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합차에서 내려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울창한 '가문비나무 숲'과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차가운 계곡 그리고 맑고 높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환상적인 대자연에 연방 감사하면서 15킬로 가량을 힘차게 걸었다.
약 6시간 후 고도 2600미터에 있는 첫번째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 캠프'에는 '유르타'(이동식 천막가옥) 몇 동이 푸른 초원 위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아름답고 황홀했다.
배낭을 풀고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한 뒤에 저녁식사를 했다.
구뜰하고 소박한 식단이었다.
캠프에 계신 분들이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깊은 산 속, 식재료들이 많지 않을 테지만 각 음식들엔 정성과 고유의 담백한 맛이 듬뿍 담겨 있었다.
맛있고 건강한 식사였다.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돈을 내고 먹었다.
하지만 어찌 세상을 돈만 있다고 잘 살 수 있겠으며, 돈만으로 세상사를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물질로 성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정성과 배려 그리고 반가움이 음식과 사람들의 표정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산하엔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르타'의 내부는 포근하고 안온했다.
눕자마자 꿈나라도 직행했다.
꿀맛 같은 단잠이었다.
다음 날 기상 후에도 상큼한 기분과 심신으로 조식까지 잘 먹었다.
2일차 트레킹 출발까지는 약 3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성스런 대접과 따뜻한 미소에 나도 그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유르타' 주변을 둘러보니 장작용 통나무들이 많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에 큼지막한 도끼도 놓여 있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내 눈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쉬지 않고 꼬박 2시간 이상 도끼질을 했다.
매번 강력한 '풀스윙'이었다.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얼마만에 해보는 도끼질이던가?
소싯적엔 자주했던 일이었는데 학업 때문에 도회지로 나온 이후엔 좀처럼 경험해 볼 수 없었다.
'베이스 캠프' 여주인이 몇 번 나와서 고맙다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으로 잘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들의 순수와 정성에 감동하고 있었다.
2일차 트레킹을 다시 시작할 때까지 나의 도끼질은 멈추지 않았다.
'유르타' 옆에 쌓여 있던 통나무 약 90% 정도를 모두 팼다.
전부 해드리고 싶었지만, 3600M에 있는 두번째 캠프까지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했고 시간 관계 상 더 진행할 수 없었다.
다시 짐을 꾸렸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화폐를 내고 재화나 용역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 받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눈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돈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들이 우리네 삶엔 너무나도 많다.
상대에 대한 '정성'과 '배려' 그리고 '감사'의 영역이 특히 그렇다.
안 하던 도끼질을 열심히 한 까닭에 어깨에 담이 걸렸다.
그리고 손바닥 피부도 결국 까졌고 핏물이 뱄다.
하지만 나는 시종일관 진심으로 감사했고 행복했다.
엄청난 고도의 설산과 고봉들이 즐비한 세상의 지붕 '텐산산맥'.
그 웅대한 산맥의 어느 산자락에서 그렇게 트레킹 2일차의 오전 시간이 감사의 땀방울로 값지게 흐르고 있었다.
그랬다.
'고산 트레킹'의 '정수'이자 '도전이유'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에서 우리가 망각한 채 바삐 지냈던,
그리하여 존재 그대로의 '순수'와 '감동'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회복해 나가는 즐겁고도 고마운 '고행의 여정',
바로 그것이었다.
첫댓글 도끼질
정말 대단하시네요.
무겁고 힘들고 위험했을텐데..
참 멋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