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개교 60클럽 557팀 1,151게임...전통의 화랑대기는 규모마저 압도적이다
수학여행으로 한 번쯤 가본 경주는 이제 유소년 축구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3년부터 경주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화랑대기 전국유소년축구대회 덕분이다. 이 대회는 한국유소년연맹과 경주시가 주최하고, 유소년연맹과 경주시축구협회가 주관한다. 1박 2일 동안 화랑대기와 함께했다.
8월 12일 오전 10시, 서울역
신경주역으로 향하는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전국 최고의 유소년축구 잔치라는 화랑대기를 보러가기 위해서다. 화랑대기에 대해 아는 지식은 단편적이었다. 어쭙잖게 보고 들은 정보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2000년 남해에서 시작해 2003년부터 경주에 둥지를 튼 이 대회는 초등학교 축구의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대교눈높이컵으로 불리던 이 대회는 2007년부터 화랑대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반적인 전국대회가 고학년 위주로 치러지는 것과 달리 화랑대기는 U-12(6학년), U-11(5학년), U-10(4학년)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대회를 연다. 심지어 8인제 경기도 한다. 최근에는 학원 팀뿐만 아니라 클럽 팀도 참가하며 해외 유소년 팀도 초청해 경기를 치른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
신라의 천년 고도(古都) 경주에서 열리는 대회에 ‘화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꽤나 적절해 보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회 자체도 이름만큼이나 훌륭할지 기대됐다.
- ‘159개교 60클럽 557팀 1,151게임’
8월 12일 오후 2시, 경주시민운동장
서울역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경주 시내에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2시간이 걸렸고, 신경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경주 시내까지 들어오는데 추가로 50여분이 걸렸다. 시내에는 대회 본부가 있는 경주시민운동장을 비롯해 축구공원, 알천구장, 서천구장 등 주요 경기장이 모여 있었다. 이밖에도 일반학교 운동장과 체육공원 등지에서 대회가 나눠 열렸다.
‘159개교 60클럽 557팀 1,151게임’
대회 본부가 있는 경주시민운동장 정문에 붙어있는 현수막에 써진 글귀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가 열리는 11일(8월 12~22일) 동안 1,000경기를 넘게 치른다니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대회 도중 이틀의 휴식일이 있고, 결승전이 열리는 대회 막바지에는 경기 수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에 적어도 100경기 이상 치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회를 주최하는 한국유소년축구연맹 관계자는 “하루에 200경기 넘게 하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화랑대기의 산파 역할을 한 김영균 한국유소년축구연맹 실무부회장은 이 대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 등이 화랑대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것이 계기가 돼 FC 바르셀로나에 진출했다. 또한 최근 열린 리우 올림픽에서 활약한 대부분의 선수가 화랑대기를 거쳐 갔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대회 운영비로 7억 원 가량을 지원한다”고도 했다. 협찬사인 다논코리아, 키카, 동국제약은 각각의 대표 상품인 요구르트, 축구공, 연고를 지원했다.
시민운동장에는 경주시축구협회 사무실도 있었다. 내친김에 윤영선 경주시축구협회장도 만났다. 윤 회장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경주시 차원에서도 화랑대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경기장 확충 등 시설 투자와 인력 투입에 열성적이고, 무엇보다 대회로 인한 경제적 효과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낮 최고기온은 섭씨 39.4도에 펼쳐진 경기, 어린 선수들의 표정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 39.4도의 날씨에 펼쳐진 경기
8월 12일 오후 4시 축구공원 4,5,6구장
이날 낮 최고기온은 섭씨 39.4도. 이날은 전국을 통틀어 경주가 가장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날씨였다. 이 와중에도 오후 4시에 인조잔디 구장에서 킥오프하는 경기가 있었다. 그곳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화랑대기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 킥오프했다. 아침 경기는 오전 9시에 시작해 낮 1시쯤 끝난다. 점심 경기는 오후 4시 킥오프해 6시쯤 막을 내리고, 저녁 경기는 오후 7시에 시작해 9시 30분이면 막을 내린다. 가장 더운 오후 2시 전후로 경기가 열리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축구공원 4, 5, 6구장을 둘러봤다. 세 구장 모두 인조잔디로 돼 있었다. 대부분의 경기가 열리는 알천구장, 서천구장 및 축구공원 1, 2, 3구장이 천연잔디로 조성돼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 시간에 인조잔디 구장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신발을 뚫고 전해지는 열기 때문에 발이 뜨거워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었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안쓰러웠다.
더위를 식힐 겸 구장 밖으로 나왔더니 바닥 분수가 하나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물을 온 몸에 끼얹으려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벤치에 앉아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는 수원삼성블루윙즈 유소년축구교실 용인지점의 오승환 감독이었다.
“대회 시설은 대만족입니다. 다만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경기하다가 쓰러질까봐 걱정되죠. 학부모들께서 더운 날씨에 경기 치르는 것 때문에 대회 참가를 꺼려해 설득하느라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학년 경기는 오늘 야간에 배정돼 다행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간대에 U-12 클럽 팀 경기가 집중적으로 배정돼 있었다.
“저희 팀은 아이들 23명을 데리고 왔는데 코칭스태프만 5명이 따라붙었습니다. 휴식일에는 시원한 바닷가에도 데려가고, 냉수 마사지도 시키며 철저히 관리할 겁니다. 이왕이면 4시 경기는 야간경기로 돌리고, 쿨링 브레이크도 전?후반 각각 1회씩 두 번 하는데 2회씩 네 번까지 허용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금은 클럽 팀과 학원 팀이 따로 경기를 하거든요. 이것도 같이 경기를 하도록 바뀌면 좋겠어요.” 오 감독은 이 말을 남기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선수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8월 12일 오후 7시, 알천구장
낮 경기는 고역이었지만 저녁 경기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시원한 날씨 속에, 천변 둔치에 마련된 천연잔디에서 뛰는 아이들은 축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알천구장과 축구공원은 조명시설이 갖춰져 야간경기가 가능했다. 응원하러 온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와 팀을 위해 목청을 높였다. 경기가 뜨거워지면 지도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알천구장에서 대동초등학교 강경수 감독을 만났다. 강 감독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굳건히 대동초 지휘봉을 잡으며 석현준, 백승호, 이승우 등을 길러냈다. 특히 이승우는 2010년 화랑대기 득점상을 차지한 뒤 대회 우수선수 선발팀 일원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으로 가게 됐다. 이승우보다 한 해 빠른 2010년 바르셀로나로 간 백승호 역시 화랑대기 득점왕 출신이다.
“화랑대기와는 인연이 참 깊어요. 석현준, 백승호, 이승우 등이 여기서 큰 선수들입니다. 2003년부터 꾸준히 성적도 냈고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점이 커다란 동기부여 요소가 됩니다. 특히나 화랑대기는 전국에 있는 모든 팀이 기량을 겨뤄볼 수 있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팀을 모두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는 화랑대기를 이 자리까지 올려놓은 김영균 유소년연맹 부회장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농담 삼아 김 부회장님을 유소년축구계의 방정환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발로 뛰며 대회를 키워내셨어요. 초등학생들이 천연잔디에서 부상 걱정 없이 맘 놓고 뛰는 것, 조명 아래서 야간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경험이잖아요. 유소년연맹과 경주시의 노력으로 좋은 환경과 인프라가 갖춰졌습니다. 경주시 입장에서도 선수단뿐만 아니라 학부모, 가족 및 친척들이 휴가 삼아 방문하게 되니 좋을 거고요. 약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내 팀이 이기면 기뻐서 한잔, 지면 분해서 한잔하시잖아요.” 강 감독의 말대로 경주 시내는 늦은 저녁까지 사람들의 활기가 넘쳤다.
8월 13일 오전 10시, 축구공원 3구장
‘제2의 장결희’를 꿈꾸는 서울숭곡초등학교 선수단과 학부모들을 만났다. 숭곡초 출신인 장결희는 화랑대기에서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 묻힐 뻔한 진주였다. 그러나 당시 추천 선수로 선발팀에 합류해 이승우와 함께 주목을 받아 바르셀로나로 갔다.
숭곡초 학부모들을 만나면 모두가 하나 같이 장결희를 입에 올렸다. 우리 아들도 장결희처럼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손자를 보기 위해 경주에 내려온 한 할아버지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지 않고 응원에 열을 올렸다. 우연찮게도 이날 저녁 알천구장에서 이 할아버지를 다시 보게 됐다. 이 분의 샘솟는 체력과 열정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뒤이어 열린 경기에서는 그라운드 주변 풍경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골대 뒤편에 놓인 대형 파라솔 밑에 고무로 된 대형 풀(pool)이 있었다. 서울신답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신답초 선수들은 하프타임이 되자 차가운 물을 받아둔 이곳에 몸을 던졌다. 11명이 모두 들어오고도 족히 남는 사이즈였다. 어제 만났던 대동초 선수들은 스포츠 타월을 찬물에 적셔 뒀다가 하프타임에 목에 두르기도 했다. 폭염이 연일 선수들을 괴롭혔지만 다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었다.
대구FC 노병준이 경주를 찾아 아들을 응원했다 - 아빠도, 엄마도 함께 뛴다
8월 13일 오전 11시, 서천 9구장
가히 장관이었다. 서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천연 잔디 위에 13개의 5대5 축구장이 다닥다닥 늘어선 풍경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둔치 나무 그늘에 앉아 서천 쪽을 바라보면 아직 꼬마 티를 벗지 않은 U-10 선수들이 뛰고 있는 각 구장 너머로 백로들이 노니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해가 점점 더 고도를 높여가며 뜨거운 볕을 내리쬐고 있었지만, 때때로 불어오는 선선한 강바람 덕분에 조금이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둔치는 응원을 온 가족들로 북적댔다.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은 부모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북을 두드리며 어린 자녀들을 응원했다. 유독 눈에 띄는 한 무리는 강구초등학교 학부모였다. 보통 선수들의 이름이 쓰여 있는 등 부분에 ‘대근이 엄마’, ‘채민이 엄마’, ‘보규 아빠’ 등의 신분(?)이 적혀 있었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원천을 ‘동엽이 아빠’에게 물어보자 “감독님과 학부모가 함께 생각한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옷 맞춰 입고 오면 아이들이 멀리서 봐도 우리 엄마, 아빠구나 딱 알잖아요. 누구 엄마, 아빠 이렇게 적어 놓으니까 응원할 때 단합도 더 잘되고 좋아요. 아이들도 더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구초는 경주에서 그나마 가까운 영덕에 위치해 있다. ‘동엽이아빠’는 직장 때문에 광복절인 월요일까지만 경주에 있다가 영덕에 돌아간다고 했다. 아빠, 엄마, 여동생 2명까지 함께 움직이는 일정이다.
“영덕에 가 있다가도 시간이 되는 날 수시로 와야죠.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먼 데 계시는 부모님들은 아예 휴가도 맞춰서 오세요. 가족 중 누구 한 명이 축구를 하면 온 가족 스케줄은 걔한테 맞출 수밖에 없어요. 아직 초등학생이잖아요. 다 따라다녀야죠.”
가족들의 열렬한 성원은 선수들에게도 익숙한 경기의 일부인 듯 했다.
- 축구 선수 아빠의 낯선 응원
8월 13일 낮 12시, 서천 3구장
간혹 아빠의 응원이 익숙하지 않은 선수도 있다. 잠원초 4학년 노수인이 그렇다. 노수인의 아빠는 대구 FC에서 뛰는 프로 축구 선수 노병준이다. 평소 아들의 경기를 좀처럼 보러 오기 힘들었던 노병준은 부상으로 개인 훈련을 하는 중에 경주를 찾아 아들을 응원했다. 아들의 경기를 기다리던 노병준은 화랑대기의 규모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제가 어릴 때랑은 또 다른 모습이라 새롭네요. 많은 시간이 흐른 것도 있겠지만, 그때는 이렇게 여러 팀이 동시에 경기를 하는 걸 못 본 것 같아요. 확실히 유소년 축구가 많이 발전했구나 느껴요. 팀 수도 많고, 특히 4, 5, 6학년을 분리해서 모든 선수들이 경기를 뛸 수 있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무더운 날씨 속에 열린 경기라 모든 학부모들의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 했다. 오랜만에 선수가 아닌 학부모로서 경기를 지켜보던 노병준은 “예전에 제 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고 헸다. “힘들긴 하겠지만 모두가 같이 고생하는 거잖아요. 수인이가 더 성장하려면 이런 악조건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님들도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아이들을 믿고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이겨내야죠.” 축구 선수 아빠의 강한 모습이었다.
경기에 돌입하자 노수인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뛰었다. 골 기회를 놓치고 강하게 아쉬움을 표하는 손자의 모습을 본 할머니는 “저럴 땐 제 아버지랑 똑 같네”라며 웃었다. 노병준도 “저런 걸 언제 배웠냐”며 쑥스럽게 웃었다.
승리 후 아빠를 만난 노수인은 밝게 웃었다. “아빠가 와서 엄청 좋았는데, 처음에는 좀 긴장돼서 못 뛸 것 같았어요”라는 고백, “친구들이 다 같이 열심히 뛰니까 더워도 힘들지 않았어요”라는 성숙함이 아빠 노병준을 미소 짓게 했다.
8월 13일 오후 4시, 알천구장
가장 더운 낮 시간은 선수, 가족 모두에게 휴식 시간이었다. 알천구장 근처 카페는 화랑대기를 보러 온 선수 가족들로 가득 찼다. 오전 내내 더위에 지친 가족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축 늘어져 체력을 비축했다. 오후 4시 재개된 경기에서도 무더위는 여전했다. 카페에서 나와 5분만 있어도 다시 땀이 흘렀다. 땡볕 아래 뛰는 선수들이 무척 안쓰러웠지만 서둘러 그늘을 찾아야만 했다.
알천구장은 경기장과 응원석의 거리가 상당했다. 학부모들은 더위에 지친 가운데서도 선수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닿게 하기 위해 더 크게 박수를 치고 소리를 냈다. 고맙게도 기자에게 얼음물 한 병을 건넨 한 학부모는 “방학 때만 대회를 할 수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더울 때에는 일정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내년에도 이런 무더위가 없으리란 법이 없지 않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바라봤다.
8월 13일 오후 7시, 알천구장
선수들의 열정은 점점 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경기가 끝난 뒤 땀에 흠뻑 젖어도 물 한 병이면 더위를 툴툴 털어냈다. 오히려 좋아하는 축구를 하는 것에 마냔 신이 난 모습이랄까? 부드러운 천연 잔디는 선수들이 특히 좋아한 부분이었다. “천연잔디에서 뛰니까 좋아요?”라는 질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좋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조잔디는 좀 별로예요.” “천연잔디는 확실히 달라요.” “(천연잔디는) 부드럽고, 슈팅도 잘 되고, 태클도 잘 되요.” 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인조잔디에 익숙한 도시의 아이들에게 잔디 하나가 이렇게 큰 즐거움이 될 수 있구나 싶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화랑대기를 위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 화랑대기의 전통과 현실, 어찌 조화를 이뤄야 하나
8월 13일 오후 10시, 신경주역
꼬박 이틀간의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신경주역으로 왔다. 오후 10시임에도 바깥 기온은 섭씨 30도였다. 땡볕 더위에 이틀 동안 노출되니 30도는 아주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화랑대기가 이렇게 더운 날씨에 열리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2009년 주말리그가 도입되면서 전국 규모의 초중고 축구대회는 학기 중 개최가 금지(주말은 예외)됐다. 이에 유소년연맹 측은 여러 가지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시기를 나눠 개최하는 것과 지역을 나눠 개최하는 것이다. 전자는 대회를 3월과 10월 주말을 이용해 분산 개최하는 방안이고, 후자는 대회 시기를 지금처럼 유지하되 경주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도 경기를 치러 낮 경기를 없애는 방안이다. 둘 다 실현되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 및 이해 당사자의 조율이 필요하다.
한국 축구의 근간을 이루는 유소년 축구가 강해져야 대표팀 경쟁력도 강해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유소년 축구가 강해지려면 기본적으로 토너먼트 대회가 아닌 리그제가 정착되는 것이 경기력 향상이나 학습권 보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껏 잘 치러져온 전국대회를 하루아침에 없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고학년 위주의 토너먼트 대회가 아닌 화랑대기는 전통과 권위, 시스템과 인프라 면에서 훌륭한 대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자택일은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린 선수들을 위한 축제의 마당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축구 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9월호 'SPECIAL'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오명철, 권태정
사진=FA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