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반항의 집안도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2-5
2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때 나는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
4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하여라.
5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제2독서<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12,7ㄴ-10
형제 여러분,
7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묵상
자기 삶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그 구분을 대부분 은퇴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시점을 기해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리처드 로어의 ‘위쪽으로 떨어지다’라는 책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전반부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일, 관계, 삶에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후반부를 맞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누군가는 정체성에 들어갈 내용을 담아가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바로 이 모습을 위쪽으로 떨어진다고 리처드 로어는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위쪽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반부 삶의 태도와 접근 방식이 그대로 지속되면서 어떤 변화도 없을 때 그렇게 됩니다. 여기에 신체적 노화까지 오면서 점차 아래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시점은 언제였을까요? 바로 공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나자렛에서의 삶을 마치고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예수님 삶의 후반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반부의 삶에 충실하면서 공생활을 준비하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의 삶을 살면서 완전한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줄 준비를 하셨던 것입니다.
굳이 이렇게 사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삶이 아닌 위쪽으로 떨어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당신이 먼저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모습만을 생각합니다. 놀라운 말씀과 많은 기적에도 예수님의 후반기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길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재를 사는 예수님이 아닌, 과거에 살았던 예수님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는 모습에서 믿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 믿음 없는 곳에서 하느님의 활동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만 연연하는 사람은 지금을 사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위쪽으로 떨어지는 변화도 없습니다. 세상에만 집착하고 세상의 눈으로만 바라보니 계속 아래쪽으로 떨어질 뿐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변화된 많은 성인 성녀를 바라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철저하게 변화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변화를 지향하고 있나요?
오늘의 명언 : 세상은 선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선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당신이 선한 사람이 되세요(성 마더 데레사).
사진설명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