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
-노갑선론
백남오(문학평론가, 경남대초빙교수)
1.수필가 노갑선과의 만남
문학 활동을 하다 보면 많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 보통 문인의 경우만 해도 문학회의 소속단체가 대여섯 개 정도는 될 것이다. 지역사회에 몸담고 살다 보면 자기가 살아가는 지역 문학단체에 입회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시군단위, 도 단위, 장르별 등 문학회의 숫자도 많기만 하다. 같은 지역에 산다고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한 작가를 깊이 알기는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구조다. 노갑선 수필가도 우리 지역사회의 많은 문인들 중 한명이다. 그런 어느 날, 노 수필가가 내가 소속된 수필단체에 입회를 하게 되었다. 신입회원이 들어오면 그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것은 작품에 대한 관심이고 첫 합평회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첫 합평회는 하나의 통과의례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치열하고 열기가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 발언수위로 인해서 문학회를 탈퇴하는 사례까지 있고 보면 웃지도 울지도 못할 자존심 싸움이라할 수 있다.
나는 노갑선 수필가를 그 첫 합평회에서 만났다. 〈모시옷, 바람을 입다〉라는 수필을 제출했는데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묘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고정관념과 일상적인 생각을 여지없이 깨트렸다. 본질을 향하여 끈질기고 성실하게 노력해가는 한 작가의 순일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았다.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한 수필 본래의 정체성과 단아하고 섬세한 문장도 인상적이었다. 다음 글을 한번 보자.
풀을 먹여 손질한 모시옷을 다림질한다.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으면 잔주름이 펴지며 올 사이로 숨을 쉬는 듯하다. 차회茶會가 있거나 경사스러운 행사에 갈 때면 모시옷을 입는다. 연분홍 저고리와 쪽빛 치마는 비칠 듯 감춘 단아한 자태로 발걸음을 가볍게 할 것 같다.
한산 모시 한복은 가슬가슬한 촉감과 고운 색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연분홍빛 저고리는 오미자 물에 얼음을 동동 띄운 차를 마시는 것처럼 오감을 깨운다. 쪽물에 아홉 번을 담가 물들인 치마는 짙푸른 바닷물을 연상시켜 시원스럽다. 땅과 우주의 기운을 듬뿍 받은 모시풀의 수액이 몸속으로 전해지는 것 같아 무더위를 잊게 한다. 오랜 세월 정을 쌓아온 차회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날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모시옷, 바람을 입다〉일부
작품의 첫 부분이다. 그는 가끔 모시옷을 입고 다닌다. 땅과 우주의 기운을 듬뿍 받은 모시옷을 입고 그녀는 어디로 가는 것 일까가 궁금했다. 오랜 세월 정을 쌓아온 차회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모시옷을 입는다고 한다. 모시옷과 차, 묘한 어울림과 울림을 준다. 전통과 명상이라는 화두가 작품 전체를 일관하고 있다. 모시 한 필을 짜기 위해서는 수많은 땀방울을 쏟아야 한다. 4천여 번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라 한다. 잠자리 날개 같은 세모시는 밤낮으로 베를 짠 여인의 눈물과 한이 녹아 있다. 작가는 평소 모시옷을 아끼고 즐겨 입으면서도 얼마나 정성이 깃든 옷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백옥 같은 세모시 한복을 입고 다회 찻 자리에서 작가는 연차를 우려낸다. 큼지막한 도자기 연지에 꽃잎을 활짝 펼친 백련의 은은한 향을 음미한다. 시원스런 차 한 잔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욕망의 찌꺼기들 까지도 씻어 내린다. 모시 한복은 베를 짠 여인의 지순한 기도와 인내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고스란히 느껴진다. 풀을 먹여 손질한 모시옷은 저마다의 자존심을 내세우듯 빳빳하게 올을 세운다. 전통의 멋과 시원함을 지닌 모시옷이 현대인들에게 널리 애용되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라고 탄식한다. 이후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노갑선 수필가는 두 번째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며 나에게 작품해설을 부탁해 왔다. 사실, 많이도 밀린 청탁원고와 강의 등으로 옆을 돌아볼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시기라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좋은 작가가 있는 곳이라면 천릿길도 달려가 그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앞에 몸을 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원고를 건네받아 목차부터 찬찬히 살펴보니 <인, 의 예, 지> 4부에 각부 11편씩 44편의 작품제목이 반겨주고 있었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성품, 곧 어질고, 의롭고, 예의바르고, 지혜로움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 나전칠기, 사포질을 하다, 녹의홍상, 꽃신, 차 항아리, 복주머니, 부채, 느림의 미학, 노리개의 멋, 가을 들차회, 그림이 있는 찻잔, 웅천 찻사발, 퀼트 가방, 차와 다식, 차문향, 코뚜레, 이천년의 향기 장군 차, 윷놀이의 묘미 등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차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늘 주장하는 미래수필의 방향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그의 두 번째 수필집 《하늘 꽃 피다》(2022,도서출판경남)를 중심으로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미래수필의 큰 방향은 신변잡기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깊은 사유를 확장해가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전문적인 삶의 현장을 담은 수필시대가 열릴 것으로 본다. 이미 그런 시대로 접어들었다. 가령, 나무를 키우는 일, 야생화를 탐색하는 일, 산을 노래하는 일, 바다를 탐구하는 일, 평생을 종사한 직업적 체험, 등이 핵심적인 소재의 방향이다. 하나의 주제를 통한 집중적인 사유야말로 문학작품의 가치와 격은 높아지고 예술성으로 이어질 것이고, 독자의 가슴에 감동을 주게 될 것이다. 이것저것 백화점식 글에서 독자들의 박수를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무명작가의 사소한 일상에 독자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앞으로는 대하소설처럼 대하수필도 나와야 한다. 이런 실험정신의 작품집을 기다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노갑선의 수필은 전통문화와 다도라는 또 하나의 주제 군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너무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언제부터 이 땅에는 이렇게도 서구의 문물이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지나칠 정도로 우리 것을 잊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내세울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혈관 속에 한국인의 사상과 정서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러한 전통문화를 이해해야 함은 당연한일이다. 노갑선 역시 이러한 입장에서 전통문화와 사상을 생각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전칠기 장롱은 산수화 다섯 폭을 펼쳐 놓은 듯하다. 수초로 우거진 호수의 반짝이는 잔물결 위로 오리 한 쌍이 마주보며 속삭이고, 어린 새끼 몇 마리가 노닌다. 깊은 산골짜기에는 사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바위를 에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다. 아름드리 소나무 가지에 앉은 학은 날개를 펼쳐 비상을 꿈꾼다.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 너머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간다. 해, 구름, 산, 물, 돌, 소나무, 거북, 학, 사슴, 불로초 등의 십장생十長生이 여러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늙지 않고 오랫동안 사는 동식물을 상징물로 삼아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염원을 담아 놓은 것이다. 문짝과 손잡이까지 새와 거북, 수복壽福이라는 글씨를 새겨 박은 것이 정교하기 비할 데가 없는 것 같다. 산수화에 흠뻑 빠져 있다 보면 일상에서 찌든 때가 말끔히 씻은 듯 편안해진다.
-〈나전칠기〉일부
나전칠기는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옻칠한 농짝이나 나무 그릇에 붙이고 박아 만든 칠예 공예품이다. 고려시대 귀족문화로 세련되게 발전하여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산하 12공방에서 다양한 옻칠공예품이 제작되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 흔한 가막조개, 전복껍데기 등을 이용한다. 얇고 두꺼운 자개를 자르거나 조각해 붙이기도 하고, 갈아서 가루를 뿌리는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동물의 몸통 부분은 볼록하게 입체감을 주고, 새의 활짝 펼친 꽁지깃은 진주빛 자개로 아주 세밀하게 표현한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과 곡선을 이룬 산의 능선은 머리카락처럼 얇고 길쭉한 자개로 이어진다. 나전과 옻칠이 만나 하모니를 이루며 독특한 우리문화를 꽃피운 것이다. 십장생 나전칠기는 장인들이 얼마나 오랜 기간 정성을 쏟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나전칠기는 이제 더 이상 귀한 물건이 아니다. 붉은 옻칠 바탕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모양의 나전을 붙인 고급스러운 장롱이 아파트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나뒹굴고 있다. 안방마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귀한 것이 폐기물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작가는 이러한 나전칠기가 세월 따라 찬바람을 맞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천년을 이어 온 나전칠기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작가는 이러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한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흐르는 세월 속에 새로운 문화와 유행을 받아들이는 일이 현실이거늘. 전통문화에 대한 소멸의 아쉬움을 표현한 작품으로는 이외도 사포질을 하다, 꽃신, 복주머니, 부채, 느림의 미학, 노리개의 멋, 퀼트가방, 윷놀이의 묘미 등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음 작품을 보자.
①거칠거칠한 나무판에 쓱싹쓱싹 사포질을 한다. 나무에서 각질처럼 일어난 가루가 신문지 위로 떨어진다. 하얀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말린 후 사포로 문지르기를 반복한다. 힘을 가해서인지 손등에 푸른 심줄이 드러나고 엄지와 검지에 통증이 느껴진다. 밑바탕 작업은 냅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마치 주인공을 빛나게 한 조연의 숨은 공로를 보는 것 같다. 냅킨아트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작업에 몰두한다.
-〈사포질을 하다〉부분
②꽃신은 나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아픔까지 되살아나게 했다. 중3때 겪은 일이 오십 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마음속에 꼭꼭 숨어 있었다. 장마가 계속되던 여름, 뒷집 할머니 장례식 날이었다. 다섯 살 남동생은 저수지에 동동 떠내려가는 검정고무신을 따라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아버지도 삶의 의욕을 잃었다. 먹구름이 깔린 집안 분위기는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렀다.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는 힘든 날이 이어졌다. 검정고무신은 생각만 해도 두렵고, 가슴 아린 기억으로 남아 애써 외면했던 시간들이었다.
-〈꽃신〉부분
위 작품① 〈사포질을 하다〉에서 사포질은 까칠까칠한 물건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려고 사포로 문지르는 일을 말한다. 사포란 모래 알갱이가 붙어있는 까칠까칠한 종이나 천이다. 이 작품에서 사포질의 비유적 의미는 작가의 마음속에 삐죽삐죽 돋아난 가시를 없애는 일이다. 날마다 불쑥 불쑥 돋아나는 미운 생각의 마디들을 쓱싹쓱싹 힘주어 사포질을 해준다. 냅캔아트라는 낯선 분야의 예술에 입문하면서 또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완성된 함 세 개를 나란히 두고서는 빨간 장미꽃 함은 남편에게, 물기를 듬뿍 머금은 어린나무 함은 손녀에게 선물로 안긴다. 두 사람이 싱그러운 나무처럼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마음과 사랑이 오롯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하나 남은 해바라기 꽃 냅킨 함은 책상 위에 앉아 수시로 화자와 눈을 맞춘다.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펼치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면서 작가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선입견과 사심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뾰족한 가시가 되어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주는 삶을 살았는지를 성찰하고 되돌아본다.
작품②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K문우로부터 선물로 받은 꽃그림이 그려진 검정고무신을 두고 작가의 내면에 깊이 잠재된 무의식세계를 들추어낸다. 5세의 어린 남동생이 저수지에 빠져서 떠내려가 검정고무신을 따라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아픈 사연이다. 따뜻한 문우의 마음이 작가의 가슴 밑바닥에 웅크린 아픔까지 치유되는 순간이다. 장마철이나 물놀이 갈 때는 물론 현관에 두고 마음 편하게 신고 다닐 정도로 꽃신은 화자가 아끼는 물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꽃신은 사랑스러움, 설렘, 애틋함, 그리움, 허전함 등의 이름표를 달고 여인의 미묘한 감정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꽃신 그림이야말로 아름다운 정서를 담은 전통의 미를 한껏 뽐내었다고 하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새기고 있다. 그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붓끝으로 생의 지문을 새겨 놓은 꽃신의 어여쁜 자태는 한복과 어우러져 곡선미의 완성을 이룰 것이라 기원한다.
노갑선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 이외도 차와 차향, 차 항아리, 다도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노갑선 수필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 할 수가 있다. 다음 작품을 보자.
①한줄기 햇살이 찻잔 속에 몸을 푼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찻물이 섬진강 노을빛을 닮았다. 금빛 수색을 띤 차향이 은은하게 퍼지자 찻상 앞에 앉은 여인들은 감미로운 차 맛에 젖어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바람의 등에 업혀 백운산을 넘어 온 눈 꽃송이도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준다.
부춘 다원 여봉호 명장은 특 우전 발효차를 서슴없이 개봉하여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우린다. 곡우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최상품이다. 첫눈을 맞으며 찾아 온 손님이라 여겨서일까. 새 봉지를 열어 대접하는 것이 따스한 마음으로 전해진다.
-〈茶 항아리〉일부
②등 굽은 소나무 아래서 두 여인이 황차를 우린다. 무명 갈색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가을 햇살처럼 포근하다. 등황색을 띤 찻물이 깊은 맛과 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따끈한 차 몇 잔을 마시니 묵은 체증이 내려갈 정도로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힌다. 살청과 유념을 마친 찻잎을 쌓아 천으로 덮어 두는 민황 과정을 거친 발효차다.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기에 숙성된 차 맛을 지녔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하듯 차 또한 발효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리라. 깊은 정을 나눈 오랜 친구 같은 곰삭은 맛이다.
-〈가을 들차회〉일부
작품①은 항아리에서 발효된 차를 우려 찻잔에 따라 마시는 풍경을 형상화했다. 지리산 화개 골짜기의 맑은 공기와 섬진강의 물안개를 흙의 작은 입자로 녹여낸 차다. 차의 명장은 숙성된 맛과 향을 보존하는 것이 운명이라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내었음을, 화자는 대견해한다. 장인의 눈에 띄어 차향을 품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긴다. 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차를 나누다보니 항아리가 말끔히 비워졌음에 고마워하고 안심한다.
화자의 집 다실에도 질박한 차 항아리가 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머금은 청갈색 항아리는 창가에 자리를 잡은 지 20여 년이 되었다. 원통형의 몸매에 둥그스름한 모자를 쓰고 있어 볼수록 정감이 간다고 한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의 열기를 견디느라 눈물 자국 같은 매화 피가 군데군데 맺혀있다. 작가는 해마다 봄이면 싱그러운 보이 차 한두 편을 구입해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색, 향, 미를 오감으로 즐기고 싶어 항아리 속의 차를 꺼낸다. 찻상에 펼쳐 놓은 차는 해가 거듭될수록 서서히 발효되어 다양한 빛깔을 선보인다. 찻잎은 나이테를 새기듯 짙은 초록빛에서 흑갈색으로 숙성된다. 새싹처럼 상큼했던 향은 성숙한 여인처럼 향이 깊어간다고도 한다. 그는 어쩔 수 없는 다인이다.
작품②는 작가가 오래전, 인성교육기관인 예지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의 일이 배경이다. 예절, 다도, 전통문화에 관한 수업을 받으며 전통차를 접하게 된다. 봄이면 차나무 시배지인 하동 다원으로 가서 차 만들기 체험을 한다. 초록으로 일렁이는 차나무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찻잎을 땄다. 불로 달군 가마솥에 찻잎을 덖으면 내뿜는 열기와 수증기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살청한 찻잎을 멍석에서 비비고 건조대에 말려 다시 덖는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여 가슬가슬한 녹차를 만들어 낸다. 차 한 봉지를 얻기까지 얼마만큼 정성을 쏟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행사 때 차회에서는 둥그스름한 도자기 연지에 백련 한 송이 띄워 은은한 향기를 풍기게 한다. 가지런히 놓인 다관에는 따끈한 발효차가 깊은 맛과 향으로 마음을 이끈다. 앙증스런 다화와 정갈한 다식 등이 어우러진 멋진 찻자리는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다우들과 차를 마시고 덕담을 나누며 서로 마음을 통하고 정을 쌓아간다. 화사한 봄날이나 국화향이 그윽한 가을이면 들차회를 즐긴다. 한복을 입고 무거운 도자기 다구들을 챙겨 들고 다녀도 힘든 줄을 모른다고 한다. 축제에 온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봉사활동은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라 고백한다. 그에게 남을 배려하는 일은 이미 체화된 것이다. 표제작인 〈하늘 꽃 피다〉를 한번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얀 찔레꽃이 핀 산기슭에서 자연의 색에 흠뻑 빠져든 날이다. 천연 염색 천과 소품은 정성으로 빚어낸 선물이 아닌가 싶다. 꽃과 열매에 드나든 벌 나비의 속삭임과 달과 별빛이 스며있다. 햇살 한 줌과 싱그러운 바람, 영롱한 아침이슬을 머금었다. 온갖 식물과 광물, 동물의 배설물 까지 항아리에 담아 숙성을 시켜 얻은 염료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다. 고유의 빛깔을 내기 까지 손길은 몇 번이나 닿았으며 땀방울은 얼마나 흘렸을까. 일상에 찌든 내 마음도 쪽 항아리에 푹 담그고 싶다. 잘 매만지고 다독거리면 은은한 향과 고운 빛깔로 물들여지려나.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순처럼 싱그럽고, 야생화처럼 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면 더욱 좋겠다. 하늘 꽃으로 피어난 색색의 두루마리가 춤을 춘다.
-〈하늘 꽃 피다〉부분
화자는 자연염색 옷을 즐겨 입는다. 자연의 품에 안긴 것처럼 편하기 때문이다. 오미자로 물들인 연분홍 실크 스카프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이 어우러져 있다고 생각한다. 쪽빛 모시옷은 바다와 하늘을 닮은 듯 넉넉한 마음으로 이끌어주며 겨자로 물들인 명주 누비저고리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믿는다. 정성으로 빚어낸 고운 빛깔처럼 마음도 자연의 색으로 물들여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는 것이 화자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하늘 꽃으로 피어난 색색의 두루마리가 춤을 추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3. 노갑선 문학의 뿌리
노갑선은 1954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2007년 계간 《수필시대》 신인상을 받으며 수필가로 등단을 했으며, 2017년 첫 수필집 《꽃등》을 펴냈다. 경남문협 이사, 마산문협 부회장 등의 직책을 맡아 봉사했으며 현재는 붓꽃문학회 회장, 경남수필 부회장의 중책을 맡아 수필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2022년 12월에는 제1회 붓꽃문학상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고, 2023년 9월에는 경남문협 우수작품집 상을 받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갑선 수필의 두 개의 축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다도에 관한 관심이다. 그것을 통해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을 문학작품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문학적 토대는 무엇일까. 그의 문학적 뿌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진달래가 산등성이마다 꽃불을 댕기면 아버지 발걸음은 더 분주했다. 광에다 신주처럼 모셔 두었던 볍씨를 물에 불려 반듯한 모판에 새싹을 키웠다. 뒷산에 파릇파릇 돋아난 떡갈잎을 베어와 퇴비를 만들었다. 모내기철이 되면 다시 땅을 갈아 물을 대었다. 찰방찰방한 무논에서 써레질을 하면 아버지와 소는 흙탕물에 발이 푹푹 빠지며 비지땀을 흘렸다. 모내기를 하는 날이면, 못줄을 잡은 아버지는 구성진 노동요 가락으로 일꾼들이 신명나게 흥을 돋우었다.(중략)언젠가 친정집 헛간을 들여다보니 텅 비어 있었다. 괭이, 쟁기, 써레 등의 농기구를 고물상들이 헐값에 가져가 버린 것이다. 서까래를 받친 나무기둥에 낫과 호미 몇 자루가 걸려 있었다. 허허로운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동그란 코뚜레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손때가 묻어 있고,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물건이라 무척 반가웠다. 절기에 맞추어 씨앗을 뿌리고, 땀 흘려 농사를 짓지 않으면 결실을 맺을 수없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계셨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코뚜레〉일부
작가는 쟁기질하며 농사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성장했다. 아버지는 회갈색 벼 뿌리만 촘촘히 남은 황량한 논에서 쟁기질을 하며 땅을 일구었다. 순둥이 암소는 코뚜레에 묶인 줄에 잡힌 채 무거운 쟁기를 끌고 뚜벅뚜벅 논밭을 갈았다. 몸집이 큰 소가 아버지의 호령에 맞춰 앞으로 가고, 방향을 틀고 하는 모습이 어린 화자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하굣길에는 논이랑의 흙덩이를 파헤쳐 고사리 손으로 올비를 줍는 일로 청소년기의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때는 종일 쟁기질을 하던 아버지의 힘든 시간은 안중에도 없었다. 화자의 아버지가 이순이 지날 무렵, 척추와 무릎 연골이 닳아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아버지가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던 소도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정든 소와 이별을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순둥이도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굵은 눈물을 흘렸다. 소는 가족이었던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와 소가 떠난 집은 찬바람만 휑하니 불었다. 화자는 아직도 빛바랜 코뚜레를 소중한 물건처럼 간직하고 있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집을 팔 때면 잊지 않고 코뚜레를 챙겨 싱크대에 걸어둔다. 아버지 손때가 묻어 있어, 아버지의 좋은 기운으로 일이 술술 풀리기를 바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그렇다. 노갑선은 농사를 짓는 다복한 전통농가 7남매의 형제들 속에서 티 없이 자랐다. 그의 문학적 토대는 유년시절 화목한 가정과 가족들의 사랑이다. 결혼을 해서도 8남매의 장남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해냈다. 시댁의 가족들로부터도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흙은 순수하고 거짓이 없으며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게 한다. 그러한 바탕이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희생정신이 자연스럽게 문학적 토양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는 사단법인 예지원에서 20년간 봉사활동을 했으며 적십자 봉사도 10년이나 했다. 이 시기에 작가는 다도에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수필쓰기에 심취하게 된다.
인도의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 사드》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지는 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 잠시 멈춰서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것은 신성神聖에 참여하는 것이다.’ 노을의 전송 속에 침강하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한 순간 시간과 숨을 멈춰 세우고 짧은 탄식을 내뱉는 것은 지적 각성과 미적 충격으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때 그 순간은 영원이 된다. 그 미의식을 따라 근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무를 거쳐 소멸이 나타난다. 사라지는 것은 아름다움의 대모大母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려 하거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이 사라지려 할 때, 그 사람이나 그 장면을 다치지 않고 생생하게 잡아두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 차마 아무렇게나 잊어버리거나 지나쳐버리거나 버려두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때로는 사라져버린 것을 떠올려 눈과 귀가 잠시 멀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이다. 노갑선의 문학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사진을 순간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문학을 포함하여 어떤 예술이든 그렇지 않을까. 모든 예술은 순간의 강렬한 인상, 그것을 포착하고 잡아두려는 몸부림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억겁의 세월 무수한 사람들의 사연 중, 지극히 일부 순간들만이 사라지지 않고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또 몇몇만이 영원에 버금가는 지위를 얻게 된다. 신라의 승려 의상(625-702)은 ‘한량없는 세월이 한순간 생각이요, 한 순간 생각이 한량없는 세월’이라고 갈파했고, 청초의 문장가 김성탄(1608-1661)은 ‘죽을 먹을 때 떠오른 착상을 숟갈을 놓고 잡아야지, 다 먹은 뒤에 잡으려고 한다면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문학이 마음을 주지 않으면 끝내 자신도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갑선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애착은 찬란한 슬픔의 미의식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노갑선의 수필세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정리하자면, 노갑선의 수필은 전통문화와 다도茶道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지탱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소멸에 대한 경탄은 신성에 참여하는 것이며 찬란한 슬픔의 미의식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토양은 유년시절 화목한 가정과 가족들의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특별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이 그의 수필 기저를 관통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다복한 전통농가의 7남매의 형제들 속에서 자란 심성이 문학적 핏줄이다. 흙은 순수하고 거짓이 없으며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게 한다. 그는 주어진 일에는 강한 책임감으로 전부를 바쳐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한 바탕이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으며, 문학적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