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동 화채마을, 도시재생사업 집수리 현장을 가다 |
184가구 집수리 신청…샷시 교체·지붕 공사 등 진행 / 70년대 설악산 개발로 이주해 땅콩 주택 짓고 살아 / 화채랑센터 한달살기 내년 1월까지 예약 완료 |
지난달 설악동 ‘화채마을 도시재생 노후주택정비사업’으로 집수리 공사가 한창인 모습. 한쪽에서는 대문 지붕 교체, 다른 한집에서는 샷시 교체를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 3일 아침, 붉게 물든 가로수길을 따라 설악산 길목으로 향했다. 설악동 C지구에 다다르자 못질과 드릴 소리, 건축 자재끼리 부딪치는 갖가지 굉음이 평화롭던 화채마을의 가을 아침을 요란하게 깨웠다.
“형님, 거기 밑에 연장가방 좀 올려주세요!”
다소 왁자지껄한 곳으로 가보니 담벼락에 ‘화채마을 도시재생 노후주택정비사업’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린 집 마당에서 인부들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지난해 12월 화채마을이 도시재생사업 공모에 속초시 최초로 선정된 이후 약 10개월 만에 사전 행정절차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업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올가을 노후주택 집수리 작업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수리한 지 다 30년이 넘는 집들이에요. 집집마다 (공사)하는 것이 다 달라요. 함석대문만 하는 집이 있고, 페인트칠만 하는 집도 있죠. 우리 집은 나무로 된 창틀과 샷시가 오래돼서 10개 정도의 창틀을 교체하게 됐어요.”
화채마을 집수리 작업의 대부분은 현 도시재생사업 규정상 내부 인테리어는 불가해 각 집의 특성에 맞춰 외부 단열공사 위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겨울을 앞두고 샷시 교체, 건물 벽에 단열재를 접착한 뒤 그 위에 마감재를 도포하는 드라이비트 시공, 지붕 공사 등 단열과 내구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땅콩집 지붕에는 중년 남성 여럿이 올라가 있었다. 시멘트기와를 떼어내고 금속기와를 씌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금속기와는 녹이 슬지 않을뿐더러 돌가루가 있어 눈이 와도 밀리지 않는단다. 집주인은 지붕 아래에서 찐 감자와 고추장, 믹스커피를 내어왔다.
“집수리를 하게 돼서 마음이 너무 좋았죠. 마을도 깨끗해지고 예뻐질 거예요. 누구보다 통장님과 마을 운영위원회가 (도시재생)사업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쇠퇴하는 마을 살리자 주민들 뭉쳐
320가구, 500여 명이 거주하는 화채마을이 지금의 모습으로 된 것은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화채랑센터’에서 신상구 통장과 노복현 화채마을관리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 도시재생을 일구기까지 지난 세월을 함께 되짚었다.
“1970년대에는 지금의 설악케이블카 북쪽으로 뜨문뜨문 동네들이 있었어요. 박정희 대통령 때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되면서 활성화를 위해 그곳에 살던 이주민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 시킨 거죠.”
현재 설악산 소공원의 상가와 여관, 집단시설이 자리한 곳에는 74년도까지 핏골이라는 자연부락 형태로 주민들이 거주했다. 75년 설악산 B,C지구가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자 농경지와 농가 주택은 모두 철거되고 지금의 화채마을로 이사온 원주민들은 그때부터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땅콩 주택에서 살게 됐다.
C지구에서 여관과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가게에서 주거생활을 할 수 없어 이곳에서 집단 거주를 하게 됐다. 지금은 전교생이 60명 정도 되는 설악초등학교가 50년 전에는 전교생이 무려 400명이 넘었다고 한다.
“88올림픽 지나고 90년대 초부터 내리막길을 걸었죠. 콘도와 리조트 붐이 일어나면서 수학여행이고, 단체 손님이고 다 그쪽으로 가니까 자꾸 쇠락한 거죠.”
설악산 관광이 전성기를 누릴 때는 제주도와 맞먹는 인기 신혼여행지였다. 설악산까지 2~3일이 걸리는 전국 각지에서도 설악산을 찾았다. 그러나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를 따라가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노복현 이사장의 생각이다.
설악동에서 여관과 민박, 상가를 운영하던 주민들은 90년대부터 장사가 힘들어지면서 하나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속초의 다른 동네에 높은 건물이 올라가며 변화의 길을 걷는 동안 설악동은 고도제한이 묶여 있고 민간 기업이 들어올 수 없는 조건이라 막막함만 더해갔다.
쇠퇴하는 마을을 지켜만 볼 수 없던 주민들은 스스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2년 전 60~70명 가량의 마을 주민들은 6개월가량 꾸준히 모여 회의하며 마을 이름부터 지었다. ‘화목할 화(和)’에 ‘채색 채(彩)’, 화목하고 빛나는 마을이 되라는 뜻으로 의견을 모았고, 속초시와 버스회사에 간판과 안내표지판 등의 명칭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이름 없던 설악동 민박마을이 ‘화채마을’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다.
주민들은 마을운영위원회를 조직해 틈만 나면 모여 밥을 해먹고 단풍축제를 즐기는 등 단합을 통해 마을에 필요한 사업이 있으면 함께 목소리를 냈다.
간절함에 하늘도 감동…도시재생사업 선정
도시재생사업을 알게 된 약 5년 전부터 신상구 통장과 노복현 이사장은 ‘도시재생을 통해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해보고 싶다’며 계속해서 속초시에 문을 두드렸다.
“어느 마을이 도시재생에 적합한 마을인지 등수를 매겼는데 저희가 4등인가 했을 거예요. 순위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 동네가 제일 적합한 것 같다’고 계속 어필했죠.”
이들의 간절함에 하늘도 감동한 것일까. 1순위였던 다른 곳이 진행이 어렵게 되자 3년 전 화채마을에 기회가 왔다. 강원도에서 ‘우리동네살리기’ 유형 1등이 돼야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할 수 있고, 심사를 통해 최종 선정돼야 하는 꽤나 어려운 일이기에 한 번 떨어지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주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수선·목공 교육과 같은 역량 강화 교육을 받고 마을관리협동조합과 도시재생대학을 수료하는 등 묵묵히 준비했다. 드디어 그다음 해인 2022년 12월 화채마을은 강원도에서 1등을 하고 국토부에서도 당당히 최종 선정됐다.
총사업비 83억원 중 집수리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22억원. 미리 받았던 집수리 신청은 184가구 정도다.
예비사업으로 일찍이 운영 중인 화채랑센터는 1층에는 주민들을 위한 셀프빨래방, 2층은 방문객들이 한달살기 생활을 할 수 있는 설악스테이로 운영 중이다.
앞으로 2026년까지 오래된 노인회관도 리모델링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담을 없애거나 낮추어 예쁘게 꾸밀 예정이다.
또 주민 일자리와 관련된 수익 사업을 위해 화채랑센터 옆에 ‘화채락센터’가 지어져 카페, 헬스장, 도서관, 한달살기 3채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 설악스테이도 벌써 1월까지 예약이 다 찼다며 한달살기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화채마을이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타기까지 속초시도시재생센터의 지원도 한몫했다. 사업 신청 준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화채마을을 도왔던 엄기동 속초시도시재생센터장은 이날도 신상구 통장과 함께 집수리 현장을 방문하며 살뜰히 살폈다.
11월 한달 가량 집수리가 거의 마무리되면 동절기에는 잠시 사업 실행을 중단하고 날이 풀리는 내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사실 마을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도 이 점이다.
신상구 통장은 빨래방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내가 죽기 전 깨끗해진 마을을 보고 화채락센터의 카페와 휴게실을 이용해보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애가 탄다고 한다. 행정 절차를 조금이라도 앞당겨 착공을 서둘렀으면 하는 것이 화채마을 주민들의 바람이다. 도시재생사업을 이끈 신상구 통장과 노복현 이사장은 오늘도 새롭게 변모된 마을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여기 주택 거리도 단순한 주택만 있는 거리가 아닌 집집마다 먹거리가 됐든, 어떤 책방이 됐든 아기자기하게 만들어가고 싶어요. 관광지로 빛을 보았던 우리마을의 특수성을 살려 그 이상으로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것이 저희의 꿈이자 바람입니다.”
설악신문 정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