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밥을 하면서
냄비밥을 해 먹어 본 사람은 안다
쌀을 물에 즐겁게 불리는 일부터
냄비에서 밥물이 끓는 절정의 찰나를
긴장 놓치지 않고 기다릴 때까지
이건 물과 불과 시간을 아는 일이며
이건 마음을 아는 일이라는 것을
센 불로 끓이고 중불로 익히고 약한 불로 뜸들이며
냄비 속의 물이 넘쳐 불을 다치지 않게
불 위의 냄비가 뜨거워져 쌀을 다치지 않게
쌀과 불과 물이 평화롭게 하나 되어
사람이 먹는 한 그릇의 더운밥이 되는 일이란
이건 세상만사와의 집중이며
이건 우주와의 화해다, 라고
그래서 원터치 전기밥솥의 디지털 밥을 먹는 사람은
이 고슬고슬한 아날로그 밥맛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냄비밥 뜸 들기를 기다리며 나는 행복해진다
(정일근·시인,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