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탕에서는 많이 안 보이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돈써서 응원하자"라는 식의 페미니즘도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같아.
1. "돈써서 응원하자"란 무엇인가? 정의
크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소비주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 모든 것을 자본으로 해석하고 소비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예를 들면 "알탕 영화인 오펜하이머를 소비하는 대신 페미영화인 바비를 소비하자" 라던지 "코르셋 조인 여돌을 소비하는 대신 탈코한 인디 여가수를 소비하자" 등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지.
이게 틀렸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게 결점이 없는 방식이 아니고 우리는 생각하고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나아가는 진취적인 여성이니까 이야기해보자 라는 취지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거야.
2. 첫번째 문제점: 투쟁의 소비화
투쟁은 절대로 쉬울 수가 없어. 피흘리고 뼈를 깎고 사회를 거스르는 것이 투쟁인데 쉬울 수가 없지. 그렇기 때문에 투쟁은 힘들 수 밖에 없어. (여기서 잠깐 우리 모두 토닥토닥 하자.)
그런데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는 정말 엄청난 게 자기를 비판하는 것들도 소비할 수 있는 개체로 만들어버려. 바비 영화로 예시를 다시 들어볼게. 바비에서 사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바비가 얼마나 소비를 부추기고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을 부추기는지 비판하는 여자로 등장했잖아.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는 사샤도 바비랜드에서 똑같이 화장하고 바비와 똑같이 옷입고 심지어 엄마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더 많은 바비를 만들게 해달라고 CEO에게 말하게 해.
관객에게 남은 것은 뭐냐면 "바비를 비판하는 바비"라는 또 다른 소비할 사치품이 생긴거야.
사샤가 말했던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 지나친 소비의 부추김, 그로 인한 여성의 우울 등이 얼마나 우리가 목소리 높여 소리질렀던 이슈들이야, 그런데 우리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소비했던 영화는 우리의 투쟁을 또다른 소비 가치품으로 전락시켰어. 이렇게 되면 우리의 투쟁들의 내제적 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우리의 메시지는 희석될 수 밖에 없어.
3. 두번째 문제점: 투쟁의 트렌드화
우리의 투쟁은 "핫한거"가 아니야. 우리의 투쟁은 생존을 위한 것이고 인류를 위한 것이야. 하지만 소비와 자본과 연결이 되면 금전적 보상을 위해서 많은 기업들이 갑자기 달려들겠지. 그리고 재미를 보고선 빠질거야. 그랬다가 타이밍을 재고선 다시 재미보려고 달려들고. 이런 식으로 우리의 끝없는 마라톤 같은 투쟁을 자기들 입맛대로 트렌드로 만들어내는거야.
예를 들면 "걸크러쉬"가 있겠지. 다들 기억하지 않아? 갑자기 우루루 걸그룹들이 정장입고 나왔던 시기? 그때 우리 다들 열광했잖아. 다들 탈코 했고 멋지다고 돈 썼잖아. 그래서 달라졌어? 아니. 그때 기업들만 돈 벌고 여돌들은 다시 헐벗고 여자들은 다시 굶고 언더붑이니뭐니 이러고 있어. 이랬다가 몇년 뒤에 다시 "멋진언니 컨셉으로 돌아온 ㅇㅇㅇ" 이러겠지. 그러면 우리는 또 돈을 던질거고 회사는 배불릴거고 여자들은 속을거야.
4. 세번째 문제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이건 자본주의랑도 긴밀히 연결되어있는 문제야.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와 노동력의 대가를 보상받는 자가 다르다는 점이야. 예를 들어 삼성직원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할까 이재용이 더 일 열심히 할까? 이재용도 일 열심히 하겠지 근데 이제용이 받는 돈 만큼 열심히 할까? 일론 머스크가 일 더 열심히 할까 트위터 직원들이 더 열심히 할까? 돈은 누가 더 받지?
여기에서 좀 더 확장을 해서 페미니즘을 "소비"하는 거랑 연결을 하자면 우리가 소비를 해서 과연 돈 버는 사람이 누구냐는거야. 우리가 탈코한 여돌을 소비해서 돈 버는 사람이 과연 그 탈코 스타일링에 힘쓴 스타일리스트일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버팅긴 남사장일까? 우리가 바비영화 삼차찍어서 누가 돈 버는 걸까? 거윅이랑 마고로비는 돈 다 받았는데? 영화사지. 영화사는 다 남자들이고.
5. 결론: 그래서 어쩌자고?
소비하자. 소비해야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배제하자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어.
하지만 눈 먼채로 소비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