1승이라는 당초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4년후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본선에서는 반드시 지금은 다른
나라들이 누리고 있는 환희의 주인공이 되리라 다짐하며 다시한번 훗날
을 기약하고 물러나는 수 밖에 없었다.
화려한 공격수출신의 감독영입 그리고 믿었던 만큼의 찬란한 예선전적
그러나 나중에 우리에게 실망으로 다가온 본선에서의 졸전.
수비수출신의 감독영입 그리고 예선에서 부터 삐걱거리며 고전하는
한국팀과 온갖 비난과 따가운 질책을 받으며 어렵사리 본선에 진출
하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예상외의 선전으로 끝을 맺으며 늘 우리에게
다음대회에 대한 희망을 갖게하는 결과들...
과연, 홈에서 열리는 내년 월드컵본선에서는 어떨것인가?
우리 한국팀은 이번 월드컵에선 개최국의 자격으로 예선을 치루지
안았기 때문에 예선과 본선에서의 전적비교 징크스는 이루어질 수 가
없다.
그러나, 어차피 징크스는 그냥 징크스일 것이다.
히딩크감독도 말했듯이 우리가 대진운이나 징크스 같은 운만으로 우리
의 염원인 월드컵본선에서의 최초의 1승과 16강 진출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지난대회를 끝맺으면서 다시한번 기약했던 대로
한희의 주인공이 될것이냐 아니면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개최국의 16강
진출실패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것이냐 하는것은 우리 스스로가
앞으로 월드컵본선까지 남은기간 동안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다.
다만, 때로는 너무 심각한 분위기이기만 하는것 보다는 재미로 이런
징크스에 대한 이야기 같은것도 가끔가다 한번씩 해보는게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글을 올려보았다.
여태까지, 길고도 지루한 본필자의 이야기를 읽어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내년 홈에서의 월드컵본선을 준비하는 한국축구
를 위해 다시한번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