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779m
오봉산은 경수산, 혹은 청평산이라고 불리다 근래에 와서 소양호에서 보면 다섯 개의 봉우리(나한봉, 관음봉, 문수봉, 보현봉, 비로봉)가 연이어 있어 오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각 봉우리의 표지석이 없고 능선에서 보면 7-8개의 봉우리가 있어 1봉에서 5봉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ㅡ청평사가 있는 곳이 청평산(淸平山)인 것은 여러 자료에서 나타난다. 그 유래도 명확하다.
'본래 이산은 경운산(慶雲山)이었다. 고려시대 청평거사 이자현(李資玄)이 이 산에 은거할 때 ‘도적과 사나운 짐승들이 자취를 감추었었다.’고 하여 ‘맑게 평정되었다.’는 의미에서 청평산(淸平山)으로 바꾸었다.ㅡ
1970년대 산행하는 사람들이 ‘봉우리가 다섯’이라서 오봉산(五峰山)으로 불렀다. 현재 청평사와 청평리가 과거의 지명을 짐작하게 한다.
배후령에서 주능선에 올라 완만한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제1봉인 나한봉에서 관음봉, 문수봉, 보현봉, 비로봉으로 이어진다. 3봉(문수봉)과 4봉(보현봉) 칼등 같은 암릉에 쇠줄을 잡고 오르내리는데 절벽 같은 낭떠러지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배후령에서 1봉까지는 능선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참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고 정상에서 청평사로 하산하는 능선은 암릉이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다.
배후령. 춘천과 양구를 잇는 옛길.
1973년 소양강댐 건설로 인해 이 지역이 수몰되면서 산허리를 깎아 만들어진 배후령 길이 국도가 됐다.
해발 600m의 배후령(背後嶺)은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에서 북쪽의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로 넘어가는 고개명으로, [강원도 땅이름]에 의하면 “춘천에서 오봉산을 넘어 화천으로 가는 해발 600m의 고개로서 지금은 화천, 양구로 향하는 46번 국도가 개설돼 있다”고 전한다.
너른 정상에서 조망하는 춘천의 모습이 아름답다. 국도 제46호선이 통과했으나 자동차 사상사고가 잦아 2012년 길이 약 5.1km의 배후령 터널을 개통했다.
‘38선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이 기념비에는 “이 땅을 밟는 길손과 후세 청년들에게 외세로 인하여 분단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길이 전하고자 이곳 배후령 정상에 비(碑)를 세우다”는 글이 적혀 있다. 이 일대가 6·25 당시 최대 격전지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흔적이다. '피의능선' '단장의 능선'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더불어 38선 이북지역이던 일대가 북한 치하에 들어갔다가 6·25 전쟁의 휴전으로 수복되어, 1954년 11월 17일 수복 지구 임시 조치법에 따라 행정권이수복되었다.
통한의 삼팔선(三八線)이 그어진 곳.
삼팔선은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소(美蘇) 점령군이 한반도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북위 38°선에 그은 군사분할선(軍事分割線)이다.
그러니까 용화산과 오봉산은 삼팔선 이북지방으로 한국전쟁 전에는 모두 북한땅이었던 셈.
배후령에서 오봉산으로의 들머리.
배후령에서 오봉산까지 표고차는 약200m 정도여서 큰 어려움은 없을 터지만 다만 느슨해진 마음과 날망의 디딤 낙폭이 커짐에 따라 다시금 베낭의 벨트를 풀었다가 조여 메본다.
오봉산의 품은 어떠할까. 미지를 탐험하듯 기대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지금 내가 선 곳은 산. 산을 터전으로 사는 생명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산을 오르는 일은 참 다행한 일이다. 나를 정화 시키고 위로를 받는다.
잡풀이 없는 오름의 등로에는 갓 떨어진 참나무 잎이 있다. 곧 낙옆으로 가득 해질 것이다. 지나간 시간의 모든 햇빛이 여기에 쌓인다.
삶과 죽음을 가쁜히 넘어 선 빛이다.
그 빛을 밟고 가는 나는 숨이 차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숲 사이로 오르는 사이 곧 하늘이 열릴 것이란 예감이 든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끝이 차가운 바람이 후욱후욱 서늘하게 맺히는 것을 느낀다. 바람이 가볍고 자유롭다.
1봉 갈림길에서 직선으로 올랐다. 경운산까지 0.4km 정도로 갔다 올 수도 있겠다.
꼬불꼬불 휘어지는 저 산길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서면 산행 들머리인 배후령이 나온다. 용화산릉이 조망된다.
1봉. 포지석은 없지만 '나한봉' 이다.
휴식타임~^^
맛있는 간식들이 규목님의 베낭에서 자꾸 나온다. 햇밤을 쩌오셨고 싱그러운 빛깔의 홍사과가 나온다. 난 시나브로님의 카스 ㅎㅎ
정우님에게서 시그널을 받아들고 열심히 뛰어오신 종주님. 고생하셨습니당
오봉산에는 나무 뿌리들이 많이 들어나 있다.특히 거친 암릉에 얼키 설키 속살을 다 들어내고 뻗어 있는 나무 뿌리들은 산객의 무수한 무지막지한 발 디딤을 견뎌 내고 있다. 언제 까지 버틸 수 있을까. 밟히면 더욱 단단해 지는 질경이와 같을까.
거친 암릉 사이로 틈틈이 모습을 보여 주는 소양호
파라호와 소양호, 그리고 춘천호을 끼고 있어 춘천이 호반의 도시임을 입증한다.
진행 방향에 3봉인 문수봉이 조망된다.
청명한 하늘의 구름과 어우러져 남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구름
작사:정근 작곡: 이수인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외양간 송아지 음메음메 울 적에
어머니 얼굴을 그리며 간다
고향을 그리면서 구름은 간다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뒷뜰에 봉숭아 곱게 곱게 필 적에
어린 제 놀던 곳 찾으러 간다
고향을 그리면서 구름은 간다.
2봉.관음봉일것 같다.
요런 쪽다리도 지난다.
3봉 오름길에 곧 만나게 될 청솔바위의 뒤. 소나무보다는 바위의 웅장함이 들어나 보인다.
3봉으로 오르는 암릉.
청솔바위.
노송하나가 구김살 없이 가지를 창공에 활짝 펴고 있다.
전망이 툭 튄 곳이라서 북쪽으로 화천의 오음리 분지와 그 넘어 사명산(1197m)이 보였다. 소양강과 파로호 사이에 솟아있는 산이라서 양대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인제군, 양구군 등 4개의 군이 보인다 해서 四明山(사명산)이라 했다는 산이다.
까만 오석으로 된 진혼비가 있다. 이곳을 오르다가 추락사한 신동섭씨를 기리는 진혼비(鎭魂碑)였다.
“사랑하는 산을 통하여/ 극복 의지를 키우다/ 여기 산화하니 진혼하노라/ 1989. 9.3”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지인에 의하여 세워졌으리라. 과거 이 산이 얼마나 험준했는지 짐작해 보며 새삼 딛고 서는 발과 루프를 잡는 손이 신중해진다.
3봉. 문수봉에서 바라본 조망
북쪽인 화천이나 춘천지역의 들녁엔 벌써 황금색 물이 들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곡식은 빠르게 익어갈 계절이다. 2주 후가 추석이니 모두가 풍성한 한가위가 되기를 기원도 해본다.
4봉 오르는 암봉길.
이런 가파른 길을 오를때 마다 오른 만큼 훌륭한 부상이 주어진다. 조망만을 강조하는 것은 본말 전도다. 오봉산은 홀로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산이고 주변의 시원스런 호수와 분지의 평화스러움을 조망하는 것은 덤이다.
4봉.보현봉에서 본 간동면 방향. 아마도 우측 죽엽산(859m)-사명산(1197m)일 것이다.
아름다운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과연 육산과 골산의 매력을 모두 갖춘 강원도의 명산이다.
조망되는 소양호.
소양호는 모두 20여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북쪽에 우뚝 솟아 호수의 구심점 역활을 하고 있는 곳이 오봉산이다.
오봉산과 소양호 일대가 6·25전쟁 ‘3대 대첩’으로 꼽히는 춘천지구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춘천지구전투는 북한의 기습 도발에 무기력하게 후퇴만 거듭하던 국군이 거둔 사실상 첫 승리였다고 한다. 당시 국군 6사단은 군의관까지 동원해 북한군의 자주포와 전차를 무력화시켰고, 공무원과 민간인까지 합세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고 한다. 6·25 발발 닷새간 계속된 춘천과 강원 홍천 일대의 전투는 붕괴 직전이었던 국군이 주력 부대를 추스를 시간을 버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인천상륙작전, 낙동강전투와 함께 춘천지구전투가 6·25전쟁 3대 대첩으로 꼽히게 된 이유란다.
포성이 멈춘 후 춘천지구에는 국내 최대의 다목적댐이 만들어지면서 계곡마다 서린 전쟁의 상흔 일부를 수장시켰다. 대신 소양호와 일대 산악지역은 국민관광지로 거듭났다. 소양강댐은 1967년 4월 15일부터 춘천 신북읍과 동면의 소양강을 흙과 돌로 쌓는 7년간의 대역사 끝에 길이 530m, 높이 123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다목적댐으로 탄생했다. 소양강댐으로 저수량이 29억t에 달하는 인공 호수인 소양호가 만들어진것이다.
산행전 읽은 선행하신 분의 글에서 파라호에 전쟁 당시 호수 물빛이 피로 인하여 붉게 물들어 었다고 표현 되어 있었고, 오봉산 등로 암릉 구간에 총탄 구멍이 무수히 나 있는 바위도 있다고 하였다.
5봉. 비로봉.
오봉산 779m. 정상이다.
주변 경관과는 대조적으로 조망없는 다소 밋밋 하다.
와~~♡
조망없는 정상을 벗어나자 만나게 된 빼어난 이 산의 면모를 여과없이 들어 내어 준다.
시퍼렇게 가지마다 눈달고 호수 굽어보고 있는 솔.
소나무와 소양호의 콜라보. 엄지 척!
유유자적 풍광을 담아보며 찬사를 이 모든 자연에게 보낸다. 만약 안개가 자욱한 날 이 산을 오른다면
하늘과 맞닿은 암벽 위에 홀연히 솟은 소나무와 함께 하게 될 것인즉, 그때는 누구라도 신선의 경지를 부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걸어온 오봉산을 돌아본다.
소양호를 조망하며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설 마지막 봉우리 688봉도 조망해 본다.
구멍바위(일명 해산굴. 홈통바위)
좁은 홈통 사이로 비집고 내려서는 길. 베낭이 크면 빠져가가기 어려울 듯 싶다.
종주님 무사히 통과.
짜릿한 기분을 느끼며 통과 하신 규목님.
소요대.
헝클어진 소나무가 눈길을 끄는 너머의 작은 터에서 얌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청평사와 소양호가 내려다 보였다. 산기슭의 머리부가 잘려져 대가 된 것이라니 당연히 이 곳 소요대 아래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어서 발을 조심했다.
소요대는 꽃잎이 흩날리던 계절, 도량을 떠나 계절과 취흥에 빠진 스님의 여유가 돋보이는 자리기도 하다.
소요유적
-보우스님-
봄이 깊어 꽃이 땅에 무늬를 놓을 때
소요대를 찾으니 산허리 쪽으로 비틀어졌네
하늘리 푸르러 뜬 구름은 걷히고
산이 개어 묵은 안개가 사라지네
구천은 멀리 낮은 곳에 있고
삼신산은 아득하여 부르기 어렵네
한번 삭막한 참선의 적막함을 달래니
유유히 흥이나 저절로 푸요로워지네
수향님과 초록바다님이 아주 맛난 간식으로 망고를 얼려온 것을 주셨다. 규모님의 햇사과 시나브로님의 맥주. 내 공을 들여 올라오지 않는다면 결코 풍광이 장관인 곳에서 내 몸이 절실이 느끼는 이 달달한 맛을 느끼지 못하리라.
이온음료 흡입하시던 종주님.
천단.
내리막길에서 정면으로 큰 봉우리 하나가 길을 가로막았다. 천단이라는 이정표를 볼 수 있었다
천단은 능선으로 올라 사위를 조망하면서부터 계속 눈에 들어왔던 곳이다. 병풍처럼 소양호를 감싸고 있는 능선들 한 가운데 비쭉 돌출된 봉우리였다. 유독 이 봉우리만이 색이 검고 기상이 높았다. 날개를 펼친 학의 머리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 봉우리 뒤로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능선들이 곡장처럼 보인 이유를 봉우리 밑에서 찾아냈다. 천단이라니,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곳이었다니,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신비한 기운이 느껴진다.
촛대바위.
땅을 내려다 보고, 하늘을 올려보며 공손히 두손을 합장하여 성심으로 머리를 조아려 가족의 안녕을 소원해 본다.
소양호를 배경으로 선 아름다운 부부.
대부분 부부 간에 공통된 취미가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부부관계의 유지는 사랑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더욱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힘겨운 물
ㅡ김유선ㅡ
부부가 산길을 오른다
부부는 위를 향해 힘겹게 오른다
나뭇잎은 물 따라 술렁술렁 내려간다
고비를 넘어왔다고 나뭇잎은 가벼운 걸음이다
우리가 이미 걸어온 저 아래로 가는 걸 보면
우듬지 산 아래
우리가 출발했던 그 지점이다
왜 우리는 지금 돌아서서 출발점
그곳으로 돌아 내려가지 못하는가
숨차게 오르다 보면
나뭇잎이 바위틈에서 쉬고 있다
가만히 보니 계곡물에 온 산이 쉬고 있다
쉬는 것 쉬게 하고
물은 여전히 아래로 술렁술렁 잘도 가는데
부부는 저 아래 무거운 집을 끌고
가파른 산을 오른다
다시 내려갈 높이를 오른다.
-시집, 은유의 물-
청펑사로 하산하는 갈림길이다. 완경사. 급경사. 잠시 길을 선택하기 위해 8인은 멈춰 선다. 급경사이나 조망 좋은 능선길을 선택하기로 합의한다. "능선을 타야죠" ㅋㅋ 한 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마지막 봉우리 688봉.
소나무와 바위는 천생연분이다. 그 사이로 청평사의 경내가 내려다 보인다.
세상에 소나무 보다 소박한 나무는 없을 것이다.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투명한 물방울 만으로 지족할 줄 알기에 소나무는 사철 푸를 수 있는 것이다.
수직의 벼랑과 한 몸을 이룬 소나무가 걸린다. 서있는 소나무이나 누운 격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경사각에 우리 또한 서서 로프를 잡으나 바위와 나란히 눕듯이 한발한발 내려간다.
급경사가 연이어 이어진다. 그야말로 직벽 급경사이다. 짜릿한 스릴이 온 몸을 훝는다. 겨울엔 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은 무척 위험해 보인다.
내려오는 일에 집중하여 미쳐 사진을 다 못찍은 점이 무척 아쉽다.
청평사에 도착.
1,000년이 넘은 고찰 청평사(강원기념물 55),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아홉가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는 구송폭포(九松瀑布), 중국 원(元) 순제의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이 얽힌 삼층석탑(공주탑:강원문화재자료 8), 공주굴, 공주탕, 연못의 시조라는 영지(남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청평사엔 유서 깊은 문화재가 많았다. 그렇지만 국보로 지정됐던 극락전 등 대부분의 문화유산이 한국전쟁 때 소실됐고, 지금은 보물 제164호로 지정돼 있는 회전문만이 절집의 오랜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 중기에 세워진 회전문은 원래 천왕문의 기능을 담당했던 중문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이 아니고, 중생들에게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다. 회전문 앞쪽에서 일주문 역할을 하며 곧게 뻗은 두그루의 잣나무 사이로는 회전문과 오봉산 암봉이 잘 그려진 풍경화로 다가온다.
기온차가 심해지니 순식간에 단풍들겠다. 나는 또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무욕하다. 나는 이제 강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처럼 하산 후의 초연함이 가슴을 훝어 내리고 있다.
햄펀으로 사진을 올리는 관계로 한계가 있어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함께 하신 브이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화천의 영산 용화산& 청평사를 품은 오봉산 연계 산행 (2) 끝
능선.
첫댓글 능선대장님 참 대단하십니다 ㅡ
사진 찍으면서, 사진에 스토리 다 달고. ..
존경스럽습니다 ㅡ
아구..쥐구멍 찾겠되네요. 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종주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관심이 있어서 조금 더 찾아 봤을 뿐이어요. 지루했을 텐데 읽어줘서 고마워요
오봉산의 봉우리 이름들이 예쁘군요. 미리 알고 갔으면 나에게 더 좋았겠네요.
구름이라는 시, 아주 하늘과 잘 어울리네요.
구름이란 노래는 초등학교 책에 실린 노래랍니다. 백송님의 서정성과 잘 맛지여^^
어느 곳을 가든 그 유래를 알고 가면 그 장소가 더 특별해 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