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011DB14D509212AE26)
스위스에 입국한지 몇 일이나 지났지만,
티치노 지방에 있는 동안은 좀처럼 스위스다운 기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쓴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어차피 다른 지방들도 불어나 독일어를 쓰므로..)
풍경에서부터 그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죠.
흔히들 스위스하면 생각하는 샬레와 만년설을 인 알프스는
티치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스위스의 대도시들 또한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스위스의 이미지가 조그마한 산악마을인 것은 분명하죠.
그러한 면에서, 오늘은 흔히 생각하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처음으로 맞닥뜨린 날입니다.
엄청난 눈이 쌓인 설산도, 산기슭에 모여있는 목조샬레도,
드넓게 펼쳐진 야생화밭도, 방울이 쩌렁거리는 소들도 모두 말이죠.
![](https://t1.daumcdn.net/cfile/cafe/03072E47509212BD34)
누페넨패스(nufenenpass)는 저희가 체르마트로 가기 위해 거쳤던 산악도로의 이름입니다.
스위스에는 험난한 알프스를 넘는 산악도로가 많은데,
보통 이름 뒤에 패스(pass)를 붙여 다른 도로와 구분하고 있죠.
누페넨패스는 최고지점이 해발 2478m로 상당히 높은 코스입니다.
때문에 가는 도중에 귀도 멍멍하고, 차 안까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지요.
게다가 날씨가 흐려서 눈앞엔 안개가 자욱했고, 도중엔 비까지 내렸습니다.
게다가 길은 어찌나 꼬불꼬불한지..
운전하는 신랑으로선 꽤나 긴장됐을 법한 코스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페넨패스가 좋았던 이유는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 때문입니다.
내 키보다 더 높은 눈이 쌓여 얼음처럼 얼어붙은 도로변,
눈이 녹아 계곡이 되어 콸콸콸 쏟아지던 물줄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던 안개낀 산 등.
일찍이 보지 못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특히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산을 넘던 중에 만난 야생사슴이었습니다.
정확한 이름을 몰라 그냥 '야생사슴'이라고 부르는데,
어쨌든 커다란 뿔이 달린 꽤 큰 사슴류였죠.
눈과 안개로 뒤덮힌 알프스에서 야생사슴을 만나다니!
저희는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곧장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와 캠코더를 집어든 채 차밖으로 나올 수 밖에요.
('짱군'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이 동물은 아이벡스라는 이름의 야생염소라고 하네요!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려요! ^^)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FD24C509212D019)
사슴은 한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본 것만 해도 세 마리. 어쩌면 이보다 더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들은 가만히 우리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슬금슬금 도망을 쳤습니다.
처음엔 한 마리가 도망치길래 따라갔더니 두 마리가 보이고,
도망치는 두 마리를 따라갔더니 세 마리가 보이더군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들은 아찔할 정도로 경사진 바윗길을 내려갔는데,
이렇게 험한 산을 잘도 타는 걸 보니 역시 '야생'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동물원에서 만났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았을 사슴.
이런 곳에서 보니 역시 감동의 크기부터가 다르네요!
여기저기 바닥에 떨어진 사슴x..
염소x마냥 동글동글 귀엽네요~ㅋ 탁 트인 공간이라서 그런지 냄새도 전혀 안 났어요ㅋ
![](https://t1.daumcdn.net/cfile/cafe/1228E14D509212DE0A)
사슴을 보기 위해 잠시 정차했던 곳.
저 눈 쌓인 것 좀 보세요! 자동차 키만해요!! +0+
![](https://t1.daumcdn.net/cfile/cafe/1944224F509212F12C)
꼬불꼬불한 도로를 지나 산을 내려오니 이윽고 평탄한 길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을...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EC248509213021B)
우리가 온 방향으로는 계곡이 흐르는 웅장한 골짜기가 있고,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는 널따란 들판이 펼쳐져 있었는데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EA5505092131431)
그 사이에는 정말로 그림 같이 아름다운 마을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뾰족히 솟은 교회첨탑과 그 뒤에 자리한 웅장한 알프스..
왼편의 언덕길에는 소들이 방울소리를 내며 풀을 뜯고 있고,
그 아래로는 야생화가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모습.
정말이지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었답니다.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스위스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죠!!
![](https://t1.daumcdn.net/cfile/cafe/13440D4F5092131F2F)
이곳은 체르마트 근교의 테쉬(Täsch)라는 마을에 자리한 캠핑장입니다.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체르마트는
일반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청정마을로 지정된 곳인데요.
그 때문에 모든 여행객들은 일제히 체르마트 바깥에 차를 세워두고
열차를 이용해서만 들어갈 수가 있답니다.
이 캠핑장은 테쉬 역 바로 근처에 있어 역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구요.
테쉬 역에서 열차를 타면 약 15~20분 만에 체르마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여행객 입장에선 위치면에서나 비용면에서나 가장 편리한 숙소가 되는 셈이죠.
"아 추워!!!!!"
체르마트에 도착하자 차가운 공기가 온 몸을 덮칩니다.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오면서 기온이 낮아지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당히 따뜻한 날씨였는데..
역시 산악마을이라 기온부터가 다른 것 같더군요!
한동안 차 깊숙이 쳐박아두었던 고어텍스 점퍼를 꺼내고,
내피까지 든든히 챙겨입은 뒤 다음 할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BA54B5092132A2C)
오랜만에 먹는 고기반찬!!! 돼지고기수육에 쌈장, 상추까지!
제대로는 아니지만 비슷하게나마 한국식으로 차려먹는 저녁입니다. 얏호~~ㅋ
그렇게 즐겁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캠핑장 앞 산책로를 걸어가던 일본인 아주머니 세 분께서 살며시 말을 거십니다.
"Japanese?"
밥 먹는 중이라 왠지 민망하고 쑥스러웠던
저.. 그냥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아"하며 목례를 하고 지나가더니,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뒤를 돌아 또 다시 묻습니다.
"Korean?"
그렇다고 하자 급 반가워하시면서 외치는 말!
"안녕하세요!!"
한류 때문에 한국에 푹 빠져 있는 중이라는 아주머니..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던 저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워서 똑같이 일본어로 말을 건넸답니다.
어디서 왔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뭐 때문에 왔니, 어디어디를 여행 중이니 등등~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하고는 너무 쉽게 친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공통된 관심사가 있다보니 대화가 끊이질 않거든요~ㅋ
그렇게 밥 먹다 말고 한참을 수다 중인 여자 넷.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신랑은 대화에도 못 끼고,
밥도 못 먹는 어중간한 상태로 한참을 그렇게 있어야 했답니다.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같이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좋았을 것을~
스쳐지나간 인연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아쉽고, 반가웠던 만남이 아니었나 싶네요. ^^*
- 다음 포스트에서는 마테호른으로 대표되는 청정마을 체르마트(Zermatt)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