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여곡절 가운데 태여난 작은 아들은
정말 인물이 어른들 표현 빌리자면 훤했다
오죽하면 동네 어른들이 작은아들 밖에 혼자 내놓지 말라고
누가 훔쳐간다고 할정도로 아이가 이쁘게 잘생겼었다
그때 한참 메스컴에서 애들 훔쳐가는 사건이 많았던지라
그시절 난 아들들도 연년생 키워야 했고
남편님 공장 뒷바라지도 해야했기에
늘 정신 없이 살았었다
내 학창시절엔 애들을 왕자같이 키워내는것이 내평생 바램였는데
공장 식구들 뒷바라지에 애들은 뒷전이고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현실였다
도와주는이 없이 혼자 모든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두녀석도 그냥 지들끼리 놀게 해야 하는날이 더 많았다
근데 이상한것은 큰녀석은 혼자 놀아도 조용하게 책을 본다거나
집에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면서 엄마 주변을 맴돌면서 노는반면
작은 녀석은 동네 저보다 어린 여자애들을 그렇게 끌고 다니면서 놀았다
고작 4-5살 먹은 녀석이 주변근방 작은 꼬무래기 들이 작은애 주변으로
늘 모여들곤 했다
그시절 난 너무 힘들고 또어릴때부터 내가 못배운 한 자녀들을 통해 이루기 위해
4살때부터 조기 교육을 시작했다
쉬운말로 하면 조기교육였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애들 돌봐줄 여유가 없기에
그때부터 두녀석을 돈으로 사립유치원으로 보냈다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
큰녀석은 한쪽에서 조용하게 놀고 있는데
작은 녀석은 유치원 전체를 휘저으면서 친구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학교입학하면서 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작은아들 생일이 1월 13일 옛날에는 7살 3월생까지 7살에 입학을 하게된 제도였었다
당연히 작은녀석도 7살에 학교를 입학하게된것
내 경우도 그옛날에 12월 5일생 (양력)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6살에 입학을 한셈였다
우리시대땐 9살 8살 심지여 10살에 입학한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은 공부역시 7살이나 보다 월등히 잘했던것
그렇기에 난 나이 7살에 입학하는것을 마땅히 꺼려했었는데
특별하게 아프거나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기에 그냥 7살에 입학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한글을 못깨우치고 들어간것이다
큰애는 4살에 한글을 줄줄 읽어 천재인줄 착각했을만큼
나를 기쁘게 해줬었는데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소리나는데로 읽는것이다
그옛날에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 담임 선생님 지도아래 나머지 공부를 시켰었다
어느날은 애가 시간이 되도록 학교에서 집에 안돌아오기에
학교 교실을 가봤더니 흰셔츠에 붉은 넥타이에 밤색 조끼에 흰색 면바지를 입혀보낸
잘생긴 귀동자 작은 아들이
나머지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 틈에 끼여
그들과 같이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지 않은가!!!~!
기가막힐 노릇였다
형아는 일학년부터 반장으로 반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는데
이건 4학년에 되도록 한글도 못깨우쳐 받아쓰기 하면 50점 아래였으니~~
그날 학교에서 그광경을 보고나서 난 당장 과외선생님을 붙였다
공주교대 2학년생
한달에 10만원을 주고 일주일에 5일 집으로 와서 한글과 산수를 가르쳐 주는것
그게 내 작은 아들이 대학교 들어가기 까지 과외의 첫번째 출발점였다
그렇게 공부를 정말 못하는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주변에 가까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학교에 가면서 작은 녀석 성적은 더 두드러지게 밑바닥을 돌았다
중학생이 가끔 엄마한테 생일이나 기념일때 편지를 한장 써주는것 보면
한글 받침이 틀리곤 했다
물론 학교 성적도 반에서 중간을 넘어서지를 못했다
그러면서 엄마한테는 늘 불만의 목소리를 높여갔다
"엄마는 맨날 엉아만 좋아하잖아!!!!"
하지만 내생각을 달랐다
엉아는 학원에서조차 장학금을 주는 탓에 돈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작은 녀석은 과목과목 모두가 부진했기에
학교에서 모두하는 방과후 자습을 교장샘한테 이야기해서 뺐다
그리고 학원 영수 학원은 기본으로 다니고
주말엔 영어 과외 수학과외
주중엔 국어를 6개월 과외로 성적을 올려놓고
그다음 또 이여 6개월 과학을 과외로 성적은 올려놓고
또 그다음 사회를 과외로 성적을 올려 놓는다
아침 4시면 일어나 검도장에 태워서 데리고 가야했다
공부를 못하는 만큼 먹는것을 엄청 먹었다
중 3학년생이 몸무게가 130키로
걸어가면 하마가 걷는것같이 살이 뒤룩뒤룩~~~
운동으로 살을 먼저 빼야 하는것이 우선인듯하지만
또 성적이 너무 떨어지면 따라잡을수가 없기에
두가지를 모두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된것~~
어떤것이 먼저랄것도 없이 모두 중요했다
우선 살이 찌면 공부시간에 몸을 지탱할수 없을만큼 힘들어
잠을 잘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이해가 안되면 뭐하겠는가?
잠자는 수밖에 없지
하지만 내겐 신념이 있었다
자식은 부모가 믿어준 만큼 자라준다는 사실을~~~
그러기에 끊임없이 작은녀석과 함께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작은녀석 학교 교문앞으로 마중을 나갔다
매일 매일~~~
그리고 집에오면 저녁을 먹여 학원으로 보냈고
학원에서 돌아오면 저녁과외를 또 시작했다
그리고 만약에 숙제를 못하면 작은 녀석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도서관에서 작은 녀석은 공부 숙제를 하고 난 내차에서 작은 녀석이
끝나고 나올동안 기다렸다
집에와 애들방에 같이 들어가 영어 단어 외우는것 도와주고
아랫층 내잠자리로 돌아오면 새벽 1시쯤
그러면 다시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검도장에 작은 녀석을 데려다 놓고
난 얼른 집에와서 아침 준비하고 다시 작은 녀석을 데리러 검도장을 간다
아침먹여 학교 보내고 나면 다시 점심 도시락을 싸 작은 녀석 학교로 간다
찬밤 도시락 먹이는것이 싫었기에~~~
그렇게 온정신을 작은 녀석에게 쏱았다
한달에 과외비 학원비가 그녀석에게만 30년전 150만원-200만원 들었다
어쩌겠는가?
머리 안좋게 낳은 엄마인 내 탓이지~~
3탄에서~~
첫댓글 와...40녀전 일을..옷까지 기억하고 쓰다니..ㅎ똑순이 엄마 극성엄마..ceo만든 라 애썻네
대단하십니다
엄 청 나 요
k 엄마교육의힘이죠???
난
그냥
놀게두었는데요 ㅎ
난 나쁜엄마
계모라해써요
대학도가지마라 했으니 ㅎ
지힘으로 대학졸업하고
학자금 대출받아서
직장다니며
대출갚고
늦게
사십거의다되서
시집갔거든요
대단합니다 정말
교육열이 엄청났네요
돈을 많이 들여서 키운 아들이였군요'''
후탄은=미국에서 성공한 둘째 아들이라는 말이겠군요?
대단하시네요
후편 기다립니다.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셨네요
잘 따라준 아드님도 대단합니다
나도 한 때는 애들 성적에 극성을 부렸었는데....
지금은 왜 그랬나 싶어요.
손자들은 몸도...마음도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지만
어미 아비가 알아서 할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