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광성(狂性)의 정체를 밝히다
❙ 원문
即時, 阿難在大衆中, 頂禮佛足起立白佛: 「世尊. 現說殺盜婬業, 三緣斷故三因不生, 心中達多狂性自歇. 歇即菩提, 不從人得. 斯則因緣皎然明白, 云何如來頓棄因緣? 我從因緣心得開悟. 世尊此義何獨我等年少有學聲聞, 今此會中大目犍連及舍利弗 須菩提等, 從老梵志聞佛因緣, 發心開悟得成無漏. 今說菩提不從因緣, 則王舍城拘舍梨等所說自然成第一義. 唯垂大悲, 開發迷悶.」
佛告阿難: 「即如城中演若達多, 狂性因緣若得滅除, 則不狂性自然而出, 因緣自然理窮於是. 阿難. 演若達多頭本自然, 本自其然無然非自, 何因緣故怖頭狂走? 若自然頭因緣故狂, 何不自然因緣故失? 本頭不失狂怖妄出, 曾無變易何藉因緣? 本狂自然, 本有狂怖, 未狂之際狂何所潛? 不狂自然, 頭本無妄, 何為狂走? 若悟本頭, 識知狂走, 因緣自然俱為戲論. 是故我言三緣斷故即菩提心. 菩提心生生滅心滅, 此但生滅. 滅生俱盡無功用道, 若有自然, 如是則明自然心生, 生滅心滅, 此亦生滅. 無生滅者名為自然, 猶如世間諸相雜和成一體者, 名和合性, 非和合者稱本然性. 本然非然, 和合非合, 合然俱離, 離合俱非, 此句方名無戲論法. 菩提涅槃尚在遙遠, 非汝歷劫辛勤修證, 雖復憶持十方如來 十二部經, 清淨妙理如恒河沙, 秖益戲論. 汝雖談說因緣自然決定明了, 人間稱汝多聞第一, 以此積劫多聞薰習, 不能免離摩登伽難. 何須待我佛頂神呪, 摩登伽心婬火頓歇得阿那含, 於我法中成精進林, 愛河乾枯令汝解脫. 是故阿難. 汝雖歷劫憶持如來祕密妙嚴, 不如一日修無漏業, 遠離世間憎愛二苦. 如摩登伽宿為婬女, 由神呪力銷其愛欲, 法中今名性比丘尼, 與羅睺羅母耶輸陀羅同悟宿因. 知歷世因貪愛為苦, 一念薰修無漏善故, 或得出纏 或蒙授記. 如何自欺, 尚留觀聽?」
즉시, 아난재대중중, 정례불족기립백불: 「세존. 현설살도음업, 삼연단고삼인불생, 심중달다광성자헐. 헐즉보리, 부종인득. 사즉인연교연명백, 운하여래돈기인연? 아종인연심득개오. 세존차의하독아등연소유학성문, 금차회중대목건련급사리불 수보리등, 종로범지문불인연, 발심개오득성무루. 금설보리부종인연, 즉왕사성구사리등소설자연성제일의. 유수대비, 개발미민.」
불고아난: 「즉여성중연약달다, 광성인연약득멸제, 즉불광성자연이출, 인연자연이궁여시. 아난. 연약달다두본자연, 본자기연무연비자, 하인연고포두광주? 약자연두인연고광, 하부자연인연고실? 본두불실광포망출, 증무변역하자인연? 본광자연, 본유광포, 미광지제광하소잠? 불광자연, 두본무망, 하위광주? 약오본두, 식지광주, 인연자연구위희론. 시고아언삼연단고즉보리심. 보리심생생멸심멸, 차단생멸. 멸생구진무공용도, 약유자연, 여시즉명자연심생, 생멸심멸, 차역생멸. 무생멸자명위자연, 유여세간제상잡화성일체자, 명화합성, 비화합자 칭본연성. 본연비연, 화합비합, 합연구리, 이합구비, 차구방명무희론법. 보리열반상재요원, 비여역겁신근수증, 수부억지시방여래 십이부경, 청정묘리여항하사, 지익희론. 여수담설인연자연결정명료, 인간칭여다문제일, 이차적겁다문훈습, 불능면리마등가란. 하수대아불정신주, 마등가심음화돈헐득아나함, 어아법중성정진림, 애하건고영여해탈. 시고아난. 여수역겁억지여래비밀묘엄, 불여일일수무루업, 원리세간증애이고. 여마등가숙위음녀, 유신주력소기애욕, 법중금명성비구니, 여라후라모야수타라동오숙인. 지력세인탐애위고, 일념훈수무루선고, 혹득출전 혹몽수기. 여하자기, 상류관청?」
❙ 해설
그때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부처님 발에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말씀하시기를 '살도음(殺盜婬)의 삼연(三緣)이 끊어지면 삼인(三因)이 생기지 않고, 마음속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저절로 없어지게 된다. 쉬면 곧 보리가 드러나는 것이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인연인 것이 분명하여 명백한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갑자기 인연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저는 인연법으로부터 마음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가 어찌 다만 저희들과 같은 연소(年少)한 유학(有學)과 성문(聲聞)만 그러하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에 있는 대목건련, 사리불, 수보리 등도 처음에 늙은 바라문[梵志]을 따라다니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여 깨달아 무루(無漏)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리는 인연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이는 곧 왕사성의 외도(外道)인 구사리(拘舍梨) 등이 주장하는 '자연이 첫째가는 진리[第一義諦]가 된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직 대비를 베푸시어, 저의 어리석음과 답답함을 열어 밝혀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실라벌성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의 인연이 제거하여 없어진다면 곧 미치지 아니한 성품이 자연히 나오는 것처럼, 인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게 된다.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달려있는 것이 본래 자연이라면, 본래 스스로 그러해야 하는데 만일 그러하지 않으면 자연이 아닐 터인데, 그런데 무슨 인연으로 지금에서야 머리가 없다고 무서워하여 미쳐서 달아났느냐? 만약 자연으로 있는 머리가 거울을 본 인연으로 인하여 미쳤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자연으로 있는 머리가 거울을 본 인연으로 인하여 없어지지는 않느냐? 본래 머리가 없어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친 공포심이 허망하게 생긴 것이라면, 본래의 머리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으니 어찌하여 미친 것이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부터 머리가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본래 어릴 때부터 미친 공포심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미치기 전에는 그 미친 성품이 어디에 숨어 있었겠느냐? 또 본래부터 머리가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가 본래부터 미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거울을 본 뒤에 미쳐서 달아난 것이냐? 만약 본래부터 머리가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까닭 없이 미쳐서 달아난 것임을 알고 나면, 미쳐 달아난 것이 인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것은 모두다 말장난[戲論]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삼연(三緣)이 끊어지면 곧 보리심(菩提心)이다.' 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보리심이 생기고 생멸심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이것도 역시 생멸이다. 생(生)과 멸(滅)이 모두 사라져서 마음작용[功用]이 없는 경지에서도 만약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곧 자연심(自然心)이 생기고 생멸심(生滅心)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까 이것도 역시 생멸이다. 생과 멸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마치 세상의 온갖 물질이 섞여서 한 몸이 된 것을 화합성(和合性)이라고 하고, 화합이 아닌 것을 본연성(本然性)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본래 자연이다 또는 본래 자연이 아니다' 고 하거나 '화합이다 또는 화합이 아니다.' 라고 하는 화합(和合)과 자연(自然)을 모두 떠나고, 또한 '떠났다 또는 합하였다' 고 하는 것까지도 모두 떠나야만 이것이 비로소 말장난이 아닌 진리가 된다. 보리와 열반은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을 지내면서 애써서 부지런히 닦는다고 하여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비록 다시 시방 여래의 십이부경의 청정하고 묘한 이치를 항하의 모래 수만큼이나 많이 기억하고 지닌다고 하여도 다만 말장난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명료하게 잘 설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를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칭찬하지만, 이렇게 여러 겁 동안 많이 듣는 습관[薰習]으로는 마등가의 유혹을 능히 벗어날 수 없었다. 모름지기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에 의지하여 마등가의 마음에 있는 음욕의 불꽃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그녀가 아나함(阿那含)을 증득하여, 나의 법속에서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물이 말라서 네가 그 어려움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지내면서 여래의 비밀하고 묘하고 장엄한 법을 기억하여 가지더라도, 하루 동안에 새지 않는 무루업(無漏業)을 닦아서, 세간의 미움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괴로움을 멀리 떠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마등가는 예전에는 음녀였지만 신주의 힘으로 인하여 그 애욕이 사라졌고, 지금은 불법에 입문하여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라훌라의 어머니인 야수다라와 함께 지난 생에서 맺은 인연을 깨달았느니라. 많은 세월을 지내온 원인이 탐욕과 애욕이 괴로움이 된 것임을 알고는, 일념(一念)으로 새지 않는 무루선(無漏善)을 닦았기 때문에, 혹은 애욕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 것에만 머물러 있느냐?」
❙ 보충
여기부터는 삼매(三昧) 공부에 대한 가르침이다
사마타(奢摩他)는 진심(여래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부이고, 삼마제(三摩提)는 진심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확실히 알고 나서 분별을 끊는 방법(삼매)에 대한 공부이다. 분별을 하지 아니하면(受에서 끊고, 想行識을 쓰지 않으면) 삼인(무명업상.전상.현상)이 저절로 없어진다. 삼인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없다. 무단히 일어난 무명을 어떻게 없애겠는가? 무명은 진짜 있는 것이 아니고 허망한 것이니 이것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분별을 없애면 무명도 저절로 없어진다. 따라서 공부하는 방법은 무명을 없앤다거나 주객을 없앤다고 하지 말고, 분별의 주체인 '나' 를 철저하게 알아서, 아~ 본래 내가 없구나, 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다고 일으키는 생각(분별)이 허망한 것이구나~ 하고 알면, 무명은 저절로 없어진다.
인연에 대하여
인연(因緣)은 원인을 말한다.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이다. 삼연(三緣)은 조건이 되는 살도음(殺盜婬)이다. 삼인(三因)은 세간(世間)과 업과(業果)와 중생(衆生)을 이루는 원인으로서 우리 마음을 말한다. 삼연이 끊어지면 삼인도 생기지 않는다.
인연에 의하여 고통과 행복과 깨달음이 있다. 인연의 이치를 모르면 인연 속에 있으면서 괴로움이 찾아온다. 인연 속에서 괴로움이 일어날 조건이 갖추어지면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인연법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지만 깨닫고 보면 새로운 깨달음이 아니라는[無覺] 것을 알게 된다.
사리불은 처음에 늙은 범지(梵志.바라문)인 산자야(Sañjaya)를 따라다니다가, 마승비구(馬勝比丘)를 만나 부처님의 인연법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는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이것을 법신게(法身偈)라고 한다.
제법종연생 諸法從緣生 모든 존재는 인연따라 생기고
제법종연멸 諸法從緣滅 모든 존재는 인연따라 사라진다
아불대사문 我佛大沙門 나의 부처님 대사문께서는
상작여시설 常作如是說 항상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인연도 자연도 아니다
거울을 본 인연 때문에 미쳤다고 한다면 거울을 보지 않을 경우에는 왜 머리가 없어지지 않는가? 다만 미쳤을 뿐이지 머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연이 아니다. 만약 인연이라면 머리까지도 잃어버려야 할 것이다. 연야달다의 머리가 자연이라면 본래부터(어릴 때부터) 미쳐야 될 것인데, 지금에서야(성인이 된 후에야) 미쳤으니 자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친 성품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성장한 후에 거울을 보고나서야 미쳤느냐? 따라서 자연이 아니다. 자연인가 인연인가 하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고 전혀 진실한 뜻이 없다.
보리심이 생긴 것은 생(生)이고, 생멸심이 없어진 것은 멸(滅)이니까, 이것도 또한 생멸(生滅)이다. 생멸은 청정이 아니다. 생멸은 인연이다. 따라서 도를 닦아서(공부를 해서) 번뇌 망상이 없어진다고 하면 그것은 멸이고, 도를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생이다. 따라서 이것은 진짜 보리의 마음은 아니고 생멸의 마음이다.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다.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함이 있는 것이고,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함이 없는 것이다. 화합(和合)은 인연이고 불화합(不和合)은 자연이다. 이 자리는 화합과 불화합을 다 떠난 자리이다. 불이법(不二法)이다. 말과 생각을 떠난 자리다.
수행이 필요하다
많이 듣기만 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큰 이익이 없다[多聞不修行 於法無大益]. 듣는 것은 수행하여 깨닫기 위한 도구이다. 공부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이다. 다문은 신해에 해당하고, 신해 후에는 행증이 필요하다. 규봉 종밀선사는 식자간경원불증오(識字看經元不證悟) 소문석의유치탐진(鎖文釋義唯熾貪瞋)이라 했다. 글이나 경을 보는 것으로는 깨칠 수가 없고, 문장을 해석하는 것은 오직 탐진치 사견만 더할 뿐이다. 자경문(自警文)에는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이라는 말이 있다.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는 뜻이다. 역시 수행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이제 견도분(見道分)이 끝나고 수도분(修道分)이 시작된다.
출처:https://blog.naver.com/sesimdang/223430911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