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인문대 08년도에 입학한 여학우입니다. 우선 이런 글을 쓰는 저는 채워야할 학점이 5학점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고, 학점이 아쉬운 상황도 아닙니다. 사실상 이번 전공 상대평가라는 학칙개정은 제 개인적인 이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손 털면 그만이죠.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괜히 정 맞을 걸 각오하면서까지 모난 돌을 자처할까요?
첫째는 인문학, 특히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도로서 제 학문이 획일적인 하나의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진위나 오답이 확실히 가려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것에 앞서 인문학 자체가 자연과학처럼 인지적이고 획일적이며 진위가 명확히 갈리는 성격의 학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개인의 학업성적의 진보와 그 결과의 판정에만 관심을 갖는 본교의 평가관점 때문에 학생들은 인문학을 인문학으로서 대하지 못하고 시험에 적확한 답을 쓰기 위해 문제풀이 위주와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학생들은 인문학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관한 정보를 '외우기'에만 골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문학적인 사고력을 기르지 못하게 되니, 생각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인문학의 본래적 의미는 무색해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기현상은 인간을 유용적 가치로만 보고 그 본연의 가치를 도외시하는 본교 교직원의 질적인 병폐와 맞물리는 악순환, 그 자체입니다. 이것은 초중고 시절 누구나 겪어보았을, 예컨대 자신이 느낀 감상과 시험문제가 부조화를 이룰 때 자신의 감상을 좇을 것인가, 정형화된 답을 좇을 것인가 라는 딜레마에 빠졌던 것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인문학 교수진들은 어떻게 평가를 해왔을까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봅시다. 학문의 성취정도를 평가제제로 삼을 때에는 그 학문이 가진 속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인문학에서 인간이 가지게 되는 정의적 반응들은 너무나도 열려있기 때문에 하나의 획일적인 기준을 마련해야할 평가 영역에서 그것을 재단할 근거를 찾는 일이 너무도 요원합니다. 1+1이 2가 아닌 3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과 사회학입니다.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만으로 인문학의 속성을 평가에 맞추어 뜯어고치자는 생떼를 쓰시는 것은 아닐는지요. 그래서 절대평가를 유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지 않으셨는지요. 무리한 학칙개정은 한편으로 교수의 역량까지 제한하는 일인데 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은 해보셨는지요.
학점 인플레 현상이라니요? 절대평가라고 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점수를 퍼다주는 나태한 교수란 없습니다. 학생들의 학문적 고민을 십분 반영하되 느슨한 상대평가의 수준으로 점수를 부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상대평가에서는 30%가 A학점을, 70%까지 B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비율을 조정해 평가한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부 학부생 출신에게 직접 알아보았습니다. 타학교의 상대평가는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그야말로 절대평가나 다름이 없지요. 첫째에서 밝힌 제 슬픔을 요약하자면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인문학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학문으로 치부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인문학처럼 사람을 연구하는 사회과학, 법과계열, 사범계열 역시 존중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속하는 각 단대 회장님들, 조금만 신경써 주십시오. (기타 자연과학은 부끄럽지만 아는 지식이 전무합니다. 그러나 생각의 틀을 제한하게 만드는 평가기준이 학문의 발전을 저해한다면 그 어떤 학문이든 상대평가를 거부해야할 것입니다.)
둘째는 학사규정에 관련한 자들의 야합으로 이루어진 학칙개정에 분노합니다.
학생들의 정상적인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학칙개정이니 그것을 따를 이유도 없지요. 지금은 21세기를 십년도 더 넘은 시점입니다. 20세기 쌍팔년도도 아닌 마당에 이게 무슨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이 진부한 표현마저도 무색한 상황 아닙니까? 학생이 배제된 학칙개정이라니 이건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네요. 고등학교때 교장이 부릴 법한 실력행사라, 그리고 그것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총학이라... 참 난감합니다. 학생들의 학문적 발전을 위한다는 그 알량한 변명이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 일을 두고 총학에서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덧붙여 저는 18일에 열리는 학칙개정안 설명회라는 말 자체도 기분이 나쁩니다. 설명회는 이미 통과된 사안을 자세히 알려주는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했기 때문에 발의안에 승인을 했고 이에 따라 개정안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의견수렴은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입니까? 이런 큰일은 반드시 전수조사를 했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총학은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집단이 아님을 총학 스스로가 잘 알고 계실텐데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이에 관해선 이미 많은 학우분들께서 의견을 말씀하셨기에 길게 쓰진 않겠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가 금요일 2시 딱 겹쳤지만 그래도 꼭 가보고 싶네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질의응답 시간에도 참여해보고 싶구요, 많은 학우분들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조잡하고 두서없는 글이어서 죄송했슴다.....
첫댓글 같은 인문학도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은 입장이에요. 이제는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머리아프네요. 이 정도로 학생의견 밟아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학교 그 누가 깔봐도 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회의감이 밀려오네요. 학교측이나 총학측이나 분명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입장임에 틀림이 없는데 단편적인 시각만으로 상황을 몰아가는 것 같아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부끄러워서 어디 말도 못꺼내겠네요, 다른 학교 친구에게 말해봐도 뭐 그런 경우가 다 있냐는...그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억지스러운 상황이에요.
졸업을 앞둔 학생으로서 대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이지만, '학점 인플레 현상이라니요? 절대평가라고 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점수를 퍼다주는 나태한 교수란 없습니다.'란 문장에 딴지 좀 걸겠습니다. 물론 저희과 교수님들 같은 경우 그런 교수님은 안계십니다. 하지만 다른 타 단과대를 다니는 많은 친구들, 후배들을 통해 들은 사실과는 괴리가 크네요. A학점은 웬만큼 받고...아무리 못해도 B0 이하는 안나온다는 그 친구들은 과가 경영대부터 자연대,농대, 공대를 막론하네요. 안그런 과도, 안그런 교수님들도 물론 계시다는걸 잘 압니다만, 그렇지 않은 과가 존재하고 어느 과에선 학점이 4.0이 넘어도 장학금 하나 탈 수가 없다는데...
저희과는 4.0? 거기에 미치지도 못하는 학생이 대다수. 3.5 정도면 장학금 하나라도 탈 수 있는 곳인데 대체 저런 과는 왜 존재할까요. 학점 인플레이션이라는게 별다른걸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졸업을 앞두고 사회로 나가는 입장에서 학교와 학생 측이 서로 발전해 나가는 모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친절하게 써주신 답글 감사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일단 어느 과 소속이신지 말씀이 없으시니 각 과의 특수성을 고려해 점수를 부과해야한다는 제 의견을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인문학은 점수부여를 교수의 역량에 맡기는 것이 차선입니다. 점수를 무작정 퍼주어서는 안되지만 무조건 평가절하도 할 수 없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저희 과에 경우 교수님들은 3.3에 평균을 맞추어 그 이상은 점수입력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조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경우 그리 학점인플레라고 볼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과에서 점수를 짜게 준다고 타 과의 점수하향을 강요할 권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 사족으로 각 과의 특수성이라는 것은 평가제재가 얼마만큼 객관적일 수 있는가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학생의 성취가 얼마만큼 이루어졌느냐는 측정치가 관찰가능한 시험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가령, 자연과학에서 요구하는 간결한 답과 인문학에서 요구하는 서술형의 답은 그 성격이 많이 다르겠지요. 시험문제에 대한 답을 틀렸다, 맞았다 구분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 제 과에선 문학과 어학으로 나뉠 때 비교적 어학이 맞고 틀리고를 재단하기가 쉬워서 엄정하게 채점이 이루어지고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