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백중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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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7월 보름은 백중(百中 또는 百衆)날이다.
양력으로 해서 팔월 중순쯤 되고 절후로는
입추 지나 처서 전이다.
농촌에서는 이제 논매기도 끝나고
결실의 가을걷이만 남게 된다.
이때부터 동네 머슴들은 나무 그늘 밑에서
아무 자리나 깔고 낮잠도 자고 한숨 쉬게 된다.
말하자면 농사를 짓는 것은 ‘진인사(盡人事)’는 했고
곡식을 거두는 추수는 ‘대천명(待天命)’하는 것이다.
사람이 할 일은 이제 끝났고, 남은 것은 벼가 쑥쑥 자라
벼꽃이 피고 벼이삭이 탈 없이 맺어져 충실하게
영글어서 풍성한 가을이 되는 것뿐인데,
이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므로 하늘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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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로 백중날은 농민에게는,
특히 그 뜨거운 여름 볕에 하루 종일 논바닥에서
올라오는 숨 막히는 더위를 이겨내고 일한 사람에게는
보답은 접어 두더라도 우선 일을 다 했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한 보람의 날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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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나야 머슴은 그 보답으로
새경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제 고된 일을 다한 지금은 보람으로서의
장한 기분과 거기에서 돌아올
자기 차지의 그 적은 몫을 생각하면
섭섭한 기분이 묘한 갈등으로 되어 남을 것이다.
머슴을 둔 주인 또한 농군이기에 일하는 사람의
이러한 갈등을 이해한다. 그 역시 소작농이면
소작농이기에 수확의 반 넘는 몫을 차지해 가는
지주에 대하여, 자작농이면 자작농이기에
수확의 상당한 부분을 여러 명목의 잡세로
수탈하는 일제 식민지 관청에 대하여
똑 같은 갈등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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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농민은 이날 하루만큼은 머슴을 쉬게 하고
자신도 더불어 한숨 돌린다.
쌀밥에 고깃국을 끓여주고 백설기를 쪄서
실컷 먹여준다. 이러한 살가운 마음은 바깥주인보다
안 아주머니가 더하다. 그리 고운 새는 아니지만
베 필을 마련해서 한여름 불볕더위에 헌신적으로
일해 준 데 대하여 따로 보답하는 것이다.
우리들 농촌 공동체에서는 사람을 부리는 데도
이처럼 서로 마음을 교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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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동네에서는 모심기, 보리타작,
논매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가을걷이에
공동노동, 집단노동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를 한다. 집집이 추렴해서 개 마리나 잡아서
두레에 내놓아 여름 동안 축난 농군들의 힘을
보신했다. 당상나무 그늘에서 푸짐한 개고기
안주에다 막걸리 잔깨나 들이켜고 나면
저절로 신명이 우러난다. 그러면 농기(農旗)를
내놓고 꽹과리 소리에 맞춰 장구, 북, 징, 벅구 소리가
어우러지고 어깨를 들썩이며 신명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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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밀양고을의 선비들도 여름 동안 더위에
지친 몸을 보신하고 찬바람이 이는 가을을 기다린다.
집안 재실에 모여 이웃 동네의 선비들과 어울려
한시 읊기도 하고 서로 추렴해서 개도 잡는다.
선비들은 응천강의 긴늪 솔밭에 모여
‘여름풀이’를 하다가 얼큰하게 취하면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런 양반들의 느릿느릿한 점잖은 춤사위가
형식화되어 이른바 밀양의 백중놀이의 한마당인
‘양반춤’이라는 것이 구성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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