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솔향과 알싸한 마늘향이 어우러진 의성
글/사진:이종원
이웃 때문에 피해(?) 받는 지자체가 몇 군데 있다. 화려한 신라유적에 짓눌린 영천이 그렇고, 남도 일번지 강진과 보성차밭에 끼인 장흥이 그렇다. 국내 최대의 유교 유적지 안동과 살을 맞대고 있는 의성 땅 역시 마찬가지다. 의성은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세파의 때가 덜 탄 풋풋한 고향 같은 곳이다. 오로지 땅을 믿고 ‘심은 대로 거두리라’라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최고의 솔숲이 있는 고운사와 한여름에도 하얀 얼음이 붙어 있는 빙계계곡 역시 신비함을 더해준다.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나의 고운님을 찾는 고운사
안동시와 군위의 중간에 자리 잡은 의성군은 강원도 못지 않는 울창한 숲이 많다. 특히 고운사 숲길은 조용하고 사람의 손때가 덜 타서 걷기만 해도 마음이 정갈해지는 곳이다. 부석사와 봉정사까지 말사로 거느린 큰 절이지만 소박하고 고즈넉한 절 분위기를 한껏 매료된다. 입장료와 주차료도 없을 뿐 아니라 그 흔한 산채식당이며 동동주 파는 집이 한 곳도 없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주차장에서 경내까지는 500m와 1km 두 가지 길이 있다. 1km나 이어진 ‘천년송림체험로’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뒤틀린 소나무 사이로 S자 오솔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양편엔 잡목과 야생화가 활짝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부엽토로 다져진 흙길은 양탄자를 밟는 것처럼 부드럽다. 중간에 쉼터 2개가 놓여 있어 벤치에 앉아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제 1쉼터에는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시가 세워져 있다. 비가 부스부슬 내릴 때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상상해본다.
분위기와 높은 품격 때문일까? 고운사 숲길에 반해 머리 깎고 중이 된 스님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국을 떠돌다가 이 절에 들어앉은 고운 최치원선생까지 닿게 된다. 이곳에서 신선처럼 살다가 종적을 감춰, 절이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원래 절 이름이 ‘高雲寺’였는데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축한 후 그의 호인 ‘孤雲’을 따 ‘孤雲寺’로 바뀌었다. 설사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고요한 고운사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산사여서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기둥과 공포가 유난히 아름다운 고운사 일주문과 듬직한 사천왕문을 지나면 평소 보기 힘든 T자형 건물인 ‘고불전’이 손짓한다. 안에는 눈과 코가 다 헤어진 불상이 모셔져 있다. 물 위에 기둥을 세운 가운루는 물길을 막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 자연을 건물로 끌어들인 기발한 건축물이다.
우화루 서쪽 벽에는 호랑이가 눈을 부라리며 앉아있는 벽화가 그려있는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가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우화루에 앉아 코발트색이 유난히 짙은 극락전을 바라보며 차 한 잔 음미하는 여유도 좋다.
뭐니뭐니해도 고운사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은 연수전이다. 영조가 하사한 어첩과 불구를 모시기 위해 지어졌는데, 고종의 무병장수를 빌기 위한 원찰의 역할도 한다.
솟을대문과 목재난간 등 궁궐형식이 보이는데 사찰건물에 그려진 십장생은 매우 이례적이다. 약사전 안에는 신라하대에 만들어진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이 모셔졌는데 석굴암 본존불과 흡사하며 불꽃모양의 광배가 볼 만하다.
(사진: 고운사 요사채의 굽은 기둥)
사촌리 가로숲
고운사 남쪽 사촌마을에는 고려말에 조성된 천연기념물 제405호인 사촌리 가로숲이 자리 잡고 있다. 평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한 인공방풍림에는 수령 300~600년 된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500여 그루의 나무가 800m나 길게 이어졌다. 서애 류성룡의 어머니가 사촌리 친정집에 해산하러 왔다가 이 숲에서 서애를 출산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유난히 사과밭이 많아 백년 전통의 사과마을 비가 서 있으며 사과꽃을 솎아내는 농부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근처에 왜가리 집단 서식지가 있어 탐조여행도 겸할 수 있다. 사촌선비마을에는 30여 동의 전통가옥이 보존되어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인 '만취당'이 서 있다. 바로 옆에는 수령 500년 된 8m 향나무가 허리를 구부리며 말없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전통 정원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나무다.
계절을 거꾸로-빙계계곡
빙계계곡은 한여름에는 차가운 바람이 나오며 추운 겨울에는 더운 김이 모락모락 품어져 나오는 불가사의 계곡이다. 마을 건너편에는 수 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는 절벽이 U자형 협곡으로 이어져 있어 화산지역의 지질형태를 살펴 볼 수 있다. 그 아래는 맑은 계류와 큼직한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일찍이 경북 팔승의 하나로 지정될 정도다.
계곡 한가운데 유난히 큰 바위에 ‘빙계동(冰溪洞)’이라는 글씨는 임란 때 이곳을 거쳐간 명장 이여송이 직접 쓴 글씨라고 알려져 있다. 빙계동의 8개 경치를 ‘빙계8경’이라고 부르는데 제1경인 ‘빙혈’은 산기슭 바위 아래 4~5명이 들어 설 수 있는 방 한 칸 넓이의 공간으로 한 여름에 가면 바위에 붙어 있는 하얀 얼음을 볼 수 있다. 봄부터 찬 기운이 들기 시작해 하지 때 얼음이 얼어 평균 영하 4도를 유지하다가 입추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동지 때는 영상 3도가 되어 훈훈한 김이 무락모락 돌아 바깥의 계절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 2경 ‘풍혈’은 좁은 바위 사이로 천연 에어콘 바람이 나와 냉풍욕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다. 제 6경인 빙산사지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은 시원스런 계곡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탑과 조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용의 머리가 부딪쳐 파인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제 8경인 ‘용추’도 볼 만하다. 근처 식당에서는 의성특산물인 산수유 열매를 얹힌 산수유전과 엄나무 닭백숙, 산수유즙으로 국물을 낸 산수유칼국수는 빙계계곡이 주는 별미다.(시집못간 암탉 054-832-2402)
의성은 탑의 백화점-탑리오층석탑
의성은 탑의 고장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인 관덕리삼층석탑(보물 제188호)이 있으며, 고구려 장수왕릉의 형식을 가진 석탑동석탑, 빙계계곡을 내려다보는 빙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의 우아한 자태도 빼놓을 수 없다. 뭐니뭐니해도 탑의 비례와 균형을 갖춘 의성의 대표작는 역시 탑리오층석탑(국보 제 77호)이었다. 탑이 소재하고 있는 곳은 금성면이지만 ‘금성’ 이라는 이름보다 ‘탑리’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탑다방’, ‘탑택시’, ‘탑미용실’의 간판에서 보듯 부처님의 상징인 탑이 민초들의 생활 속에 깊이 물들어 있다. 탑리오층석탑 가는 길 양편에 있는 집들은 20년 전 소읍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탑의 연륜만큼이나 오래된 사진관, 미용실, 세탁소는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 있다.
옛 면사무소 자리 언덕에 오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는데, 토단이 높은데다, 5층석탑으로 더욱 상승감이 느껴진다. 9.6m 높이에 지붕돌의 낙수면이 계단을 이루고 있고 큼직한 돌을 잘라 쌓은 전탑의 특징마저 지니고 있다. 탑의 남쪽에 불상이 모셔졌을 감실이 큼직하게 뚫려 있으며, 1층 몸돌의 기둥은 위쪽이 좁고 아래쪽이 넓은 배흘림기둥을 하고 있고 기둥머리와 추녀의 반전 역시 목조건물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목탑에서 석탑으로 발전해나가는 과도기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초기의 만들어졌으며 풍탁을 매단 구멍도 보인다. 1500년 전 풍경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알싸한 마늘쫑 따기 체험
의성하면 떠오른 것이 바로 마늘이다. 의성의 토종마늘은 즙액이 많고 입안에서 독특한 향기와 매운 맛이 감돌면서 저장성이 강해 김치에 넣으면 빨리 시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마늘의 알싸한 맛은 의성 특유의 석회암 토질 때문인데 산이 많은 의성은 유난히 골바람이 세 통풍까지 잘되어 마늘 농사의 최적지다. 남도의 마늘이 쫑대와 마늘쪽 사이에 공간이 있지만 의성마늘은 마늘쪽의 끝이 밀착되어 있고 제비꼬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1월 하순쯤 마늘을 심어 이듬해 6월 중순부터 마늘쫑을 수확하는 한지형 마늘인데 밭에서 마늘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논에 재배하기 때문에 수확이 끝내면 바로 모를 심기 때문에 의성의 농민은 1년 내내 바쁘게 산다. 5월 중순부터 마늘쫑을 잘라내야 튼실한 마늘알맹이를 만들어내는데 마늘쫑 따기 체험은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체험은 간단한데 마늘밭에 들어가서 고무줄처럼 생긴 마늘쫑을 잡아 뽑으면 그만이다. 단순히 마늘쫑을 뽑는 것이 아니라 재배과정을 참여하면서 땅의 소중함과 노동을 배우게 된다. 마늘쫑은 그 향과 맛이 독특해 장아찌나 볶음요리에 즐겨 사용된다. 5월말부터 6월초부터 햇마늘이 장터에 나오는데 이때쯤이면 2.7일 의성 장날은 전국 최대의 마늘장터가 된다. 할머니들이 손수 캐온 산나물과 약초까지 구입할 수 있다.(마늘쫑 수확체험 의성토종마늘마을 011-537-5719)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애플와인 만들기
의성사과는 일교차가 심하고 강수량이 적은 기후 때문에 빛깔이 좋고 당도가 높아 '옥사과'라 불리운다. 의성은 국내 유일의 애플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너른 사과밭에 들어가 계절에 맞는 농장체험까지 할 수 있다. 4,5월 한창 사과 꽃이 필 때는 사과꽃으로 화전만들기를 할 수 있으며 튼실한 과실을 위해 사과꽃 솎기 체험을 하게 된다. 6월과 7월로 넘어오면 작은 사과 열매 솎기체험을 할 수 있으며 8월~12월에는 본격적인 사과수확체험을 하게 된다.
사과밭에서 폼 나게 찍은 사진을 가지고 체험장으로 돌아오면 의성사과 맛보기와 애플와인 시음을 하게 된다. 과일을 잘라 소주를 붓고 3개월 후에 마시는 침출주와 달리 사과원료에 효모를 넣고 3개월 넘게 발효한 정통 와인이기 때문에 와인의 깊고 깔끔한 맛이 혀끝을 사로잡는다.
시음과 공장견학을 마치면 사과와인 만들기 체험을 하게 된다. 숨쉬는 항아리의 콕을 열면 늘씬한 와인 병에 사과와인이 담겨진다. 펌프처럼 생긴 공구를 이용해 직접 콜크를 막고, 헤어 드라이기를 이용해 병목에 은박지를 붙이고, 사과밭에서 찍은 사진이 라벨이 되어 술병 한 가운데 붙이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사과와인이 완성된다. 감히 먹을 수 없어 가보로 보관한다고 할 정도다. 사과나무를 볼 수 없는 동남아 관광객으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체험료 1만원, 한국애플리즈:054-834-7800 경북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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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문문듯 읽어보니까 저의 아버님 고향인 의성군 가읍면 까지 오셧다 가셧군요 서울에서 오시기에게는 먼곳인데...빙계계곡등 옛날외지인들에게 소문이나서 들어오기 전에는 정말 좋았는데 지금은.....그래도 좋은 느낌을 받으셧다니 만일 이곳이 여행코스가된다면 ...정말 그때는 참석할겁니다 .항상 좋은곳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리며.늘 운전에 조심하세요
탑산온천 너머 보이는 마을이 도리원입니다. 저기가 제가 태어난 고향이지요. 고향구경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