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들으시면서 느긋하게
하노이로
어떻게 어느 순서로
왔는지 모른다.
무력감으로 그저
차 안에서 누워 잤다.
그런데
이게 웬 청량함!
--------
싱싱 여학생들
호치민 박물관(?)
지나는 길에
싱싱한 아오자이 차림의
여학생들을 만났다.
사진 좀 했더니 합창하듯 '굿!'
다들 예뻤으나
그 중에도 빼어난
이 학생이
스스로 같이 찍었으면 해서
(증말이다.ㅎㅎㅎ)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베트남 방문 인증사진으로
이 만 한 게 있시랴!
---
참 요상한 일이다.
계속 두통,
무력감으로 시달렸는데
잠시이긴 했지만
몸이 가벼워 지고 자신감이
생기다니?
헛물을 켜든, 진국을 마시든
여성을, 그것도 젊은이와 잠깐
교섭하는 것으로 이런 요상한 일이,,,
플라시보 효과의
음양원리 아닝게벼
-----
이어서 호안끼엠 호수
(Hồ Hoàn Kiếm, 還劍湖)다.
하노이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이란다.
호수에 대해서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베트남은 몽골의
수차례 침략과
중국의 간섭도 물리치며
자주국가로서
입지를 다져왔단다.
하지만 1408년 명나라에
의해 '호' 왕조가 멸망함으로써
베트남은
중국에 합병될 운명이 되었는데
그때 <레러이>라는 사람이
치열한 전투를
펼치면서 독립을 이루어낸단다.
'레' 왕조의 시조인 <레러이>가
명나라와 전투 중
호안끼엠 호수에서 큰 거북이가
칼을 물고 나타나서
<레러이>에게 바치고
그 검으로 명을 국경 밖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후에 거북이에게 그 검을
돌려주었다고 해서
환검, 還劍 즉 베트남어로
호안끼엠(Hồ Hoàn Kiếm)으로
정해졌다는.
호수 옆 광장에서
관광용 이동 수단 1-스트릿카
(street car? 관광객용 6~7인승
승합차)를 타자 ,
눈에 띤 아오자이 아줌씨들
싱싱한 여학생들을 봐서 그런지
아래 옆을 주우욱 가른 게
은근히 섹시하다.
소생만 그런 느낌인가?
호수 옆 하노이에서 젤 크고
외국인에게 필수의 관광 코스인
내 평생 처음 보는
왁짜, 시끌벅적 끝판의
시장에 스트릿카(street car?)를
타고 약 한 시간을 장똘뱅이
노름을 했다.
씨클로(Cyclo) -관광용 이동 수단 2
하노이 시내에는 관광객들이
타고 다니는 씨클로(Cyclo)들이
많았다. 씨클로는 2개의 좌석 바퀴와
운전석 바퀴 1개로 구성되어 있고
손님이 앉는 좌석은 비와 햇볕을
가릴 수 있게 차양막이 설치되어 있다.
오토바이,
도보의 관광객들
그리고
시클로와
스트릿카의 행렬,
그 뿐이냐!
차와 자전거
이들이 한데 뒤섞여
묘기 부리듯 요리조리 서로
잘도 피해간다.
몇 번을 부지불식 간 오른 발을
콱! 쿡! 누르며
브레이킹을 한다.
운전하는 이는 어깨를 좌우로 기우리며
가볍게 핸들을 돌린다.
시상에 이럴 수가 ,,,
무질서 속의 무슨 질서가
있는 건지. 원!
-----------
성요셉 성당
(복사가 허락되어 인터넷에서.)
아무래도 성당은 신부들과
미사 광경이 있어야
하노이의 랜드마크요, 필수적
인증사진 장소라는
성 요셉 성당.
1886년 건축된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불에 탄 노틀담 성당은
다시 복건 됐는지?)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건설한 최초의 건축물이란다.
현재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당이란다.
소생의 세례명이 요셉이요.
성이 성가이므로
나를 위한 성당ㅇ이다. 하고,,,ㅎㅎㅎ
실은 제백사허고 귀국해서 집에서
눕고 싶은 심정 그득하나.
여행 도중 돌아가본 적도 없거니와
그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성 요셉 성당 앞도 엉켜서 이동하기는
마찬가지.
소생이 보기에 야들 이상한 점:
1. 공공질서,특히 교통질서란 게
없시유!
차차 개선되어간다고는 하나
신호등 건널목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있으나 마나,
목슴걸고 길을 건너야..
빵! 빵~! 경적소리가 여기저기
서로 울려대어 귀가 편치 못한는 대다,
여기서 '사람이 먼저다.' 했다가는
-바로 차가 먼저 휙 지나가고
몸까지 고단한 소생은 바짝 쫄아
스트레스 급상승으로
많은 사람이 뭉쳐 지나갈 때 섞여 갔다.
나중에 들은 팁:
-절대 뛰지말고 기본 페이스 지키며
'나 치면 너들 다 죽여!' 라는 배짱으로
막가파 차들 보지말고 건널 것.
이러니 실은 교통사고가 많단다.
특히 오토바이
공안(경찰)의 단속도 헬멧
미착용에 집중
면허정지는 물론 벌금도
상당하다는는데.
과하게 비꼬자면
사고방지가 아니고
사고는 어쩔 수 없고
살아만 있어라!
그래야 벌금 쩐이 들어오닝게ㅎㅎ.
2. 눈에 띤 또 하나의
무질서 속 질서.
호텔을 빼고 일반 식당 특히
도로 변의 식당은
휴지(?) 및 휴지통이 없는듯
식당의자 주변은 버린 먹다버린
잔찌거기 또는 입,코 닦은
휴지로 쓰레기장 방불이다.
그런데 묘한 게
아무도 불쾌해 하기는 커녕
하하거리며 즐겁게 식사한다.
------------
깊은 감명을 받은 호치민 영묘와 주석궁
(사진은 인터넷에서)
우리들 인식 속에 월맹의 공산당
수괴로 각인된 인간 호치민!
현장에 가서 보니 을매나
잘못된 건가를 느꼈고,
귀국해서도 여그저그
책도 뒤져본 결과,
그는 레닌의 공산주의나
마오 쩌둥의 중국공산당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호치민에게는 오로지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최우선이였던 같다.
공산주의 이론을 업은 건
프랑스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였을
뿐이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그는 전 생애를 바쳐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거대한 막강 대국
프랑스(비엔디푸 전쟁)와
미국(베트남전)을 차례로 전생을 걸고
물리친 고금에 드문
철저한 순수 민족 지도자다.
(패망 시 사이공 미대사관의
피란 화면을 직접 본 젊은 그 때
'아~ 어찌 이럴 수가 미국과
민주 우방의 막강 군대가
일개 월맹과 베트콩 공산군에게
지다니???? 우~ 말도 안 돼하고 ,
팍스아메리카나의 정신적 받침대에
분개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닝게
정권을 잡고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이데올로그를 이용한 숱한 정치인들의
민족,독립 , 자유, 평화라는 언썰과는
그 결이 다르다.
(우리에게도 이런 지도자를,,, .)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생활은
줄곧 어려움 연속이였단다.
21살 때 넓은 세상을 배우려 홀홀 단신
프랑스의 증기선(船)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로 건너갔단다.
1914~1919년까지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하인,견습공 등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야와
민족주의적 가치관은
급속하게 성장하였다고 한다.
'엄동 설한의 초라함이 없다면,
따스한 봄날의 찬란함도 결코 없으리.
불운은 나를 단련시키고,
내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한다.'
-옥중서한 중-
호치민 호칭은 살아 생전이나
지금이나 서민적인
호 할아버지(Bác Hồ, 박 호)란다.
주석궁 앞 도로 미화윈들
(여자들만 배치?)
방부 처리된 시신이 안치된
호치민 영묘(Mausoleum).
특별한 날만 공개 입장이라서
들어가지 못했음.
살아 생전 검소했던 그는
호치민은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69년에 사망했는데 화려한
장례식으로 낭비하지 말고
화장하여 재를 3 등분하여
북부, 중부, 남부에 골고루
뿌려줄 것을 유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소원과 달리
자신들의 영웅을 위해 영묘
(Ho Chi Minh Mausoleum)를
지었다고.
기증받은 차들.
일상으로 이용한 건
비까번쩍 차가
아니라 오른 쪽 구석의
허름한 푸조차라고.
이름과 이용처를는모르겠고
내부는 간결 아담한데
금붕어가 있는 어항이 눈에 띄였다.
침실(평생 독신이였다니 싱글베드)
사무실
연못, 나무 꽃들로
에워쌓인 공간에 지어졌다
원래는 프랑스 식민정권의
총독부 건물이었단다.
감무량!
가난과 곤경에 굴하지 않은,
검박하고 온화한
호 할아버지!
당신이 좋아졌습니다.
여전히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은 고행 피크인 제자와
36년 만의 상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