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권사님
< 제1권사회 권사입니다>라는 제목을 보니 불현듯 25년전 기억이 떠올라 몇자 올립니다
1980년대 후반 사랑의교회 대학부와 소망교회 대학부 젊은이 약800명이 모여 경기도 모교회 수양관에서
수련회를 하였지요 당시 흔치 않은 일로...교단도 다르고...
수련회 기간 초기 소망교회 권사집.집사님들께서 간식을 준비하여 격려차 방문하였습니다
일시에 소화할 800인분을 준비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 제 기억으론 트럭이 왔었던 것으로......)
며칠후 우리(?) 권사님과 집사집들께서도 간식을 준비하여 방문하셨지요
그때 왠지 묘한 기분이.......
마치 소풍간 유치원 꼬마가 " 봐라.. 우리 엄마도 왔다.... " 는듯이 다 큰 대학생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조금은 유치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당시 사랑의교회 대학부는 가족과 정든교회를 뒤로 하고 낮선서울. 낮선교회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많았
습니다. 서울에서도 가족과 타교회를 섬기다 대학부를 찾은 학생. 제자훈련을 위해 대학부를 찾은 학생과
지방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무척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지요
그래서 옥한흠 목사님의 세심한 관심으로 드러나지 않게 교회에서 장학금도 지급 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자존심 강한 시기에 마음에 작은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조심스럽게...
목사님께서도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하셔서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 통영에서 똥지게를 지고 걸어가는 소년" " 병마의 그림자와 함께 보내온 세월"
이라고 자신의 지난시절을 회상했듯 옥목사님께서는 어려운 여건에 있는 이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손길이 크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장애아들의 공동체인 사랑부.복지관 (그 관심은 각별했지요)...
병마와 싸우는 교우들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
어려운 형편의 작은교회 목회자.선교사들
군복무 중인 젊은이들
낯선 해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
궁핍한 교우들
서초동 일대 유흥업소 종사자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혹시 목사님께서 초청자의 항공권 제공...등 선택의 여지가 없어 1등석을 타게
되셨다면.... 가는 내내 양심의 가시가 마음을 찔러 무척 힘들어 하시지 않았을까.....
중간에 내려 달라고 할수도 없고....
당시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이기에 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혹시 내가 가진 외형적 조건들로 주위사람들이 작은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 조심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옥목사님과 모피코트 집사집 의 작은 사례처럼...... 그 집사님께서 얼마나 무안해 하셨을지...
또 주위 집사님들은 얼마나 다행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지...
(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쌀쌀해져서... 나도 다음주쯤은.....)
않보아도 잘 알것 같습니다. 우리도 목사님께 제법(?) 야단을 맞았으니까요
본당1층 화장실의 세면대 주위와 바닥에 널부러진 물 묻은 휴지조각들을 손수 주우시던 목사님께서
화장실을 막 들어가려는..... 그 죄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들을 보시고 ....
특유의 목소리로 " 너-희들.... 이리 와 봐라..이리.... 이게 뭐니..이게...쯧쯨....그저...자기집 아니라고...(잠시침묵) (긴장.초조)... 그리고...휴지는 한장이면 되는데...쯧쯧.... 눈이 있으면 봐라.. 봐...
교회를 한번 둘러 보시는 목사님의 코스중 한곳인 1층화장실에서 목사님을 보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사랑의교회 죄많은 성도들의 대표가 되어 목사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후 몇 차례 화장실에서 어엿한 성도대표로써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한결 담담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께서는 나의 흠없고 죄없음을 아시면서도 그리하셨기에.......)
오늘 따라 " 너-희들 이리 와 봐라"...고 하시는 목소리가 왠지 더욱 그립습니다
권사님
" 봐라.. 우리엄마도 왔다... 고 유치원 꼬마같은 마음을 가졌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 25년전과
같은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니 그때의 마음이 유치함보다는 애뜻함으로 기억됨은그 안에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유치함만 있었다면 기억에서 그리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그 마음으로 사랑의교회의
뿌리를 내리신 은퇴장로님들.권사님들을 생각하면 섭섭함.아쉬움 보다는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이 앞섭니다
기억을 더듬어 은퇴장로님들에 대한 단상으로 인사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1980년대 후반 대통령선거 당시 사랑의교회 청년부.대학부 젊은이들이 교회주변도로에서 공명선거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고 흔한 캠페인이지만 당시에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현장에서 서초경찰서로 연행되었으며 죄목은 도로교통법 위반이었습니다. 당시 옥목사님께서 서초경찰서
경목으로 계셨지요. 담임하는 교회의 성도들과 예배를 인도하는 또 다른 성도들 사이에서 곤욕스러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범법자 양들과 경찰관 양들 사이에서....
조사후 법이 정한"훈방" 이라는 응분의 댓가를 치루고 교회로 돌아왔고 일부는 또 다른 준엄한(?) 댓가를 생각하기도 했으나 목사님과 은퇴장로님들(당시 사역장로)은 별 말씀 없이 젊은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던 것으로기억이 됩니다 (어쩌면 어른들께서 속으로" 그래 젊은이들이라면 그래야지..그럴 수 있어..." 라고 느꼈다면 제 착각일까요...)
- 조용한 목소리. 큰소리 안내기. 공중기도 짦게 하기.주일학교학생 존중 해주기. 잘 웃기.
목에 힘빼기(몇분은 좀....) 담임목사와 안싸우기. 말 많이 하지 않기. 훈계하지 않기
정치적 중립 지키기. 구제할때 요란하게 하지 않기.직업 자랑하지 않기... 등등
제 눈에 비친 장로님들의 비교적 공통된 기억 몇가지 입니다
80년대 후반 강남일대 큰 홍수로 교회주변 배수로가 범람하여 본당지하에 물이 들이치지 않으까..정문과
현관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노심초사 마당에서 새벽까지 교회를 지키시던 은퇴장로님들....
묻고 싶습니다....
" 어제는 마당에서 들이치는 세찬물결을 막아 교회를 지키시더니...
오늘은 또 무엇을 막아 교회를 지키시려 추운 마당에 그리 서 계십니까.....
혹 아시는 분이 계시면 답해주십시요....
" 그 마당에서 기도하시는 은퇴장로님.권사님들의 참람한 심경을 어찌 헤아려야 할지...
그 횡한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제 소견으론 영...
권사님...
몸이 편찮으시다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몸과 마음에 평강 주시길 소망합니다
- 25년전 권사님들의 애뜻한 마음을 기억하는 그때의 젊은이가 -
첫댓글 무척이나 슬픈 글입니다.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최소한 한가지 이상씩 갖고 계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부럽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였군요 ....(타교회성도임) 그런데 현실을 보면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그 아름답던 사랑의 교회의 이름을 다시금 되찾게 해 달라고요..... 제가 한국가면 그런 아름다운 교회에 다니고 싶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회사 사무실인데... 읽다가 울었습니다... 주여!
제1권사회 권사입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런 아름답고 따뜻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옥한흠 목사님을 알고, 그 분의 말씀과 따뜻한 사랑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이었고 기적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눈에 선합니다 10수년전 토요일 주일 학교일로 여러가지일이 있어 4살 아들데리고 교회 마당을 지나치다 옥목사님 을 만났지요 목사님선한 미소로 다가와 저의 아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이마에 뽀뽀해주고 가셨습니다. 아무말씀은 안하셨지만 너무 인자한 모습에 감동받은적이 몇번이나 되었습니다. 늘 한결같이 ... 목사님을 추억하는 글을 보면 저도 그분이 느끼셨을 감동에 너무 슬프고 감격이 됩니다 이 아들이 옥목사님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전 그런 목사님을 닮은 사람이 되라고 늘 말합니다. 너가 꿈꾸는 목회자의 모델은 옥 목사님이다... 오목사님이 아니다.
눈물이 나네요. 정말....
지하철에서 울고있음 ㅠㅠ
글쓴이 입니다
슬프셨다니 조금 당혹스럽고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제1권사회 권사님입니다>을 읽고 불현듯 옛 기억이 떠올라 권사님께 보내는 인사의 편지 답글이었는데
카페운영자께서 본글로 올리길 조언하셔서 ......
두서없이 편안하게 보낸 편지글 인데...... 그 속에 슬픔이 숨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겨자씨만한믿음 님'이 찾아낸 슬픔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평강하십시요...
아빠가 컴퓨터앞에 앉아 눈이 새빨개져서 콧물을 훌쩍이고 있으면 이제 제 중학생 아들은 다 압니다. 사랑의 교회 때문에 아빠 또 울고 있다는 걸.. 옥목사님만 생각하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옥목사님과 아름다운 추억이 많으셔서일겁니다.
개인적으로 옥목사님을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저도 옥목사님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납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시는 모습,
사회적으로 강한자보다는 약자를 더 많이 섬기셨던 모습,
전심을 다하며 설교하시는 모습,
설교 후 하시는 짧은 기도에서 느껴지는 진솔함들...
여러번 교회 마당에서 또는 수양관 복도에서 뵈었던 소박하지만 우아하셨던 모습들...
옥목사님이 너무 그립습니다....
자랑스러웠던 사랑의 교회가 이렇게 될 줄 정말 상상할 수 없었기에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모든 걸 다 아시는 하나님만의 놀라운 계획이 있으시리라 믿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옥한흠 목사님과 함께 이 찬양을 올려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사단이 우리를 낙담케하며 조롱할지라도
복음은 우리를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요 무기라는 것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세상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보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 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보리라 그날에 주의 영광 가득한 세상..."
네 기억납니다. 얼마나 충만한 임재 가운데 이 찬송을 불렀는지..
옥목사님이 비행기 타고가실때 그 가득한 태평양 바다물의 끝없음을 보시고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세상에 넘치게 될 것이라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설교 하셨을때 그 영광을 눈에 보는듯 하였던 기억이 .
주님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사람들로 이 온 땅이 넘치게 하소서
본당2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아이를 안고 마당옆 계단으로 내려가면 설교를 마치고 계단으로 올라오시는 옥목사님을 만납니다. 목사님은 제게 안긴 둘째아이머리도 쓰다듬어주시고 뽀뽀도해주셨지요. 그때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께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실때 기도를 해주셨는지 그 둘째 아이는 과외나 학원을 안 다녀도 제법 공부좀하네요. 옥목사님때 다락방을 하던 우리들은 선생님들께 촌지 안주기, 아이들 불필요한 사교육안시키기, 출장비 남으면 회사에 돌려주기,세제샴푸 남용하지말아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환경지키기등 실제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애쓰며 살고자했습니다. 기다려지던 다락방,주일예배였습니다
저와 같았군요^^ 그래요 옥목사님은 항상 거만한 모습이 아니라 인자하시고 자상하셨어요 주일학교도 불쑥 찾아오시고 교회 구석구석 보시고 모니터 위치도 체크하셔서 잘볼 수있도록 지시해주시고 참 세심하게 돌봐 주셨죠 다 열거가 안되네요 저희 아이들도 학교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잘 크고 있습니다 ..옥목사님 같은 분 어디 안계실까요?
당시 학생이었던 저도 샴푸 안쓰고 식촛물 쓰기를 했었죠 그 후 다시 린스를 쓰면서도 그 말씀을 기억합니다 ㅅ.ㅅ
정말 슬프네요...
예전에 옥목사님은 저희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목사님은 한 기업의 회장 같은 존재인 거 같아요..
오석사부임한뒤로 툭하면ㅇㅇ캠페인에 그럴때마다 컬러광고지며 부속물들…제자반을 하면서 설교요약 적용란에 도대체 내가 요즘 교회를 다니는건지 섬성그룹을 다니는건지…하고 썼던기억이나네요.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읽는데 밥이 넘어 가질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글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교회의 사랑을 경험한 저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 이 힘들 시간을 깨어있는 자로 교회를 세우는자로 자신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물이 너무 납니다.
그런 교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게 복입니다..아름다운 기억을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보고싶고 그리운 옥목사님이십니다. 그 가르침을 기억하며 분별력을 갖고 현실을 직시하는 교우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옥목사님 너무 보고싶고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