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로 일한다는 것(35)
-가장 바쁜 어르신들의 식사 시간 전후-
모처럼 만난 신문사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나의 근황을 묻기에 요양원에서 일을 한다니까 무척 놀라워하며 대견해한다. 그런데 한 친구가 대뜸 한다는 말이 ‘그곳에서도 고기반찬이 나오느냐?’고 묻는다. 요양원을 얕잡아보거나 나를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했던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계속 쓰고 있는 까닭은 사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물음에는 쉬운 비유로 솔직하고 정곡을 찌르는 설명을 해야 한다.
나의 답변은 이러했다. “어르신 한분이 요양원에 입소(원)하면 한 달에 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료 수가로 180만 원 가량 나오고, 어르신의 등급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보호자가 약값‧식비 등 제반 경비를 포함해 50만~80만 원 가량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쉽게 말해서 한분을 요양원에 유치하면 한 달에 230만~250만 원이 요양원에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만일 이 어르신이 질병이나 골절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일주일인가 열흘인가 지나면 보험료 수가는 병원 측으로 넘어가게 된다. 때문에 부득이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막말로 해서 어르신의 목숨이 붙어있어야만 돈이 나온다. 그래서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재울 수밖에 없다” 이 정도 얘기를 해주면 머리 회전이 빠른 기자 출신들은 요양원의 분위기에 대해 대충 감을 잡는다. 여기에다 과거 우리들의 일터였던 프레스센터의 구내식당 음식, 나의 출입처였던 서울시청뿐 아니라 대기업 구내식당의 반찬 등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다고 설명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입에 거품을 물고 얘기를 시작하자 친구가 소주 한잔을 건네준다. 소주잔을 입에 틀어넣은 후 나의 얘기는 계속된다. “요즘의 요양원은 결코 자선기관이나 구호단체가 아니다. 이젠 요양원도 영리를 추구하는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돈벌이만 생각하는 호프집이나 갈빗집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떼돈을 벌겠다고 은행 빚을 내서 요양원을 차렸다가는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요양원의 운영 수익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요양원을 운영하신 분들은 대부분 목사(기독교), 신부(천주교), 스님(불교)들이었다. 이분들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 즉 입소 어르신들에 대한 깊은 사랑은 있었지만 요양원을 제대로 운영하지는 못했다. 경영에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요양원을 잘 운영하려면 ‘따뜻한 가슴’과 함께 ‘냉철한 머리’도 필요하다. 요양보호사 교재에는 요양원에 입소하는 어르신을 클라이언트(고객)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요양원 직원들은 매월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는 어르신 보호자들의 입장에서 최대한의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르신의 건강, 청결문제와 함께 요양원 측이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식사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주식뿐 아니라 각종 식자재는 하루에 한두 차례 대형마트에서 배달해준다. 야간과 주간 근무자들의 교대시간이 맞물리는 모닝케어가 끝나면 곧장 어르신들의 아침식사 준비에 들어간다. 물론 각종 반찬거리를 만들고 요리하는 등 식사준비는 주방 조리사가 담당하지만 요양보호사들도 덩달아 바빠지기 마련이다. 어르신들의 건강과 치아 상태에 따라 죽 드실 분과 밥 드실 분을 구분해야 하고, 의치이거나 치아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의 반찬은 잘게 썰거나 으깨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요양원에서는 거동이 아주 불편한 와상 환자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실에 나와서 함께 식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주방과 맞붙어있는 널찍한 거실에는 의자가 딸린 6인용 식탁 테이블이 두 개,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4인용 밥상, 휠체어에 앉은 채 식사하는 두 분, 그리고 혼자 식탁에 앉아 식사 하는 한분이 계신다.
아침 7시 조금 전에 주간 근무자들이 출근해서 각자 담당하고 있는 방을 둘러본 뒤 모닝케어를 끝낸 야근자들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주간 근무자들은 아침 식사준비로 바빠진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을 깨워서 식사를 할 수 있게끔 의치를 끼우고 옷을 입히랴 이불을 개랴, 부축해서 거실로 모시느라 분주해진다. 특히 남자 직원들은 각자 맡고 있는 와상 환자들을 휠체어에 태워 재빨리 이동해야 한다. 죽 먹는 분들의 식사가 끝난 뒤엔 본격적인 아침 식사준비에 들어간다. 식판을 주방 창구의 배식 대 위에 가지런히 죽 늘어놓고 반찬 3~4가지가 차례로 놓일 때마다 어르신들의 치아 또는 의치 상태에 따라 반찬을 다지기도 하고 가위로 자르기도 한다. 생선찌개나 닭고기가 나올 때엔 요양보호사들이 일회용 위생 장갑을 끼고 뼈를 낱낱이 발라낸다. 그런 다음에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을 차례차례 재빠른 손놀림으로 어르신들 앞에 놓는다. 어르신들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면 치매 정도에 따라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고 밥만 열심히 퍼먹는 분, 다른 반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밥과 김치만 계속 드시는 어르신, 또 어떤 분은 반찬만 먹기도 하고, 옆 사람의 식판에 담긴 음식을 집어들기도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식탁 위에 놓인 ‘뽑아 쓰는 휴지’를 빼내 상치 쌈처럼 싸서 입으로 가져가는 분도 있고, 물을 탄 간장 한 종지를 밥에 뿌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 밥에 섞인 검정콩을 쥐똥이라며 일일이 가려내는 할머니도 있다. 그래서 식사 때가 되면 직원들이 식탁 주위의 이곳저곳에 서서 이른바 ‘식사 지도’를 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의 분량을 조절하지 못해 애를 먹을 뿐 아니라 식후에 먹는 독한 약을 드릴 수 없는 까닭이다.
요양원마다 하루 일정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 요양원에서는 하루 일과 중 가장 분주한 식사 시간이 끝난 뒤엔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치아관리 때문이다. 자신의 침실에서 식사하는 완전 와상 어르신을 제외한, 거동하는 어르신들을 화장실로 모시고 가서 이빨을 닦아주거나 의치를 빼서 세정제로 소독해주고 나면 오전의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잠시 후 직원들의 아침식사 시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