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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1기 – 시편>
제6과 내가 일어나는 때에
<2월 3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주님께서 곧 하늘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진리와 그 사건에 필수적인 준비에 대해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엄숙히 생각하기에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은가? 이 주제는 뚜렷하고 분명하게 사람들 앞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인자가 자기의 영광으로 오시리니 … :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마태복음 25:31~32). …
최후의 심판은 가장 엄숙하고 두려운 사건이다. 이 일은 우주 앞에서 일어나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심판을 주 예수께 맡기셨다. 그분은 여호와의 율법에 충성의 보상을 선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주민들 앞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분의 정부는 옹호되고 영화롭게 될 것이다. 가능한 가장 큰 규모로 하나님의 정부가 옹호되고 높여질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나 한 국가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전 세계에 대한 심판이다. 오, 그러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이해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그러면 모두가 영생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This Day With God, 296)
◎ 순수한 그리스도의 종교는 자선과 사랑과 희생의 시내가 흐르는 샘물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와 같은 남자, 그리스도와 같은 여자를 말한다. 그는 활동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친교 모임에 참석하며 그가 그곳에 참여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신앙은 행위로 구성되지 않지만, 신앙은 작동하며 휴면 상태가 아니다.
신앙을 가지면 사람이 폭이 좁아지고 속박된 인간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순수한 신앙심을 갖고 있으면 폭이 좁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 능력을 속박하고 마음을 좁게 만드는 것은 신앙심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좁으면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기름 부으심이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서 일하실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화잇주석, 약 1:27)
◎ 참된 심령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안위가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신비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영원한 것으로 가득해지고 영광으로 충만하다. 그것은 휘장 안으로 들어가고 영혼의 닻으로서 확실하고 견고하다. 그리고 하나님 진노의 폭풍이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 몰아칠 때 이 소망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그 은밀한 곳에 숨게 될 것이다. …
비록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초막같이 사라질지라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아들과 딸, 354)
<2월 4일/일, 권능의 전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타락한 인류는 사탄의 합법적인 포로이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인류를 그의 큰 원수의 세력에서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사탄의 제안을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강한 정복자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 거하셔서 그의 욕망을 지도하고 그에게 힘을 주지 않으면, 그처럼 무서운 원수를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없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힘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으면 그를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보다 더 잘 안다. 그들이 도움을 받기 위하여 강한 정복자에게 겸손하게 간구할 때,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하며 진리 안에 있는 가장 연약한 신자도 사탄과 그의 모든 군대를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다.
사탄은 한 영혼일지라도 그 진로를 방해하기 위하여 그의 사자의 무리를 불러서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할 수만 있으면 그리스도의 손에서 그 영혼을 빼앗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위험 가운데 있는 그 사람이 꾸준히 견디고, 속절없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에 맡기면, 우리 구주께서는 그 열렬한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힘이 뛰어난 천사들의 원조를 보내 주신다. 사탄은 그의 강력한 경쟁자에게 사람들이 호소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분의 능력과 위엄 앞에 두려워 떨기 때문이다. 열렬한 기도의 음성에 사탄의 온 군대는 떤다.(Our Father Cares, 216).
◎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넉넉히 이기”(롬 8:37)는 자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능력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서만 그것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품성에 관하여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으며 또한 “지식에 뛰어난”(엡 3:19) 사랑의 오묘 속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의의 따뜻하고 온화한 태양 빛 속에서 살아야 하겠다. 그리스도의 인자한 동정심과 그의 거룩한 은혜와 그의 전능하신 능력 이외에 아무것이라도 사나운 원수를 패배시킬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의 마음의 반대 세력을 복종시킬 수 없다. 우리의 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주님의 기뻐하심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게 하라. 그때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마련한 능력을 받을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우리 것이 된 축복으로 인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만일 인간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케 하며 그의 심령이 정결함을 받기 위하여 마땅히 행하여야 할 사업을 행하는 데 전적으로 무능함을 인식하며 또한 그의 자신의 의를 내어버린다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에 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일에 그분의 손을 펴사 그가 그분 안에서 완전하여질 때까지 그 사업을 계속하실 것이다.(하늘에, 64)
<2월 5일/월, 압제당하는 자를 위한 공의>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불우한 자, 눈먼 자, 절름발이, 고통당하는 자, 과부, 고아, 궁핍한 자들을 동정하는 자들을 그리스도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자, 곧 영생 얻을 자들이라 하신다.
잃은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이 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에 동참한 자들이 그들의 동료 인간에게 관심과 동정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이 지위와 계급의 자랑에 몰두하여 불우한 자와 가난한 자들을 멸시할 수 있을까?(구호, 209)
◎ 어떤 사람이 자기와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정직한 노력으로 애를 써도 생활이 되지 않아 필요한 음식과 의복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때, 필요를 채울 수 없는 이 형제들의 사정을 만일 무관심과 낙착된 상황으로 본다면 주께서 봉사하는 형제들에게 죄 없다고 선언하지 않으실 것이다. … 우리는 불행한 형제들의 사정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궁핍과 압제의 멍에를 메고 있는 어떤 형제와 자매의 필요를 구제해 주지 않는 어떤 등한한 행동도 하늘 책에는 성도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 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면서도, 그들보다 불행하고 성공하지 못한 믿음 안에 있는 형제들에 대하여 부드러운 동정과 염려를 나타내지 못하는 많은, 대단히 많은 사람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실까.(구호, 210)
◎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얼마나 큰가!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주시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분은 반역한 인간 자녀들을 구원하여 그분의 목적을 깨닫게 하고 그분의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해 최고의 선물을 주셨다. 그대는 독생자를 주신 그분께 예물과 헌물을 드림으로 그대가 그분께 드리기에 아깝게 생각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으려는가?
관대함의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며 이기심의 정신은 사탄의 정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 발전을 위하여 사람들을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천사들을 그분의 진리의 대사로 삼을 수도 있으셨다. 그분은 시내산에서 친히 음성으로 율법을 선포하신 것처럼 그분의 뜻을 알릴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인간 속에 자비의 정신을 계발시키기 위하여 이 사업을 행하는 데 인간을 쓰기로 선택하셨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자기희생적 행위는 주는 자의 마음에 자비의 정신을 강화시킬 것이며,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세상의 구주께 자기를 더 밀접하게 연결시킬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삶만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좋은 선물은 동료 인간의 축복을 위하여,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 한 오히려 저주가 될 것이다.(청지기, 19~20)
<2월 6일/화, 너희는 언제까지 불의하게 판단하려 하느냐>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다윗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높으신 목적이 통치자들과 백성이 끊임없이 깨어서 저희 앞에 놓인 표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뻐하시며 그에게 임무를 주셨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 젊은 통치자가 단순한 무사나 정치가나 군주가 될 것이 아니라 강하고 선량한 사람, 의의 교사, 충성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윗은 조심스럽고 진지한 태도로 솔로몬에게 신하들에겐 자애로우며 사내답고 고상한 사람이 되고 지상 열국과의 모든 거래에서는 하나님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도록 권면하였다. 다윗은 평생에 겪은 많은 시련과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더욱 고상한 덕성의 가치를 배웠고 솔로몬에게 주는 유언 중에서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삼하 23:3~4)라고 선언하였다.(선지, 25-26)
◎ 여호사밧은 그의 신하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면서 모든 인간 가족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생각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아래서 재판관으로 일하도록 지명된 자들은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시 82:1, 3~4).(선지, 198)
◎ 때때로 지도자로 책임 있는 지위에 앉게 된 사람이 자기가 절대적 권위를 지닌 위치에 있다는 생각에 빠져서 그의 모든 형제는 전진하기 전에 먼저 그에게 와서 그들이 행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실행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은 위험한 처지에 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진정한 지도자의 임무를 못 보고 있다. 슬기로운 상담자로 행동하는 대신에 그는 가혹한 통치자의 권세를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권위와 자부심이 행사될 때마다 치욕을 받으신다. 스스로 능력으로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주님께서 그분의 사업에 사용하시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마음과 판단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진리에 대하여 살아 있는 체험을 가진 동료 일꾼들을 독단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규칙과 규정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부당한 권위를 행사해 온 이들에게 그분의 교역자들로부터 모든 지배적인 손을 거두라고 명령하신다. 신성한 책임을 위임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의무를 이해하고, 그 의무를 겸손하고 충성스럽게 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무도 그 형제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지배력을 가진 주인으로 자기 자신을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의 원칙들이 가르쳐지고 실천되어야 한다.(목사, 491-492)
<2월 7일/수, 주의 분노를 부으시며>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영혼을 부드럽게 하고 굴복시키는 하나님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이 부주의하고 죗 된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그들에게 자제하는 마음을 버리고 반역하는 마음을 강화시켜 준다. 그들을 그토록 많이 참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탈선 행위에 대하여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직접 벌이 주어지는 시대에 산다면 하나님께 범죄 하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지체될지라도 역시 형벌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에도 한계가 있다. 그분의 오래 참으심이 한계에 이르면 필연 형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이런 뻔뻔스러운 죄인을 취급하실 때는 완전히 끝내실 때까지 그치지 않으실 것이다.
죄가 참으로 죗 됨을 깨닫는 사람들이 정말 드물다. 그들은 스스로 달랜다. “하나님은 너무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인들에게 벌을 주실 수가 없다.” 그러나 미리암과 아론 그리고 다윗과 그 외 여러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말과 행동, 혹은 생각까지도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과 온정을 갖고 계신 분이지만 그분은 자신을 소멸하는 불이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고도 말씀하셨다.(화잇주석, 전 8:11)
◎ 햇빛과 소나기가 결합하여 구름 속에 무지개가 나타나듯,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자비와 공의가 결합 된 능력을 나타낸다. 공의만을 주장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보좌 위 언약의 무지개에서 발산하는 빛이 가려지고 사람은 율법의 형벌만을 보게 된다. 한편 공의와 형벌이 없다면 하나님의 정부는 안전하지 않다. 심판과 자비가 어우러져야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
자비의 초청으로 우리는 하나님 도성의 문을 통과할 수 있고 공의가 충족되어야 모든 순종하는 사람이 하늘 가족의 일원으로 완전히 자격을 부여받는다. 품성에 결함이 있는 사람은 순종하는 자들을 위하여 열린 자비의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공의가 그 입구에서 하나님을 알현할 모든 사람에게서 거룩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라나타, 326)
◎ 공의가 사라지고 거룩한 자비가 품성에 상관없이 온 인류에게 문을 열 수 있다면, 하늘에는 사탄이 추방되기 전보다 더 나쁜 불만과 반역의 상태가 될 것이다. 하늘의 평화와 행복, 조화가 깨질 것이다. 땅에서 하늘로의 변화는 인간의 품성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며, 하늘에서 구속받은 자의 행복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형성된 품성에서 비롯된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먼저 이 땅에서 성도였을 것이다. …
하나님의 율법은 복음에 의해 약화되지 않고 죄의 권세가 깨어지고 자비의 홀이 참회하는 죄인에게 펼쳐진다. … 하나님께서 악에 맞서 싸우는 그분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리뷰 앤 헤럴드, 1892년 12월 13일)
<2월 8일/목, 주님의 심판과 성소>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 [성소]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님께서 죄를 가증히 여기심을 깊이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또한 죄와 접촉하면 반드시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속죄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각 사람은 통회하며 마음을 괴롭게 해야 했다. 그날에 모든 사람은 일을 전폐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엄숙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하게 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마음을 깊이 살피는 가운데 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속죄에 관한 중요한 진리가 이 모형적 의식을 통하여 알려졌다. 죄인의 대속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열납되었으나 죄는 그 희생 제물의 피로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어떤 수단에 의하여 죄가 성소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죄인은 피를 드림으로 그가 율법의 권위를 시인하고 자기가 범한 죄를 고백하고 장차 오실 구속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용서를 바라고 있다는 자신의 소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가 율법의 선고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회중에게서 받은 제물을 취하여 그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바로 율법을 넣어둔 법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속죄소 위에 그 피를 뿌려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중보자의 자격으로 모든 죄를 자기가 지고 성소에서 그 죄를 옮겼다. 그는 손을 염소의 머리 위에 얹어 그 모든 죄를 고백함으로 상징적인 의미에서 죄를 자기 자신에게서 염소에게로 옮겼다. 그 후에 그 염소는 쫓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죄가 영원히 백성에게서 분리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쟁투, 419-420)
◎ 사탄은 죄의 창시자였으며 하나님 아들의 죽음의 원인이 된 모든 죄의 선동자였으므로 공의는 사탄이 최종적 벌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사람의 구속과 우주를 죄에서 정결하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업은 하늘 성소에서 죄를 제거하고 마지막 형벌을 받을 사탄에게 이 모든 죄를 돌리므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모형적 봉사에서도 연중 봉사는 성소의 정결과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의 머리 위에 죄를 고백함으로 끝났다.
이리하여 성막과 후에 그 대신 세워진 성전의 봉사에서 백성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봉사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배웠고 해마다 한 번씩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 종국의 사건들 곧 우주에서 죄와 죄인들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사건에 그들의 마음이 이끌려 갔다. (부조, 358)
◎ 오늘날 그분[예수]께서는 은혜의 제단 앞에 서서 그분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리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울며 통곡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용서와 회복을 위해 그분께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용서의 은혜를 값없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누구에게나 계시를 다 보여 주시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떨고 있는 모든 영혼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명령하신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그분과 화평할 수 있다. 그리하면 그분께서 화평하게 해주실 것이다.
예수님을 피난처로 삼아 찾아온 사람들을 그분은 정죄와 비방 위로 들어 올리신다. 어떤 사람이나 악한 천사라도 그들을 정죄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그분 자신의 신성과 인성에 연합시켜 주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빛 가운데서 죄를 담당하신 위대한 예수님 곁에 서게 된다.(치료, 90)
<2월 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하나님의 율법은 불변함” (This Day With God, 246)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 89:14)
현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 가능한 한 그 율법에서 멀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계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비슷한 속임수에 빠져 있다. 하나님의 율법이 엄격하고 견딜 수 없다는 입장은 그 거룩한 계율에 따라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을 읽을 때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베일이 덮여 있다. 그 율법을 조금이라도 범한 것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다. 그러나 죄인의 변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범죄자에게 그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공의와 자비가 혼합되어 있다. 그리스도와 율법은 나란히 서 있다. 율법은 범법자를 정죄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변호하신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더 큰 빛과 영광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더 충만하고 영광스러운 빛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 작은 빛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참으로 배은망덕한 죄악이 될 것이다. 유대 시대의 축복과 영광을 멸시하는 사람들은 복음 전파로 유익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와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탁월함과 완전함은 오직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 갈보리에서 이루신 속죄를 통해서만 이해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이 거부되면 속죄조차도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아버지의 율법을 가장 완전하고 철저하게 옹호하였으며, 그분의 죽음은 율법의 불변성을 입증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사람이 율법을 순종해야 하는 의무에서 해방시키지 않으셨다. 율법을 바꾸거나 폐지할 수 있었다면 그분은 고난을 받고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바로 그 사실은 아버지의 율법의 불변하는 성격을 입증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들의 가르침에서 그 거룩한 율법을 자신들의 전통으로 대체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은 이 위반된 율법의 원칙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밝혀 주었다. 하늘의 존재들은 그분의 사명의 목적이 아버지의 율법을 높이고 존귀하게 하며 그 요구를 정당화하는 것임을 이해하였다.(영문 시조, 1887년 8월 25일)
◎ “우리 개인의 중보자” (하늘에, 79).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주 예수께서는 그대 개인의 중보자이시다. … 하루에 몇 번이고 다음과 같이 반복하라. “예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 그분은 내가 위험에 빠져 멸망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그분의 생명을 쏟으셨다. 그분은 그분의 발 앞에 부복하여 떠는 탄원자를 동정 없이는 바라보지 않으시며 나를 일으켜 세우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인간을 위한 중보자가 되셨다. 그분은 그분을 믿는 자들을 붙들어 일으키시며 그들의 요구에 따라 축복의 창고를 두신다. 사람들은 그들의 동료들에게 하나의 축복도 부여할 수 없으며 하나의 죄의 오점도 제거할 수 없다. 효력을 발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위해 충만하게 주신 바 되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그분에게로 향할 때 그분은 “내가 여기에 있다”라고 응답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우리의 중보자라고 선포하신다. 그분은 즐겨 우리의 대리인이 되셨음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공로를 황금 향로에 담아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드림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가 향연을 타고 아버지께로 올라갈 때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공로와 섞이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회개하는 자녀들의 모든 기도를 들으신다. 지상으로부터 발하여지는 기도 소리는 하늘에서 탄원하시는 분 곧 아버지께서 언제나 들으시는 중보자의 소리와 연합된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자. 그 기도는 어떤 인간의 이름이 아닌 우리의 대리자이며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용하도록 그분의 이름을 주셨다. …
예수께서는 그대를 그분의 친구로 영접하시고 환영하신다.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은혜의 모든 보화를 그대 앞에 열어 놓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 16:26~27)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사실상 내 이름을 사용하면 그것이 내 아버지의 마음과 그분의 은혜의 모든 풍요함에 이르는 허가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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