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복남기자께서 ' 석림 '사진를 올려 주셨기에 몇년전 써놨던글을 찾아 올림니다
<중국 기행문> 곤명. 여강, 석림
2007년 4월 19일 목요일
전남주류도매업협회 이사모임에서 중국의 남쪽에 위치한 운남성 을 여행하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광주에서 전용버스로 인천공항에 19시 도착 후 출국수속을 마친 후 MU2004기에 탑승해 22;30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01;30에 곤명에 도착했다 중국과 시차는1시간이라 했다 우리나라 시간으론 2;30 인 셈이다
짐을 찾고 숙소로 이동해서 잠을 새벽에야 자는 거였다
자는둥 마는둥 일어나 호텔 조식 후 석림 으로 이동한다는 전용버스에 올랐다
현지 가이드가 운남성 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운남성 의 성도로 세 방향이 서산, 남람 ,진지 에 둘러싸인 해발 1,895m의 산수 좋은 고원도시였다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높이의 고원에 살고 있는 셈이다
온난한 기후 때문에 1년 내내 꽃이 피고 기후가 쾌청하고 온난하여 춘성 이라 부르기도 했다 원나라 이후 원난성 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도시라한다
원난성 전체에는 2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곤명에도 이족, 페족, 나시족 등의 민족이 살고 있다고 했다 소수민족의 보고로 유명한 원난 성 각지로 가는 여행의 기점이기도 했다 곤명의 역사는 오래되어 구석기 시대인 3만년전 에는 텐츠 호 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곤명 시 의 인구는160만 명, 운남성 의 도청소재지라고 했다
기온은 6~25도로써 봄의 도시 라 고했다 눈은10년에 한번 올까? 할 정도.
곤명은 기압관계로 산소가 부족하니 물을 많이 마시라했다 해발 6,000~7,000m의 산이 많아 84%가 산 이란다 보리, 옥수수, 밀 담배를 주로생산하고 농작물이 많지 않는다 했다
28도가 넘으면 비가와 온도조절을 해준다했다 5~10월은 우기여서 밤에 주로 비가 온 다 고 하였다
시가지 간판은 주로 붉은색깔이 눈에 띠인다
옛날부터 내려온 풍습으로 빨강색은 액을 막아준다 해서 좋아하고 노랑색은 황금을 뜻해 부유를 상징으로 좋아 한다 고했다
한국은 주로 홀수를 좋아 하는데 중국은 짝수를 좋아 한다고 했다 그중8자를 좋아한다했다
9자는 황제를 뜻하는 숫자여서 서민은 입에 담을 수없어서 만약에 나이가59세라면 “작년에58세였다”고 말 한다 했다
고속도로를 진입하려면 경찰이 안전 검사를 했다
곤명에서 남쪽으로120km정도 떨어진 석림 에 도착했다
면적350km2 이라했다 돌기둥이 나무줄기처럼 하늘로 치솟아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해발 높은 지역이라 나무가 크게 자라지 못한다더니 나무가 귀했다
세계에서 유명한 카르스트지구 중의 하나인 전형적인 열대 석회암지형으로 해발2천m 높이라 했다 원래 이곳은 해수면같이 평평했으나 약 백만 년 전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이일대의 기후 또한 열대에서 온대로 변했다한다
빗물에 분토가 씻어내려 감에 자꾸 돌이 솟아난 다고 했다
어찌 이런 일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돌 들이 저리도 많을까?
소석림은 가정집 정원 가꿔 놓은 것처럼 아기자기 한 돌들이 보는 방향 에 따라 동물에 모양 각가지 형태들이 감탄을 연발 하게 했다
대석림은 소석림 에 비해 웅장했다 사니족 처녀들이 입구인 석 병풍에서 관광객 들을 위해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여기가 처음 입구라는 표시로 석 병풍에는“석림”이라고 한문으로 씌여져 있었다 한 장에 천원, 너무 싼 가격이여서 우리일행은 단체사진을 찍었다
석 병풍 뒤로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통로가 여러 군데로 통해있는 돌 굴속을 끼어 다녔다 대석림 에서 가장 볼거리는 연화 봉 을 끼고 있는 검봉지 와 검봉지에서 약30m떨어진 곳에 있는 전망대인 망봉정 이였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귀나무가 여기도 바위틈 에 자라고 있었다.
마차처럼 생긴 전동차로 석림 일대를 돌아 관광을 마치고 구향동굴로 갔다
구향동굴 이름은 아홉 형제가 살았던 동굴이라 아홉 형제의 고향이라 는 뜻에 지어졌다한다
면적은 약200평방 Km이고 운귀고원 에서 가장 큰 규모의 카치터 형 종유동굴이였다
380 계단을 지나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홍콩배우 성룡씨와 우리나라 김희선 씨가 합작출연 “신화” 라는 영화를 여기서 촬영했다 고했다 장가계 원가계 갔을 적에 황룡 굴 을 보는 것 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여강 을 가야하는 비행기시간이 23시55분이라서 그동안 백련SPA온천
을 갔다 수영복을 입고26개의 일본식 노천 온천 탕을 누비고 다녔다
해발2,000m고산지대에 위치한 양종해라는 거대한 호수등 대자연과 어우러진 낭만적인 분위기인 온천으로 마사지 공간 화산 석 찜질 방 라이브쑈 등 여러 가지 부대시설을 구비한 최고급SPA온천 이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닥터 피쉬 이였다.
노천탕 안에 가만히 있으면 발가락 군살을 뜯어먹는 고기들이 어쩌면 그 뜨거운 물속에 살수 있는 것 인지? 신기하기 만했다
온천욕을 하고나니 잠이 쏟아졌지만 MU5959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곤명에서 여 강까지 비행기로 약 45분 거리였다
한밤중에 이동하니 보해전무님이 올빼미 작전하는 것 같다했다
아침 식사 후 흑룡 담 또는 옥천공원 이라는 곳에 갔다 여 강시의 북쪽에 있으며 물에 비친
옥룡설산이 매우아름다웠다 특히 공원 안에 있는 동파문화연구소 는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동파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이였다
명나라 때 만들어진 오봉 루 는 납시족, 티벳족, 한족의 문화가 합쳐진 건축양식을 볼 수 있었다 절 같은 건물은 불교협회 사무실 이라하는데 계단위에 삼국지에 나온 인물“여포”라는 동상이 우람하게 서있었다
그것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수양버들이 휘늘어진 공원 마당에서는 시민들이 택견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좋아한 나는 같이 따라했다 여기 사람들은 운동을 이렇게 아무 곳 에서나 한다고 했다
여 강은 모택동 할아버지의 고향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내길가에 모택동 동상이 손을 들고 서있었다 가이드가 “왜? 손을 들고 있는지 아는 사람?” 하고 퀴즈를 냈다
별아 별 답을 다 말했지만 오답 이였고 “택시!” 하고 차를 잡느라 손들고 있다는 엉뚱한 답을 했다 그래서 한바탕 웃었다
여 강시 는 해발2400Km에 위치한 운남성 서북부 중심도시이며 나서족 의 자치현 이라했다
총면적은7,425Km2 이고인구는 약30만 이며 그중 나서족이 57,5%를 차지한다고 했다
전용버스로 옥룡설산 으로 달렸다
멀리서 만년설에 쌓인13개의 봉우리가 파란하늘에 우뚝 솟아 삼나무 숲 과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 의 산수화였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디카로 열심히 그림을 담았다
설산 밑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운삼평” 옥룡설산의 절경중하나로 리프트를 타고 산에 천천히 올라가면서 수많은 나무 종류와 이름모르는 들꽃, 들을 내려다보며 멀리보이는 산, 옥룡설산의 절경을 조망하고 30분정도 고산초원을 걸으며 산림욕을 즐기라고 했는데 나는 숨이 차서 걸을 수가 없어서 휴게실에 머물러야했다 아마 산소부족 이였겠지...점심때가 넘은 시간이여서 배가 몹시 곱았다 휴게실에서는 군고구마, 찐 달걀, 호떡,등 을 팔고 있었지만 남편이 가방을 메고 가버려 돈이 없어서 사먹지 못하고 군침만 삼키고 있었다.
점심 후 옥룡설산을 케이블카로 등정키로 했는데 갑자기 구름이끼여 위험하다는 관계로 케이블카 티켓 판매를 정지했다 현지 가이드는 안절부절 난감해 하며 알아듣지 못한 중국말로 여기저기 전화하구서 매점아가씨와 난리법석 이더니 티켓을 구해냈다
한국에서 38명이 관광 왔는데 그냥갈수 없다고 대모 하겠다며 어름장을 놓았다고 했다
아직은 한국 관광객이 많지 않고 본토 사람들이 많았다 해발5,596m인 옥룡설산은13개봉 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위에 눈들이 마치 한 마리의 용이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하여 옥룡설산 이라 부른다고 했다
두꺼운 옷을 준비 못한 사람들은 파카를 빌려 입고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3200 여종의 식물 화석 두견화 동충화초 등등 식물자원이 풍부해서 생약초가 많았다
산 아래는 봄꽃 철쭉이 만발하고 점점 오르니 계곡에 흐르는 폭포가 장관 이였다
4506m 지점에 오르니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산 하나에 사계절 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여름에 때 없는 눈싸움을 한바탕했다 몹시 추웠지만 순간 재미 도 있었다.
4506이라 세 겨진 돌비석 옆에서“우린여기까지 왔다”는 표적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느라
야단 이였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처녀 산 정상을 바라보니 시멘트 발라 놓은 것 같은 바위들이 우람하게 서있었다 1990년 허용호 씨도 정복 못한 산이라 했다
남방구역 바다가 솟아오른 산이기에 바위가 약해 부스러져 위험하기 때문에 정복하지 못한이유 중 하나이고 또 하나는 나시족의 성산이기 때문에 정복하면 나시족이 망 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오르기를 꺼려한다 고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설산이 녹아 흘러내리는 강물 뚝 에 도착했다 이 강물은 나시족의 젖줄이라 했다 구채구 를 본 따서 만든 계단식모양으로 물 흐름을 멋지게 꾸며 놔 볼만했다
호랑이가 없는 이 동네는“ 야크 ”가 동물에 왕 이라고 했다
야크를 강물 흐르는 곳에 놔두고 사진모델로 돈 벌이를 하고 있었다.
뿔이 큰 소처럼 생겼는데 털이 몹시 길어 멋져 보였다 추운고산지역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렇게 많은 털이 필요 하겠지,
나도 그 옆에서 애들 마냥 사진 찍어 달라했다
금빛원숭이도 이곳에만 있다고 했다
이곳은 분지가6% 뿐이라서 72% 동, 돌소금 생산지이고 33%는 은이 많이 나온다했다
산이 많아서인지? 기차가 없어 물가 가 비싸다 고했다 이렇게 발전이 빨리된 이유 중 하나는 96년도에 지진이 일어나 폐허 된걸 제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햇볕은 몹시 따가워 자외선 조심하라는 말이 실감났다
전동차를 타고 주차장까지 내려왔다 매연이 없는 전동차는 환경보호에 신경썼다싶다
여 강고성은 송조 때 건립했는데 지금까지 근 천년의 역사가 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 문화 명승지로써 수수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풍격과 우아한 예술구조로 널리 알려졌다 성내의 옥천 수 는 도시의 길마다 연결된 수로를 통해 집집마다 문 앞에 푸른 물이 흐르고 있어 어느 거리나 골목이나 모두 다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밑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동방의 베니스’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물줄기를 막아 넘치도록 하여 온 동네 대청소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사방 가 는 고성의 중심에 있으며 여기에 방사형으로 길이 나 있는데 바닥이 모두 돌로 되어있고 옥천수가 흐르는 수로 주변상가를 걸으면 나시족 들의 아기자기 한 생활모습을 즐길 수 있었다 술집이나 음식점 앞에는 전통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사꾸라’일본식 이름인 음식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한국인 목포 사람이라고 했다 대체적 음식은 맛이 있어서 첨으로 많이 먹긴 했지만
어둠침침한 조명에 바닥, 의자, 식탁 모든 게 통나무로 되어 때가 끼었다 싶어 불결했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좋아 배낭 족 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니 적응하려 노력했다
곳곳에서 노래 소리와 제멋 데로 흔들며 노는 모습도 구경꺼리였다
자흡 자족 하는 운남 성 은 64% 관광수입은 여 강 에서 나온다 했다
밤비행기를 타야하기에 시간보네기 위해서는 밤거리 구경을 많이 해야 했다
우리일행은 여 강 에서 23시 비행기를 타고 24시경 곤명에 도착했다
새벽에 이동을 하게 되니 술 한잔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워했다
오늘여행일정은 99년도에 곤명 시 에서 세계 꽃 박람회를 열렸던 곳으로 갔다
시설물들은 빛이 바래고 꽃은 나름대로 계절 꽃으로 메꾸어 놨지만 별 볼거리가 없었다.
그중에 위성GPS 기술로 관리하고 있는 꽃시계 가 시선 을 집중 시켰다
민속품 박물관에는 순 금으로 만든 나무가 인상적 이었다 값으로 치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동으로 만든 소나무, 동 병풍, 옥돌에 그려놓은 그림, 자개로 만든 산수화병풍 각종 공예품 들 정말 감탄사가 나왔다
이런 물품들은 국보가 될 거라 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은 원예박람회 때 만든 거 라 했다 어느 나라든지 세계 대회를 치루고 나면 발전이 되나보다
우리나라도 이번2012여수세계박람회가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운남 민속촌으로 발길을 옴겼다.
운남의 26개 소수민족 중 약12개 민족의 촌락을 실제 형태로 모아 놓았다
각 소수민족의 복장을 하고 있는 소수민족 처녀들의 민족 노래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 는 풍습에 남자를 일시키면 가정에 수치며 완전 모계사회였다 모닥불 피워놓고 손잡고 춤추다가 맘에 맞는 사람끼리 손바닥 긁어 신호를 보네 이상형을 찾는다했다 그다음 담장 넘어 들어가 만나서 사귀다가 혼사를 치룬 다고 했다
와족 은 인디언처럼 피부가 검고 신체가 크고 소머리를 많이 걸어 놓은 집이 부자라고 했다
이족 아가씨는 양쪽 뿔이 달린 모자를 쓰고 뿔이 없으면 시집갔다는 표시라고 했다
나시족 여자들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허리 아픈 걸 방지 하기위해 따뜻하게 보호차원에서 털을 두르고 다닌다고했다 허리띠에 개구리를 그려 놓은 것은 유산을 방지 하는 비법이라고 했다 개구리처럼 쉽게 많이 낳게 해달라는 뜻이겠지요,
얼마나 육체노동이 심했으면 그러나 안타깝기도 했다
장례문화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조장”은 시체를 새들에게 먹게 하는 것 주로 티벳족 들이하고“수장”은 연못에 시체를 띠워 돌을 달아 가라앉게 하는 것이고 “식장” 은 조상의 생식기를 먹어 마음속에 함께 있다고 생각 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국은 나라가 커서 기후, 풍습, 빈부차이 뭐든 차이가 많이 나서 “차이나”라 했다고 웃으게 소리가 생각났다
우리일행은 전용버스를 타고 “곤명 호”로 향했다
곤명 호는 운남성 최대의 호수이며, 전국에서 6번째로 큰 담수호라 했다 지도에는"전지“라고표시 되어 나온다했다 곤명호수는 면적이 어찌나 크던지 마치 바다같아보였다 곤명호 주위에 동서로는 금마, 벽계의 두 봉이 끼워있고, 남북으로는 장충, 백학 두 산이 마주보고 이었다 풍경이 아름답고 아늑한 경치가 피로가 확 가셨다
벽계산은 곤명 호 서쪽에 위치하므로 서산이라고 부르기 도 했다 해발2500m,길이4km의 녹색 옷에 덮인 서산은 굽이굽이 기복이 있으면서도 마치 긴 머리를 곤명 호에 드리우고 잠자는 미녀처럼 보이므로 “수미인산” 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규모가 방대한 자연산림공원으로 원내에는 화정 사, 태화 사, 삼청각 등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고찰들이 있다는데 다 들리지 못하고 용문석굴을 갔다
서산용문은 리프트를 타고 등정, 곤명호수를 내려다보며 절벽위에 아름다운 용문을 통과해야 한 등급 승격 한다는 전설이 있어 거기를 찾아갔다
72년 만에 완공을 했다는 용문석굴은 그야말로 끈질긴 인내력 높이 평가할만했다
망치와 정 만을 사용해 절벽바위를 깎아 석굴을 만들어 지하 깊숙이 들어가 부처님을 조각해 만들고 절벽을 깎아 길, 계단 모두가 한 덩어리의 바위산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스님들 이름은 모르겠지만 대를 이여 만들었다기에 불교계 유명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나게 했다 “산을 옴 기겠다” 는.... “내가 못 다하면 내 아들이, 또 손자가....”조상대대로 하겠다는 말,
중국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도교, ....종교가 여러 가지 여서 절 또한 이해 못할 부처 같지 않은 분들이 모셔 있었다, 거북등 위에 뱀이 앉아 있는 돌 조각품도 있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거북은 장수, 뱀은 길다 그래서 오래 살게 해달라는 표시란다
중국을 어떻게 말을 해야 바르게 표현이 될까?
코끼리 배를 만지면 벽같이 생겼다하고 다리를 만지면 기둥처럼 생겼다했다는 눈먼 봉사처럼 일부를 보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게 중국이다
계림 갔을 적에 손가락처럼 치솟은 십만 봉우리 와 장 가계, 원 가계, 황산 갔을 적의 산수화처럼 절벽의 아름다움 또 다른 모습 성도 구채구의 석회석 웅덩이에 담겨진 오색 물, 황룡 굴 의 수 억년 살아있는 석순들, 모두가 천하 자연이 만들어 낸 신비스런 절경에 어떻게 말로 표현을 다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중국은 하늘이 내린 자연이 조상대대로 돈이 되는 관광 상품 이니 부럽기도 했다
중국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경제수준이 올라감에 문화가 바뀌고 실업자가 늘어나 실업자증을 발급해 세금을 면제 해준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이라서 땅 보상 문제 가 없으니 개발이 빠르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고 온갖 힘을 쓰는 무서운 나라다 고 느껴진다.
4월 23일 아침7시5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 했을 때 보해 이 전무님께서 한 말씀은 3박 5일 일정이 아니라 무박 5일 동안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에 공감이 갔던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올빼미 작전처럼 자정을 넘나들며 이동을 하였으니 그런 소리 당연하지,
짧은 일정 이였지만 한곳이라도 더 보려고 잠 못 이루고 고생 했던 것도 추억으로 남겨지겠지 아무튼 여행하는 것도 건강이 허락해줘 감사할 뿐이다
|
첫댓글 딸이가 다녀 오더니 황산 다시 가보자 합니다.
고생하셨네요,,, 제가 가이드 함서 느낀 것이 돈 많이 벌면 선진국으로만 다녀야지~~~ 했었답니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건 고생한 것 밖에 오래 남드라구요,,, 건강이 최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