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브리겔의 교훈(약1525-1569) ‘가축 떼의 귀가1565,’ ‘나무위의 유화,’
<행복이 움틀 무렵 준비하는 것>
행복의 겨울...
그것은 아직 불행, 고통, 비탄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미미한 찬 공기에 불과하다.
앞으로 다가올 큰 추위를 품고 있거나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은 지옥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겨울일 뿐이다. 낮이 짧아지고 날씨가 추워진다.
삶은 더욱 힘겨워진다. 하루가 가볍게 지나가지 않는다.
우리의 실존 속에서도 역시 마음의 겨울이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다.
행복이 더 어려워지는 시기가 온다.
여름의 행복처럼 충만한 행복은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는 작은 행복의 단편들에 만족해야 하는 때이다.
주변의 추위에서 벗어난 행복의 조각들인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자주 행복의 순간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체험한다. :
떠남, 이별, 추방, 모든 종말들. 그리고 가끔 그 순간들은
명확한 이유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계속 같은 세계를 걸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브뤼겔의 그림은 극적으로 묘사하는 일 없이 겨울로 들어가는 모든 순간을 의미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순간들인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과감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 경우 우리는 동물적 조건에 접근하게 된다.
즉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물론 주변과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행복의 길이 겨울에 접어들면 점점이 흩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때는 행복이 얼어붙는 경우가 있었다.
불행이 자주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때인 것이다.
브뤼겔의 시대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당시 남자든 여자든 삶의 존재방식은 매우 거칠고 투박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결코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 없이도 살 수 있다.
적어도 그러한 삶이 쉽지도 확실하지도 않지만,
불만을 말하는 것인가?
브뤼겔의 그림 속 인물들은 이렇게 명멸하는 행복의 순간들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슬퍼하는 일없이, 마음속으로 다른 태도를 취해도 소용없고,
이중의 형벌을 가해도 소용없고, 불행을 응시해도 소용없다.
하지만 권태를 불행으로 바꾸려는 유혹은 더욱 커진다.
어떻게 논리적이고 정상적이며 일시적인 역경과 반항적이고 비정상적이며
영구한 파국과의 혼동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의 반성은 자주 우리를 이런 오류로 이끌고 간다.
혹시 생존 본능의 모호한 완강함이 그것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위험을 증대시킬지 모른다.
그래서 화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겸손과 냉정이 필요하다.
언젠가 ‘에밀 시오랑’은 인간의 고뇌에 관해 잔혹하게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종류의 어릿광대들이다. 누구나 문제를 지니고 살아간다.”
이 역경에 대처하는 냉정을 배우는 일, 그것은 위대한 작업이다.
거부하는(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일은 실행되지 않거나 잘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명석함(그것만이 오로지 문제이다)은
일어나는 일을 수용하기에 앞선 첫 단계에 속한다.
가감 없이 거기에 겨울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경우 행복은 한 동안 힘들어지거나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행복의 부재는 불행이 아님을 상기하자.
불행이 가능하다는 것, 불행을 생각할 수 있는 것,
혹시 올 겨울에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자.
삶을 지속하거나 기다리기를 지속하는 것. 아니 기대를 품고 사는 것이다.
앞서가고 있는 은연중의 겨울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자.
그리고 여름이 사라진 것에 대한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행복의 부재는 비록 우리들이 더 부서지기 쉽고 더 불안하게 만들지만,
권태를 불행으로 바꿔놓지는 못한다.
삶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이 역경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그 삶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행복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일궈낼 수 있을까?
지나간 행복과 다가올 행복 사이에서 가능한 것들,
그림속의 사람들이 가축을 몰고 가는 모습과 행동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행동은 희망을 줄 수 있는 절망적 행위이다.”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말이다.
행동하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꿔 놓는다.
실천은 추위 속에 있는 우리에게 온기를 주며,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행복은 가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명석하고 활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확신에 차있는 행복은 삶을 지속하도록 하고,
어디에선가 이쪽으로 행복이 되돌아오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방금 다른 쪽으로 건너갔다.
그렇지만 어떻게 꿋꿋하게 버티어내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 두 인물을 보라.
말을 탄 기사와 종모양의 이상한 모자를 쓴 사람, 그들의 얼굴표정을 보라.
그들은 슬그머니 웃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벌써부터 저녁에 자기들을 기다리는 아궁이 속의 불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제 저녁의 스프와 유쾌하게 주고받던 대화를 생각하는가?
그들은 불행에 맞서는 행동을 취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행복을 맛보기 위해 함께 행동하거나 더불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