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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알바트로스
제35차 정기합평회
(2021. 5. 13.)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아버지의 가르침 | 김치주 | 김미숙 |
2 | 자가격리 | 변미순 | 김아가다 |
3 | 안과 밖 | 옥경자 | 김영희 |
4 | 807호에 들어서며 | 서소희 | 김정래 |
5 | 흉터 | 오수미 | 김정실 |
6 | 선비와 박석 | 안연미 | 김치주 |
7 | 덜어내기 | 노아영 | 김현지 |
8 | 2.7 그램에 실은 인연 | 김정래 | 노아영 |
아버지의 가르침 / 김치주
1 ) 달성 도동서원에 들렀다. 한 주문 입구에 새겨져 있는 연꽃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들어오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정당 뜰 앞에 한 치 어긋나지 않게 퍼즐 맞추듯 쌓아 올려졌다.
2 )돌에 새겨져 있는 동물들의 모습 가운데 거북 형상이 눈에 띈다. 눈꼬리를 치켜들고, 아주 무서워 보인다. 선비들의 신성한 배움의 품 안으로 들어섰으니 차분하게 정숙하여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3 )그 모습을 보고, 어릴 적 아버지께서 꾸짖던 모습이 떠오른다. 발걸음 소리만 들려와도 무서웠고, 아버지의 눈도 마주 볼 수 없는 거북 형상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4 )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우리 맞은편에 앉아 겸상하고, 식사한다. 고모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밥숟가락을 보시며 작은고모에게는 입에 밥이 보이지 않게 오물오물 씹으라고 하셨다.
5 )큰고모에게는 밥 속을 휘저어 먹지 말라고 했다. 나에게는 무슨 말을 하실까,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었다. 너는 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나, 고개를 들으라고 하셨다.
6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선 생선 뼈를 꼭꼭 씹어 먹으면 뼈가 튼튼해진다고 했다. 입안에 넣었던 뼈를 상 위에 붙여놓고 행주로 닦게 되면, 가족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하셨다.
7 ) 맞는 말씀이지만, 어린 내가 뼈째 씹기가 힘들어 갈치 한 접 먹지 못하고, 무만 가려먹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가르침 또한 선비의 배움과도 진배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8 ) 하루는 누가 개밥을 줬느냐고 묻자 큰고모가 줬다며 아버지 앞에 다가섰다.
“개밥을 저렇게 많이 줬어 남겼으니 아깝다고 생각하고 씻어 먹어라!”
거북이의 윗입술을 올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듯 아버지의 냉정한 말씀이 온몸이 오싹할 만큼 무서웠다.
9) 눈물을 뚝뚝 흘리는 고모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아파 고모의 팔을 끌어당겼다. 다음부터 개밥을 조금만 주면 남기지 않을 것이라며 고모를 위로했다. 개가 남긴 밥을 바가지에 담아 물을 부어 손으로 휘휘 저어 씻어내었다. 고모가 다시 씻어내고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된장 항아리 뚜껑을 열고, 된장 한 숟갈 푹 떠서 가져다줬다. 고모는 눈물을 흘리며 씻은 개밥을 한입 넣고, 숟가락 끝으로 된장을 찍어 먹는 것을 보았다. 나도 한 숟갈 거들었다.
10) 고모는 아버지가 미운지 시집가면 친정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네가 있어 위로되었다고 했다.
11) 큰고모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 전통혼례식으로 하게 되어 잔치 전날 단술, 농주, 메밀묵, 정성 들여 장만한 음식을 머리에 이고, 집안으로 줄지어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돈 부조를 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는 시절이었다. 마당엔 멍석을 깔고 위에는 흰 포장을 치고 시끌벅적한 잔칫집이었다.
12) 신랑 신부가 마주 보고, 대례 상 위에는 쌀을 담아놓고, 파란 보자기에 살아있는 수탉과 붉은 보자기에 암탉을 신랑, 신부, 앞에 올려놓았다. 신랑은 두루마기에 사모관대를 쓰고. 신부는 꽃 신을 신고 연지곤지를 찍고, 족두리를 썼다. 하얀 도복을 입은 분이 진행 축사를 읽던 중, 수탉이 푸드덕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웅성웅성 분주해졌다.
13) 대례가 끝나고, 아버지는 고모를 살포시 안고 큰방에 내려놓고, 작은방에 가셔서 엉엉 목놓아 울고 계셨다. 아버지가 울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마도 큰고모에게 심하게 꾸짖었던 것이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았다. 마루에 앉아 단술을 먹던 나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
14) 큰고모와 나는 항상 단짝이 되어 따뜻한 정을 주고받았다. 고모가 시집을 가는 것은 축복을 빌어야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있는 것 같다. 대문 밖에는 소리 소문 듣고, 거지들이 줄지어왔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셔서 이분들에게 음식을 넉넉하게 차려 주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도 마음이 여릴 때도 있나 보다.
15) 항상 하얀 양말만 신고, 어깨엔 아코디언을 메고, 지프차를 타고, 출근하시는 아버지가 최고였지만,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는 아버지셨다. 양말을 신으려다 때가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았다며 다른 양말을 신고 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한 번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까다롭고 말 한마디가 법이었다. 가까이다가 갈 수 없는 분이지만, 멋져 보이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16) 하지만 눈초리가 치켜 올라가고, 송곳니가 익살스럽게 보이는 중정당 거북의 형상처럼 내 눈에는 아버지의 모습 또한 다르지 않았다. 선비들께서도 경건한 몸과 마음가짐을 깨닫게 하라는 뜻으로 거북의 형상을 새겨졌다.
17) 우리 집에 아버지께서 중심이 되어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큰고모, 작은고모, 대가족을 건사하셨다. 우리 5남매를 눈을 부릅뜨고 거북 현상처럼 키워주셨기에 모범으로 자라지 않았겠는가.
18) 지금에 와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중정당 거북 형상을 보는 듯 아버지의 날카로운 말씀 한마디 한마디 가르침이 옳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자가격리 / 변미순
1)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병이 일년 넘게 극성을 부리고 있다. 사람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3월 어느 일요일 아침 일찍, 세자매는 정말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을 다녀왔다.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라며 오랜 경계심은 풀려 있었다. 다음날 월요일은 근무하고, 지인과 칼국수로 저녁을 먹었고, 수필공부방에도 들렸다. 화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꽃을 전공한 선후배 지인들이 대구수목원에서 봄꽃속 산책을 하러 나섰다. 이게 얼마만의 휴가이며, 만남인가 느스레를 떨며 심호흡을 한껏 하였다.
2) 겨우 15개월된 딸아이를 유모차를 태워 나온 제자, 병원에 근무하는 지인도 반가운 나들이에 동행하였고, 초등학생을 둔 엄마 둘도 아이들 등교시켜놓고 함께 걸었다. 카페는 가지 말자, 점심 식사도 각자 김밥 한줄이나 빵 하나씩 먹고 말자며 나름대로 조심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수다는 마스크를 뚫고나왔고, 서로 반갑고 행복하다며 어깨춤도 추었다. 진달래, 별목련, 수선화, 양귀비꽃, 이른 튤립 등과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3) 수목원 한바퀴돌고 아쉽지만 일찍 헤어졌고, 바로 귀가하였다. 짐을 내려놓고 나니 난리가 났다. 일요일 다녀온 동네목욕탕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오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아놓고 오후에 목욕탕을 다녀갔었다는 일로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일단 시간상으로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있는데, 일주일 전에도 다녀간 일이 밝혀졌다. 내일 일찍 보건소 예약하고 검진을 받으라는 명령문자를 받았다. 목욕탕 입구 cctv로 일주일 다녀간 사람의 수소문이 온 동네를 흔들어 놓았다.
4) 수요일 일찍 검사를 하였다. 두세겹의 일회용 장갑을 낀 검사원은 입안, 코안의 점액을 거두어갔고 난 눈물 한줄기 흘리며 보건소를 빠져나왔다. 검사결과는 다음날 목요일 오전에 문자로 알려준다고 하였다. 좌불안석이었다. 대가족에서 한달전 돌배기가 있는 딸아이는 분가한 상황이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가 양성이면 확진이 되는 나보다 피해를 보는 분들이 누구인가 손꼽아 보는 동안 아찔한 생각으로 미칠듯하였다.
5) 월요일 근무하면서 만난 학교 사람들, 같이 칼국수 먹었던 두 분부터 시작하여, 수필 공부방에의 어르신 문우님들, 선생님은 절대 전염되어서는 안되는 면역 제로의 장기이식자가 아닌가. 화요일 수목원에서 만난 지인들까지 생각하면 일파만파 내가 바이러스를 감염자 역할을 얼마나 한 것인지 대충 손꼽아보아도 일백명은 족히 넘었다. 동선을 줄이지 못하였고 돌아다닌 후회는 머리를 벽에 쥐어박아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보내는 24시간 내내 입은 있으나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어리석고 가슴을 조으는 일인지 모른다. 내가 양성일 때 주위에 주는 민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로워지는 심정은 그대로 사라지고 싶을 정도였다.
6)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니 별별 정보가 다 쏟아졌다. 검사는 5시간만에 결과가 나온단다. 양성인 사람은 결과가 나오는대로 바로 잡혀 가야한다. 한시간 뒤 자택으로 엠블란스가 도착하니 간단한 짐을 싸고 대기하라는 연락이 온다고 했다. 입원을 대비하여 당장 처리해야할 일들을 정리하였다. 사실은 정리고 뭐고 머릿속은 하얗게 타 들어가 깜깜하기만 하였다.
7) 오전에 검사를 마쳤으므로 저녁까지 연락이 없으니 숨을 고르기는 하였다. 어쩌다 전화벨이 울리면 온 식구가 초 긴장을 하는 등 아수라장이었다. 한밤에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누웠다가 일어나 가방을 정리하고, 부탁할 일정들을 조율하고, 전달해야하는 내용 등을 기록 또 기록하며 시끄러운 심장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검사 결과 문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8)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사우나 추가 환자발생으로 별도 연락시까지 자택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보건소의 문자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랑하는 주변분들에게 민폐자가 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내일 출근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가 확진자의 수가 증가되어 사우나관련 검사를 진행한 모든 이가 “자가격리” 2주를 명 받았다. 자가 격리자는 300명이 웃돈다고 하였다.
9) 구청의 한 공무원이 개별관리 담당자로 정해졌다는 연락과 함께 자가격리 안전보호 어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으라는 문자가 왔다. 매일 오전 10시, 오후 6시에 체온 및 건강 상태를 체크하여 앱에서 전송하여야했다. 입력한 주소지를 벗어나서는 안되며 그래서 자가격리자의 먹거리 보급품이 집으로 배송된다고도 하였다.
10) 보급품 박스는 현관 가까이 두고 간다며 문자가 왔다. 나가보니 현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집을 돌아서니 뒤편에 박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음성이라도 이미 자가격리자는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배송인도 마주칠까 염려하였던 것이었다. 일주일 뒤쯤에는 통합심리지원단이 구성되어 있고 심리적 회복을 위해 함께 하겠으니 우울감이나 심리적 압박이 심하면 해당 번호로 전화하여 상담신청을 하라고 하였다.
11) 자가격리 해당자가 어른신들이 많아 스마트폰이 아닌 분들도 있고 해서 오전 10시, 오후 6시 통화만 하면 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동네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 다닌다는 괴소문이 돌면서 동네가 조용해졌단다. 대신 전화로 온갖 이야기들이 전달되어 우리집에까지 별별 소문들이 들락날락하였다.
12) 자가격리 해제 이틀전이었다. “내일 재검 받으시고, 음성 판정 받으셔야 자가격리가 해제됩니다”하는 연락이 왔다. 해제될 전날 아침 일찍 다시 pcr 검사를 받아놓고 하루를 기다려야 했다. ‘음성’이라는 판정이 나야 해제이고, 그날 ‘양성’이면 입원해야하는 결전의 날인 셈이다. 역시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음성이었던 사람이 며칠 지나 증세가 나타나 입원한 소문도 전화로 들었었기 때문이다.
13) 더욱 심각한 것은 자가격리자와 한가족인 학생들은 모두 등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서라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조카는 고3이었다. 어떤 방법이 없겠느냐는 별의별 수소문을 다 해보아도 매뉴얼화되어 있다는 답변뿐 고스란히 조카도 집에서 동영상으로 수업을 받아야했다.
14) 다행히 세자매는 모두 격리 후에도 음성 판정을 받아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2주간은 일년 넘게 옥죄우고 있는 코로나19의 위력에 온 몸과 마음이 휘둘렸다. 모른채 다녔던 이틀간의 동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고, 3대 9년만에 왜 하필 그날 목욕탕을 갔던가 하는 후회는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15) 전염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모르고 살았다. 그냥 그러려니 남의 불구경하듯 하였다. 막상 내가 전염원이 될 수 있다는 상황에서야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았다. 자가격리 기간 내내 엄청 떨었다. 세상은 무인도에서 오로지 홀로 사는 인생이 아니면 수많은 사슬로 이어져 있음도 실감하였다.
16) 느낌은 무서웠다. 반성은 골골이 깊었다. 2주를 넘어 한주 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출근하였다. 움직이고 있지만 손은 2배 더 자주 씻는다. 가능하면 일은 축소한다. 마스크는 거의 벗지 않는다. 밖에서 식사는 거의 않고 집에서 가족끼리도 이제는 군대식판처럼 반찬, 국, 밥은 1인용 개인접시를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끝이 날까? 정말 더 무서운 것은 세상 그리고 나도 다시 느슨해질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17) 얼마나 더 긴장하고 어느 정도 이완해져도 되는 것일까? 이미 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마냥 긴장하라고 하여도 한계점이다. 더 조이면 터져버릴 것 같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다시 느슨해지면 증가하고 있는 확진자 수를 어떻게 막아갈 것인지 대안이 없다. 이 글을 꼭 적고 싶었지만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여도 마무리할 해답을 찾지 못하여 가슴은 더 답답해져 온다.
안과 밖 / 옥 경 자
1) 여기는 스페셜 장애인 올림픽 경기장이기도 하며 딸아이가 다니는 장애인 복지관이다. 다섯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딸의 나이는 올해 마흔 살이다. 많은 종류의 스포츠 경기가 있지만 아름다운 도전이란 슬로건 아래, 스페셜올림픽은 4년마다 개최되며 발달장애인들이 참가하는 올림픽이다. 경기성적을 위한 경쟁보다는 화합과 참여에 의미를 둔다. 동계 하계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만의 올림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 나경원 씨가 위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2) 지금은 영남지역에서만 열리는 영남스페셜 경기이다. 여기 복지관에서 열리는 경기종목은 몇 가지 밖에 없다. 나머지는 대구시내 곳곳에서 나누어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종목은 보체이다. 출발선에서 야구공보다 조금 더 큰 공을 손으로 굴리는 경기인데 상대의 공보다 표적에 가깝게 굴리는 경기로 얼핏 보면 볼링공을 굴리는 것 같다. 공이 손에서 놓여졌다. 묘기를 부리듯이 옆으로 새 버린다.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긴장한 딸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V자를 펴 보인다.
3) 전반전 경기가 끝나는 걸 보고 경기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탁구를 치는 남자아이의 얼굴이 나름 진지하다. 꽉 다문 입으로 그럴듯하게 폼은 좋지만 실적은 좋지 않다. 선수의 엄마는 소리 내어 응원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소리에 놀라서 경기의 규칙을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멀리서 발만 동동거리며 울상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엄마들은 경기에 임하는 자식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정신 줄을 놓아 버리고 잘하던 것도 엉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경기장 밖에서 일정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8월의 뙤약볕은 뜨겁게 비추지만 응원을 하는 엄마들은 그늘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 번도 치열한 경쟁의 스포츠에 참가해 보지 못한 자식들에게 그동안 한 맺힌 마음을 오늘 마음껏 풀어보라는 무언의 응원인 셈이리라.
4) 시합에서 해방된 딸아이가 나를 찾는다. 자판기 커피 한잔으로 축배를 든 듯 승리의 기쁨을 자랑 하러 다니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싶어서 아이의 등 뒤에 대고 미안한 마음에 살며시 과거의 문을 열고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해 본다.
5)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목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갑산성 암이 그렇게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지만 30년 전에 암이라는 것은 무서운 병이었다. 내가 병에 걸린 사실보다 아이를 돌 볼 일이 더 큰 문제로 나를 절망의 늪으로 떠밀고 있었다.
6) 딸은 자폐진단을 받은 장애아였고 자폐아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를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누구 하나는 꼬박 딸의 곁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아침에 대구대 내에 있는 특수학교에 등교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다가 데리고 와야 하며 집에 돌아오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상행동에 긴장된 나의 일상은 이미 지쳐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나를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세우고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살아온 지난날들이 영화 속의 필름처럼 스치며 지나가고 힘든 여정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나는 싸워 보지도 않고 백기를 들고 싶었다. 암과 맞설 자신도 없었지만 아이를 맡길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의 심각성보다 자식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내가 산다는 보장도 없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가 잘 아는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하고 갈 만한 시설을 알아 봐 달라고 했다.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신부님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재활원을 소개해 주었다.
7) 면접을 위해 찾아간 재활원에서 천방지축으로 설치던 아이도 무엇을 직감한 것일까? 겁먹은 듯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의 공지사항을 듣는 둥 마는 둥 서류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식의 양육을 포기하는 각서의 증표인 여러 가지 서류의 양식을 방안에 펴놓고 꺼이꺼이 울었다. 한 번도 몸 밖으로 토해 내 보지 않았던 설움의 잔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남편 혼자서는 키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해야했다고 아이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며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나의 변명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8) 저녁 무렵에 병원에서 입원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는 더 이상 울고 있을 수도 꾸물거리고 있을 수 도 없었다. 캄캄한 밤에 시장에 가서 이불하고 잠옷과 내복을 두 벌씩 샀다. 이불과 새로 산 잠옷들을 꺼내놓고 보자기를 열었다. 내용물을 받아야 할 보자기위에 그동안 아이와 같이한 시간들이 먼저 놓인다. 차곡차곡 쌓이면서 가슴 한편이 착잡해 진다. 다른 엄마들 보다 더 매정 할 때도 있지 않았을까? 한 번이라도 아이의 입장이 돼보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내가 회초리를 든 것도 합당했었을까? 지난날의 힘든 시간들이 다 내가 잘못한 것만 같았다.
9) 온몸이 소나기를 맞은 듯 한기가 들었다. 나의 결정에 동의를 하는 남편의 마음도 착잡하기는 매 한가지 일 것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과의 이별을 원하겠는가? 남편이 빈 말이라도 한 번쯤 나 혼자서도 잘 키울 수 있다고 했다면 안심이 됐을까? 다른 말은 빈말도 잘 하면서 이럴 때는 묵묵부답인 남편이 미웠다. 새로 산 잠옷을 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재활원, 재활원 하면서 뱅글뱅글 방안을 맴돈다. 까르르 웃는 아이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도 이별의 슬픔을 감지하고 있을까, 내가 지 어미라는 것을 몇 살까지 기억해줄까, 아이는 저를 버린 나를 용서할까, 나는 죽는 사람마냥 모든 것을 정리해 놓고 있다가 순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었다. 그래서 서류를 다 찢어 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마음이 바뀔 것만 같아서였다.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내가 죽는다는 생각만 했을까. 내 몸의 반란에 백기를 들고 있다가 아이에게 잊혀 진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해서 정신을 차렸다.
10) 수술을 받는 날, 친정어머니에게 맡긴다던 아이를 수술실까지 데리고 온 남편은 말없이 다가와 두 손을 잡게 했다. 그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죽고 사는 건 이미 나의 선택이 아니다. 링거와 주사바늘로 중무장을 한 나에게 그래도 엄마라고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봐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는 불같은 집착이 생겼다. 그리고 수술실 문밖 풍경을 아프게 눈에 넣으면서 나의 의식은 캄캄한 동굴 속으로 빠져 들었다.
11) 8월의 뜨거운 태양마저도 시샘을 하는 경기장의 열기가 폐막식을 끝으로 서서히 식어간다. 아이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일등이라는 단상에 올라 승리의 V자를 손으로 만들며 세상 행복을 다 얻은 듯 웃고 있다. 저 단순한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힘들었던 시간들을 나는 오늘과 맞바꾼다.
807호에 들어서며 / 서소희
1)H아파트807호 현관문 앞이다. 비밀번호를 누르니 “띠리릭” 열림 소리가 난다. 손잡이를 가만히 당긴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밀어낸다. “누가 계십니까?” 들려오는 소리는 없다. 텅빈 공간에서 내심 누군가 대답을 할 것 같아 겁도 조금 난다. 당연히 807호에는 아무도 없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현관문을 마저 밀치고 실내로 들어선다.
2)이상한 일이다. 방금 807호를 떠나온 길인데 다시 도착한 곳이 807호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현관의 비밀번호가 남편의 휴대전화 중간 번호와 일치한다.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지만 신기하다. 이 곳이 나의 집이 되어야만 하는 당위성이랄까.
3)그것만이 아니다.이사를 할 때 마다 창밖의 전망은 텔레비전이 놓이는 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런 이유로소파와 텔레비전 위치가 일반적 집들과 항상 반대였다. 이곳은 다르다. 소파가 놓여야 할 자리에 서면 숲 풍경이 보인다. 처음으로 텔레비전과 소파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4)남편은 역마살이 있다. 그런 남편 때문에 결혼을 하고 이년마다 어딘가로 옮겨 다녔다. 집을 옮기는 것은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거기다가 이사 할 때마다 꼬박 꼬박 지불해야 하는 세금과 부동산 수수료와 이사비용은 또 얼마인가. 이사하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면 아주 비싼 취미활동을 하는 셈이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이사를 가고 싶어 탈모가 일어날 정도면 사람 하나 살리는 셈치고 옮겨야 한다. 사람이 상하면 돈도 집도 모두 다 의미 없어지기 때문이다.
5)이사할 때마다 집을 팔고 사는 일은 머리가 아프고 힘도 든다. 시간이 많은 내가 집을 팔기위해 사람을 상대 하고 또 집을 팔면 살 집을 보러 다녀야 한다. 체력이 약한 나에게 어느 정도는 힘에 부치는 일이다.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내가 선택한 곳이니 나는 가는 곳마다 잘 적응하고 만족하며 지냈다.
6)남편은 달랐다. 처음에는 집 여기저기를 꾸미며 콧노래를 불렀고 가끔 주말에는 혼자서 대청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콧노래와 대청소도 일 년이면 충분했던 모양이다. 일 년이 지나고 나면 남편의 어깨는 점점 내려앉고 웅크러져 갔다. 밤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편이 누웠던 베개에는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그러고는 이웃집이 쓰레기를 내 놓는 것이 마음에 안 드네, 자잘하게 울리는 위층의 소음에 가슴이 쿵쿵 거리 네······, 불평은 흔했다. 즉 이사를 갈 때가 되었다는 징조였다.
7)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지나왔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하며 말수가 줄어들었다. ‘하아’ 저음으로 길게 내쉬는 숨소리는 마치 내 귀에 똑똑히 들어가라는 듯 확실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이사를 한지 일 년을 넘겼고 아직 이 년이 되지 않았다. 남편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이사는 당연히 가야했다.
8)집은 매물로 내 놓자마자 팔렸다. 이사 갈 집을 보러 다니며 남편은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원하는 집으로 할게. 대신 이번에는 오래 살아야 해” 내 말에 남편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건성으로 그러겠다 대답했다.
9)대충 몇 곳 살고 싶은 아파트후보지를 정했다. 원래 H아파트는 후보지에 없었다. 허나 부동산과 약속을 잡는 과정에 시간이 조금 남았다. 자투리 시간에 그냥 있기 무료해서 구경삼아 H아파트에 매물을 보러갔던 것이다.
10)H아파트 807호에 들어섰을 때 썩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그곳이 807호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현관을 지나 중문을 지나 화장실과 작은 방 두개를 둘러보았다. 내부는 어두운 색으로 꾸며져 있어 칙칙했다. 방마다 벽에 못이 쌍을 이루며 이쪽저쪽 박혀 있었다. ‘요즘에도 벽에 못을 박는 사람이 있구나’. 그것이 집의 첫인상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친절하게 설명을 하여 그냥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며 둘러보았다.
11)방을 지나 거실 창 앞에 섰을 때 남편의 입에서 "아" 하는 희미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창밖에 회색빛 숲이 놓여있었다. 적막한 겨울의 숲, 도심 속에 이런 풍경이 존재하다니ᆢᆢᆢ.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숲 앙상한 가지사이로 회색빛 바람이 수수수수 소리를 내면 우리 부부의 마음속으로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때였을까. 집의 정령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순간이.
12)숲 풍경은 마음에 들었지만 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한 매물은 흔했다. 같은 아파트 여러 집을 둘러보았다. 딱히 “여기다” 싶은 곳이 없었다. 많은 집을 둘러봐서 뭘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남편과 나는 잠시 머리를 비우고 한 박자 쉬어가기로 했다.
13)보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어디쯤에서 우리는 다급한 노크소리에 생각 없이 반응하듯 계약금을 보내고 계약서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받아든 계약서에 H아파트 807호 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14)중간 문을 열고 더 깊숙이 집안으로 들어선다. 내 집이지만 아직 내 집 같지 않다. 조금 큰 소리로 다시 외친다. “아무도 안계십니까?” 집을 보러 왔을 때처럼 누가 ‘네’ 하고 대답할 것만 같다. 역시 정적뿐이다.
15) ‘집은 다 주인이 있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집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집에 의해 선택 당한다는 뜻도 숨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807호의 정령이 우연이라는 복면을 쓰고 우리부부를 불러 들였던 것인지 모른다. 분명 우리부부는 807호의 정령에 의해 선택 당했다. 그것을 필연이라 하지 않던가. 필연이라는 운명의 그물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
16) ‘우연히 그곳에 갔었지’ 혹은 ‘우연처럼 시간이 남았지’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흔하게 내 뱉는다. 허나 우연이란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아마 살아가는 모든 현상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것이다.
17)807호는 지난 이년 나의 집 이름이다. 그곳을 떠나왔고 도착한 곳이 또 그 문표가 있는 곳이다. 다시 807호! 이곳은 또 다른 필연이다. 반드시 살아야 하는 곳이라면 이곳에서는 남편의 역마살이 잠재워지기를, 무엇보다 콧노래 부르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 보자
흉터 / 오수미
1)어린이날이다. 이맘때가 되면 아이는 주변의 산들을 보며 브로콜리 같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렇다. 초록색 풍선을 불어놓은 것 같다. 그보다 높은 곳에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아래로 푹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부풀어 오른 숲이 트램플린처럼 마냥 받아줄 것 같다.
2)아이와 수목원으로 소풍을 간다. 대구수목원은 힐링 명소다. 아이와 둘이 온건 처음이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시댁 식구와 온 적이 있다. 꽃보다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았고 나무보다 가족들을 살펴야했다. 눈앞에 녹양방초가 지천인데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 며느리가 되어 당연한 것이라 여기겠지만 일방적인 역할 수행은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그 또한 상처가 될 수 있다.
3)입구부터 초록초록하다. 사방에 나무와 꽃과 풀이 넘친다. 숲속으로 들어가니 나뭇가지 잎사귀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조각난 보석 같다. 다발다발 피어있는 노란 씀바귀를 한 아름 꺾어다 꽃병에 꽂아두고 싶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상처받고도 말하지 못했던 일상의 해독제다. 하늘과 구름, 바람과 나무, 물과 흙, 새들과 곤충 그리고 길섶마다 피어있는 하잘것없는 풀꽃들이 항생제다. 마음이 절로 놓여진다.
4)이렇게 푸릇푸릇 만발한 숲, 대구수목원에 비밀이 있다. 생명이 넘치는 이 숲이 쓰레기매립지였다. 하루에 수 십대의 트럭이 각종 오물을 싣고 드나들며 쓰레기를 쏟아 부었다. 평범한 산과 계곡이던 이 땅에 수 십 년 동안 쓰레기가 반복적으로 묻혔다. 안으로 곪고 곪아 부풀어 온갖 염증에 시달렸을 땅이라는 건 당연 사실이다. 계곡엔 쓰레기 침출수가 땅으로 스며들고, 쓰레기로 발생한 가스는 수없이 크고 작은 불을 냈다. 죽은 땅이나 다름없다. 쉽게 치료할 수 없는 깊은 상처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이곳이 쓰레기매립지였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다. 발밑에 흙을 보아도, 흐르는 시내를 보아도 나무를 보아도 꽃을 보아도 너무나 멀쩡하다. 벌어진 상처에 새로운 피부가 재생하듯 숲과 계곡이 살아났다.
5)아이가 넘어져서 얼굴에 상처가 난 적이 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집에서 상비약으로 쓰는 알로에(피부재생을 돕는 성분)크림을 발라주고는 재웠다. 다음날 아침, 상처가 곪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으나 출근에 쫓겨, 반창고를 붙여 유치원에 보냈다. 퇴근해서 반창고를 떼어내니 노란 고름이 가득 맺혀 보기에 안타까웠다. 다음 날, 병원에 데리고 갔다. 1차로 항생제복용과 상처연고를 처방받았다. 고름이 사라지고 상처 틈에 조금씩 새 살이 돋자, 2차로 흉터연고를 처방받았다. 며칠 후 아이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돌아왔다.
6)수목원도 아이의 상처처럼 단계별로 어떠한 치유과정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혐오시설에서 힐링 장소로 변한 수목원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쓰레기매립장이 숲으로 탈바꿈하기까지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듯 이 땅도 단계별로 기형적인 흉터를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사람의 상처도 이처럼 치료될 수 있을까?
7)흉터라는 이름만으로도 거부감이 들지만, 흉터 없는 사람 없다. 몸의 흉터는 오랜 시간 지나 부드러워지면서 작아지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내 몸에 그런 흉터가 하나 있다. 끓어 넘치는 보일러 물에 대인 흉터다. 당시엔 콩만 했는데 어느 날엔가 보니 왕만두만큼 커졌다. 내가 자라는 만큼 흉터도 커지는 것 같았다. 무시하고 살다가 불현 듯 살펴보니 너무나 뚜렷했던 화상자국은 희미해졌다. 계속해서 커질 것 같더니 어느 때에 멈추었나보다. 이제는 작아지고 있다. 40년 넘게 흘러온 시간의 힘일까?
8)그렇다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하면 치유될까? 마음속 심해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흉터가 있다. 더구나 내 기억의 첫걸음이다. 살아오면서 망각하고 의식조차 못하고 살았다. 수필을 공부하던 어느 날, 기억의 매립장에 버려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시나브로 나타나 뒤늦게 염증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 입에 빨간 알사탕을 넣어주면 검은 얼굴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폐병에 걸려 광부라는 직업을 선택해야 했던 아버지, 그것은 아버지를 살리려는 엄마의 방안이었다. 엄마는 온갖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병을 고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에게 보답은커녕 소훌 했다. 아버지로 인해 엄마가 집을 나갔다. 교사인 직업까지 관두고 나를 버리고 사라졌다. 1년 넘게 엄마의 부재가 있었다. 엄마를 제일로 좋아하던 유아기에 엄마가 사라졌으니 이 얼마나 큰 사건이며 깊은 상처로 남았겠는가.
9)나는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다. 엄마가 나타나 안아주니 그저 좋아서 그간의 외로움과 설움을 망각해버렸다. 엄마가 나에게 왔다는 것 하나로 아픔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빤히 보이는 상처를 그대로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상처에 고름이 가득 찬 상태 그대로 흉터가 되었다. 고름을 빼내지도 못한 채 굳어버렸다. 엄마가 다시 사라질까 두려워 예쁜 짓만 하려 애썼다.
10)눈물이 난다. 엄마가 세상전부라고 자랑스레 말하면서 사실은 원망스럽다. 아버지가 미우면서도 그립다. 내 자아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에 내가 부모님의 짐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슬퍼진다. 단 한 번도 원망의 소리를 낸 적이 없으니 그 누구도 내 흉터를 보듬어 주지 않았다. 흉터가 아려올 때마다 원통하고 분하다. 나는 왜 그때 터뜨리지 못했을까? 어찌하여 잊은 듯 오랜 세월을 살았을까?
11)수목원 높은 곳에 ‘위를 보세요, 안아보세요, (내안의)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위안목’ 이라는 키 큰 나무가 있다. 위를 보니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는 햇빛에 눈물이 난다. 나무를 안으니 울컥 설움이 돋는다. 내 안의 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작은 아이가 울고 있다. 소리를 죽이고 눈물을 삼키며 울고 있다.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듬어준다. 꼭 안아준다. 이제는 소리 내어 엉엉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간절한 마음으로 위로한다.
12)“엄마, 울지마.” 딸아이가 뒤에서 나를 보듬는다. 나는 또 눈물을 삼켜버린다.
선비와 박석 / 안연미
1. 묵향 드리운 선비의 고장 함양 개평마을이다. 훌륭한 인물을 많이 낳아 학문과 문벌이 손꼽히는 선비마을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2. 개평은 도숭산에서 흘러내려 온 두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자리 잡아, 낄 개介 자 모양을 하고 있어 그리 전해 내려온 마을 이름이다.
3. 길고도 긴 역사를 지닌 고택과 수십 채의 한옥은 묵은 세월을 안고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옛날 선비들이 한데 모여 시와 글을 논하며 풍류를 즐겼다는 마을이다. 이곳에서도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어느 선비의 고택과 삶이 자못 궁금하다.
4. '일두고택'으로 들어가는 고샅길이다. 여느 집, 골목과는 달리 바닥에 얇고 넓적하게 뜬 돌이 깔려있다. 박석薄石이다. 요리조리 놓인 돌이 마치 조각보를 이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밟으려니 고향마을의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듯 정겹기도 하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박석은 비 오는 날에는 신발이 미끄럽지 않게도 해주지만, 박석을 밟는 말굽 소리로 주인과 객이 오는 것을 알게 했다지 않은가. 순간, 상상은 시대를 거슬러 대감 집 풍경 하나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5. 주인 나리가 출타한 시간이다. 집 앞마당을 재바르게 오가던 하인들은 문간채 앞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둘러앉아서 새끼줄을 꼬고 있다. 저들끼리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는 어린 자식들의 노는 모습을 보는 눈길도 다정하다. 그때다. 고샅길 쪽에서 또각또각 박석을 밟는 말굽 소리가 들린다. 저녁 무렵에야 돌아온다던 대감마님이 벌써 오시는가. 하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하마비가 있는 곳으로 가서 허리 굽혀 어진 주인을 맞는다.
6. 박석을 밟는 말굽 소리는 집주인 일두 선생이 하인들에게 보낸 신호와도 같았으리라. 출타한 주인이 갑작스럽게 집에 돌아오더라도 하인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했던 어진 선비의 지혜인 듯하다. 그럴만한 것이 박석이란 것이 무엇인가. 돌이 움직거리지 않게 굵은 모래흙을 돌 아래 깔고 그 위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것이 박석이다. 박석은 물을 흡수하는 굵은 모래의 성질을 이용해서 한여름 장대비에도 물이 고이는 법 없이 물흐름도 다스렸다지 않는가.
7. 박석은 얇지만 너른 돌이니 선비의 인심이요, 굵은 모래흙은 드러나지 않고도 박석을 돕는 하인들이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 마을은 양반과 평민의 위계를 구분하여 개울을 사이에 두고 반가와 평민 마을이 따로 있었다지만, 이 댁 선비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깊었다 하니, 아마도 그들의 공을 보듬었을 것만 같다.
8.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조화는 현대를 사는 우리 주변에도 널려있지 않은가. 빛나는 자 뒤에는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현명하고 어진 이는 숨은 내공 자의 공덕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올곧은 선비의 지혜는 고택의 자연물에도 배어 있구나 하며 나이 먹은 낮은 담장을 따라가니 솟을대문 앞이다.
9. '일두고택’
이 댁 주인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여창 선생으로 호가 '일두一蠹'다. 일두는 한 마리 좀 벌레라는 뜻이다. 참으로 괴이하지 않은가. 그 많은 글자를 두고 하필이면 선생은 왜 자신을 좀 벌레라고 했을까. 궁금증을 안고 대문을 올려다본다. 보통의 대문에는 액운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호랑이 뼈나 오가피나무를 매달아 놓거늘, 이 댁은 효자와 충신으로 하사받은 정려패 다섯 개가 빛바랜 홍살문과 함께 낯선 객을 반기고 있다. 홍살문 아래를 지나려면 바른 마음가짐으로 지나가야 한다던가. 그 깊은 뜻을 새기며 조심스레 대문 안으로 발을 들인다.
10. 마당 안에 들어서니 왼쪽에 제법 큰 곳간이 있다. 인심 좋다는 주인대감이었으니 건넛마을에 사는 평민들이 당산제를 지낼 때도 모른 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곳을 통해 알곡들을 어깨에 지고 나간 이들은 어진 선비의 인심을 가슴 깊이 안고 나가지 않았을까. 정갈한 흙 마당에 세월을 묻고 얼굴만 내민 외줄 박석이 안채와 사랑채를 두고 두 길로 갈라진 것이 애타도록 정겨운 까닭은 무슨 일인고. 아담한 정원을 마주한 사랑채로 발길을 옮긴다.
11. 이 댁 선비는 돌을 쌓아 작은 산처럼 만든 정원을 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보며 세속의 혼탁함을 한탄하기도, 때로는 마음을 정화하며 영원토록 변함 없는 절개를 다짐 했으리라. 부모에게는 효를 다 하고, 백성을 위한 일에도 몸소 실천한 성리학의 대가였다지 않는가. 사랑채 누마루를 향해 기울인 300년 묵은 옷을 입은 노송과 하늘로 솟구친 전나무를 보노라니 마치 선생의 기상과 절개를 뵈는 듯하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한 마리 벌레로 칭한 일두一蠹에 깃든 궁금증이 이제야 가슴을 울린다.
12. 대문 밖으로 나오다가 박석과 다시 마주한다. 고매한 조화는 드러나지 않는 배려와 겸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겸양지덕을 몸소 실천한 선비의 고택에서 청명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룻밤 머물고 싶다.
덜어내기 / 노아영
1.그림을 그리다말고 휴대폰 연락처를 뒤져보았다. 수많은 번호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한때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조차 몇 년 동안 연락한번 하지 않았으니 인연이 거기까지인가 싶기도 했다. 업무상 몇 번 연락한 이들은 이름조차 가물거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줄여야 할 것들이 많다. 관계 줄이기도 마찬가지다. 누군지 퍼뜩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기억의 저 편으로 밀어내며 삭제버턴을 눌렀다.
2.많은 사람이 모인장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보다 할 말만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3.그림에서도 설명이 많은 것보다 심플한 게 훨씬 더 고급스럽다. 예를 들면 이우환의 점 시리즈가 그렇다. 점하나에 우주와 철학을 담았다면 과장일까. 화면을 채운 조형요소들 중에서 모두 덜어내고 점하나가 나오기까지는 쉬운 듯 하면서도 쉽지 않았을 터이다.
4.지금껏 나의 그림을 지켜봐오던 어느 작가가 갈수록 그림이 담백하고 심플해서 좋단다. 그동안 스토리 위주로 그렸으니 때로는 쓸모없는 설명까지 곁들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발전이 있다니 붓 끝에 힘이 실린다.
5.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에서도 구도적으로 꼭 필요한 조형요소와 색만 존재해도 된다는 이론이다.
6.‘완전하다는 것은 더 추가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뺄 것이 없는 상태다’라고 한 생떽쥐페리의 글을 떠올려본다
7.이맘 때 쯤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옷 정리에 시간을 보낸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지만 원하는 대로 정리가 잘되지 않는다.
8.나의 생활에서 지출목록 1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의류 구입비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부터 외출이 부쩍 줄었다. 마땅히 나갈 곳도 없건만 아직 내안에 살아있는 여심이랄까, 의류구매는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홀로 일하고, 홀로 즐기고, 홀로 견디는 위대한 혼자에게 주는 이벤트적 선물이 하필이면 옷일까 싶기도 하지만 구매당시 만족감 1위가 옷이다.
9. 그런데 더 이상의 수납공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한꺼번에 구입하기에는 부담되니까 의류에 맞는 가방구입하기, 가방에 맞는 신발 구입하기처럼 전체적인 코디를 상상하면서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에 몰입했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멋쟁이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건만 촌스럽다는 소리는 면하고 싶었다. 요즘처럼 개성시대에 좀 어긋 난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을 텐데....
10.새 옷이 들어오면 지난 옷을 과감히 좀 버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버리려고 한 가방 추렸다가도 청색 자켓은 야유회갈 때 딱 좋고, 주름진 보라색 원피스는 간편해서 행사용으로 좋고, 어떤 옷은 남아있는 다른 옷과 한 번씩 코디하기가 좋아서 망설여지고 옷마다 버리지 못하는 사연이 있다. 누군가 일 년 이상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고 했지만 나는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11.이사를 자주 다니는 집은 이사 할 때마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여 묵은 짐이 없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한 집에 머물렀더니 쓸모없는 짐까지 보태어 자꾸만 짐이 늘어난다.
12.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이상한 노인네처럼 물건 집착증이 심해 나중에 집안을 쓰레기로 가득 채우는 게 아닌가하는 상상에 젖기도 한다.
13.지난번에도 일부만 처분하고 나머지는 다시 옷 방으로 들였지만 그 옷들을 입고 나다닌 기억이 거의 없다. 예쁘고 불편한 옷은 눈요기로만 즐기고, 입기 편하고 세탁하기 편한 옷만 입었다. 마음은 항상 낭랑 십팔세라 하면서도 나이가 들면서 편한 것만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얼마입지 못한 것은 누군가 적임자에게 선물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각자가 개성이 다르니 쉽게 줄 수도 없다.
14.봄나물이 한창인 음력 삼월중순에 어머니 생신이 끼어 있다. 오랜만에 자식들 만날 설렘에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어서 갖은 야채와 돗나물을 넣은 물김치를 담그시고, 갖가지 산나물에, 물고기 추어탕을 한 솥 가득 끓여서 먹고 남는 것은 가져가라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모인 김에 나눠 먹자고 쑥떡까지 하셨다. 시골 방앗간이라 주인이 볼 일 보러 나갔다가 돌아 올 때까지 몇 시간이나 기다려 해왔다는 쑥떡을 먹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생신 날 만큼은 편안하게 앉아서 대접받아도 좋으련만 새벽부터 들녘에 나가서 이슬 마르기전에 상추와 우엉 잎 뜯어 오셔서 나누시고 갓 찧은 쌀이라며 한 자루씩 가져 가라셨다.
15. 금년 들어 이유 없이 어지럽다며 벌써 두 번이나 병원신세를 진 어머니다. 다들 먹고 살만하니 자식생각 그만 하고 제발 당신 건강이나 챙기시라고 신신 당부하였건만 아프다가도 자식 챙겨 줄 거 생각하니 벌떡 일어나게 되고 힘이 난다고 하시니 더 이상 말릴 재간이 없다. 자식들 손수 챙기지 않으셔도 당신 몸 하나 잘 간수하여 우리들 마음 편하게 하는 것이 최고라 하여도 그 뜻을 애써 외면하신다.
16. 어머니의 마음에서 자식 생각하는 마음을 조금만 접고 지금껏 돌보지 못한 당신 삶을 채워도 좋으련만 물질적인 사랑 없이는 허기가 나시는 모양이다. 하물며 자주입지 않는 옷 몇 가지 덜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평생 가슴에 껴안고 살아온 자식을 덜어 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옷장 앞에서 버려야 할 옷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2.7 그램에 실은 인연 / 김정래
1. 어느 날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탁구 라켓을 들고 수줍음을 띠며 ‘화’를 쳐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기꺼이 승낙 했다.
2. ‘화’는 탁구대를 마주하고 서서 라켓으로 공을 상대편 오른쪽으로 넘기는 탁구의 기본이며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몸을 푸는 동작이다.
3. 그녀는 탁구를 시작한 지가 몇 년 되었지만 ‘화’가 잘 되지 않아 그만 두려고 하던 차에 내가 친구와 ‘화’ 치는 것을 지켜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나와 탁구를 치면서부터 깍듯이 사부님이라고 불렀다. 변변찮은 실력으로 사부님 소리를 듣는 것이 민망스러웠다. 그녀와 거의 매일 같이 탁구를 쳤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주변에서는 환상의 커플이라고 놀려댔지만 그녀는 탁구 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탁구장에 와서는 다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4. 그녀는 탁구장에 나와 사부님과 공을 치지 않고 돌아가는 날은 탁구를 친 것 같지 않다면서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녀와 치는 탁구가 잘 맞았다. 가끔 그녀가 밥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괜히 주변으로부터 오해를 받아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5. 60대 후반인 그녀는 확 들어나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행동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따듯하여 늘 주변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러면서 스캔들 하나 없이 지혜롭게 처신했다.
6. 몇 년전 구청 탁구대회가 있었다. 그녀에게 출전해보자고 권하니 예선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하면 부끄러워서 어찌하느냐고 망설였다. 경험삼아 나가보자고 우겨서 출전을 하였다. 단식에서는 둘 다 탈락을 하였고, 복식 준결승에서 1위 팀에게 저서 3위로 입상을 하였다. 출전을 망설이던 그녀가 오히려 파이팅이 좋았다. 우리는 기분 좋은 하이파이브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7. 그날 그녀에게서 소중한 인연으로 오래 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라고 문자가 왔다. 부족하고 허점투성인 나를 인격적으로 믿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우리는 별 특별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따뜻해 오르고 기분이 좋아졌다.
8. 며칠 간 탁구장을 결석한 그녀에게서 더 이상 탁구를 칠 수 없을 것 같다는 문자가 왔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천식이 재발되어 병원에 갔더니 상태가 아주 심하다면서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권하더라고 했다. 문자를 읽고 나서 한 동안 먹먹해져 무슨 답을 보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탁구장은 지하로 깨끗이 관리하고 있지만 그녀의 기관지에 부담이 된 것 같았다.
9. 탁구장이 텅 빈 느낌이고 탁구를 치는 팔에 힘이 빠졌다. 그녀와의 탁구 시간은 비어가는 나의 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날이 앞으로 계속 함께하길 바랐었다.
10. 혹시나 그녀가 돌아올까. 문득문득 탁구장 출입문으로 눈길이 자주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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