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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섬&산) 좋은사람들--버스매일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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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여행 후기 스크랩 동백꽃과 올망졸망한 섬 조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초도(’18.3.27)
갈하늘 추천 0 조회 1,205 18.04.19 04: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초도(草島)

 

여행일 : ‘18. 3. 27()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초도리

트리킹 코스 : 대동선착장순환도로 일주정강재남서릉상산봉(339m)정자바람재북릉대동선착장(소요시간 : 4시간 30)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여수에서 서남쪽으로 67, 거문도에서 북쪽으로 25지점에 위치한 면적 7.72의 작은 섬이자, 초도군도의 중심 섬이다. 예로부터 풀과 바닷새가 많다 하여 초도(草島) 또는 조도(鳥島)라고 불리어왔다. 중앙에 위치한 상산봉(上山峰, 339m)은 기복이 비교적 큰 산이지만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해안은 돌출한 갑()과 깊숙한 만()이 교대하며 이어진다. 이런 여건으로 인해 섬을 빙 둘러싸고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탐방로도 단순한 편이다. 최고봉인 상산봉을 가운데에 두고 빙 둘러서 내놓은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트레킹코스와 정강재에서 올라 바람재로 내려오는 산행코스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초도 트레킹의 백미(白眉)는 상산봉 정상에서 즐기는 조망이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 자체도 아름답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그 경관이 빼어나다.

 

찾아오는 방법

초도로 들어오는 방법은 손죽도나 거문도와 같다고 보면 된다. 여수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 거문도까지 들어가는데 이 배가 외나로도와 손죽도에 이어 초도에서 기항(寄航)하기 때문이다. 손죽도를 떠나 30분 정도를 달리니 초도(대동)항의 길게 이어진 방파제가 쾌속선을 맞는다.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방파제에는 쌍등이 있다. 가운데 방파제는 일자형으로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오른쪽은 노랑등대다. 배는 하얀등대와 빨간등대 사이의 뱃길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스며든다. 선착장에 내리면 상산봉과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대동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포근한 모양새를 갖췄다. 그래선지 이곳 주민들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며 살아간단다. 식량의 자급률이 높다는 것이다. 바다도 풍성한 편이란다. 인근 해역이 물살이 세지 않고 영양분이 많아 전복과 꾸죽(뿔소라), 홍합 등이 잘 자라며 미역과 가사리, , 돌김 같은 해조류와 배말, 성게 등 자연산 건강식들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특히 초도 홍합은 해녀들이 잠수해 채취하는데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하며 그 맛 역시 양식 홍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단다.




대동마을 포구는 그 크기만큼이나 물양장(物揚場)도 넓다. 웬만한 운동장도 이보다는 덜할 것 같다. 거기다 시멘트로 포장까지 되어 있다. 웬만큼 큰 행사를 치른다고 해도 터가 부족할 일은 없겠다. ! 그러고 보니 이곳 초도에서 자연산 홍합을 비롯한 패류와 해조류 등 해산물을 테마(thema)로 한 섬마을 웰빙축제를 연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8년쯤 전의 기사인데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영등철 사리에 맞춰 바닷물이 갈라지는 3월에 연다고 했는데, 올해도 열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섬마을 축제를 여는 데는 이만한 장소도 없겠다. 참고로 대동마을은 구미, 읍동, 읍포, 큰마을 등으로 불리어왔다. 조선시대 말엽인 1896년에 신설되었던 돌산군(突山郡) 삼산면 시절에는 구미리라고 불렀다는데 이 시절에 편찬된 여산지(廬山志 : 1899년 돌산군수 서병수가 편찬한 읍지)’에서는 '읍동'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이후에 큰 마을이라는 의미를 한자말로 바꿔 부른 게 대동마을이라는 것이다. 마을 앞에 버티고 있는 깨끗하고 현대화된 복지회관과 어민회관이 이 마을이 초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다.



배에서 내리니 민박집에서 보내준 트럭이 기다리고 있다. 배낭을 옮겨다준다는 것이다. 숙소가 마을이 아니었던 게 미안했던가 보다. 하긴 숙소가 건너편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한참을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아무튼 오늘 저녁에 머무를 곳은 두산민박(전화 : 010-3566-6346)이다. 여행을 좋아하던 주인장 김성균씨가 초도에 여행 왔다가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주저앉게 되었단다. 당시 눈여겨 봐두었던 두산건설의 현장사무소 건물을 매입해서 민박집을 열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다른 민박집을 구해 머물렀으니 시설의 상태는 모르겠지만, 음식 하나만은 마음에 쏙 들었다. 가짓수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정갈스러우면서도 맛깔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긴 섬에서 직접 채취한 재료를 육지의 기법으로 만들어냈으니 어찌 맛이 있지 않았겠는가. 이는 여행을 같이 한 일행들 모두의 의견이었음을 첨언해 둔다.



짐을 풀자마자 트레킹에 나선다. 초도여행의 시작점은 쾌속선이 들고나는 대동마을이다. 초도에는 크게 대동리·의성리·진막리 등 세 개의 부락이 있는데 대동리에서 시작하는 일주도로가 이들 부락을 모두 아우른다. 섬 최고봉인 상산봉을 한가운데 놓고 빙 둘러서 내놓은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돈다고 보면 되겠다. 거리는 대략 7Km 내외,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초도중학교이다. 1967년에 문을 열었다니 벌써 50년도 더 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다. 작년에 문을 닫았단다. 기껏해야 1년뿐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운동장에는 잡초만이 무성하다. 인적이 끊겨버린 채 거문중학교장 명의의 서슬 시퍼런 경고판만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전남교육감 소유의 시설물이니 무단사용하지 말란다. 아무튼 이곳도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 모양이다. 점점 공도화(空島化) 되어가는 요즘의 추세를 말이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아픔은 요 아래에도 있다. ‘초도초등학교도 텅 비어있기는 매한가지란다. 1937년에 문을 열었다니 중학교보다도 훨씬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도 세월의 추를 거스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80년 영욕(榮辱)의 세월이 이젠 옛 이야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한때는 같은 섬에 있는 의성분교와 진막분교 외에도 손죽분교와 광도분교, 평도분교, 소거문도분교 등의 분교들을 거느리기도 했다는데 말이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바람재(이정표 : 의성마을1.5Km/ 상산봉1.5Km/ 대동마을1.0Km)가 나온다. 의성마을과 대동마을을 잇는 고갯마루인데, 상산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과 이곳에서 연결되니 유념해 두자. 참고로 바람재는 섬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바람으로 인해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샛바람이 불면 파도가 크게 일어 고기잡이뿐만 아니라 김, 미역, 톳 등을 따는 갯것도 힘들어 진다. 그 샛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바람재성()’이 옛날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대동마을은 겨울에도 항상 따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성마을 사람들은 대동 마을 사람들이 대동의 복()이 의성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람재성()’을 쌓았다고 믿고 있단다. 두 마을 사이에 갈등이 심했을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삭막한 편이다. 바닷가 풍경은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날 뿐이고, 그마저도 나무숲에 가려 반의 반쪽으로 줄어들었다. 반대방향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산자락만이 계속해서 나타날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걷고 있는 지금이 이른 봄철이라는 점이다. 만일 여름철에라도 찾아왔다면 오뉴월 땡볕에 고생깨나 했겠다. 그늘을 만들어줄 가로수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분 남짓을 더 걷자 왼편 바닷가에 들어앉은 작은 포구(浦口)가 나타난다. 아까 바람재에서 거론했던 의성마을이다. ‘본동경촌이라는 두 개의 단위부락으로 이루어졌는데, 원래는 이성(利成)’ 또는 '이성금(利成金)'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마을 공동묘지 부근의 '솜널이'란 지역의 바위 부근에서 철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1914년 여수군으로 이관되면서 의성리라 부르게 되었단다. 마을로 내려가 볼까를 놓고 고민하다가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만다. 약속된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어가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대신하여 마을 앞 바닷가에 세워진 석조기념비에 대한 사연을 옮겨본다. 1882년에 삼산면(초도,거문도, 손죽도)사람들 115명이 낡은 돛단배를 타고 바람과 해류를 이용해 울릉도까지 가서 생활하다가 새로운 배를 만들어 타고 귀환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울릉군지(2007.2.28.발행)’에도 나와 있는 사실인데, 주민들은 이 일을 목숨을 걸고 울릉도와 독도를 개척하여 영토를 확보한 역사적 사건으로 여겨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진막마을에 이르기 조금 전에 왼편으로 자그만 섬 하나가 나타난다. 아마 초도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목섬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섬은 돈키호테바위일 게고 말이다. 목섬까지의 거리는 200m, 한 달에 아홉 번 폭이 7~80m 정도로 물이 갈라지면서 '신비의 바닷길'을 연다고 한다. 이때 바닥이 드러나면서 멍게와 해삼, 전복, 소라 등의 다양한 해산물을 잡을 수 있단다. 싱싱한 갯것체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바닷가로 내려가는 건 사양하기로 한다. 물이 차있는 지금에야 그저 그렇고 그런 섬 가운데 하나일 따름일 테니까 말이다.



의성마을에서 3Km 남짓 더 걸으면 진막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이 진을 쳐 '진막(陣幕)'이라 불렀다는 마을인데 앞바다에 있는 안목섬으로 더 유명하다. 사리 때면 걸어서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바닷물이 갈라진 틈에서 웰빙해산물을 맘껏 채취할 수 있다고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마을 인근에 있는 몽돌찜질로 유명한 대풍해수욕장도 가족단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파랑에너지가 집중되는 헤드랜드(hedland)나 암석해안 주변의 만입부에 형성되는 자갈해안(pebble or shingle beach)의 일종인데,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몽돌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자갈의 크기가 콩돌보다는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 중간에 정강마을을 지나왔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초도에 있는 두 개의 해수욕장 중 나머지 하나가 있는 마을인데, 은빛모래와 깨끗한 바닷물이 자랑인 해수욕장이다.



오른편에 내연발전소가 보였다 싶으면 일주도로 트레킹은 끝난다. 웬만한 섬들은 육지에서 전기를 끌어오는데, 이곳 초도는 그게 어려웠던가 보다. 아니 손죽도에서도 얘기했지만 직접 발전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어서 일수도 있다.



둘째 날이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상산봉 산행에 나선다. 산행의 들머리는 정강재, 3Km 내외의 거리가 부담스러울 거라며 민박집 주인장께서 트럭으로 들머리까지 실어다 준다. 고마운 일이다. 그 덕분에 시간이 남아돌아 북릉까지 산행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들머리에는 이정표(의성마을1.6Km/ 상산봉1.5Km/ 진막마을1.6Km, 정강해수욕장 0.8Km)가 세워져 있다. 걸어서 왔더라도 들머리를 못 찾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철근을 엮어 만든 문이 나타난다. 문의 양 옆으로는 울타리가 처져있다. 어설프긴 하지만 뭔가의 통행을 막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 문들은 산행 중에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상산봉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산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하지만 통나무계단이 놓여있어 오르는 데는 부담이 별로 없다. 아니 푸름에 겨운 주변 풍경에 도취하다보면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누군가 이곳 초도를 온화한 해양성기후라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다. 그는 이곳에 난대림이 자생하며, 또한 아열대성식물이 자생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만에 능선에 올라선다. 이곳에도 울타리를 치고 길에는 문()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소유주(所有主) 간의 경계를 나누는 울타리가 아닐까 싶다. 유해동물이 민가로 내려오는 것을 막으려했다면 이런 능선에까지 울타리를 칠 이유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누군가 이곳 초도의 풍경을 적으면서 섬 곳곳에서는 소들이 드러누워 방목을 즐긴다.’고 했었는데 놓아먹이는 소들이 남의 땅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쳐놓았을 지도 모르겠다.



능선에 올라선 산길은 그 경사를 확 떨어뜨린다. 대신 커다란 바위들이 그 빈도(頻度)를 높여간다. 또 다른 특징은 주변이 온통 동백나무 숲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때를 맞춰 찾아왔는지 나무들마다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동백나무는 12월 초순부터 4월 하순까지 꽃을 피운다. 지금이 3월이니 그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는 적기에 찾아온 셈이다.



동백꽃은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도 곱지만,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동백꽃이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시인묵객이라면 새색시처럼 수줍은 꽃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선홍빛 피의 애처로움이란 이미지도 있다. 옛날 선비들에게는 후자가 주는 이미지가 더 강했던 모양이다. 귀양을 간 곳에 동백나무라도 있을 경우에는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니 말이다. 땅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을 보고 자신의 목이 댕강 떨어지는 것을 연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난 선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낙화(落花)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새색시의 붉은 볼처럼 고운 꽃들만 눈에 차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가끔가다 커다란 바위들도 만난다. 놓치지 말고 꼭 올라가 볼 일이다. 하나 같이 뛰어난 조망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초도는 육지와의 거리 때문에 외해성(外海性) 환경에 속한다. 이런 섬들에서는 파랑에 의한 침식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경사가 급한 암석해안이나 해식애, 해식동의 발달이 탁월하여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편이다. 그런 곳 가운데 하나가 정강마을의 해안인데, 그게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 뒤에 보이는 섬은 바다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는 납대기섬일 것이다. 또 다른 낚시터인 밖목섬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다.




꽃에 눈을 맞추다보면 어느덧 망금산에 이른다. 능선에 올라선지 5분만이다. 망금산은 산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하면서도 밋밋한 바위봉우리이다. 그러다보니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을 리가 없다. 이정표도 물론 없다. 그러나 그 자태만은 빼어나다. 흐드러지게 핀 동백 꽃밭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형상이 귀엽기까지 한 것이다. 조망 또한 뛰어나다. 오면서 보았던 풍경들 외에도 이번에는 의성마을 포구까지 시야에 잡힌다.




상산봉을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동백나무 숲길은 계속된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그 개체수를 많이 줄였다. 대신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상산봉의 정상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면 산길이 가팔라진다. 그리고 그 끝에서 거대한 바위벼랑이 앞을 가로막는다.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하면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암릉 위로 올라서게 된다. 뛰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하는 곳이다. 또한 바다에 널린 수많은 섬들을 배경으로 삼을 수 있어 포토죤(photo zone)으로도 사랑을 받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앞서 오른 일행들이 자리를 비워줄 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조금이라도 더 예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겠는가.



절벽 옆으로 수평선이 보인다. 군데군데 이빨처럼 솟은 작은 섬들이 앙증맞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로 둥둥 떠 있는 섬. 외롭다. 섬은 외로움이다. 섬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바다를 지킨다. 그리고 나 같은 떠돌이 여행자들이 그 섬에 찾아든다.



바다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떠있다. 초도를 한가운데에 두고 사방으로 널려있는 형상이다. 초도군도(草島群島)란다. 원도(圓島)와 장도(長島), 중결도(中結島), 대마도(大馬島), 용도(龍島)와 안목섬, 밖목섬, 둥글섬, 납대기섬, 술대섬, 취섬, 솔거섬 등 이름도 예쁜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의성마을 포구도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온다. 둥글게 감싸고 있는 포구에 평화롭게 들어앉은 마을 풍경이 오래오래 눈길을 붙잡는다. 그 오른편 끄트머리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섬은 솔거섬일 것이다. 왕볼락과 참돔의 입질이 좋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조망을 즐겼다면 이젠 정상으로 오를 차례이다. 바위에 기대여 설치한 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상산봉이다. 정상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하나에다 전망데크를 만들고 아담한 정상표지석을 세웠다. 조금 좁기는 하지만 서로 간에 양보만 한다면 기념사진 찍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또 다른 바위에도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번엔 자연석에다 이름을 새겼다.



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로 시작되는 김진수 시인의 초도에 가면라는 시가 적혀있는 시판(詩板)도 보인다. ‘여수 참여연대라고 적어놓은 걸 보면, 요즘 직책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여수지부장자리보다 시민운동가라는 직책이 더 좋았던가 보다. 아무튼 그는 소바탕길로 상산봉에 오르면 낮고 낮은 햇살에도 퍼덕이는 금비늘을 볼 수 있다고 노래했다. 시선을 돌려본다. 바람이 이는 바다에 햇살이 쏟아지자 놀란 물결이 금비늘을 퍼덕이고 있다. 시인의 눈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금새 알아차린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빼어나다. ‘상산봉이란 남해 일원의 여러 산 중 최상급에 속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이름에 걸맞는 조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선 북쪽의 예미로부터 대동마을과 남동쪽의 의성마을과 남서쪽의 진막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오고 안목섬과 밖목섬의 바닷길이 갈라지는 현상도 손에 잡힐 듯이 눈앞에 있다. 멀리 눈을 돌리면 삼산면에 속한 손죽도와 거문도, 백도가 짙푸른 바다와 함께 눈에 차오른다. 다른 이들은 청산도와 생일도, 거금도, 외나로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직접 확인해볼 수는 없었다. 오늘 같이 시계가 좋은 날에도 확인이 안 된다면 내 눈이 나쁜 건가?



조금 전에 보았던 올망졸망한 섬들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하나같이 정겨운 이름을 갖고 있는 섬들이다. ‘둥글섬은 둥글게 생겼다 하여, ‘진대섬은 길다 해서, ‘구멍섬은 섬에 구멍이 나 있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일행 중 누군가 카프리섬에 온 것 같다!‘고 중얼거린다. 아니 나도 그 섬에 가보았지만 내가 보았던 카프리섬보다 몇 배나 더 빼어났다. 카프리섬에서는 저렇게 고운 섬들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산을 내려갈 때다. 발길을 돌리니 아까 올라올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맞은편 바위봉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그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다풍경이 더 눈길을 끌었다고 보는 게 옳겠다. 해무(海霧)에 잠겨있는 섬들이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손죽도에서 보았던 삼각산 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저런 아름다운 경관을 보는 게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정상 바로 아래의 이정표(대동마을2.5Km/ 정강해수욕장2.3Km/ 상산봉 정상)가 가리키고 있는 대동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쉽게 말해 바람재로 내려가는 능선을 탄다고 보면 된다. 능선길은 휘파람이 절로 나올 정도로 널찍하다. 양옆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광을 가슴에 담으며 내려서다보면 몸과 마음은 한껏 편안해진다.



고개를 돌리니 상산봉 정상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는 걸 보면, 아름다운 풍광에 반한 이들이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극한의 기쁨은 슬픔과 경계가 없다고 했다. 몰래 눈물 한 방울 톡 떨어뜨린 나 또한 그런 심정이었을 게다.



10분 정도를 내려오자 팔각의 정자가 지어져 있다. 고운 잔디가 심어져 있는 주변에는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이제부터 길은 엄청나게 넓어진다.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하겠다. 5분쯤 지나자 또 다른 정자를 만난다. 이번에는 동남아에서나 볼 수 있는 지붕을 씌워놓았다. 이곳도 역시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판석을 깔아놓았을 정도로 잘 정비된 길을 따라 15분 조금 못되게 걷자 바람재가 나온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30분 만이다. ‘바람재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계속해서 북릉을 탈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산행을 접을 것인가를 놓고서이다. 결론은 뻔했다. 점심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데 어찌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어제 시간제약 때문에 꾹 참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바람재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의성과 대동 마을 사이에 갈등을 빚게 만들었던 바람재성()’이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는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터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두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 즉 지금 내가 서있는 일주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단다. 제주(祭酒)와 제사 음식을 만들기 위한 물을 공급해주던 큰달샘(참샘)’도 저수지 공사로 없어져 버렸단다.



반대편 능선으로 향한다. 도로를 건넌 다음 대동마을 방향으로 몇 걸음만 내려가면 들머리가 나온다. 임도로 되어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임도의 초입은 철문으로 막혀있다. 이번에는 아예 쇠사슬로 묶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선다. 북릉으로 들어서는 진입로임을 뻔히 알고 있는데 어찌 그냥 돌아설 수 있겠는가.



잠시 후 능선으로 올라선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밋밋한 능선이다. 거기다 펑퍼짐하게 퍼져있다 보니 조망도 별로이다. 그저 어쩌다 한 번씩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주변의 섬들과 길가에 널리다시피 한 정금나무의 붉은 열매가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하지만 등산로를 가꾸려는 의지가 돋보이기도 한다. 길가에 동백나무를 새로 심어 놓은 걸 보면 말이다.



길을 걷다가 오른편 나무숲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풍경에 발길이 멈춰진다. 초도 주변으로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떠있는 것이다. 아까 정상에서 거론했던 정겨운 이름의 섬들, 즉 둥글섬과 진대섬, 구멍섬일 것이다. 또 다른 섬들은 솔대섬과 취섬이 분명하다.



반대편으로는 아까 올랐던 상산봉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완만한 구릉(丘陵) 모양으로 생겼다. 저래서 이곳 초도가 물이 많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다. 하긴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논농사까지 지었었고, 내연발전소가 들어오기 전에는 진막마을에 시간당 80kw를 생산하는 자그마한 수력발전소까지 있었다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주변에는 드릅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채취는 금물이다. 민박집 주인장의 말로는 산주인들이 심어놓았다는 것이다. 능선은 또 칡넝쿨들이 지천이다. 일부러 심어놓은 동백나무들이 몸살을 앓고 있을 정도이다. 그게 안타까웠던지 일행 한 분이 간간히 넝쿨을 걷어내면서 걷고 계신다. 일흔을 넘기신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아 따라 해볼까 하다가 아서라로 마무리 짓고 만다.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귀찮은 넝쿨식물에 불과하지만, 역사의 바늘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보면 칡은 정말 고마운 식물이었다. 뿌리, 줄기, , 꽃 모두 요긴하게 쓰였다. 갈근(葛根)이라 불리는 칡뿌리는 흉년에 부족한 전분을 공급하는 대용식이었으며, 갈근탕을 비롯한 여러 탕제(湯劑)에 쓰였고 질긴 껍질을 가진 줄기는 삼태기를 비롯한 생활용구로 널리 이용되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칡꽃(葛花)에 대한 효능도 적고 있다. ‘칡꽃(갈화)과 소두화(팥꽃)를 같은 양으로 가루를 내어 먹으면 술을 마셔도 취할 줄 모른단다.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효능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40분 조금 못되게 진행하면 북릉의 끝자락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서 하산을 시작하다보면 오른편에 예미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예미마을과 대동마을을 잇는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상산봉 종주산행이 끝난 것이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이 걸렸다. 상산봉 정상에서 30분 정도를 놀았으니 2시간30분이 걸렸다고 보면 되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나로도(고흥군 봉래면)에 있는 우주과학관에 들렀다. 거문도로 들어가지를 못한 여객선이 그냥 나로도로 귀항해버려 도착시간이 1시간 반이나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기상악화가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나보다. ‘나로우주 센터는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현황과 우주의 비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이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리기 위해 건설한 최초의 우주발사체 발사기지이다. 이곳에 있는 우주 과학관에는 다양한 첨단 과학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우주과학에 관한 기본원리, 로켓, 인공위성, 우주탐사 등을 주제로 한 작동 체험 전시품 32종을 포함한 90여 종의 전시품이 있다. 이곳에는 우주개발 4D영상관, 야외 로켓전시장, 정보 검색관, 별자리관측 체험관, 로켓발사 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우주 과학 관련 교육 및 체험 학습이 가능하다. 또한, 야외 전시장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사한 우주 발사체인 나로호의 실물 크기만 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섬에다 조성하다보니 한쪽 면은 바다와 연결된다. 자잘한 몽돌들이 깔려있는 너른 바닷가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수행할 것 같다. 납작한 몽돌이 찜질용으로 사용해도 충분할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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