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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에 서서
산이 거기 있어 산으로 간다.
산이 없으면 산에 갈 일이 없다.
산은 변덕을 부릴 줄 모른다.
태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잔가지 몇 개 부러지는 것으로 꿋꿋이 이겨낸다.
산은 언제나 늠름하다.
비가 그친 다음날 아침, 말끔히 세수한 산의 얼굴을 보라.
산은 사람을 경계하는 때도 더러 있다.
잔뜩 흐린 날씨에 악천후가 닥치면 오지 말라는 신호다.
산은 오르라고만 있는 게 아니다.
바라만 봐도 산은 산이다.
산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삭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마음은 덩달아 빈곤해질 터다.
산은 정상을 정복하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오르는데 익숙해져 있다.
내려오는 바닥이 정상일 때가 더 많다.
아래의 바닥이 정상이다.
배낭을 꾸릴 때의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산처럼 살면 산을 닮을 것이다.
산처럼 살면 언젠가는 산으로 갈 것이다.
산이 거기 있어 산으로 간다.
책머리 들머리 1편
막배 놓치고 그냥 섬에 눌러 살자
금오도 ^^ 전남 여수 / 3월
함구미 – 용머리해안 – 직포삼거리 – 매봉 전망대 – 비렁다리 – 심포 – 막개전망대 - 장지
봄엔 남녘이 궁금하다. 봄날엔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싶다. 해마다 겨울이 깊어지면 남녘의 섬을 그리워한다. 동백이 피는 계절만 되면 동백으로 몸살을 앓고 동백이 어른거려 밤낮으로 안달을 한다. 봄볕 먼저 드는 금오도 비렁길을 걸어본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배에 몸을 실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아닌데 승선절차가 엄격하고 까다롭다. 내색은 안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영향임을 다 안다.
태화도에 물살 한 번 일면 금오도까지는 반 시간 거리다. 작은 섬의 산중턱으로 집 하나와 갯바위를 앞마당으로 둔 빨간 지붕의 또 하나의 집은 외롭지 않다. 온종일 턱 괴고 금오도를 오가는 여객선을 바라보니 심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여천항에 접안하자 한걸음으로 내렸다. 함구미에서 시작되는 용머리 해안은 시야가 확 트인 수달피비렁이다. 언덕마다 방풍밭이다. 아름드리 해송이 작은 포구를 지키는 직포삼거리가 매봉전망대로 향하는 비렁길 1코스의 초입이다.
해송이 포구를 지켜주는 것일까, 포구가 있어 해송이 사는 것일까. 장정 두 사람이 마주보고 껴안을 만큼 다 자란 해송이니 오래 전부터 함구미마을의 당산나무였을 것이다. 성황당은 보이지 않는다. 돌 세 개를 놓고 절을 세 번하고 마지막으로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고 했는데 돌만 세 개 놓고 삼거리를 지나간다. 바닷물이 밀려왔다가는 멀어지고 다시 찾아와서 머무르고 바다와 해송과 포구는 매일 만난다.
간간이 황토 흙다짐의 여유 있는 오솔길이고, 발아래 바다가 보이는 바위능선 길인데 쓸데없이 데크 조각을 깔지 않아서 너무 좋다. 동백꽃 파다하게 핀 언덕이 끝나면 소사나무 계곡이고, 돌담을 지나면 동박새 울음소리 청아한 아침나절로 햇볕도 곱다.
금오도의 해안트레킹 전구간이 다 절경이지만 굳이 콕 짚어 좋다할 수 있는 구간을 들라면 3코스의 매봉전망대와 4코스 사다리통전망대가 선경이라 하겠다. 기암절벽의 갯바위에는 여지없이 강태공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감성돔 역시 절경을 찾아다닌다는 것을 잘 아는 강태공들이다.
오늘날 금오도 비렁길이 섬으로서의 빼어난 선경으로 존재하가까지는 금오도 사람들의 고집이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탐방객은 기억하자. 여느 섬들은 육지와 섬이 닿도록 다리를 놔달라고 성화를 부렸으나 이곳 금오도 사람들은 개발이 늦어도 좋으니 제발 이대로 두라는 우직함이 지금과 같은 비경을 간직할 수 있었다. 금오도 사람들의 판단이 옳았다. 2006년도의 일이다.
비렁길을 국어사전에서 찾을라치면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재주 올레길이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에서만 사용하는 제주 방언인 것처럼 비렁길 역시 벼랑을 일컫는 여수지방의 사투리다. 지심도 만큼은 동백이 덜할지 몰라도, 오동도 섬처럼 동백나무의 숲이 좀 작을지는 몰라도 금오도 역시 천지가 동백 숲이다.
동백은 어떤 꽃인가, 겨울에 피는 꽃이지만 슬며시 봄을 언질하는 꽃이다.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꽃대를 올리는 너도바람꽃도 동백이 피고 난 후에야 꽃을 피우고, 눈 속의 복수초도 동백이 어느 정도 피었는지 눈치를 보며 샛노란 흔적으로 봄을 알린다. 처녀치마도 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보름을 더 지내야 꽃이 핀다. 동백은 한겨울의 모진 설움을 안고 피는 꽃이지만 설렘으로 가득한 꽃이다. 온 세상이 냉랭한 절기에 선혈처럼 뜨거운 심장을 갖고 피는 꽃이 동백이다.
동백은 왜 이토록 붉은 색으로 꽃을 피울까. 동백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지녔으나 향기가 없는 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곤충에 의해서, 혹은 바람의 영향으로 수정을 하는데 반해, 동백은 동박새가 동백 꽃 속을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꽃가루받이를 하는 이른바 조매화(鳥媒花)의 꽃이다. 만일 동백이 흰 꽃이거나 노란색이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향기도 없는 동백꽃을 동박새라고 거들떠보기나 했었을까 말이다. 이보다 생존본능의 몸부림이 간절한 꽃이 또 있으랴. 절정의 순간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 꽃이 동백이다. 나무 끝에서 한 번 피고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또 한 번 피는 꽃, 핏빛 강렬한 꽃으로 피어나서 설움으로 몸살을 앓다가 꽃봉오리째 마당으로, 발등으로 뚝 떨어지는 꽃이다. 그러기에 동백은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의 꽃이다.
막개전망대에서 바다를 본다. 어떤 배는 붉은 깃발을 내걸고 만선으로 포구에 들어오고 또 어떤 배는 밤새 던져놓은 통발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장지 방파제를 돌아 나오는데 대발위에서 미역을 말리던 여인은 다시 방풍밭으로 간다. 바닷물이 잠시 썰물이 되어 마실을 나갈 적에도 섬에 사는 아낙들은 갯벌로 나가 조개를 캐고 똘쟁이를 잡고 굴을 깐다. 섬사람들은 다 부지런하다. 그도 그럴 것이 빈둥빈둥 놀기만 좇는 사람은 섬에서 눈치가 쌓여 살지 못한다. 장지 방파제는 비렁길 5코스의 날머리다.
해솔 우거진 벼랑에서 넋이 나가고 대숲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 동백꽃 붉은 담을 돌아 나오면서 또 한 번 넋을 잃었다. 작은 포구에서 입가심도 못하고 반은 걷다가 반은 뛰면서 여천여객선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여수로 나오는 배를 탔다. 지그시 눈을 감는데 벼랑 끝 바위와 바다가 어우러진 매봉전망대가 눈에 어른거린다. 그렇다. 해송 숲 사이로 햇발이 간지럽거든 앞섶 단추 하나 풀어보자. 금오도 비렁길로 동백꽃이 붉거든 단추 하나 더 풀어보자.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비렁길은 벼랑을 뜻하는 여수지방의 사투리이다. 제주의 올레길은 제주의 방언으로 집으로 통하는 작게 난 길을 뜻한다. 강릉의 바우길 역시 강원도와 전라도에서 흔히 써왔던 방언이다. 설악산의 귀때기청봉은 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방언이나 사투리가 지명으로 남아 고유명사로 굳어진 사례가 더러 있다.
바다와 동백과 편백나무 숲이 있는 산
팔영산 ^^ 전남 고흥 / 4월
임도입구 – 강산폭포 – 선녀봉 – 유영봉 –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 깃대봉 – 탑재 – 편백나무 숲 -
능가사
팔영산은 바다가 있고 동백이 있고 편백나무 숲이 있고 거기다 여덟 개의 암을 거느리고 있는 산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선이 굵은 산으로 산행 내내 흥미를 유발한다. 계절을 가려가며 산행을 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팔영산은 봄과 가을산행이면 더 좋다.
선녀봉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바위능선으로 보이는 건 낭떠러지고 막아서는 게 거친 벼랑이다. 위험구간이 많은 탓인지 올라오는 산행은 허락되지만 하산은 국립공원 측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구간이 바로 선녀봉 능선이다.
강산폭포를 지나 선녀봉으로 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만 다리가 후들거린다.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또 밧줄이 늘어져 있다. 한눈을 팔았다가는 경을 치고도 남는다. 선녀봉에서 왼쪽 암능을 내려다보면 허리를 굽히고 줄지어 오르는 산객들인데 잠시 지체하면 유영봉 정상에서 합류하게 된다.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는 서해바다를 향해 나란히 뻗어 있다. 1봉에 서면 2봉이 보이고 2봉에 서면 좌우로 1봉과 3봉이 보인다. 다시 아래를 보면 봉우리와 봉우리를 감싸고 구름이 흘러간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암봉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산신령은 안개와 구름을 몰고 나타난다더니 팔영산은 봉우리에 목만 겨우 내놓고 있었다.
6봉인 두류봉이다. 방향을 틀어 남쪽바다를 바라본다. 바닷물이 들어오다가 멎는 저쪽이 소록도쯤인 것 같다. 거기 소록도 햇살 잘 드는 언덕에 친구가 있다. 벌농사를 짓는 친구다. 이 친구는 매년 12월 초순이 되기 무섭게 큼지막한 트럭에 아내를 태우고 소록도로 내려간다. 벌통을 차에 실고 남녘으로 가고 있으니 벌농사를 짓는다지만 섬 여행 같아서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이들 부부에게는 겨울은 농한기가 아니라 농사철이다. 바다가 보이는 장계리 언덕에 벌통을 내려놓는다.
이 친구는 벌을 키우는 농사철에도 뻔질나게 바다로 나간다. 낚시에 반은 미쳐있는 친구다. 노래미는 넣다하면 잡히는 놈이고 도다리와 학똥치, 광어, 우럭이 나오는데 손맛이 좋을 때는 귀한 감성돔이 걸려든다고 말한다.
5월 초가 되면 이들은 아카시아 꿀을 뜨기 위해 대구 쪽으로 옮긴다. 영주나 안동쯤으로 북상을 하는데 종당에는 철원까지 올라가면서 벌을 친다. 몸에 좋다는 잡꿀을 뜨면 늦여름이고 초가을로 벌농사는 끝이 난다. 내가 잡꿀이냐고 물으면 화를 내며 잡화라고 대답한다.
“어이, 친구 나 팔영산 왔어.”
“야, 너 또 산에 왔구나. 모처럼 왔으니 낚시하고 가라.”
바닷가에서 벌을 치며 살아가는 자네가 부럽다고 말하면 이 친구는 되레 온 산천을 다 누비는 네가 부럽다고 역공을 편다. 남녘인 고흥에서 북으로 또 북으로 철원까지 세월을 낚는 당신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칠성봉에서 먼 바다를 응시한다. 고흥과 거금도를 오가는 팔영대교가 정면으로 보이고 남동쪽으로 해남의 두륜산, 남쪽으로 거금도와 조발도와 낭도가 서성이며, 서쪽으로 순천방향의 조계산이 있다. 가물가물 보이다 사라지고 다시 보이는 산이 지리산 천왕봉이라는데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육지가 분명하지만 산 위에서 사방을 보면 섬같이 느껴지는 산이 팔영산이다. 뭍이면서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명성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땅이다. 팔영산은 봉우리가 여덟 개로 이루어져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입의 선녀봉과 마지막 깃대봉은 여덟 봉우리에 넣지 않으니 엄밀히 따지면 팔영산은 열 개의 봉우리인 셈이다.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평편한 길을 걷는데 동백나무 숲이 끝나는 능선으로 잿빛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백은 소사나무를 좋아하고 소사나무도 동백을 싫어하지 않는가보다.
편백나무 숲을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등산로는 너무도 상큼하다. 바닷바람이 편백나무 숲속을 헤집고는 짙은 향기를 코끝까지 전해준다. 목캔디를 입속에 넣었을 때처럼 콧구멍이 확 뚫린다. 편백나무는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가 되면 눈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된다는 이유로 천시를 받기도 한다. 유해 논리를 차치하고라도 이 편백은 심폐기능을 강화 시키는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나무인 것만은 사실이다. 편백은 온산이 낙엽으로 내려앉더라도 자신은 사계절 언제고 푸른 잎사귀로 부드럽다. 보통의 걸음걸이 보다는 빠른 속보로 반은 걷고 반은 뛰면서 내려온다. 온몸을 출렁일 때 위장은 자극을 받아 활발한 기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릉지를 덮고 있는 편백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평편한 논밭이 펼쳐지고 대숲 가득한 언덕으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팔영산 아래 능가사다.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힐 정도의 대찰이었으나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대웅전(보물 제1307호)과 응진전만 볼 수 있다.
능가사의 담장은 갯가의 돌을 적당한 크기로 깬 다음 흙과 버무려 쌓아 올렸는데 눈높이로 야트막해서 시원하다. 목조사천왕문을 지나면 응진전을 바라보며 만개한 동백으로 가득하다. 나무에도 동백이 피었고 마당에 떨어진 동백도 차마 질 줄을 모른다. 능가사 스님은 동백나무 아래 쌓인 동백꽃을 보면서도 며칠이 지나도록 비질을 하지 않으리라. 내일도 동백은 곱고 붉을 것이다.
능가사 입구의 너른 마당으로 남도의 구수한 입담이 정겹다. 동네 아낙들이 좌판을 놓고 봄을 팔고 있었다. 입 벌린 봄동이 있고 봄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냉이가 바구니에 담겨있다. 달래도 향이 짙고 두류봉 아랫자락에서 땄다는 두릅이 싱싱하다. 메꽃뿌리 같이 생긴 씀바귀도 아침나절에 캔 나물이란다.
“달롱개 혀고 나숭개 있지라우, 벙구나무 잎 사가시여!”
매끌매끌 이어지다 끝에서 슬쩍 올리는 남도 특유의 말투가 걸쭉하다.
“이게 무슨 나물이라고요?”
“요거이 달롱개이고 이짝그슨 나숭개, 시방 이그시 벙구나무 잎이라 안 하요.“
천 원에도 팔고 이천 원어치면 흥정 없이도 덤을 듬뿍 얹어준다. 달래를 달롱개라 하고 냉이는 나숭개라고 부르는데 엄나무 새순을 벙구나무 잎이라 한다. 고흥에서 쓰는 사투리일 것이다. 좀 깎으려 니 잠깐의 뜸을 드리고는 봉지에 담는다.
"거시기혀면 거시기 혀서 남는 게 없당게로“
천 원만 더 깎아달라고 조르니 대답이 명료하다.
“그라지요.”
능가사 지붕 너머로 여덟 개의 팔영산 암릉이 또렷하다. 녹동항에서 꽃낙지연포탕을 먹는다. 봄볕이 스며드는 3월이 제철로 금산 앞 바다에서 잡히는 낙지가 가장 맛이 좋다. 몸에 두른 꽃무늬의 꼬들꼬들한 낙지를 안주로 고흥의 막걸리인 유자향주 한 잔 걸치니 남도 의 저녁이 달곰삼삼하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팔영산은 제1봉인 유영봉부터 마지막 깃대봉에 이르기까지 험한 바위산의 지형인데 변변한 그늘이 없다. 충분한 물과 간식을 준비해야 지치지 않는 산행을 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소록도를 거쳐 나로도에 있는 우주발사전망대도 다녀오시라.
흑산도에 가면 홍도가 있다
흑산도 홍도 ^^ 전남 여수 / 3월
흑산초등학교홍도분교 – 나무계단 – 동백나무 숲 – 전망대 – 소사나무군락 – 너도밤나무길 -
깃대봉
팔금도와 안좌도를 끼고 암태도를 지나친다. 몇 년 전에 다녀왔던 비금도의 그림산 골격이 정겹게 다가온다. 일흔두 개의 유인도와 나머지 무인도를 합쳐 섬이 1,004개에 이른다는 천사의 섬나라로 간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무인도까지 계산하면 천 개가 훨씬 넘는 섬이지만 천사라는 어감이 좋아 천사의 섬이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섬이라고 할 수 있는 흑산도로 간다.
아랫배를 꾹꾹 누르며 뱃멀미를 이겨냈다. 울릉도를 거쳐 독도를 갈 때도 멀미는 없었고 백령도 뱃길도 거뜬히 참아냈는데 이 무슨 변고인가 싶다. 어떤 사람은 배를 끌어안으며 바닥에 꼬꾸라진다. 창백한 얼굴로 인상이 구겨진 후배는 멀미약을 더 먹을까 싶다며 배낭을 연다. 입을 틀어쥐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사람도 있다. 더는 참지 못 할 것 같은데 섬이 보인다. 홍도였다.
굽은 언덕길로 어촌마을의 키 작은 집들이 어깨동무하듯 골목길을 마주보고 있었다. 간간이 파도소리만 들리는 대문이 없는 마지막 집을 지난다.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중장비 타이어로 지붕을 누른 것은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임이 분명하다. 고기잡이를 떠나기라도 했을까, 인적은 없는 집을 혼자 지키던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한참을 겅중겅중 뛰면서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한다.
계단을 밟으며 오르는 깃대봉은 누구나 쉬엄쉬엄 동행할 수 있는 산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능선으로 원형의 전망데크가 있다. 깃대봉으로 가는 중간지점이니 사람들이 여기서 쉬어 간다. 홍도의 붉은 섬을 가장 멋들어지게 볼 수 있는 장소다. 계단이 끝나면서 만나는 동백나무 숲은 겨울이면 더 푸르고 짙다.
긴 동백 숲을 지나면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너도밤나무의 자잘한 열매가 길섶에 떨어져 있다. 아마도 지난 가을의 결실인 듯싶은데 홍도의 다람쥐가 미처 보지 못한 듯하다. 8부 능선쯤 올라서면 밋밋한 산등성이로 시야는 사방으로 훤하다. 가슴까지 시원하다. 정상표지석도 섬의 산답게 가슴 높이로 서 있다. 고작 365미터의 작은 봉우리지만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적어 넣었다.
생선과 젓갈로 차려진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탔다. 홍도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기위한 해상유람선이다. 깃대봉에서 내려다보는 홍도가 정적인 섬이라면 유람선을 타고 보는 홍도는 생동감이 갑절은 넘는다. 드디어 흐릿하게만 보이던 홍도의 바위 군웅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뭣땀시 시방부터 사진을 찍고 그란다요?"
유람선의 해상해설사가 마이크를 잡는다.
"안녕하셨지라, 징하게 반갑소잉."
정겨운 남도의 질박한 말투에 선상은 폭소가 터졌다. 기기묘묘한 바위를 감상하는 것 못지않게 해상해설사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저기 세 개의 바위가 보이지라. 뽀뽀바위라 안 하요.“
바위가 가까울수록 해설사의 몸짓은 더 커진다.
"긍게 뭐시라, 키스바위, 꼴리는 대로 하소. 가운데 바위가 남편바위지라이. 왼쪽 바위가 본처고잉, 오른쪽에 빠마한 여자 안 있오. 첩이 요. 첩, 쌔컨드란 말이징. 후처가 얼마나 신랑의 이마빡을 빨아싼지 남편 이마빡이 뻘겋잖소."
유람선 안은 또 까르르 웃는다.
파도가 일렁이는 남문이 나타나고 실금리 굴이 더 깊게 패였다. 거북바위를 지나 만물상에 이르러서는 탄성을 지르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홍도의 바위섬을 한 바퀴 돌고나면 잠시 유람선이의 멈춘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통통배가 우르르 다가온다. 먼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라니 믿고 맛을 본다. 두 개의 도마를 놓고 부지런히 회를 뜨는 사람들은 부부인 경우가 많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되는 이른바 홍도 바다투어인 셈인데 남문바위부터 10경인 공작새바위까지 해설사의 질박한 남도 사투리가 맛깔스럽다. 눈이 즐겁고 귀가 흥에 겨우니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다.
홍도를 관광하고 흑산도 여객선터미널을 내린다. 마침 칠락산 너머로 해넘이가 너무 곱다. 등대의 불빛이 아른거리는 창 넓은 횟집에서 흑산도 홍어삼합을 시켰다. 최고로 매운 홍어를 썰어달라는 주문도 곁들였다. 홍어는 전라도 어느 곳에서나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흑산도 홍어는 그 새까만 빛깔의 토박이홍어로서 육질이 찰지고 쫀득한 맛을 낸다. 홍어의 원조는 역시 흑산도요, 흑산도는 어느덧 홍어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삼합(三合)이란 어원은 명리학에서 최상의 조합을 이룬 상태를 말하는데 홍어야말로 삼합을 갖춰야 제맛이라 하겠다. 삭힌 홍어에 돼지고기수육 그리고 묵은지를 곁들여 먹는다. 톡 쏘는 맛에 질금질금 눈물을 쏟아내는 사이에 입천장은 이미 헐어 있었다. 고추도 아니면서 맵고, 퉁가리도 아니면서 쏘고, 두엄에서 나온 듯 퀴퀴하니 이것이 홍어의 진한 맛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흑산도에서 홍어를 먹고, 홍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마지막으로 반듯이 깃대봉을 오르는 이 세 가지의 일정은 거르지 말기를 신신 당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홍도에 오면 흑산도를 돌아보고 흑산도에 오면 홍도를 거쳐 가는 것이다.
흑산도에서 첫 아침을 맞았으나 흐린 날씨로 일출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다. 흑산도 굽이굽이 25킬로미터의 버스투어로 일정은 이어진다. 상라봉 열아홉 굽잇길 정상에 오르자 가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흘러나온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정상에 서 있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의 유배지도 돌아본다.
오후가 되면서 잿빛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거칠어진다. 여기저기서 동시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걱정은 현실이 되고 있었다. 높은 풍랑으로 목포로 가는 배가 뜰 수 없다는 전갈이다. 어차피 섬에 갇힌 몸이니 장도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가까운 뱃길도 막혀버렸다. 장도는 작은 섬이지만 습지가 형성된 보기 드문 곳이다. 하는 수 없이 두어 번 쉬면서 오를 수 있는 칠락산을 휭하니 다녀왔다.
파도가 잔잔해야 배가 뜨겠는데 걱정이다. 이대로 궁상을 떨 바에야 낚시로 소일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파출소 골목을 빠져 작은 언덕을 내려서면 예리마을이 나오는데 먼 바다 풍랑과는 다르게 비교적 물결이 잔잔했다. 그럴싸한 낚싯대가 아닌 즉석에서 대나무 끝에 낚싯줄을 매어 바다로 던졌을 뿐인데 노래미가 곧잘 물려 나온다. 우럭도 나오고 감성돔도 걸려든다.
회의 맛을 잘 모르는 이는 이 노래미란 생선을 하찮게 여기지만 낚시로 잡아 올려 즉석에서 회를 떠먹는 생선치고 노래미처럼 꼬들꼬들한 고기도 쉽지 않다. 배를 갈라 회를 뜨는 번거로움도 없고 비늘만 밀어낸 채 썩썩 썰어서 고추냉이 간장이나 막장 또는 된장에 찍어 먹으면 갯바위에서의 낭만은 절로 따라온다.
그 다음날에도 풍랑은 잦아들지 않았고 또 다음날에도 어쩔 수없는 망중한은 계속이다. 흑산도에서 낚시나 하는 상팔자의 신세를 가지고 뭐가 걱정이냐 싶지만 상황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라는 사람에, 몇 억짜리 계약이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다고 징징 우는 사람하며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내 꾐에 빠져 섬에 갇히게 된 친구가 있었다. 원인 제공의 범인인 처지라 그저 좌불안석으로 눈치만 볼 뿐이다. 이 친구 부부는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상대로 매점을 운영하는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빵은 누가 팔고 라면은 누가 끓이겠냐며 황당한 일이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이보게 황기사, 나 지금 말이야, 섬에 갇혔어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부터 배송업무 접고 학교매점에 문이라도 좀 열어 놔요."
"글쎄요. 제가 가격을 알아야 빵을 팔지요."
"그러니까 문만 여시라고요,“
급한 대로 대답은 받아냈지만 꼬락서니가 제대로 돌아가겠냐며 난감한 표정이다.
중국의 저장성 항주에서 우는 새벽닭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최서남단의 우리의 국토인 가거도도 가고 싶지만 풍랑으로 꼼짝없이 갇힌 몸이 돼버렸다. 나흘이 지나서야 목포행 배를 탈 수 있었다. 언제 너울성 파도가 심술을 부렸나 싶다. 흑산도와 홍도에서의 1박2일의 일정이 3박4일이 되고 말았다. 섬 산행에서 흔히 겪는 일이니 기쁨도 3박4일로 채우고 떠나자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흑산도에 며칠 묵을 요량이면 사리마을을 찾으라. 신유사옥 시절이던 1801년 흑산도의 외딴 섬에 유배되었던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하던 바닷가의 포구와 어촌마을이다.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정약전 유배체험장이 꾸며져 있다. 민박 형태로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데 분위기가 호젓해서 좋다.
달이산 찍고 천태산 암릉으로
달이산 천태산 ^^ 충북 영동 / 4월
고당사주차장 – 옥계폭포 – 달이산 – 범바위 -
옥계폭포 - 영국사주차장 – 진주폭포 – 미륵길 – 천태산 – 원각국사비망탑 – 영국사
햇살로 찰랑이는 옥계연못을 따라 걷는다. 새벽에 내려앉은 아침이슬이 바짓가랑이에 옮겨 붙는 것조차 싫지 않다. 작은 언덕 하나를 꺾어 돌면 아늑한 주차장에 기념탑 조형물이 나온다. 구름을 타고 달 속에서 대금을 연주하는 음악가 박연이다. 그의 고향이 영동이다.
달이산을 오르는 초입에는 시원한 옥계폭포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그 길이가 30미터에 이른다. 달이산과 국사봉에서 발원한 물이 산모퉁이를 적시고 계곡을 돌아 범바위를 지나면 예저수의 호수를 가득 채우게 된다. 예저수란 달이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바위웅덩이에 가두었다가 가뭄이라도 찾아오면 옥계폭포로 쏟아지게 했다는 전설이다. 바위웅덩이가 얼마나 깊었던지 명주실 한 꾸러미를 풀었지만 바닥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전설은 전설로 들으면 그만이다. 과학의 잣대로 따지면 피곤해진다
생김새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폭포다. 폭포를 이루는 물줄기를 보라. 처음 시작되는 폭포는 정확히 중간 지점에 이르러 절벽 안으로 휘말린다. 한참을 숨었다가 다시 얼굴을 내밀며 쏟아지는 음기가 충만한 음폭(陰瀑)이다. 때문일까, 손이 귀한 종가의 부인들이 이 옥계폭포에서 목욕을 하면 반드시 자녀를 갔게 해준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폭포는 음폭이지만 폭포의 물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벼랑바위가 있으니 음(陰)과 양(陽)의 조화가 충만한 폭포라는 것이다. 때문에 옥계폭포를 옥문폭포라고도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10대 폭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폭포다.
달이산으로 가는 골짜기는 작은 봇도랑 천지다. 버들개지가 기지개 켜는 호숫가에 물새 한 마리가 첨벙첨벙 물수제비를 만들고는 달이산 자락으로 날아간다. 부리부터 발톱까지 검은 피부인 새는 물까마귀다. 물속 깊이 자맥질하며 거무튀튀했던 겨울의 그을음을 헹구고 있었다. 양지꽃이 자잘하게 피어나고 제비꽃이 떼를 지어 꽃을 피우는 봄물 진한 계곡이다. 할미꽃또 무덤가에 피었다. 꽃대에도 꽃잎에도 솜털로 보송보송하다.
내려오면서 찬찬히 폭포를 본다. 폭포가 쏟아지는 절벽으로 진달래가 피었다. 산을 오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진달래였다. 옥계폭포를 떠나면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잘생긴 폭포이기 때문일까. 폭포 앞에 설치된 아치형의 석교가 너무 가까이 서 있어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지금의 위치에서 한참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어떨까. 달이산을 찍었으니 천태산으로 간다. 20분 거리에 천태산이 있으니 연계산행이 충분하다.
살얼음 녹는 봇도랑을 건넜다. 야트막한 산마루를 내려서면 진주폭폭가 너럭바위를 타고 봄물로 흐른다. 겨우내 어깨에 멘 얼음이 맥없이 녹아 주저앉는다. 느티나무 고목을 껴안고 비탈길을 오르면 세 번을 굽이치는 삼단폭포가 마중한다. 절집에 들어오려면 정갈하게 몸을 씻으라는 뜻이려니 하면서 쪼그리고 앉아 손을 씻었다.
영국사가 가까워지면서 개구리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갔다. 인기척에 놀란 개구리들이 일제히 울음을 멈춘다. 스님도 더는 목탁소리를 내지 않는다. 영국사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를 지나면 부들과 미나리와 물매화가 수초로 자라는 연못이 있다. 산사에 사는 개구리는 예불시간을 알아채고는 울음소리마저도 조절을 한다. 또 개구리가 울어댄다. 영국사에 봄이 왔다는 신호일까, 아침공양을 알리는 귀띔일까. 막 요사채를 나온 노스님은 못 들은 체 잔기침만 하는데 예반을 들고 공양간을 나서는 동자승은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고찰 영국사는 은행나무의 수령이 천 년을 훨씬 넘겼다고 하니 절집보다 먼저 터를 잡은 것 같다. 기품과 절개가 있는 나무다. 영국사 경내를 천년 동안이나 지켜왔으니 이 절집의 주인이고 천년고찰의 산증인이다. 그래서 영국사에는 험상궂은 사천왕이 지키는 사천왕문이 없다. 천년 은행나무가 사천왕문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사는 나라의 흥망을 예견하는 절로도 유명하다. 절이 쇠락하면 나라가 위태롭고 절이 크게 번성하면 나라가 흥한다는 여수의 흥국사(興國寺)처럼 영국사(寧國寺) 역시 이 사찰이 존재하므로 나라가 편안하다고 믿는 절이다. 사찰의 이름에 나라 국(國)자가 들어간다.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1,300년으로 추정되는데 시월 보름이 되면 당산제를 지낸다. 마음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데 잡신을 쫒아내는 의례다. 1974년과 2003년 국가적인 사건이 있기 하루 전날, 이 은행나무는 밤새 울었다고 노교리 사람들은 증언하고 있다.
봄바람이 일렁이는 키 작은 소나무 숲길을 빠져나왔다. 2지점부터 5지점 구간까지 계속되는 암릉이다. 밧줄의 굵기부터가 대단하다. '노약자는 절대 안전을 위해 우회 하라'는 안내팻말이 곳곳에 꽂혀 있다. 소나무 조붓한 노루목 고갯길로 천태산 정상석이 보인다. 정상석 옆에서 사진을 남기려 셔터를 누르는데 한꺼번에 탄성이 이어진다. 입춘 날의 눈이었다. 그것도 함박눈이다. 절기를 잊고 내리는 눈이 길조일 것이라 믿는다. 가느다란 바람이 불때마다 회색빛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린다. 겨울은 이렇게 더 머무르고 싶은가보다.
8부 능선쯤을 내려서자 눈발이 약해지는가 싶은데 휙 하는 바람과 함께 싸락눈으로 변한다. 남고개를 지날 무렵에는 빗방울로 변한다. 봄이 오기까지는 계절도 심한 몸살을 동반한다. 하산 길에 망탑봉의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제535호)은 꼭 봐야한다. 화강암으로 기단을 만들고 3층으로 탑신을 올린 온전한 모습의 아담한 탑이다. 영국사가 가까운 뒤란을 내려서면 연꽃문양의 부도를 만날 수 있다. 하산 길에 문화유적을 만난다는 것은 산행 날머리의 덤이다. 금세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영국사 봉당에 서서 비를 피했다.
삼단폭포를 돌아서는데 까치 두 마리가 갈참나무 끝가지에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기둥을 세우겠지. 용마루 올리겠지. 서까래 얹겠지. 벽채도 엮겠지. 갈참나무 언덕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포근하다. 아지랑이 한보따리 배낭에 퍼 담았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은행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양평 용문사와 천태산 영국사는 서로 수령이 오래된 나무라고 주장한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1,100년은 넘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서편제길에서 세마치 두 장단을 메기다
청산도 ^^ 전남 완도 / 4월
서편제길 – 2코스 – 3코스 – 4코스 – 범바위
보적산 – 고성산 – 대선산 선음약수터 – 도청항
청산도가 뭍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화 서편제 때문이었다. 서편제하면 청산도가 떠오르고 청산도하면 서편제가 기억 된다. 오늘도 사람들은 청산도의 유채 밭을 먼저 볼 것이냐 아니면 서편제 길을 걸을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한다. 느린 걸음으로 시적시적 걷다보면 이렇게 또는 저렇게 연결되는 길이니 느리게 생각하고 굼뜨게 걸음을 내딛으면 그만인 게 청산도다.
청산도는 전남 완도에서도 한 시간 뱃길인 다도해 남단의 해역에 있는 섬으로 청산도 본도를 비롯해 여서도, 대모도, 소모도, 장도의 섬이 사람이 사는 섬이고 뜨문뜨문 떠 있는 아홉 개의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의 섬이다. 햇발을 머리에 이고 천천히 도청항에 내렸다. 서편제길은 항구에서 빤히 보이는 언덕에 있다. 오른쪽으로 오막하게 바닷물이 들어온 도락리 해안을 끼고 느린 언덕을 오르면 유채와 청보리밭과 돌담길이 어우러지는 1코스 서편제길이다.
영화 서편제를 기획했던 임권택 감독은 송화와 유봉 그리고 동호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의 촬영지로 청산도를 택했다. 늦가을도 깊은 황량한 들판, 그 구부러진 돌담 황톳길을 걷는 세 사람, 무심하게 걷던 이들이 소리 한 자락 불러 제친다. 선소리꾼 유봉이 세마치 두 장단을 메긴다. 그러면 송화와 동호가 다시 세마치 두 장단을 받고 유봉이 다시 세마치 두 장단을 끌어내는데 송화와 동호가 이를 받아친다. 덩실덩실 세 사람이 후렴구로 흥을 돋운다. 이때 임권택 감독은 돌담의 한 컷, 송화의 컷, 유봉의 컷, 동호의 컷을 따로따로 찍어서 편집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롱테이크샷의 기법으로 작품을 이어나간다. 생동감으로 함축되는 영상이다.
일반적으로 90분짜리 영화의 경우, 컷 수는 대략 800컷에서 900 컷 정도를 사용하는 게 보편화되어 있다. 컷 수에 따라 영화의 흐름은 바뀌게 마련인데 컷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영화는 다이내믹하게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은 휘어진 돌담길에 카메라를 고정으로 설치한다. 유봉과 송화와 동호가 불러 젖힌다. 아직도 15도 각도에서 5분30초 동안 줌인이나 줌아웃의 변화를 주지 않고 롱테이크샷은 계속된다. 그런데도 화면은 극적이고 다이내믹하다.
가을걷이를 마친 돌담길로 세 사람의 소리꾼이 걸어온다. 송화와 유봉이 신명나게 진도아리랑을 부르는데 뒤따르는 동호는 아직 시무룩한 표정이다. 그러나 그 표정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돌담이 낮아지는 삼거리쯤에서 동호가 북을 내려치며 장단을 맞춘다.
세 사람이 걸어오는 구부러진 돌담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도락리 언덕, 감칠맛 나는 우리소리가 결합하여 서편제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고 거기에는 청산도라는 섬이 있었다. 청산도를 배경으로 찍은 서편제는 1993년에 작품으로 완성됐고 2007년에는 슬로시티로 선정되었다. 서편제의 무대가 감동이었다면 슬로시티의 선정은 청산도가 섬으로서의 명작임을 선언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서편제길에 올라섰다. 송화와 유봉이 부르는 진도아리랑의 신명나는 가락이 흘러나온다. 낮은 돌담은 급하지 않게 구부러져 펴질지 모르고 또다시 굽어 도는 청보리밭이 한가한 서편제길이다. 흥에 겨운 탐방객들은 소리꾼 송화가 되고 유봉이 되고 동호가 된 듯, 어깨춤을 추며 서편제의 주인공을 닮아간다. 돌담을 따라 끝까지 나가면 봄의 왈츠 촬영지와 피노키오 세트장이 있다.
내친김에 1코스 해안의 절경을 따라 걷는 봄날의 트레킹이다. 벼랑 끝으로 이어지는 해솔길이 나오고 노랑나비 나풀대는 진달래능선에는 빨간 열매의 자금우가 귀엽다. 3코스의 몽돌해변을 걸을 적에는 발바닥이 간지러워 배꼽까지 꼼지락 거렸다.
청산도는 뱃삯도 뱃삯이려니와 당일치기로 왔다가 휭하니 다녀갈 섬이 아니다. 적어도 사나흘 묵으며 첫날은 유채와 청보리가 넘실대는 서편제 길을 걸을 것이고, 해안을 따라 걷는 트레일 길은 범바위에 다다르면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 느림의 빨간 우체통이 있으니 일 년 후에 배달될 느린 편지를 써보는 거다. 다음날에는 대선산, 고성산, 보적산을 올라 남녘의 봄 바다를 조망하자. 멀어봤자 반나절이면 족히 종주할 수 있는 야트막한 섬 산이다. 급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 날에는 상서리 돌담길을 느리게 걷고 이른 저녁엔 어시장에 나가 나이든 해녀가 건져 올린 전복과 해삼을 흥정해보자. 청산도 해안선 100리 길도 천천히 걷는다. 아침나절에 밭갈이 나서는 청산도의 황소가 왜 느려터진 줄 아느냐, 슬로시티를 잘 아는 황소이기 때문이다.
청산도는 하나의 이름으로는 부족했나보다. 사시사철 푸른 섬이라고 해서 청산도라 했고, 신선이 노는 섬이라고 해서 신선도 혹은 신선의 섬이라고 불렀으며 선산도 또는 선유원도라고도 부른다. 모두 신선과 인연이 깊은 섬이라하겠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청산(靑山) 또는 청산여수(靑山麗水)라고 불렀으니 다 아름다운 지명의 보석 같은 섬이다.
출렁이는 유채와 청보리의 일렁임을 보려거든 4월에 청산도행 배를 타시라. 4월1일부터 슬로걷기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서편제길에도, 상서리돌담길에도, 9코스 단풍길에도 그때는 인산인해일 것이다. 만일, 인파에 떠밀려가는 게 번잡하다면 시기를 정하지 말고 아무 때고 무심할 때 떠나라. 계절병이 도졌을 때도 지체 없이 청산도행 배를 타시라. 청보석의 푸른 섬이 거기 있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청산도의 유채와 청보리는 제주도보다 열흘 정도 늦은 4월 초순경에 핀다. 슬로걷기축제 기간에 맞춰 씨를 뿌린다. 그러나 꼭 축제기간에 섬으로 들어간다고 흡족한 것은 아니다. 무심할 때 청산도로 가시라. 청산도에서 뛰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참고하시라.
원앙을 본 그날이 길조였다
도봉산 ^^ 서울 도봉구 / 4월
도봉탐방지원쎈터 – 금강암 – 석굴암 – 천축사
마당바위 – 자운봉 – 신선대 – 오봉주능선 -
여성봉 – 우이암 – 원통사 - 무수골
봄물이 넘실거리는 도봉계곡이 아침 햇살로 가득하다. 도심에 있으면서도 도심과는 멀게 느껴지는 산이다. 진달래가 핀 맑은 계곡으로 점박이 비단개구리가 뛰어 놀고 실버들을 키우고 있는 봇도랑에는 송사리가 유영한다. 영락없는 봄이다.
탐방객이 오르는 맞은편 개울에 상춘객이 찾아들었다. 금슬 좋기로 소문난 원앙 한 쌍이었다. 인기척에 놀랄 만도 하건만 한참을 주시하는데도 산객들과의 조우는 길어진다. 천생연분으로 살아가는 부부를 곧잘 원앙에 비유한다. 한 마리가 먼저 죽기라도 하면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짝을 기다리는 정조의 새다. 생수절로 결국에는 죽고 마는 새다. 그래서 원앙을 배필새라고도 한다.
원앙은 결혼하는 신부에게 빠져서는 안 될 혼수품이었다. 베개와 이불에 한 쌍의 원앙을 수놓았으니 원앙금침이다. 혼사를 앞둔 규수가 무릎에 자수틀을 놓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데 틀림없이 원앙이었다. 혼례식에서 신랑이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전하는 이유도 다 같은 뜻이 담겨있다. 원앙도, 기러기도 부부애가 좋다는 새들이다. 겁이 많은 새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봉산을 찾은 원앙은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원앙 한 쌍을 만난 오늘은 길조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노랑제비꽃에 시선을 두는데 벌써 천축사 입구의 깔딱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청동불상 너머로 대웅전이 보이고 대웅전 지붕 위로 만장봉이 절집을 지키고 있다.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알려진 천축사 대웅전에 합장하고 천불동상 앞을 지난다. 산벚 꽃잎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함박눈처럼 어깨에 흩날린다. 복사꽃이 만발한 마당바위에서 배낭을 베고 누웠다. 아까부터 머리 위를 낮게 나는 까마귀 한 마리가 끼억끼억 베이스 톤의 쉰 목소리로 울어 제친다.
신선대를 오르는 비탈진 암릉에 위험 경고판이 서 있다. 까마귀가 낮게 날며 소리 지른 까닭을 알 것 같다. 암벽을 타고 올라서는데 눈앞에 만장봉이 우뚝 서 있다. 포대능선도 가까이 있고 선인봉과 자운봉, 신선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척박한 벼랑 끝에 몸을 기댄 소나무도 운치가 그만이지만 기암절벽에 터 잡고 핀 봄꽃들이 신통하다. 무슨 재주로 암벽의 허리며, 어깨며, 목덜미에 흐드러지게 피었느냐!
도봉산 정상이다. 최고봉인 자운봉이 거기 있고 만장대와 선인봉이 꼿꼿하게 솟아있다. 도봉산은 이 세 개의 암봉과 능선의 오봉이 절경을 이루는 산이다. 십 수 년 전, 어느 가을날에 도봉산엘 올랐었다. 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던 터라 숨차게 올라왔다간 숨도 고를 틈 없이 하산을 했었다. 산행에서 느끼는 감동과 성취감을 알 턱이 없었다.
신선대를 내려와서 사방을 본다. 진달래 그늘에는 어김없이 선남선녀가 같은 방향을 응시하며 앉아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사람에 비유할 수 있으랴.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주능선을 따라 내려서서 돌아보면 뒷짐을 진 만장봉이 비켜서고 자운봉이 굽어보며 서 있다. 오봉능선에서 남쪽으로는 우이암이고 문수봉,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가 또렷하게 보인다. 우람한 기암과 말쑥한 암봉으로 능선을 잇는 암릉미가 그만이다. 올망졸망한 바위군상을 보며 능선을 걷는데 우이동 계곡이 보인다.
<서울이 싫어 내려온 치과의원> 이라는 상호를 내건 원주의 치과의원이 생각난다. 서울에서 의료사고를 치고 내려온 의사쯤으로 의심했던 이들도 있으나 벌써 십 수 년째 병원을 꾸리고 있으니 그런 사연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서울생활이 싫어서일까, 광고 효과를 노린 고도의 상업주의의 발로였을까. 어쩌다 한번 서울에 갈라치면 영 서울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거니 싶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곡은 1968년 1월21일의 김신조 일당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청와대를 습격하기 무장한 북한 군인들이 떼거지로 스며들었었다. 생뚱맞게도 김신조길이 돼 버렸다. 그 사건으로 막혔던 길이 41년 만에 개방된 북악하늘길이다. 서울의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교현리를 연결하는 길로 도봉산과 북한산에 기대어 있다. 미리 예약을 해야 걸을 수 있는 우이령길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알려진 우이령 고개는 1968년 1.21 사태로 오랫동안 출입이 통제 되었었다가 얼마 전에 일반에 개방된 길이다. 사전예약방식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는데 41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없었기에 도심 속의 오지로 숲이 무성하다. 하늘 길로 명명된 우이령 길을 걷어본다는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다.
옥녀는 절세미인이었다.
사량도 ^^ 경남 통영 / 3월
돈지분교언덕 – 지리산 – 촛대봉 – 달바위 - 가마봉 – 옥녀봉 – 금평항
아침 7시에 사량도로 떠나는 첫배를 탔다. 500톤급의 대형선박인데 섬으로 가는 여객선 치고는 상당히 규모가 큰 배다. 사람도 배를 타지만 자동차도 배를 탄다. 사량도로 가는 뱃길은 통영의 가오치여객선터미널이 있고 바로 옆의 미수항과 고성의 용암포항 그리고 삼천포신항에서도 배가 떠난다. 고성에서 가는 뱃길이 거리로는 가장 가깝지만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오늘은 가오치항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고 사량도로 간다.
선착장에서는 자동차들이 배를 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맨 먼저 소형 승용차가 들어간다. 그 다음이 6인승 차량이고 가운데는 대형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형승용차가 다시 들어간다. 사람이 배를 탈 때 우르르 몰려가는 것과 다르게 차량들은 정해진 순서가 따로 있었다. 배의 무게중심을 잡기위한 과학이 접목된 고도의 기술이었다.
차량이 모두 타고나면 사람은 나중에 탄다. 2층이 객실이다. 서둘러 전기장판이 깔린 마루로 몰려간다. 여객선의 한가운데를 방처럼 넓게 만든 것이 섬으로 가는 여객선의 특징이다. 그런데 객실에 앉아있는 승객의 표정은 다 다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사량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해안 쪽을 바라본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끼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선미에서 바다의 풍광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량도의 섬사람들만은 제일 한유한 자세다. 어떤 사람은 벽에 기대앉고 또 다른 이는 베개를 찾아 베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아예 코를 고는 사람도 있었다. 재재작년에 서울로 시집을 간 사량도의 새댁은 이제 금촌항에 입항한다고 전화를 넣고는 두 개의 트렁크를 챙겨 든다.
마을버스를 타고 등산로 초입에서 내렸다. 돈지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았다. 포구에는 여러 척의 어선들이 정박해있었다. 붉은 깃발을 나부끼며 포구로 들어오는 고깃배는 엔진을 끄면서 뱃고동을 짧게 울린다. 만선이라는 신호였으면 싶다. 오래 지체할 수가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둔덕을 오르는 초입은 암릉구간으로 긴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량도의 첫 번째 봉우리인 지리산이 저만치 앞에 있었다. 초입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봉우리다.
가야할 등산로는 계속 이어지는 거친 바위산인데 설악산의 화강암과는 다르게 층층이 패인 바위능선이다. 마치 한옥을 짓기 위해 행랑채에 싸놓은 구들장 같았다. 심한 겨울가뭄 탓인지 보폭을 옮길 때마다 퍼석퍼석 먼지를 일으킨다.
사량도가 악명 높은 고난이도의 산은 아닌데도 내겐 좀처럼 인연이 없었던 산이었다. 십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몹시 비가 내리던 어느 휴일이었다. 사량도로 떠나는 배를 타기위해 여객터미널에 모였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니 다들 걱정이었다. 창문이 내려진 매표소입구에서도 웅성거리고 부둣가에서도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사량도로 가는 배가 출항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쉽게 귀동냥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배표를 파는 매표소 역시 도통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다. 얼마의 긴장된 시간이 흘렀을까, 분주히 부두를 오가는 여객터미널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화색이 돈다는 것은 출항을 할 여건이 갖춰졌다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겨우 배를 탔다.
사량도에 내렸는데 여전히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통영에서보다 더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궁리를 해보지만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잠시 비가 멎을 것처럼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보슬비처럼 가늘게 뿌리고 있었다. 이렇게 멀리 산행을 왔으니 일단 출발은 하고 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예닐곱 명씩 그룹을 만들어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긴다. 전혀 시야를 확보할 수 없기에 대충 앞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듣고 뒤를 따른다. 위험천만이 아닐 수 없다. 한 시간도 채 못가 산행을 포기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산행을 하는데서 사고는 일어난다. 백기투항이다. 몇 해를 지난 어느 초봄 날에도 사량도는 나를 외면하고 토라져 있었다. 갑작스런 풍랑을 만나 통영항 어판장 이층에서 막썰어회만 먹고 돌아간 일이 있었다. 사량도와는 이렇게 인연이 닿지 않는 산이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화창하게 맑은 통영의 사량도다.
지리산 정상석이 반긴다. 사량도의 첫 봉우리가 지리산이다.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리산과 지명이 같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시계가 맑은 날, 지금의 봉우리에서 북북동 방향을 보면 국립공원 지리산 천왕봉이 잘 보인다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명은 지리적으로 돈지마을과 내지마을의 한 가운데 걸쳐있어서 지도의 가운데 있다는 뜻으로 지리산으로 명명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산행지도를 들여다보면 사량도의 지리산은 돈지와 내지의 경계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촛대봉을 지나 달바위에 이르는 능선은 가슴까지 시원하다. 오른쪽을 봐도 바다고 왼쪽으로도 고기잡이배들이 그물을 던지고 있다. 사방천지 드넓은 망망대해 남해바다이다. 어디를 내려다봐도 작은 항구가 있고 더 작은 포구가 있다. 그만큼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뚝 솟아오른 바위를 올려다보면 봄을 기다리는 부처손이다. 봄비를 맞으면 꼭 쥐었던 주먹손을 펼칠 것이다. 가마봉의 수직계단을 내려서서 마지막 기력을 쏟아내면 사량도의 출렁다리를 만난다. 연지봉과 향봉을 이어주는 현수교로 2013년 2월에 준공된 출렁다리다. 절반 정도 출렁다리를 지나는데 흔들림이 지나치다. 장난기가 발동한 일행의 소행이지만 내가 옥녀봉을 낯설어 하는 만큼 옥녀봉 역시 낯가림이 심하다.
금오도 우실마을에도 옥녀봉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옥녀라는 선녀가 우실마을의 총각과 눈이 맞아 자주 만난다는 사실을 알아 챈 옥황상제가 벌을 내렸고 옥녀는 하늘에서 뛰어 내려 바위가 되었으니 금오도의 옥녀봉이다. 전설의 밑바탕에는 늘 권선징악이 존재하고 인과응보가 있으며 사필귀정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에는 늘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사량도의 전설은 절세미인의 딸에게 욕정을 느낀 아비의 치욕스런 일탈이 전해지고 있으니 이쯤 되면 전설도 상식을 뛰어 넘는다. 그 시절의 절세미인은 옥녀가 분명했다.
섬에서 접집을 보았는가, 섬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점집이 없다. 십수 년 동안 섬을 여행하고 섬의 산을 다녀보지만 섬에서 점집을 본 적이 없다. 민간신앙에 솔깃할 것 같은데 의외의 일이다. 섬에는 사람이 적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이유일 것이다. 다만 성황당과 당집은 있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는 현수교도 없었고 옥녀봉을 오르는 암봉에도 나무계단은 없었다. 밧줄을 잡고 사투를 벌여야만 암릉과 암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산은 작지만 위험하기로는 악명이 높았던 섬 산이었는데 지금은 명물인 출렁다리가 있고 암릉의 외벽에 설치된 나무데크도 있다.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는 남해바다를 조망하기에 그만인 시설이다.
사량도는 작은 섬 속의 바위산이지만 능선 길은 거친 암릉으로 산행 내내 긴장감을 주는 산이고 날머리까지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시야가 흡족한 산이다. 옥녀봉까지의 종주하는 길은 그래서 오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100대 명산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있는 산이다.
추위에 약한 팔손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 사량도는 남녘 끝자락이 맞다. 찔레덩굴이 새순을 돋는 길섶으로 국수나무도 연둣빛 움이 돋아나고 있었다. 통영으로 출항하는 배를 기다리며 문어와 멍게를 안주로 사량도 아낙이 빚은 농주를 마셨다. 통영어시장의 막썰어회가 기다리고 있으니 적당히 입가심만 할 요량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사량도로 가는 배편은 다양하다. 행정구역으로는 통영에 위치한 섬 이지만 통영과 고성 그리고 사천에서 출항하는 배가 있다. 통영은 가오치항과 미수항여객선터미널, 사천은 삼천포여객선터미널, 고성은 용암포선착장에서 출발하는데 고성에서 떠나는 배가 가장 짧게 탄다. 20분 거리의 뱃길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영산
월악산 ^^ 충북 제천, 충주, 단양 경북 문경 / 12월
덕주골휴게소 – 덕주사 – 마애불 – 960봉
헬기장 – 영봉 – 중봉 – 하봉 – 보덕암 -
수산리
국수나무가 산길을 터주는 월악산 초입이다. 작은 절, 덕주사를 지나 한참을 오르면 덕주사마애불(보물 제406호)과 마주 서게 된다. 신라의 덕주공주와 마의태자가 덕주사에 은거하며 마애불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부터 만나는 가파른 계단은 암벽을 껴안고 돌고 다시 벼랑으로 이어진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마애불과 상덕주사의 요사채가 까마득하다. 960봉을 지나면 잠깐이긴 하지만 헬기장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동창교 방향에서 올라온 산객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앉았다. 덕주사로 내려갈 수도 있고 동창교 쪽으로도 하산할 수 있는 삼거리인 셈이다.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월악 삼봉의 주봉인 영봉이 보인다. 때마침 아침 햇살을 받은 영봉은 황금빛 보석처럼 환한 광채로 번득이고 있었다. 산 전체가 거대한 암봉으로 솟아올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늘의 기를 모으듯 솟아오른 자태가 신성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갈지자형으로 연결된 계단은 끝없이 하늘로 오르기만 한다.
암봉 끄트머리의 목책이 보인다. 중간쯤에서 내려다봐도 까마득하고 올려다보면 더 주눅이 든다. 높고 높은 봉우리는 오르면 오른 만큼 발아래에 있을 뿐이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오르면 일행이 반가운 손을 내민다. 월악산 영봉이다.
한반도의 숱한 명산 가운데 산 정상을 영봉이라고 부르는 산은 백두산 정상의 영봉과 월악산 정상의 영봉뿐이다. 백두대간의 시작은 한반도 제일 높은 백두산의 장군봉에서 출발한다. 백두산의 천지를 품고 한참을 내려오는 백두대간은 동쪽 해안선을 따라 금강산에서 일만 이천 봉으로 솟아올라 설악에서 암릉으로 이어진다. 벌떡 일어나서는 오대산으로 방향을 틀고 태백산으로 내달린다. 다시 긴 호흡을 가다듬고는 서쪽으로 기울어 소백산으로 갈라지고 속리산으로 뻗어 내려간다. 그 중간 지점에 청풍호를 가슴에 품은 명산이 있으니 월악산이고 영봉이다.
월악산은 영봉이 어찌나 높았던지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렀으며 백제시대에는 와락산이라고 불렀었다.
월악은 시선을 두는 방향에 따라 정상의 암봉이 각기 다른 형태로 보인다. 동쪽에서 보면 단단한 쇠뿔 같고 남쪽 미륵리에서 보면 쭉 뻗어 이어진 절벽이 히말라야 서북의 거봉 같다. 송계 9곡이 기암절경을 이루고, 능선을 오를 때 마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도락산도 월악산의 품속에 있다. 금수산에 올라 용담폭포를 건너다보면 가슴까지 시리고, 황장산 암릉은 다시 가라고 하면 오금이 저려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북바위산, 용마산, 만수봉, 하설산, 메밀봉, 대미산, 가은산 등등의 거봉들을 품고 있는 산이 월악산이다.
중봉을 바라보며 암릉을 내려온다. 청풍호의 물줄기가 월악산 자락을 휘감고 돈다. 도담삼봉에서부터 시작되는 청풍호는 지역마다 강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 도담삼봉의 주민들은 단양호라 부르고 제천주민들은 청풍면을 가로지르며 흐른다고 해서 청풍호라 부르며 충주 주민들은 충주댐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니 충주호라고 주장한다.
하산하는 중봉과 하봉의 암벽코스는 보덕암에 이르기까지 수려한 경관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명품능선이다. 중봉에서 영봉을 보면 솟구쳐 오른 암봉이 통쾌하고 하봉은 팔부능선으로 구름이 깔리는 신선의 세상이다. 영봉도 묻히고 하봉도 안개에 잠겨 청풍명월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
보덕암 대웅전을 바라보며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데 요사채 들창 안으로 은색의 섹소폰 하나가 걸려있다. 어떤 스님인지 보지 않아도 스님은 로맨티스트일 게 분명하다. 만일 만날 수 있다면 ‘낭만을 위하여’를 듣고 싶다고 간청하고 싶다. 왼쪽으로 요사채를 끼고 돌면 신기하고 영험한 보덕굴을 만날 수 있는데 동굴 입구에 다다르면 보덕굴이 과연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갸름한 동굴의 입구가 마치 조선시대의 화가인 신윤복의 미인도에 나오는 잘생긴 여인의 눈썹을 닮아서다. 월악산 보덕암의 보덕굴은 한겨울이면 땅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역고드름으로 유명한 곳이다.
석굴 천정에서 낙숫물이 떨어지면 얼음이 하늘을 향해 얼게 되는데 바로 역고드름이다. 동굴 안의 석순이 천정에서 아래로 생기는 것과는 반대로 보덕굴의 고드름은 아래에서 위로 뻗치는 고드름이다. 통영의 소매물도에 가면 등대섬으로 가는 열목개가 있다. 물이 차면 건너지 못하고 물이 빠지면 신발 신고도 건너는 바닷길이다. 물때를 잘 만나야 소매물도의 열목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성이 부족한 탓일까, 보덕굴의 역고드름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보덕암의 마당을 걸어 나오는데 저녁바람이 차다. 산행을 끝내라는 신호다. 영봉도, 중봉도, 하봉도 보이지 않는다. 달이 노니는 산이라는 월악산. 오늘밤 월악산은 하늘의 달과 친구하며 놀까, 아니면 청풍호에 출렁이는 달과 유희할까. 수산리로 하산하는데 비로소 섹소폰 소리가 들린다.
- 한 발 더 들어가는 멘트 -
꽤나 춥다고 느껴지는 겨울에 월악산을 찾는다면 하산길에 보덕암 모퉁이를 돌아 보덕굴을 살펴보시라. 보덕굴 천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아래로부터 위로 형성되는 역고드름을 만날 수 있다. 기온과 습도가 잘 맞아야 생성되는 것이기에 만일 진기한 역고드름을 보게 된다면 평소 덕을 많이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대부도는 안산에 있다
대부도 ^^ 경기 안산 / 3월
대부도관광안내소 – 북망산 – 미인송 – 구봉약수터 갯벌 –개미허리아치교 – 낙조전망대 – 구봉선돌 – 종현어촌마을
서울에도 대부도가 있다. 부산에도 대부도가 있고 대전, 광주, 원주에도 대부도가 있다. 경기도 서해안의 대부도는 잘 모르지만 대부도해물칼국수는 누구나 잘 안다. 진짜 대부도는 경기도 안산의 서해안에 있다. 대부도에 와야 바다와 갯벌과 노을을 볼 수 있고 조개구이와 바지락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대부도는 원래 배를 타야 갈 수 있었던 섬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4년의 서해안 물막이 공사로 시화호 그 끄트머리에 오늘날과 같은 대부도 땅이 생겨난 것이다.
대부도관광안내소에서 섬 트레킹은 시작된다. 상가를 끼고 걸어도 되고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도 되는데 주황색 리본과 재색리본이 걸린 곳을 따라가면 섬 트레일 코스로 가는 길이다. 두 개의 리본에는 대부도의 상징을 함축하고 있다. 의미가 있다. 주황색의 리본은 노을을 나타내고 재색의 리본은 갯벌을 상징하는 색상이란다. 그래서 트레일 길에 두 개의 리본을 걸게 됐다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노을과 갯벌이 있는 대부도다. 초입은 황토색 짙은 밭두렁을 밟고 가는 것 같지만 곧 소나무로 가득한 오솔길이 나온다. 솔밭 사이로 갯벌이 보인다. 저만치 밀려가는 서해바다는 예정된 시간이면 잊지 않고 되돌아온다.
신갈나무와 갈참나무 잎이 누렇게 변한 묵은 낙엽으로 팔랑거린다. 수풀에는 청미래덩굴이 빨간 열매를 달고 길섶에 웅크리고 있었다. 푸르른 날의 여름을 너는 기억하느냐.
북망산 정상이다. 북으로는 실미도가 있고 영흥도, 인천대교, 광도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바람좋은 날에는 페어글라이더들이 점프하는 활공장이기도하다. 머리만 슬쩍 가릴 정도의 소나무 숲을 나오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해송이 즐비하다. 섬과 섬 사이에 서 있는 해송 한 그루가 바로 미인송이다. 내일의 날씨가 궁금해서 텔레비전을 볼라치면 기상캐스터가 얼굴을 내밀기 전에 화면을 먼저 차고 나오는 소나무가 바로 이 소나무다. 달력에 도 곧잘 등장하는 그 명품소나무다.
해안의 구릉지와 절벽을 몇 번 더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갯바위와 갯벌이 이어지는 구봉약수터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바닷물이 갯벌까지 들어찰 때에는 물속에 몸을 숨기지만 간조가 되어 물이 빠지면 잔자갈이 깔린 해변으로 변한다. 가슴장화가 없어도 바닷가로 나갈 수 있다. 지금이 그 시간이다.
멀리 밀려나간 물은 오후 서너 시가 넘어야 밀물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배낭을 풀어 도시락을 먹어도 좋은 장소지만 이곳을 지날 때면 꼭 작은 칼 하나쯤은 준비하는 게 좋다. 갯바위에 붙은 싱싱한 굴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식 굴 보다야 씨알은 작을 수 있으나 고소하고 향긋한 맛은 그만이니까.
야지막한 능선 길이다. 햇살이 잘 들지 않을 것 같은데 하얀 노루귀가 여기저기 피었다. 제비꽃이나 양지꽃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다. 혼탁한 불빛이 밤을 지새우는 도시보다는 갈매기 날갯짓이 한가한 섬이 더 반가울 터다. 역시 봄은 자동차 소음이 적은 섬에 먼저 찾아 드는가보다.
고개 하나를 더 넘어서자 멋진 무지개다리가 나온다. 개미허리아치교다. 작은 섬을 사이에 두고 물때에 따라 갯바위가 잠기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데 개미허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지며 깔깔대는 사람들은 전망대로 가는 길이 바쁘지도 않은가보다. 바다위로 놓인 높은 데크를 따라가면 해넘이가 가까운 낙조전망대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 행여 낯이 설까싶어 등대도 친구 되어 옆에 있다.
산행을 하면서 가끔은 대부도처럼 바닷바람이 어깨를 스치는 트레일도 그만이다. 쌀밥이 귀하던 시절에 보리밥은 정말 싫었다. 이밥이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하얀 쌀밥 보다는 잡곡밥이 더 맛있다. 꼭 건강식을 좇아서가 아니라 수수쌀이 곁들어지고 기장과 율무, 현미, 녹두, 흑미, 차조, 찹쌀, 서리태, 보리쌀 등등이 골고루 섞인 잡곡밥이 얼마나 맛있는 줄 모르겠다. 기를 쓰고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설악의 공룡능선을 종주하는 것이 산행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인 것으로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딴 섬의 동백 숲길이 좋고 괴산의 산막이 옛길이 넉넉해서 그만인데 대부도 트레일도 너무 좋다. 쌀밥이 좋다가 잡곡밥이 더 맛있는 것처럼.
대부도에 가면 조개구이와 조개찜은 꼭 맛을 봐야한다. 기왕이면 서해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으면 눈과 입이 동시에 즐거울 것이다. 조개구이를 먹는 내내 창을 열어도 좋다. 아무리 서해갈매기가 새우깡에 사족을 못 쓴다 해도 사람이 식사하는 방안에 까지 날아드는 무례는 범하지 않는다.
싱싱한 조개를 연탄불 위에 올려놓는다. 얄팍한 모양의 가리비와 바지락, 대합, 모시조개, 진주조개, 새조개, 소라, 참조개, 상합, 백상합, 민들조개 그런데 전복은 딱 두 개만 나온다. 목장갑은 왼쪽에만 끼라고 한 사람마다 한 장씩이다. 연탄불에서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쫄깃한 육질을 맛본다. 이 향긋한 바다 향을 바닷가가 아니라면 어찌 맛보겠는가 싶다. 조개구이와 조개찜을 먹고 입가심으로 바지락칼국수를 후루룩 마신다. 서해바다를 다 먹고 다 마신 기분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서울에서 만난 고교동창이 금세 다녀올 수 있어서 좋은 대부도다. 부모와 와도 좋다. 연인과 와도 좋다. 부부싸움 뒤엔 꼭 와야 할 대부도다. 바지락 칼국수를 먹기 전에 꼭 대부해솔길을 걸어보라. 주황색 리본을 따라가면 노을길이고 재색 리본을 따라가면 갯벌이다.
바다를 보고 사는 보리암
금산 ^^ 경남 남해 / 4월
금산탐방지원쎈터 – 쌍홍문 - 제석봉 – 흔들바위
일월봉 – 화엄봉 – 금산정상 – 제 2주차장
유채꽃밭머리부터 금산은 이미 시작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그 끄트머리로 유채와 포구가 만난다. 보리암으로 이어지는 벚꽃 길은 쌍홍문까지 멈출 수 없는 벚꽃터널이다. 바닷바람이 벚나무 가지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면 하얀 꽃잎이 눈처럼 내린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지난겨울에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가로수 사이로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왜 춥지 않았던지 모르겠다. 새하얀 벚꽃이 한겨울의 화신처럼 길가에 내려앉는다. 꽃송이가 활짝 만개했을 때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온 동네가 화사한 벚꽃이지만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 설움이 밀려온다. 남해는 지금 봄바람에 왕벚꽃이 지고 있었다.
남해의 전설은 멸치를 몰아넣는 죽방렴 햇살로부터 시작된다. 바다 한가운데 참나무를 부채모양으로 세우고 물살에 떠밀려온 멸치 떼를 썰물 때 가두는 원시적인 방법이다.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 부르는 게 값이라는 소문도 있다. 긴 그물자루를 바다에 던져서 잡는 낭장망멸치와 비교를 하면 수확량은 신통찮다. 그런데도 남해사람들은 아직 죽방렴에 설치해 둔 참나무를 뽑을 생각이 없다.
곰솔 우거진 황톳길을 지나면 불자의 끈기를 시험하는 돌계단이다. 다 오른 것 같은 계단은 끝이 안 보인다. 고약한 돌계단이다. 길섶에는 노란 꽃다지와 하얀 제비꽃이 피어나는데 생강나무 꽃은 벌써 지고 있었다. 대나무 숲을 돌아서는 가파른 언덕으로 뻥 뚫린 절벽이 나타난다. 금산 보리암의 쌍홍문이다. 정면으로 뚫린 두 개의 동굴인 쌍홍문은 잠자리 안경을 걸친 한껏 멋을 부린 여인의 모습이다.
계단 여섯 개를 딛고 오르면 보리암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또 하나의 길은 하늘로 연결된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멀리 육지의 산과 바다의 섬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쌍홍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한 번 보자. 다도해의 풍광은 이제 타원형의 고급 사진틀이 되어 쌍홍문 속에 박아 놓는다.
하늘의 빛을 머리에 이고 동굴 밖을 보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다도해가 펼쳐져 있다. 쌍홍문을 들어서는 순간이 바로 금산에 온 것이고 일주문을 대신하는 쌍홍문이야말로 부처를 친견하는 것이리라. 보리암해수관음상은 오늘도 다도해의 남녘 바다를 응시하며 너그러운 세상이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보리암이란다. 암자의 이름이 참 곱다. 약수 한 모금 마셨더니 타던 갈증까지도 금세 풀린다. 서걱거리는 대숲 소리를 들으며 암릉을 빠져나왔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남쪽의 바다와 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소치도는 동백나무 숲까지 보이고 두미도와 사량도, 욕지도가 선명하다. 세존도는 까마득히 보일 듯하다 다시 멀어진다.
보광전에도 해수관음상 언덕에도 소원을 비는 불자들로 가득하다. 이른바, 기도발이 좋다고 알려진 해수관음성지다. 우리나라의 3대 해수관음성지로는 양양낙산사의 홍련암, 강화석모도의 보문사 그리고 남해의 보리암이 으뜸의 기도처로 꼽힌다. 4대 성지로는 여수돌산의 항일암이다.
신라시대를 거슬러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보리암은 최초에는 보광사라 불렀었다. 이성계에 의해 지금의 보리암으로 바뀌었지만 원효대사의 높은 공을 기리기 위해 보광전에 부처를 모시는 것이다.
보광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잘 훈련된 장군들이 보리암을 에워싸듯 도열해 있다. 그 바위군상들은 대장봉이 되고 화엄봉이 되고 일월봉인데 모두 용맹스런 장군들이다. 대장봉이 해수관음상을 향해 우뚝 서 있고 화엄봉이 창을 뽑은 맹장인데 일월봉은 하늘을 지키고 바다를 엄호한다.
금산의 정상능선과 오른쪽의 기암능선은 기기묘묘하다. 두꺼비를 빼어 닮은 천마암이 있고 거북이를 닮은 요암도 웅크리고 있다. 천계암, 천구암, 저두암, 사자암, 봉암 등등 모두 동물의 형상을 닮아 붙여진 금산의 암봉들이다. 제석봉에서 바라보는 상사암 능선은 산세가 장쾌하다. 어떤 장인이 이 같은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금산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해수관음상 언덕으로 향했다. 무슨 소원을 빌까 싶은데 워낙 무덤덤하게 살아와서인지 딱히 궁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보리암은 일주문 격인 쌍홍문을 비롯해서 사선대, 음성굴, 상사암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뒷짐을 지고 두리번거려도 두 시간이면 족하다.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하산을 한다.
굽은 해안도로를 따라 미조항까지 달려왔다. 남해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는 이미 자리가 없었다. 옛날식 죽방렴으로 잡은 싱싱한 멸치회를 맛보고 그런데도 배가 허전하다면 멸치쌈밥을 먹어야겠다. 재작년 봄이던가, 기장의 대변항에 갔을 때 맛본 멸치회와 오늘 남해 미조항에서 맛보는 멸치회를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우리나라의 4대 해수관음성지는 양양의 낙산사와 강화의 석모도보문사, 남해의 보리암 그리고 여수의 항일암을 꼽는다. 기도발이 잘 받는 성지로 소문이 자자한데 하나같이 풍광이 그만이다. 어딜 가도 숙연해지고 저절로 합장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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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롱개~어쩌고
....
거시기혀면 거시기혀서 남는거 없당게로~ㅎ
고문님 기억력 대단하시네요~
나는 거기가 고향이어도 들어도
잊어버리는데ㅎ
멋진사진 멋진후기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