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장 14-19절 하나님의 견고한 터
딤후 2: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제1장 그리스도의 중심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딤후 2: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충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앞에서 '그리스도 중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을 생각하면 지금의 문제는 바울의 죽음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의 혼란이었습니다.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딤후 2:14) '너는 그들로(에베소 교인) 이 일을 기억하게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중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일이요 영생의 일인 복음의 중요성을 기억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제2장 진리를 가지고 다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고 말할 때 이것은 말하는 것의 심각성에 대한 강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증인이 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매우 엄숙한 맹세와 같습니다. 또한 '엄히 명하라'는 것을 통해 형식과 내용까지도 엄히 말할 것을 말하는 강조입니다.
'말다툼'은 일반적인 말다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대한 다툼'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 어떤 이들이 다툼을 벌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다툼은 진리를 향한 탐구가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앞에 두고도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난체나 무지를 드러내는 다툼이었습니다.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바울은 디모데에게 '힘쓰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히 애써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 디모데가 힘써야 할 것은 죽음을 앞에 둔 바울에 대한 걱정이 아닙니다. 디모데가 힘써야 합니다.
제3장 하나님 앞에 주끄러움이 없는 일군으로 바쳐져야 합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거짓이 가득한 곳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에 물들기 쉽습니다. 생선가게에 있다보면 생선 냄새가 젖어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복음이 핍박받는 환경에서 그리고 복음이 퇴색되는 환경에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부단히 열정을 가지고 힘써야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기독교가 부흥의 때도 있지만 때로는 침체기도 있습니다. 침체기라 하여 자신의 신앙까지 침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을 잘 살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정확히 다루도록'으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이것의 직역적인 의미는 '무엇인가를 똑바로 자르다'입니다. 말씀을 해석함에 있어 어떤 단어가 어떤 단어를 수식하는지, 어떤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전체 문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오해가 많은지 모릅니다. 디모데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서 말씀을 옳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교육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목회자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바울이 죽음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말씀 한 단어의 의미가 무엇이고 구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요? 그러나 중요합니다. 오히려 바울의 죽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살아 있다고 에베소 교인이 구원을 받고 죽었다고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은 다릅니다. 말씀을 잘 모르면 구원에서 멀어집니다. 신앙인이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제4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딤후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거짓 선생의 가르침을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6)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가치없고 헛된 말을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망령되고 헛된 말'은 경건과 반대 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데 '자신'은 경건이 아니라 불경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결국은 그들의 말에 이끌리어 불경건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도 아니면서 말만 번지르하게 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십시오. 경건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들의 삶이 세상적인 화려함으로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분명 거짓 선생입니다.
제5장 부활신앙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딤후 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딤후 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저나감'과 같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결국은 많은 이들을 감염시킵니다. 함께 망하게 합니다. 성공병에 걸린 사람들의 말은 유치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매우 많습니다.
'후매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악성종양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떻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우 많습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2:18) 그들 중에는 '부활이 지나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는 주장입니다. 부활은 성경에서 그리고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의해 부활에 대해 엉터리를 가르쳤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에 회심을 부활로 설명하거나 영적인 부활의 측면만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울 당시의 사람들이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자유주의적 신학 영향으로 부활을 비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씀이 말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시대 사조와 자신의 생각으로 말씀을 부정하는 이들의 말은 악성종양입니다.
바울의 죽음과 교회내의 이단적인 주장들로 에베소 교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오늘날 한 교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제6장 복음은 변하지 않으며 위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위대성에 집중하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딤후 2:19) '하나님의 견도한 터는 섰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주동사입니다. '터'는 교회이며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이며 복음입니다. 교회는 어떤 것이 있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말씀도 변하지 않습니다. 복음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구원으로 이끄는 길이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것을 교회에 가져와서 엉뚱한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명령합니다. 교회에서 세상의 주장과 걱정으로 가득한 것이 '불의'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견고한 터'에서 흔들리지 말고 우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정확히 정리하여 주었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진리가 아닌 다툼'에 대해 멀리하고 오직 '말씀을 분별하라' 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러워도 신앙인이 가야 하는 길은 분명합니다. 디모데는 목회자로 말씀을 잘 분별하며 잘 가르치도록 열심히 애써야 합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교회를 흔드는 세력이 교회 안과밖에 많이 있지만 여전히 교회는 '하나님의 견고한 터'입니다.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복음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 견고한 터 위에서 열심히 생명의 길을 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